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cover Professor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585
◈ 585화 흑기사 (2)
붕괴하듯 무너지는 천장.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듯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이었지만,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거기에 놀라거나 하지 않았다.
크라바트는 주변에 검은 기운을 일으켜 무너지는 천장의 잔해를 막아 냈다.
강철과 콘크리트가 혼재된 잔해였지만, 검은 연기는 거대한 물리력을 지니고 있기라도 한 듯 그것을 손쉽게 받쳤다.
오히려 닿은 강철이 빠르게 부식하고, 시간을 수백 년 빨리 감기 하듯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형상과 물리력을 지닌 고대 저주의 힘이었다.
다음으로 반응한 것은 가리엘이었다.
천장의 잔해가 무너지며 방을 깔아뭉개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채 3초도 걸리지 않았다.
가리엘의 마력이 그의 몸을 둘러싸듯 일어났다.
가리엘의 마법에는 술식이 필요 없었다.
그의 마력은 이미 마법을 구현하는 술식 그 자체였으니까.
가리엘의 머리 위로 반투명한 흰색 시계가 떠오르고.
째깍.
그 초침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시간 정지]멈춘 세상 속에서 가리엘은 움직였다.
누군가에게 3초밖에 되지 않는 시간. 가리엘은 그 시간은 자신의 수명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늘릴 수 있었다.
그렇게 3초를 30분으로 늘린 뒤, 정지했던 시간이 다시 흘렀다.
그사이에 방 안에 있는 귀중품과 재료, 그리고 리네가 누워 있는 침대까지 한꺼번에 바깥으로 옮겨졌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루드거였다.
사실 셋 중에서 가장 큰 역할을 맡은 것은 루드거였다.
천장이 무너지면서 생기는 균열.
그 틈새를 비집고 부수면서 밀고 들어오는 검붉은 참격.
루드거는 찰나의 순간에 술식을 구성, 구현, 완성하며 마법을 펼쳐 참격을 막아 냈다.
두 기운이 충돌하며 주변으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거리의 가스등이 크게 출렁이며 불빛이 꺼지고, 주변 건물들의 유리창이 부서지며 불빛이 깜빡거렸다.
천장과 벽을 거대한 짐승이 할퀴고 지나간 것처럼 자국이 아로새겨지고, 그 휑하고 커다란 흔적 너머로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의 모습이 보였다.
“흐음? 호오. 한 번에 끝낼 생각으로 날린 일격이었건만, 이것을 막아 냈단 말이오?”
검은 여명회의 퍼스트 오더, 흑기사 베롬.
그는 반파된 건물 안쪽에서 멀쩡한 루드거 일행을 보며 나지막이 감탄했다.
“나이트 베롬.”
“존 도우 경.”
“갑작스럽게 나를 공격한 그 저의가 궁금하군. 우리가 사이가 목숨을 노릴 정도로 그렇게 나빴던가?”
“미안하오. 딱히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니 말이오.”
“내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공격했다는 것은, 이미 각오했다는 소리겠지?”
“거래를 했소.”
“거래라. 니콜라이가 달콤한 제안을 한 모양이군.”
“그렇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지.”
베롬의 목소리에는 못마땅하다는 티가 역력했다.
본인도 니콜라이의 말대로 움직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같은 퍼스트 오더를 배제하기 위해서 칼을 뽑았다는 것은 그 거래라는 것이 베롬에겐 상당히 중요한 일이기 때문일 터.
“뭐야. 아는 사이야?”
둘의 대화를 엿듣던 가리엘이 기함해서 물었다.
“뭐, 직장 동료 정도로 하지.”
“직장 동료인데, 왜 죽이려 드는데.”
“그런 직장이다.”
“이 섬에서 모르는 사람 없다면서!”
“나도 저 녀석이 여기에 있는지 몰랐다. 아니, 사전에 듣기는 했지만 날 찾아올지는 몰랐지.”
“냅다 기습한 걸 보면 저쪽은 아주 작정한 모양인데?”
“그래. 아무래도 싸움은 피할 수 없는 모양이야.”
루드거는 부서진 벽의 잔해를 밝으며 앞으로 나섰다.
반대편 건물 옥상에 서 있는 베롬의 헬름 투구 사이로 붉은 안광이 흘러나왔다.
“피차 이렇게 돼서 유감이오.”
“그래. 유감이로군.”
둘 사이에 말은 필요 없었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이상,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이 났으니까.
제로 오더는 굳이 퍼스트 오더끼리의 죽고 죽이는 싸움을 막지 않는다.
그 지나친 방관주의를 보면 조직이 제대로 돌아가는지조차 의문스럽지만, 차라리 지금처럼 시원하게 싸울 수 있음에 감사하기로 했다.
베롬이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그의 뒤에 숨어 있던 그림자들이 스스슥 움직였다.
니콜라이와 빅터가 만든 합작 실험체였다.
“쯧. 피 냄새에 환장한 아귀 떼 같으니.”
베롬은 실험체들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혀를 차며 휘두르려던 검을 거두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실험체와 함께 일대를 모조리 쓸어버리고 싶었지만.
“그 간악한 니콜라이가 어디서 몰래 지켜보고 있을지 모를 노릇. 거래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괜히 책잡힐 일을 하지 않는 게 좋겠지.”
실험체들은 네 다리로 기어다니듯 움직이며 루드거를 향해 달려들었다.
벽을 타고 이동하거나, 높게 점프해서 허공에서 달려들거나, 혹은 바로 건물 아래의 바닥을 부수고 올라오거나.
그 이동 방식과 공격 방향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들이었다.
게다가 인간이면서 인간 같지 않은 그 기괴함은, 상대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공포감과 압박감을 느끼게 만들 정도였다.
실험체의 입이 쩌억 벌어지며 날카로운 치아가 드러났다.
강철조차 씹어 먹을 수 있는 이빨로 루드거의 전신을 물어뜯으려는 순간 루드거가 준비한 마법이 발동했다.
파지지직!
주위로 생기는 강렬한 전기장.
그 전기장이 지닌 열기에 가까이 접근했던 실험체들이 숯덩어리가 되며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다른 눈치 빠른 실험체들은 루드거의 마법을 보는 순간 거리를 빠르게 벌리며 흩어졌다.
그 모습이 마치 옷장 틈에 숨는 바퀴벌레를 보는 것 같아서 상당히 역겨웠다.
“사람을 실험체로 써먹다니. 정말 갈 때까지 가 버렸군.”
루드거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손짓에 따라 전기장이 넓게 퍼지며 주변으로 자기력을 행사했다.
동시에 사철들이 모이며 허공에 금속 큐브를 생성했다.
그 광경을 본 베롬이 눈을 크게 떴다.
“그건, 레슬리의 마법?”
죽어 버린 레슬리의 마법을 어떻게 존 도우가?
베롬이 채 놀라기도 전에, 허공에서 모인 금속들은 휘어지고 꺾이며 끝을 날카롭게 바꾸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무수한 강철의 창들이, 실험체들을 노리고 빛살처럼 쏘아졌다.
실험체들은 빠르게 회피하려 들었지만, 루드거가 쏘아 낸 강철의 창은 도망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상대를 맞출 때까지 집요하게 쫓아가는 강철의 창들.
실험체들이 하나둘 꿰뚫리며 붉은 피를 흩뿌렸다.
일부 실험체들은 대로변으로 나와 넓게 산개하려 했지만, 루드거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감히 어디를 도망치려 하는 거냐.”
이 구역 일대를 휘감은 전자기장이 모든 건물의 불을 꺼뜨렸고, 동시에 주변의 금속에 영향을 주었다.
끼이이익.
거리의 가스등이 일제히 휘어지는 소리를 내더니 바닥에서 뽑혀 올라오기 시작했다.
가스등만이 아니었다.
건물 잔해를 구성하는 철근부터 해서, 주변을 구성하는 대부분 금속이 루드거의 의지에 따라 움직였다.
루드거의 의지에 따르는 금속들이 도망치는 실험체들을 붙잡아 그 몸을 옭아맸다.
실험체들이 버둥거리자 그 구속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부서졌다.
그야말로 믿기지 않는 신체 능력이었다.
하지만 그 찰나에 생긴 빈틈은 강철의 창을 꽂기에 충분했다.
푸푸푸푹!
곳곳에서 꼬챙이에 꿰뚫린 실험체들이 늘었다.
단 한 번의 마법으로, 실험체 중 절반 이상이 제압당한 것이다.
하지만 루드거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강철의 창으로 꿰뚫었는데도 살아 있는 놈들이 많다.’
가슴 한복판이 뚫린 실험체는, 자신의 가슴을 관통한 강철의 창을 두 손으로 잡고 어떻게든 뽑아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상처에서 흐르는 피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고통 자체를 잘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악력도 상당한지, 특제 큐브로 만들어 낸 강철 창이 끼기긱 소리를 내며 흠집이 나기 시작했다.
‘뛰어난 재생력과 신체 능력. 거세된 고통과 죽음. 이러한 놈들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시설까지.’
이건, 제국의 수도 지하에서 마주쳤던 키메라보다 더한 놈들이었다.
아니, 그 키메라들의 자료를 바탕으로 빅터 드레드풀이 더한 놈들을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대로 놔두면 위험한 것들이로군.’
그때 일부 실험체들이 목표를 바꾸었다.
루드거를 향해 달려들려던 놈들이 방향을 틀더니, 크라바트와 가리엘, 그리고 잠든 리네를 노린 것이었다.
“흥! 어딜!”
크라바트는 주위로 예의 검은 안개를 뿌렸다.
거기에 닿은 실험체들이 바닥을 미친 듯이 뒹굴었다.
크아아악! 크악!
버둥대던 실험체가 피부가 검게 변색되며 축 늘어졌다.
고통을 없앴다고 하더라도 저주 자체에 깃든 강렬한 힘은 견딜 재간이 없던 것이었다.
하지만 크라바트의 반격을 기어코 뚫어 내며 리네를 향해 당도하는 실험체가 있었다.
그 순간 지금까지 얌전히 있던, 가리엘의 가사 전용 오토마톤이 나섰다.
서걱!
허공에 그어지는 실선.
그 실선의 궤적을 따라, 실험체 3마리가 상체와 하체가 나뉘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가정부 복을 입고 있던 오토마톤이 휘둘렀던 다리를 천천히 접으며 침탁(踸踔)의 자세를 취했다.
흔히 말하는 한쪽 다리는 들어서 접고, 한쪽 다리는 지면을 받치는 깨금발 자세였다.
치맛자락 너머로 드러난 오토마톤의 다리는 거대한 가위 날을 연상케 하는 날카로운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하하! 봤냐! 이게 바로 특수 오토마톤의 성능이라고!”
가리엘이 주먹을 치켜들며 소리쳤다.
그 모습에 루드거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대체 돈을 어디에 썼나 했더니, 인간에 가까운 특수 제작 오토마톤을 산 모양이었다.
‘묘하게 기척이 없고, 성능이 좋을 때부터 뭔가 있으리라 생각은 했는데.’
설마하니 전투에 적합한 기능까지 지니고 있었을 줄이야.
가동한 오토마톤은 주인의 명령에 따라 리네를 지키기 위해 움직였다.
마치 발레 무용을 하듯 움직이는 오토마톤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실험체들이 토막나며 붉은 피를 흩뿌렸다.
다리의 칼날이 붉은 피로 물들었음에도 오토마톤의 춤은 멈추지 않았다.
그 모습은 마치 분홍신을 신은 채 영원한 춤을 추는 동화를 보는 것 같았다.
‘뭐가 어찌 됐든, 걱정거리가 줄었다는 것은 다행인 일.’
루드거의 시선이 베롬을 향했다.
당장은 실험체보다도 베롬의 존재가 그에게 위협적이었다.
루드거는 베롬을 향해 손을 확 뻗었다.
갑옷과 검을 쥔 그라면, 자력을 이용하는 자신이 유리할 터.
하지만 루드거는 그것이 착각이라는 걸 금방 깨달았다.
베롬의 몸은 루드거가 일으킨 자력에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았다.
루드거의 눈썹이 꿈틀였다.
“그거, 갑옷은 맞나?”
“일단은. 갑옷의 탈을 쓴 저주받은 유물이지만 말일세.”
베롬은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금 검을 고쳐 쥐었다.
실험체들 선에서 끝났다면 모를까, 여기까지 온 이상 자신이 손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잘됐다.
실험체 따위에게 맡기는 것보다도 자신이 직접 처리하는 것이 마음 놓이니까.
“부디, 고통 없이 가 주겠나.”
번쩍.
베롬이 검을 휘두르고, 그 궤적을 따라 검붉은 참격이 날아오는 것은 거의 동시였다.
초승달 형태의 참격은 세상을 수직으로 쪼개 버릴 듯 루드거를 덮쳤다.
루드거는 주변에 흩뿌린 강철 큐브들을 모아 방패를 만들어 막았지만, 참격은 그 방패를 손쉽게 꿰뚫었다.
‘특수합금 강철 방패를 이렇게나 쉽게?’
루드거는 추가로 방벽을 몇 개 더 만들고 나서야 참격을 막을 수 있었다.
‘처음 기습을 날린 것은 말 그대로 가볍게 날린 일격이었다는 건가. 못 보던 사이에 전보다 더 강해졌군.’
베롬과 처음 붙었을 때는 빅터의 비밀 실험실을 부술 때였다.
그때도 베롬은 믿기지 않는 힘을 선보였지만, 지금은 그 수준이 남달랐다.
괜히 퍼스트 오더가 아님을 증명하듯, 그의 신위는 이미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알렉스와는 반대다. 알렉스가 순수한 재능과 기교로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면, 베롬은 순수한 힘의 크기와 체급으로 올랐어.’
기교도 뭣도 없는 단순하고 일방적인 공격.
하지만 단순하다는 것이 약한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검을 휘두르는 궤적을 따라 생기는 초승달 형태의 날아오는 참격은, 루드거로서는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기사인데, 최소 4위계 이상의 마법을 검을 휘두를 때마다 쏘아 내는 마법사를 상대하는 기분.
기사라기보다는 마검사라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아무리 고대 유물의 힘이라고는 하지만, 저 정도의 힘을 저렇게 계속 뽑아 낼 수 있는 건가?’
저 정도의 출력을 내려면, 사용자의 생명력을 연료로 태워 가며 사용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베롬은 너무나도 멀쩡해 보였다.
이 공격은 베롬의 순수한 의지라기보다는, 오히려 유물이 자기 주인을 지키기 위해 더 강한 힘을 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과연 자신의 착각일까?
‘뭐가 어찌 되었건.’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면, 맞이하는 수밖에.
[아테르 녹터누스]루드거가 마법수를 소환하며 몸에 둘렀다.
그의 전신을 검은 그림자가 뒤덮고, 이내 얼굴에 까마귀 가면이 씌워졌다.
그 모습을 본 베롬이 투구 속에서 붉은 눈동자를 동그랗게 떴다.
“그 모습은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