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032
5화
이상하다는 듯 임유정을 보던 이대범이 말했다.
“저기, 국물 한 번 떠먹어도 될까요?”
“그러세요.”
임유정이 식판을 밀자, 이대범이 물로 가글을 했다. 입에 남은 자신의 국물 맛을 날리려고 말이다.
입가를 닦은 이대범이 수저를 티슈로 닦고는 임유정의 국물을 떠서 입에 넣었다.
그렇게 맛을 본 이대범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어? 담백하네요.”
“그러니까요. 근데 왜 맵다고 한 거예요? 애기 입맛이라도 된 거예요?”
“제 거 먹어 보세요.”
이대범의 말에 임유정이 그를 보다가 수저로 국물을 한 번 떠먹었다. 그러더니 눈을 찡그렸다.
“매워.”
“그렇죠?”
임유정이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고춧가루라도 넣었어요?”
“그럴 리가요. 받아서 이대로 온 건데요.”
이대범이 의아한 듯 배용수를 보았다.
‘어떻게 된 거지?’
분명 같은 국물 통에 있던 걸 담았는데 그의 것은 칼칼하고, 임유정의 국물은 개운하고 담백하니 말이다.
“맛있게 드십시오.”
배용수가 국물을 덜어주는 것에 김봉남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릇을 자신의 식판에 올렸다.
그러다가 그릇에 담긴 대구를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오늘 생대구가 들어오는 날이 아닌데 용케 좋은 대구를 구했구나.”
“최선을 다해서 구했습니다.”
최선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는 배용수의 모습에 김봉남이 웃었다.
자신이 자주 하던 이야기였다. 최고의 식재를 구할 수 없으면 자신이 구할 수 있는 최선의 식재를 구하라고 말이다.
고개를 끄덕인 김봉남이 식판을 들고는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요리를 내는 것이 요리사의 일이라면, 음식이 가장 맛있을 온도와 시간에 먹는 것은 먹는 사람의 일이었다.
자리로 온 김봉남이 이미 앉아서 먹고 있는 이진웅의 앞에 와서 앉았다.
이진웅은 국물과 대구를 천천히 음미하며 먹고 있었다. 평소라면 그냥 밥을 말아 후루룩 먹을 텐데 지금은 배용수의 음식이 과연 국에 오를 정도로 좋은지 평가를 해야 해서 천천히 먹는 것이다.
그런 이진웅을 보던 김봉남이 대구 맑은탕에 수저를 담가 국물을 떠서는 입에 넣었다.
살짝 매운맛과 함께 은은한 들깨향이 입안에 퍼졌다.
‘들깨?’
대구 맑은탕에는 들깨가 들어가지 않는다. 물론 김봉남이 싫어하는 맛은 아니었다.
그리고 맛도 나쁘지 않고…… 아니, 오히려 맛이 좋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맛이니 말이다.
다만…….
김봉남은 보기 좋게 담겨 있는 대구를 젓가락으로 집어 들었다. 그러자 그릇 바닥에 깔려 있던 들깨 가루가 퍼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로 인해 맑았던 탕의 색이 살짝 탁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김봉남이 이진웅의 그릇을 보았다. 이진웅의 그릇 속 대구탕은 여전히 맑았다.
‘흠…….’
김봉남은 다시 자신의 그릇을 보았다. 그러고는 수저로 국물을 떠서 먹었다.
“잘 먹었습니다.”
“용수 오빠, 정말 맛있어요.”
“국으로 가겠어요.”
직원들이 웃으며 식판을 한곳에 가져다 놓자, 배용수가 숨을 고르고는 김봉남을 보았다.
탕에 밥을 말아 먹은 김봉남은 수저를 내려놓고 배용수를 보았다.
“일단 맛있게 잘 먹었다.”
김봉남의 말에 배용수의 얼굴이 환해졌다. 합격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기도 했고, 김봉남에게 자신의 음식이 인정받은 것 같아서 기뻤다.
그런 배용수를 보며 김봉남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김봉남은 배용수를 지그시 보다가 말을 이었다.
“대구 맑은탕은 말 그대로 국물이 맑아야 한다. 그런데 너는 들깨를 넣어 국물이 탁해졌다. 이건 대구 맑은탕이 아니라 그냥 맛 좋은 대구탕일 뿐이다.”
김봉남의 말에 배용수가 숨을 작게 들이마셨다. 그는 김봉남이 이런 말을 할 줄 이미 알고 있었다.
“숙수님의 말이 맞습니다. 이건 대구탕입니다.”
“내가 만들라고 한 것은 대구 맑은탕인데.”
김봉남이 지그시 보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고로 좋은 재료가 없으면 최선의 재료로 손님이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최선의 음식을 하는 것이 요리사입니다.”
배용수의 말에 주방에서 일을 하는 요리사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김봉남이 늘 강조하는 말이기도 했다.
최고의 재료로 음식을 하는 곳이 운암정이다. 하지만 최고로 좋은 재료를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손님이 드시고 싶은 음식이 있다고 하면 구할 수 있는 최선의 재료로 음식을 해야 하는 곳도 운암정이었다.
“최고의 재료로 최고의 음식을 하는 것은 요리사에게 당연한 일이어야 합니다. 저도 최고의 대구를 썼다면 정식으로 맑은탕을 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최고의 대구가 아닌 최선의 대구를 썼습니다. 그래서 최선의 대구로 최고의 음식을 손님에게 대접하기 위해 손님 개개인을 위한 맞춤 대구탕을 준비했습니다.”
“손님 개개인에게 맞춘 대구탕이라…….”
김봉남의 중얼거림에 배용수가 고개를 숙이고는 말했다.
“숙수님께서는 들깨 향과 맛을 좋아하시니 대구 맑은탕의 맛을 해치지 않고 서로 조화를 이룰 정도의 들깨 양념을 추가했습니다. 그리고…….”
배용수가 홀에 있는 직원들을 일일이 보며 그들의 식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에 대한 양념과 맛의 가감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대범이는 칼칼하게 매운 맛을 좋아하니 매운 고추를 갈고 그 즙을 첨가했습니다.”
배용수의 말에 직원들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용수가 우리 식성을 다 알고 있었네.”
“그러게 말이야. 확실히 내 입에는 딱 맞더라고.”
직원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배용수가 긴장된 눈으로 김봉남을 보았다. 직원들의 마음에 들어도 어디까지나 결정은 김봉남이 하는 것이다.
배용수의 시선에 김봉남이 이진웅을 보았다.
“수석의 생각은 어떤가?”
김봉남의 말에 이진웅이 배용수를 잠시 보다가 고개를 돌려 직원들을 보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숙수님 생각대로 제가 먹은 건…… 맑은탕이 아니라 맛있는 대구탕이었습니다.”
이진웅의 말에 배용수의 얼굴에 긴장감이 어렸다.
“하지만…… 참 맛있는 대구탕이었고 손님 하나하나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담긴 대구탕이었습니다.”
이진웅이 웃으며 배용수를 보았다.
“대구 맑은탕도 대구탕에 속한 하나의 음식일 뿐이니 대구탕을 내놓은 것도 틀린 답은 아닌 듯합니다. 게다가…….”
이진웅은 다시 직원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개개인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음식과 솜씨라면 저는 잘했다 생각이 되네요. 용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요리를 했으니까요.”
이진웅이 배용수를 보며 엄지를 들었다.
“내 입에는 이거다.”
그의 말에 배용수가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김봉남을 보았다. 긴장감이 역력한 시선에 김봉남이 피식 웃었다.
“왜, 나는 맛이 없다고 할까 걱정이 되나?”
“그럴 리가요.”
배용수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만든 음식이 맛이 없었다면…… 오늘 저녁은 라면이었을 겁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음식을 내놓을 바에는 차라리 오늘 국 승격을 포기하고 라면을 내놨을 거라는 의미였다.
배용수의 말에 김봉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부터는 용수도 국에 들어가.”
주제와 조금은 다른 음식이라 걱정을 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허락을 받자 배용수가 놀라 물었다.
“그럼 저 국을 잡아도 되는 겁니까?”
배용수의 말에 김봉남이 웃으며 말했다.
“왜, 국이 싫으냐?”
“그럴 리가요. 저는 국이 없으면 밥도 안 먹습니다.”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김봉남이 말했다.
“대구 맑은탕이라 하기에는 좀 이상하지만, 대구 맑은탕이라는 말이 그냥 개운하게 먹으려고 하다 보니 맑은탕이 된 것일 뿐이다. 그리고 수석의 말대로 손님 하나하나 만족시킬 수 있는 음식을 낼 수 있는 솜씨와 손님들 식성을 기억하는 마음이라면 요리사로서 나무랄 것이 없다.”
김봉남이 재차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 했다.”
김봉남의 말에 배용수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김봉남이 배용수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걸음을 옮기자, 이진웅도 다가와서는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내일부터는 내 바로 밑이다. 내일부터 나한테 욕 많이 들을 각오를 해야 할 거야.”
국은 국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진웅 바로 밑에서 그의 지시를 다른 요리사들에게 전달하면서 동시에 주방을 총괄해야 했다.
그러니 다른 요리사들이 실수를 하면 욕을 들어먹는 자리도 바로 국이었다.
“많이 배우겠습니다.”
배용수의 대답에 피식 웃은 이진웅은 김봉남의 뒤를 급히 따라가며 말했다.
“숙수님, 김밥요.”
이진웅의 말에 김봉남이 웃으며 주방으로 걸음을 바꿨다.
“가지.”
김봉남과 이진웅이 자리를 비우자 다른 요리사들과 직원들이 배용수에게 축하를 해 주었다.
배용수는 이대범과 함께 그릇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 배용수에게 이대범이 슬며시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하신 거예요?”
“뭐가?”
“국물은 같은 통에 있던 걸 따라 주셨는데 사람마다 맛이 다르더라고요. 제 건 칼칼하고 매운데, 유정 씨 건 고소하고 개운한 맛이었어요.”
이대범의 말에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그게 내 팁이지.”
“어떤 거요?”
“간단해.”
배용수가 한 손을 내밀었다.
“네 경우에는 이렇게 매운 고추를 갈아서 만든 액과 양념을 바닥에 깔았어. 그리고 그 위에 대구와 고니 알을 올려.”
자신의 손 위로 반대 손을 겹치듯 올린 배용수가 이대범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국물을 올리면…… 무슨 말인지 알겠지?”
“역시 그렇군요.”
“뭐야? 알고 있었어?”
“대충 그럴 거라고 생각을 했죠. 그거 외에는 같은 국물로 이렇게 다른 맛을 낼 수는 없으니까요.”
이대범의 말에 배용수가 입맛을 다시며 그를 보다가 말했다.
“그래도 한 가지 팁은 몰랐을걸.”
“뭔데요?”
“네 그릇에 들어간 대구가 어디 부위이던?”
“글쎄요?”
대구에 알이 많았던 건 기억을 해도 대구 어디 부위가 들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럼 네가 좋아하는 대구 부위는?”
“저는 꼬리 쪽을 좋아하죠.”
뼈 바르기가 좋고 먹기 좋아서 이대범은 생선에서 꼬리 부위를 좋아했다.
그것도 너무 아래쪽이라 살이 적은 부위 말고 적당히 살이 붙어 있는, 꼬리의 윗부분 말이다.
“아!”
말을 하던 이대범이 배용수를 보았다. 자신이 먹은 대구 맑은탕에 대구 꼬리 부위가 두 토막 들어 있었던 게 떠오른 것이다.
“혹시 대구도 좋아하는 부위까지 챙겨 주신 거예요?”
이대범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거나 다 좋아하는 분도 있지만, 너처럼 꼬리 부위를 선호하거나 배를 선호하는 분, 그리고 머리를 좋아하는 분도 있잖아. 그래서 그런 식성에 맞게 그릇에 대구와 알, 고니를 세팅한 거야. 그리고 그 밑에 취향에 맞게 양념을 담았지.”
말을 하던 배용수가 한숨을 쉬었다.
“최대한 색 안 변하게 만드느라 진짜 힘들었다.”
들깨는 색이 있고 입자가 녹지 않아서 국물 색이 조금 탁해지기는 했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대구 맑은탕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깨끗한 국물이었다.
“정말 대단하세요.”
“국에 어울리는 요리사라면 그래야지.”
“그런데 정말 직원들 식성을 다 기억하세요?”
이대범의 물음에 배용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정말요?”
“우리 직원들 외에도 자주 오시는 단골손님들 식성은 다 기억하고 있지. 그리고 기억을 해야 하고. 그래야 그 손님 식성에 맞게 음식을 낼 수 있지.”
배용수의 말에 이대범이 그를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왜?”
“전 언제나 형처럼 될까요?”
“어딜 형을 따라하려고 해.”
배용수가 웃으며 이대범의 어깨를 두들겼다.
“형보다 더 잘해야지.”
배용수의 말에 이대범이 환하게 웃었다.
“네, 형! 형보다 꼭 더 잘할게요.”
“그래. 형 죽기 전에는 꼭 나보다 더 잘해라.”
배용수가 웃으며 그릇을 정리하자, 이대범이 그를 따라 그릇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