Two heirs RAW novel - Chapter 58
61
리엘라나 브릭스 거리의 사람들은 잘 깨닫고 있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리엘라가 만드는 것들은 꽃의 배치는 물론 색감이나 소재의 배치까지 완벽했다. 게다가 그때그때 손님들이 원하는 요구까지 완벽하게 대응했다.
그래서 스스로 재능이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정말로 몰랐다고?
“하지만 브릭스 거리에서 다들 그냥 예쁘다고만 했지 별말 안 했는데요.”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그냥 예쁜 꽃다발이다, 장식이다 생각했을 테니까요. 왕궁 근처에 있는 가게들에 주문하면 리엘라 양이 파는 가격보다 열 배는 더 비싼 게 기본입니다.”
“전 그냥 가겟세와 비싼 꽃 때문에 그렇게 파는 건 줄 알았죠.”
“한 번도 꽃 축제에 참가한 적 없었습니까?”
“전 올해가 첫 참가예요.”
둘이 대화를 하는 사이 마차는 왕궁 문을 지나 정원 관리부의 건물에 도착했다. 루시안은 리엘라와 함께 내려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왕궁의 본궁으로 갔다. 혼자 남은 리엘라는 천천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작업실의 문을 열자 짙은 꽃향기가 확 몰려왔다.
“춥다.”
작업실은 왕궁의 보석술사들이 보석의 힘을 이용해 언제나 낮은 온도가 유지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공간이다. 이런 곳에서 어제 하루 종일 작업하다 보니 몸이 더욱 뻐근했었던 모양이다. 다행히 감기에는 걸리지 않았고 네아 덕분에 뭉친 근육도 많이 풀렸다.
리엘라는 어제 낯선 남자들이 주고 갔던 장미가 담긴 통을 들어 올렸다.
‘분명 클로에 양 쪽에서 쓸 꽃이란 말이지.’
어제 직원들에게 물어봤더니 모리스 경이 없던 사이 꽃을 담당했던 공로를 인정받아 왕궁 주요 부서가 있는 건물의 꽃 담당을 클로에가 맡게 되었다고 했다. 모리스 경이 맡고 있는 곳 보다 훨씬 꽃 장식이 많이 들어갈 테니 꽃도 더 많이 필요할 것이다.
‘그걸 나에게 맡기고 간 게 분명한데.’
리엘라가 궁금한 것은 이것을 명령한 사람이 클로에인가 하는 것이었다.
‘클로에 양이 그럴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어.’
길에서 장사하다 보니 사람을 처음 보면 느끼는 인상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첫인상과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맞아 떨어지는 편이기도 했고.
어제 만난 클로에는 오랜 시간 함께했던 스승의 자리를 노리고 사람들을 포섭해 뒤를 칠 사람은 아니었다.
‘그럼 왜 그렇게 된 걸까.’
오해라고 하기에 클로에와 다른 사람의 태도는 확실했고 그럴 만한 짓을 하지 않았다는 모리스 경의 태도 또한 의심스러운 점이 없었다.
‘내가 해결할 문제는 아니지만….’
모리스 경이나 클로에 베넷이나 이 일을 시작할 때부터 들었고 동경한 이름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관계가 이렇게 파탄 난 채로 끝나는 것은 싫었다.
‘일단 할 수 있는 일부터 하자.’
리엘라는 정리해 두었던 꽃들을 작업대에 올려 두고 작업실 벽에 있는 선반에서 두꺼운 책을 가져왔다.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은 다른 책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내용이 궁금했지만 그 내용을 외부로 유출하는 것은 불가했기에 본 사람들도 신문이나 책에서 내용을 말하지 않았다. 언젠가 리나와 이야기하면서 ‘왕궁에 들어가면 그것부터 볼 거야!’라고 했는데 그 책이 지금 제 손에 있다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봤던 것인지 표지는 너덜거렸고 책 옆은 손때가 가득했다. 게다가 작업장에 놓아 둔 책이다 보니 물에 젖어 우글거리는 부분도 있었고 여기저기 꽃잎이나 풀물의 흔적도 보였다.
리엘라는 지난 사람들의 흔적을 느끼며 책을 넘겼다.
교본은 이름 그대로 기본적인 내용에 무척이나 충실한 책이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화려한 꽃꽂이 책에 비하면 낡고 고루해 보였지만 그곳에는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려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어디 보자… 본궁에 들어가는 꽃 장식은 혹시 모를 상황에 안전을 대비해 가시 철판 대신 전부 플로랄 나무를 사용해 꽃의 위치를 고정한다.”
주의 사항을 읽던 리엘라는 놀란 얼굴이 되었다. 전부 플로랄 나무를 사용한다고? 그 비싼 것을?
보통 꽃들은 촘촘히 가시가 박힌 침봉 위에 고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침봉보다 좋은 것은 플로랄 나무를 삶은 뒤 갈아서 다시 굳힌 것이었다.
보통은 그냥 플로랄이라고 부르는 벽돌처럼 생긴 사각형 모양의 자재는 물을 오래 제 안에 가둬 두는 능력이 있었다. 그것은 무척이나 부드러워 손가락으로 눌러도 쑥쑥 들어간다.
어릴 적, 부모님과 멋진 저택에 놀러 갔다가 그 집의 테이블에 있던 꽃 장식에서 그것을 처음 봤었다. 꽃이 꽂혀 있는 벽돌이 신기해서 손으로 쿡쿡 찔러 봤더니 쑥 들어가 버렸다. 그 감촉이 신기해서 계속해서 손가락으로 구멍을 내다 모양이 완전히 망가졌을 때 딱 부모님에게 들켰다.
“리엘라, 너! 이게 얼마짜리인 줄 알고!”
그날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났었다. 알고 보니 꽃보다 그게 열 배나 넘게 비싼 것일 줄이야. 그 위에 꽂을 꽂으면 핀에 꽂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가고 모양도 예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어쨌거나 플로랄 나무는 비싸다. 그런데 그걸 짧으면 하루, 길어도 3일만 놔두는 장식에 쓰다니. 공작저에서도 안 쓰는 건 아니었지만 어쩐지 사용하는 게 아까워 온실 창고에 쌓아 두기만 했었다.(네아는 그런 모습을 보고 대륙 전체의 플로랄 나무 농장도 살 수 있으니 마구 쓰라고 했다.)
리엘라는 서둘러 교본을 마저 읽어 나갔다.
어떤 날에는 꽃 무슨 꽃을 써야 한다거나, 반대로 어떤 날에는 절대 써서는 안 되는 꽃이라던가. 왕궁의 장소에 들어가는 꽃들의 종류도 달랐다. 그중에서 왕과 왕비의 방에 들어가는 꽃들에 대한 주의 사항은 서른 가지가 넘었다.
‘이거 다 지키면서 만들 수 있나?’
만들어도 뭔가에 걸릴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일단 꼭 지켜야 할 사항을 숙지한 채 리엘라는 회의실에 들어갈 꽃들부터 만들었다. 너무 화려하지 않을 것. 너무 향기롭지도 않을 것. 그렇지만 카르디아 왕궁이라는 장소에 걸맞게 우아하고 고상하며 품위가 있어야 할 것.
이 무슨 싸고 품질 좋은 물건같이 있을 수 없는 것을 주문하는 소리인지.
다행히 몇 장을 더 넘기자 수십 가지의 예시가 그려져 있었다.
“일단 모리스 경께서 오시기 전에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보자.”
리엘라는 팔을 걷어붙였다.
***
마틴은 평소보다 일찍 출근했다.
‘클로에 양이 오기 전에 어제 맡겨 두었던 것들을 찾아와야지.’
일부러 그 꽃들을 먼저 하라 말했었다. 중간중간 다른 사람들을 보내 리엘라가 그 꽃들을 손질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니 이제 어서 가서 그 꽃들을 가져와 제가 작업한 것처럼 두면 될 것이다.
‘아직 안 왔겠지?’
마틴은 콧노래를 부르며 작업실로 향했다. 그가 올라가기 전, 마차 한 대가 정원 관리부 앞에 도착했다.
‘모리스 경?’
붙어 있는 문장을 보니 모리스 경의 마차였다.
마틴은 클로에가 직접 자신을 부른 것은 아니지만 그녀를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고 모리스 경에게 드러내 놓고 클로에를 따르겠다고 말할 용기도 없었다. 어쨌든 아직 왕궁의 수석 플로리스트는 모리스 경이니까.
그래서 모리스 경이 왕궁에 오지 않았던 그제까지 클로에의 주변을 돌며 시킬 일이 없냐 편히 말해 달라 했다. 그랬더니 클로에가 정 할 일이 없으면 장미 손질이라도 도와 달라 했기에 자신처럼 어정쩡한 위치의 친구들과 그 장미들을 가져온 것이었다.
‘클로에 양도 리엘라 테니어를 싫어할 테니… 적당히 때가 되면 내가 은근슬쩍 그 여자를 이곳에서 내보내려 노력했다는 것을 말해야지.’
그러면 클로에는 제게 조금 더 점수를 줄 것이다. 그전까지는 여전히 모리스 경을 잘 따르는 척을 해서 그의 주변 상황을 살피는 게 좋을 것이다.
마틴은 마차에서 내릴 모리스 경에게 인사하기 위해 기다렸다. 하지만 내린 사람은 모리스 경이 아니었다.
“누구십니까?”
마차에서 내린 사람이 두리번거리자 마틴은 그에게 다가갔다.
“저는 모리스 경께서 보낸 사람입니다. 혹시 정원 관리부의 직원이십니까?”
“그렇습니다만, 모리스 경께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네, 다름이 아니라 어제 무리를 하신 탓에 오늘 출근이 좀 힘드실 수도 있다고 하십니다. 그 사실을 전달해야 하고 리엘라 테니어 양께 이 편지도 전달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러시군요. 그럼 저에게 주십시오. 마침 그녀에게 가는 길이니 함께 전달하겠습니다.”
“그래 주시겠습니까? 그렇잖아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전부 돌아봐야 하나 싶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감사요. 같은 직원 일인데 도와야지요.”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전달 잘 부탁드립니다. 아, 죄송하지만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파블로라고 합니다.”
“그럼 파블로 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남자는 고맙다는 듯 고개를 깊게 숙인 뒤 다시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가 출발하자 마틴은 누가 본 사람이 없나 확인한 다음 재빨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누가 오지 않는 구석의 창고로 가 모리스 경이 보낸 편지를 조심스럽게 뜯었다.
“아무래도 오늘 못 올 모양이군?”
생각보다 몸이 더 안 좋았던 모양이다. 편지에는 리엘라에게 오늘 못 갈 것 같다는 이야기와 함께 왕과 왕비의 방에 보낼 꽃에 대하여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꽃 종류와 색, 송이의 수, 배치할 위치까지 자세하게 그려진 편지에 마틴은 혀를 내둘렀다.
교본을 보고 좀처럼 따라 하지 못하는 마틴조차도 할 수 있을 만큼 상세한 설명이었다. 그는 한참이나 편지를 본 다음 그림이 그려진 편지는 제 뒷주머니에 접어 넣었고 오늘 갈 수 없다는 내용을 담은 편지는 잘게 찢은 다음 창고의 정리함 밑으로 밀어 넣었다. 그는 창고를 나가며 쓰고 있던 모자를 바지 뒷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파블로는 무슨 놈의 파블로.”
나중에 아무리 찾는다고 해도 그런 이름의 사람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오늘은 모자를 눌러쓰고 왔으니 그 하인도 얼굴을 제대로 못 봤을 것이다.
그는 작업실의 문을 열었다.
“어?”
“아,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리엘라가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맡겼던 꽃들은 여기 있습니다. 확인해 보실래요?”
“아, 아니 됐습니다.”
아직 오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던 리엘라가 있는 탓에 마틴은 우물거리며 그녀의 시선을 피해 꽃을 집어 들었다.
이미 작업을 시작한 것일까. 작업대 위 돌림판에는 플로랄 나무가 있었고 그 위에는 벌써 몇 송이 꽃이 꽂혀 있었다. 아마 모리스 경이 오기 전에 기본적인 틀을 잡을 생각인 것 같았다.
‘그래 봤자 모리스 경은 오지 않을걸.’
다른 꽃들도 중요하지만 모리스 경이 따로 편지를 보낼 정도로 신경을 쓰는 왕과 왕비의 방으로 보내는 꽃은 늦어도 세 시까지는 준비해서 보내야 한다. 그래야 일을 끝내고 방으로 돌아올 국왕 부부의 눈을 위로하고 피로를 달래 줄 수 있으니.
그때까지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할 리엘라는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당황하겠지.
‘그렇다고 제가 클로에 양에게 갈 수도 없을 테고.’
그 일은 모리스 경과 클로에 베넷이 전담하던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조언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모리스 경도 그렇게 자세하게 그림까지 그려 편지를 보냈을 것이다.
“수고했어요. 그럼 이만.”
리엘라와 얼굴을 더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마틴은 저와 동료들이 넣은 통을 복도로 전부 끌어낸 다음에 문을 닫았다. 그는 흡족한 얼굴로 통 두 개를 들고 클로에가 사용하는 작업실로 갔다.
‘얼핏 보니 어느 정도는 정리를 해 둔 모양이지만…. 제대로 했을 리가 없으니 다시 살펴봐야겠어.’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던 여자가 제대로 했을 리가 있나. 대충 한 꽃을 클로에에게 가져다줄 수 없으니 그녀에게 주기 전에 자신이 마저 손질을 하는 게 좋을 것이다.
통들을 작업실로 옮기던 마틴이 마지막 통을 마저 들여놓으려는 순간 클로에가 작업실로 들어왔다.
“마틴?”
“좋은 아침입니다, 클로에 양.”
“일찍 왔군요. 꽃을 정리했나요?”
클로에는 다가와 통에 있는 장미 한 송이를 집어 들었다. 제가 다듬기도 전에 클로에가 보다니. 그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지금이라도 제가 아니라 리엘라 테니어가 했다고 말하는 게 좋으려나? 마틴이 고민하고 있을 때 클로에가 놀란 목소리로 말 했다.
“정리 잘했네요. 완벽한데요? 줄기 하나도 다치지 않고 가시들도 흔적 없이 아주 깔끔하게 정리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