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023
1024화
정원에 들어온 강진을 보며 김성수가 한쪽에 있는 나무 테이블을 가리켰다.
“앉게. 내 맥주를 가지고 나오지.”
그러고는 김성수가 집으로 들어가려 하자 황민성이 급히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아버님, 제가 하겠습니다.”
“됐다.”
“아닙니다.”
황민성이 집 안으로 먼저 들어가자 김성수가 혀를 찼다.
“집에 뭐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혼자 들어가서 어쩌려고.”
김성수가 집 안으로 걸음을 옮기며 강진을 보았다.
“자네들은 앉아 있게.”
“저희까지 움직이면 번잡할 듯하니 여기 있겠습니다.”
강진이 웃으며 하는 말에 김성수가 피식 웃으며 집으로 들어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던 강진이 옆을 보았다. 옆에는 이충만이 웃으며 자신들을 보고 있었다.
“명절 잘 보내세요.”
“고맙습니다. 강진 씨도 상식 씨도 명절 잘 보내십시오.”
강진의 말과 시선에 강상식도 이충만이 있는 쪽을 보았다.
“이충만 씨?”
“네.”
강진의 대답에 강상식도 이충만에게 명절 잘 보내라고 말을 했다.
그렇게 짧은 인사를 나눈 강진이 집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오늘은 일하시는 분들이 안 계시나 보네요?”
집안일을 도와주는 사람들과 늘 곁에 있던 비서가 안 보이는 것이다.
집에 직원들이 있다면 맥주를 가져오라고 했을 텐데, 김성수가 직접 가지러 간 것을 보면 집 안에도 없는 것 같았다.
“오늘 명절이니 어르신께서 다 집에 보내셨습니다.”
“아! 그렇죠.”
황민성도 직원들에게 휴가를 줬으니 김성수도 줬을 것이다.
“그런데 아저씨는 집에 안 가세요? 명절인데.”
강진의 물음에 이충만이 웃으며 말했다.
“제삿날이나 가고 명절에는 어르신 옆에 있습니다.”
“왜요?”
“어르신이 혼자 계시니까요.”
이충만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르신이 저나 성식이를 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옆에 있어 드리고 싶어서 명절에는 집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올해는 다녀오려고 합니다.”
이충만이 집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황민성의 집을 바라보았다.
“제가 옆에 없어도 아가씨가 가까운 곳에 계시니 어르신께서 명절을 즐겁게 보내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투희도 있으니 말입니다.”
강진이 이충만이 하는 말을 전해 주자, 강상식이 말했다.
“그럼 집에는 어떻게 가시는 겁니까?”
강상식의 질문에 강진이 대신 답을 해 주었다.
“귀신들은 누가 불러 주면 가거나, 아니면 그냥 대중교통 무임승차해서 이동해요.”
“무임승차?”
“귀신한테 누가 차비 내라고 하겠어요.”
강진의 말에 이충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진 씨 말대로 버스 타고 기차역 가서 거기서 기차 타고 갈 생각입니다.”
강진이 말을 전해 주자, 강상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예매는 안 하셔도 되겠네요.”
명절에는 대중교통 예매하기가 어렵지만, 귀신이니 그런 고생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건 그렇습니다.”
이야기를 나눌 때, 황민성이 맥주와 안주가 담긴 쟁반을 들고 나왔다.
“안주는 간단하게 오징어하고 땅콩이나 좀 가져왔다.”
“아침 먹은 지 얼마 안 됐으니 좋아요.”
그러고는 강진이 김성수를 보았다.
“그럼 어르신 식사는?”
“아버님이라고 부르라니까.”
“아직 좀 어색해서요. 아버님.”
강진이 마지막에 아버님이라는 단어를 강하게 말하자, 김성수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차려 먹었네.”
“아버님이요?”
“국과 밥이 있는데 한 끼 해결 못 하겠나.”
김성수의 말에 황민성이 한숨을 쉬었다.
“저희 집에서 같이 아침 드시면 좋았을 텐데.”
“서로 지킬 건 지키는 것이 좋은 거란다.”
김성수가 맥주병을 들며 말했다.
“한 잔씩들 해.”
김성수의 말에 황민성이 급히 잔을 내밀었다.
쪼르르륵! 화아악!
검은색 맥주가 잔에 가득 차자 황민성이 병을 받아 김성수에게 따라주었다.
“명절 잘 보내세요.”
황민성의 말에 김성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올해 같은 명절이면 더 바랄 것이 없지.”
김성수는 진심이었다. 올해 투희가 태어났고, 딸이 사는 집 근처로 이사를 왔다. 그러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김성수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올해보다는 내년 명절이 더 즐겁고, 그다음 명절이 더 즐거우실 거예요.”
“그런가?”
“그럼요. 내년에는 투희가 아장아장 걸을 테고, 그다음에는 애들이 ‘할아버지’ 하면서 아버님에게 말을 걸 테고, 그다음에는 애들이 애교도 부릴 테니 얼마나 귀엽겠어요.”
강진의 말에 김성수가 잠시 멍하니 허공을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 투희가 할아버지 하고 나를 부르면 정말 기분이 좋을 것 같군.”
김성수의 말에 황민성도 멍하니 있다가 말했다.
“아빠라고 하면 저도 기분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상상, 아빠라고 불리는 상상을 하는 두 사람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거기에 아이들이 더 커서 유치원에 가고, 초등학교를 가고, 중학교를 가고…… 대학을 가서 어른이 되면 매년 명절이 더 즐거워지겠죠.”
강진의 말에 김성수가 미소를 지었다.
애들이 한 살씩 먹으며 커가는 것을 지켜보면 참 즐겁고 행복할 것 같았다.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겠군. 그래야 이 녀석들이 첫 월급을 받아서 주는 용돈을 받을 것 아니겠나.”
아이들이 커서 자신에게 용돈을 주는 것까지 상상을 하는 김성수의 모습에 강상식이 웃었다.
“아버님 재산에 무슨 아이들 용돈을 바라세요.”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아이들이 나에게 용돈을 준다는 그 마음이 기특하고 좋은 거지.”
웃으며 김성수가 맥주잔을 들었다.
“앞으로도 건강하게 즐거운 명절을 맞이하자고.”
김성수가 잔을 들자 다른 사람들도 잔을 들었다.
“건강하십시오.”
“그래. 자네들도 건강들 챙기게나.”
웃으며 김성수가 맥주를 시원하게 마시자 사람들도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귀신인 배용수도 맥주를 마셨다.
“크윽! 좋다.”
기분 좋은 소리를 내는 배용수의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오징어 몸통을 찢고는 김성수에게 내밀었다.
“아버님.”
“그래. 고맙다.”
김성수가 오징어를 받자, 강진이 배용수에게도 한 조각을 내밀었다.
스윽!
배용수가 불투명해진 오징어를 집어 들자, 강진이 손에 쥔 오징어를 입에 가져갔다.
늘 하는 말이지만 귀신이 먹는다고 음식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 말이다.
오징어를 씹는 강진을 보며 김성수가 말했다.
“그런데 너희 셋 중에 너만 여자가 없구나.”
김성수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었다.
“왜 웃지?”
김성수의 물음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도 제 주위 분들도 제가 연애를 안 해서 자주 그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요즘은 결혼을 늦게 하는 추세라 네가 늦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연애를 할 나이기는 하니 그럴 테지.”
“맞아. 연애를 좀 해.”
강상식도 말을 거들자, 강진이 웃었다.
“기분 좋네요.”
“기분이 좋아?”
강상식이 의아한 듯 보자, 강진이 웃으며 말을 했다.
“제가 아직 노총각은 아니지만 마치 명절에 시집 안 가냐, 장가 안 가냐 하는 그런 대화 같아서요.”
강진은 정말 기분이 좋았다. 가족한테나 들을 법한 잔소리를 들고 있자니 진짜 가족들과 명절을 지내는 것 같았던 것이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 강진을 보며 강상식이 말했다.
“그게 왜 기분이 좋아? 잔소리잖아.”
“먼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잔소리지만, 가까운 사람이 하면 걱정을 해 주는 거잖아요. 결혼 안 하신 분들은 명절에 결혼 이야기 들으면 스트레스겠지만…… 저는 기분 좋네요.”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내 비서실에 노총각 한 명 있는데 명절에 집에 가기 싫다고 하더라고. 집에 가면 할아버지가 장가 안 가느냐고 묻고 다른 어른들도 장가 안 가냐고 묻고, 또 먼저 장가를 간 동생들이 ‘형 결혼을 해야 진짜 어른인 거예요.’ 하고 놀리고 그런다더라고.”
“직원들하고 그런 이야기도 해?”
황민성의 말에 강상식이 웃으며 말했다.
“예전에 제가 개차반처럼 살았을 때도 제 직원들하고 이야기도 자주 하고 그랬어요.”
강상식의 말에 황민성이 피식 웃었다.
“그건 맞다고 하더라.”
일전에 강상식의 뒷조사를 했던 황민성은 살짝 놀랐었다.
밖에서 하는 언행에 비해 자기 라인에 속한 직원들과 사람들에게는 강상식이 정말 잘 했던 것이다.
경조사를 다 챙기고, 라인에 속한 사람이 어려운 일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 도왔다.
특히 상을 당한 직원이 있으면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내서 장례식장에 가서 조문을 했다.
그래서 강상식이 다른 건 몰라도 직원들에게는 인기가 높고 충성도도 높았다.
물론 이것도 어떻게 보면 정에 굶주려서 자신의 사람이라 생각을 한 직원들에게 더 잘 해 준 것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가장 열받는 게 하나 더 있대요.”
“뭐?”
“명절마다 조카들한테 용돈을 뜯긴다는 거죠. 자기는 애가 없어서 회수가 안 되는데요.”
“하!”
황민성이 황당하다는 듯 웃자, 강상식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조금 황당하기는 한데 듣고 보니 일리가 있더라고요. 친형제들이 낳은 조카에 친척들이 낳은 조카들까지 열댓 명 된다는데 한 명당 만 원씩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학교 다니는 애들은 최소한 오만 원은 줘야 할 테고 거기에 고등학교나 대학생 애들은 더 줘야 할 테고.”
강상식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애들 용돈이라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런가?”
조폭 생활을 할 때 동생들한테 용돈을 쥐여 준 적은 있어도, 조카라고 할 애들한테 용돈을 준 적은 없는 황민성은 와닿지 않은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충 들어 보니 명절에 운 좋으면 오십, 많으면 칠십까지 용돈으로 나간대요.”
“꽤 많이 나가네.”
“꽤가 아니라 엄청 나가는 거죠.”
“하긴 그러네.”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칠십이면 누군가에게는 한 달 생활비였다. 그것도 월세 내고 먹고 입고 하는 모든 것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래서 저는 애를 많이 낳을 겁니다.”
“애들 용돈 받아서 그걸로 건물이라도 올리게?”
“형하고 아버님이 용돈을 주시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요?”
“그래. 애들 한 열한 명 낳아라. 그럼 형이 용돈으로 건물 짓게 해 주마.”
“열한 명이라. 열심히 해 봐야겠네요.”
두 사람이 농담을 주고받는 것을 들으며 강진은 맥주를 마셨다.
명절에 가볍게 맥주를 마시며 가벼운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기분도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기분 좋네.’
속으로 작게 중얼거린 강진이 오징어 다리를 하나 뜯어 배용수에게 살짝 내밀었다. 그에 배용수가 불투명한 오징어 다리를 입에 넣자, 강진도 오징어 다리를 입에 넣고는 씹기 시작했다.
정말 가볍고 편안한 명절 아침이었다.
***
기분 좋게 점심을 먹고 황민성 집에서 한참 놀은 강진은 저녁 장사를 하기 위해 집을 나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강진의 양손에는 묵직한 음식 보따리가 들려 있었다.
“이거 잘 먹겠습니다.”
“그래. 맛있게 먹고 자주 와.”
조순례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인사를 하고는 강상식을 보았다.
“형은 안 가요?”
강진의 물음에 강상식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하루 더 자고 내일 가려고.”
“아예 여기에 눌러 사실 생각이신 거예요?”
“하하하! 그것도 나쁘지 않지. 어떻게 형, 우리 방 하나 줄래요?”
강상식의 말에 황민성이 피식 웃었다.
“그러든가.”
“어! 그 말 저 기억 꼭 합니다?”
강상식의 농에 황민성이 웃으며 강진을 보았다.
“그럼 택시 타고 갈 거야?”
“지하철 타고 가려고요.”
“왜? 택시 타지. 짐도 많은데.”
“이게 뭐 많나요. 그리고 여기 앞까지는 가야 택시 잡히는데 거기에 지하철 있잖아요. 게다가 우리 집 앞에도 바로 지하철 있고.”
“맥주 안 마셨으면 너 태워다 주는 건데 말이야.”
아침에 간단하게 맥주를 마셔서 황민성이나 강상식 둘 다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
맥주 세 병을 네 명이서 나눠 마셨고, 마시고 난 후 시간도 꽤 지나서 취기는 전혀 없지만 그래도 마신 건 마신 것이니 말이다.
강진도 오늘 간단하게라도 술을 마실 것 같다 생각해서 일부러 차를 안 가져왔었다.
“그럼 갈게요.”
“그래. 조심히 가.”
인사를 한 강진이 양손에 음식들이 담긴 통을 들고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 강진의 뒤를 따라 걸으며 이혜미가 웃었다.
“집에서 음식 싸 가는 것 같네요.”
“사실이니까요.”
강진이 웃으며 황민성의 집을 보았다. 정확히는 낮은 나무 울타리 너머의 마당을 보고 있었다.
마당에는 강상식이 개들을 데리고 놀고 있었고 황민성은 투희의 작은 손에 황태 조각을 쥐여 주고는 카프리에게 내밀고 있었다.
그 황태 조각을 먹으려고 카프리가 앞 이빨로 살살살 황태 끝을 물어 당겨서는 입에 넣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형하고 형수, 그리고 내 조카들하고 어머니가 사시는 곳인데…… 당연히 집이지.”
강진은 직원들을 보았다.
“그리고 우리 집이기도 하죠.”
“우리 집요?”
“그럼요. 제 집이면 우리 집이기도 하죠. 우리는 식구잖아요.”
강진의 말에 그를 보던 배용수가 웃었다.
“그거 민성 형 허락은 받고 하는 말이냐?”
“민성 형 허락이 무슨 필요냐. 어머니가 허락을 하셨는데.”
애초에 황민성도 ‘여기가 왜 너희 집이냐?’라고 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강진은 웃으며 양손은 무겁게, 마음은 가볍게 걸음을 옮겼다.
“이래서 다들 명절에 집에 가나 보다.”
강진이 웃으며 하는 말에 배용수와 직원들이 웃으며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