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35
135화
강진은 칡뿌리와, 만복과 같이 캔 도라지가 담긴 봉투를 들고 김치 저장소 앞에 서 있었다.
“또 놀러 와.”
“자주 올게요.”
말을 하던 강진이 문득 주위를 둘러보다가 말했다.
“저 혹시 돼랑이 좀 불러 줄 수 있어요?”
“돼랑이?”
“네.”
강진의 말에 만복이 소리쳤다.
“돼랑아! 돼랑아!”
만복이 몇 번 부르자 숲 한쪽에서 소리가 들리더니 돼랑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푸르륵! 푸르륵!
말처럼 머리를 흔들며 소리를 내는 돼랑이를 보던 만복이 강진을 보았다.
“돼랑이는 왜?”
“사료 좀 사 오려고요.”
“사료?”
“새끼도 있는데 먹을 것이 없다면서요.”
어제 처음 본 멧돼지기는 했지만, 은혜 갚겠다고 칡도 캐온 것이 가상하기도 하고…… 또 새끼도 있다는데 그게 걸렸다.
자식들 입에 음식을 못 넣어주면 가슴이 아픈 것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똑같으니 말이다.
“그건 그렇지.”
“JS 금융 통해서 갔다 오면 금방 오니까 잠시 여기서 기다리세요.”
“그럼 그럴래?”
만복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짐을 일단 내려놓고는 김치 저장소 문에 명함을 대고는 들어갔다.
JS 금융 내에 위치한 편의점에 들어간 강진은 조금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돼지 사료가 없어요?”
강진의 말에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축생계 편의점에는 사료를 파는데, 인간계 편의점에는 따로 사료를 팔지 않습니다.”
‘하긴 당연한 건가?’
생각을 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승 편의점에서도 애완동물 사료를 조금씩은 팔기는 하지만 돼지 사료는 팔지 않는다.
게다가 여기는 JS 금융 내에 위치한 편의점이니 인간 귀신들이 먹을 것 외에는 들여놓지를 않는 것이다.
‘그나저나 축생계? 동물들도 인간처럼 저승이 따로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편의점 한쪽에 있는 도시락을 보았다.
‘돼지 먹이자고 도시락을 사다 주기도 그렇잖아?’
사람이라면 도시락 하나 먹으면 배가 부르겠지만, 그렇게 큰 돼지한테는 간에 기별도 안 갈 것이다.
“그럼 혹시 사료를 살 만한 곳이 없을까요?”
“JS에 가면 사료를 전문으로 파는 곳이 있기는 합니다.”
“JS면…… 저승요?”
“네.”
“그…… 산 사람은 갈 수 없지 않나요?”
“가시는 분들이 있기는 한데…… 손님은 죽기 전에는 못 가실 것 같네요.”
직원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고는 말했다.
“그럼 혹시 축생계 편의점에서 파는 사료를 주문해서 여기서 받을 수 있을까요?”
“물론 가능합니다.”
말을 한 직원이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어떻게, 구해 드릴까요?”
“돼지가 먹는 걸로 10킬로 한 포대가 얼마나 하나요?”
“십만 원입니다.”
십만 원이라는 말에 강진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생각보다 비싼 것이다.
“비싼 것 같은데?”
“저승에서는 영물이 먹는 거라 가격대가 좀 있습니다.”
직원의 말에 강진이 잠시 망설였다. 그런 강진의 모습에 직원이 말했다.
“이승 돼지 사료 가격하고 비교해 드릴까요?”
“그런 것도 되나요?”
“컴퓨터 몇 번 두들기면 되는 일입니다.”
그러고는 직원이 자판을 몇 번 두들기자 말했다.
“이승에서는 25킬로그램에 이만 원 정도 하네요.”
“이만 원요?”
“네.”
직원의 말에 강진이 선택할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승에서 사야겠네요.”
“그렇게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괜히 이것저것 물어보기만 하고…… 죄송합니다.”
강진의 말에 직원이 고개를 저었다.
“한끼식당 주인이라면 이 정도 편의는 봐 드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한끼식당 주인이라 봐 주시는 건가요?”
“저도 귀신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 저희 식당에 와 보신 적 있으세요?”
강진의 물음에 직원이 고개를 저었다.
“한끼식당은 아니고 부산 쪽에 있는 저승식당이었습니다.”
직원의 답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그를 보다가 고개를 돌려 매대를 보았다. 한쪽에는 쌀이 소매 포장이 되어 있었다.
“쌀은 얼마나 해요?”
“1킬로그램짜리는 5천 원, 5킬로그램짜리는 1만 8천 원입니다.”
‘돼지는 잡식이니까. 쌀도 먹겠지?’
강진이 5킬로그램짜리 한 봉지를 들고는 계산대에 올렸다.
“1만 8천 원입니다.”
계산을 한 강진이 서둘러 편의점을 나와서는 문을 통해 김치 저장고 앞으로 나왔다.
강진이 나오자 만복이 말했다.
“쌀 사 왔네?”
“사료는 이승 가서 사 와야 할 것 같아서 일단 쌀로 사 왔습니다. 돼지니까 쌀도 먹죠?”
“얘들은 입에 넣고 씹을 수 있으면 다 먹어.”
만복의 말에 강진이 쌀 봉지를 돼랑이 앞에 내려놓았다.
“다음에는 너희가 좋아할 만한 것으로 가져올게.”
강진의 말에 돼랑이가 봉지의 냄새를 맡았다. 그러고는 봉지를 조심히 입에 문 돼랑이가 강진을 한 번 보고는 숲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저거 JS 편의점에서 사 온 거라 형이 손을 댈 수 있을 겁니다. 봉지까지 먹지 않게 뜯어주세요.”
“알았어. 그럼 또 와.”
“오늘이나 내일 안에 사료 가지고 올게요.”
“그래.”
만복이 아쉬워하는 것을 보며 강진이 손을 흔들었다.
“또 올게요!”
만복이 손을 들어 보이자 강진이 몸을 돌려 김치 저장소 문을 열었다.
덜컥!
***
“다음에 또 오세요.”
강진이 환하게 웃으며 하는 인사에 점심 손님들이 웃으며 가게를 나섰다.
평일 시간대에는 손님이 드물지만, 주말에는 강진이 어지간하면 장사를 접거나 쉬는 경우가 없어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꽤 있었다.
물론 꽤라는 것도 그리 많지는 않다. 점심에 네 테이블 정도 차니 말이다.
하지만 강진은 네 테이블이 마음에 들었다. 손님들이 더 들어오면 음식을 만들고 서빙하는 것까지 혼자서는 벅차지고, 손님은 기다려야 한다.
딱 네 테이블이 강진 혼자서 영업하기 적당한 인원이었다.
어쨌든 손님들을 내보낸 강진이 홀을 치우기 시작했다.
‘점심 장사로 11만 원…… 좋네.’
저녁도 이만큼 팔면 하루에 20만 원 이상 버는 것이니 강진으로서는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인턴 끝나면 본격적으로 음식 장사도 할 테고 말이다.
“인턴 끝나면 아르바이트를 한 명 구하기는 해야 할 것 같은데…….”
강진은 한끼식당에서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해 본 강진은 성공에 대한 비결을 알고 있었다.
첫째, 음식이 맛있어야 한다.
둘째, 저렴하면서 맛있어야 한다.
셋째, 손님이 찾아올 정도의 특색이 있는 맛있는 음식이어야 한다.
그리고 한끼식당은 그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한다.
일단 음식이 맛있고, 가격도 저렴하다. 물론 손님들이 원하는 음식이 무엇이냐에 따라 가격대가 올라갈 수도 있지만, 그것은 식재의 가격대 때문에 그런 것이지 비싸게 받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 가게 특색? 그것 역시 마찬가지다. 손님이 원하는 음식을 만들어 준다…… 이것만큼 특색이 있는 것도 없다.
게다가 손님이 원하는 음식은 다 맛있게 내놓을 자신도 있었다.
요리 연습장에 있는 레시피대로만 하면 맛은 보장이 되니 말이다.
즉…… 강진은 음식 장사로는 절대 망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다만 몸은 힘들 것이다.
점심, 저녁, 거기에 귀신들을 상대로 하는 장사까지 하루에 세 탕을 뛰어야 하니 말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나 구하기는 해야 할 것 같은데…….”
인턴이 끝나고 정식으로 영업을 하고 장사가 잘 되기 시작하면 강진 혼자서 손님을 받는 것은 무리다.
아무래도 음식도 만들고 서빙하고 설거지까지 하는 것은, 아무리 아르바이트로 다져진 강진이라고 해도 무리였다.
일단 손님들부터가 음식이 딜레이가 되면 불만이 쌓일 테니 말이다.
“근데 여기서 일을 하게 되면 귀신을 보게 될 텐데…….”
저승식당에서 일하다 보면 귀기가 쌓여서 귀신을 보게 될 수 있었다.
아니, 그뿐이 아니더라도 귀기가 쌓이게 되면 몸에 안 좋을 수도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에 대해 잠시 생각하던 강진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혼자 해야겠네.”
돈 버는 것도 좋고, 장사가 잘 되는 것도 좋지만 아르바이트생의 건강까지 해치면서 음식을 팔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홀을 다 정리한 강진이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디링!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내민 강진의 눈에 어제저녁에 왔었던 남자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어서 오세요.”
강진의 인사에 남자, 황민성이 가게를 둘러보며 말했다.
“브레이크 타임입니까?”
“괜찮습니다. 앉으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그런 황민성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급하지 않으시면 제가 하던 설거지가 있어서요.”
“그렇게 하세요.”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하던 설거지를 마저 하고는 홀로 나왔다.
“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억하시는군요.”
“한 번 오신 손님이라면 기억 못 하겠지만, 다시 찾아오신 손님이면 어떻게든 기억해야지요.”
웃으며 말을 한 강진이 그를 보았다.
“음식은 어떻게 해 드릴까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한쪽에 있는 화이트보드를 보고는 말했다.
“원하는 음식을 만들어 주시는 겁니까?”
“있는 식재료로 할 수 있는 요리는 만들어 드립니다.”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안내문을 보다가 말했다.
“떡볶이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아! 혹시 원하는 취향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라면 면은 어제처럼 조금 퍼지게 해 주시고, 어묵은 많이 넣어 주시고 떡은 두 개 정도만 넣어 주세요. 그리고 삶은 계란은 노른자가 살짝 익는 정도로 해 주세요.”
‘떡볶이가 아니라 라볶이네?’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말했다.
“그 일본 라멘에 들어가는 계란처럼 반숙으로 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그것보다는 조금 덜해서, 가르면 노른자가 좀 흘러내리는 식이었으면 합니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물었다.
“그런데 떡을 왜 두 개만 넣으세요?”
“제가 떡을 안 좋아합니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그럼 떡을 빼 드릴까요?”
“떡볶이에는 떡이 있어야죠.”
그의 답에 강진의 얼굴에 황당함이 어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몸을 돌려 주방으로 향하며 강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떡을 안 좋아하는데 왜 떡볶이를 주문했지? 거기에 떡을 안 좋아하면 떡을 넣지를 말지, 왜 딱 두 개야?’
속으로 중얼거리던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개인의 취향은 존중해 줘야지.’
한국 사람이라면 다 먹는다는 김치도 안 먹는 사람이 있다. 그러니 떡을 싫어해도 떡볶이를 좋아할 수도 있었다.
조금 이상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주방에 들어간 강진은 일단 계란부터 삶았다. 소금과 식초를 조금 넣고 계란 다섯 개를 넣었다.
하나 삶으나 다섯 개를 삶으나 물을 끓이는 것은 같으니 몇 개 더 삶는 것이다.
그리고 물을 받아 가스레인지에 올린 강진이 떡볶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다 만들어진 떡볶이를 그릇에 담은 강진이 황민성에게 가져다주었다.
“여기 떡볶이 나왔습니다.”
강진이 가져다준 떡볶이를 받은 황민성이 젓가락을 들고는 계란을 살짝 눌렀다.
스르륵!
계란 안으로 파고들어가는 젓가락의 감촉과 함께, 계란이 반으로 쪼개지며 눅진한 노른자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완벽한 반숙의 모습에 미소를 지은 황민성이 소스에 젖은 면발을 입에 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군.’
미소를 지으며 황민성은 라면 사리와 어묵을 함께 집어 먹었다.
맛있게 떡볶이를 먹는 황민성을 본 강진이 주방에 들어갔다. 그러고는 계란 하나를 깨고 파를 조금 썰어 간단하게 계란국을 만들었다.
계란국을 작은 국그릇에 담은 강진이 그것을 황민성에게 가져다주었다.
“국물하고 같이 드세요.”
“감사합니다.”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계란국을 한 숟가락 떠서 먹고는 미소를 지었다.
“후추하고 파 향이 좋네요.”
“간단하면서도 입맛을 돋우는, 좋은 맛이죠.”
강진의 말에 그를 보던 황민성이 입을 열었다.
“좋네요.”
황민성이 다시 음식을 먹기 시작하자 강진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에 들어간 강진은 만복에게 받아 온 도라지와 칡을 손질했다.
도라지는 전에 캐온 것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크고 좋았다.
-이건 팔아서 너 용돈이나 해.
만복이 도라지를 캘 때 하던 말을 떠올리며 강진이 웃었다.
“용돈 잘 쓸게요.”
두 뿌리 캐어 왔으니 잘 팔면 오륙백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거 팔아서 돼랑이 사료도 사고, 형 장난감이랑 간식도 사면 되겠네.’
그리고 남는 건 말 그대로 용돈으로 쓰면 될 테고 말이다.
“부자 형 있으니 좋네.”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의 귀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디링!
풍경 소리에 고개를 내민 강진의 눈에, 중년의 남성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어서 오세…….”
말을 하던 강진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남성이 그대로 황민성의 앞에 무릎을 꿇어 버리는 것이다.
“황 사장! 한 번만 살려줘!”
남성이 머리를 땅에 대고 사정을 하는 것에 황민성이 떡볶이를 먹다가 한숨을 쉬고는 입맛을 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