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20
221화
황민성의 잔이 빌 때마다 강진은 술을 채워주었다. 그렇게 몇 잔의 술을 말없이 마시던 황민성이 한숨을 쉬고는 강진에게 소주병을 내밀었다.
강진이 잔을 들어 술을 받자 황민성이 입을 열었다.
“어머니 모셔와야겠다.”
“괜찮으시겠어요?”
강진은 잘했다는 말보다 우려를 먼저 표시했다. 황민성이 지금 상황을 잘 받아들이려면 위로보다는 상황을 정확히 짚어주는 게 필요하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뭐가?”
“형이 어머니 사랑하는 만큼, 정신없는 어머니 보는 것…… 힘드실 겁니다.”
사지가 아프면 옆에서 도와주고 살펴 주면 된다. 몸은 힘들어도 사랑하는 어머니이니 말이다.
하지만…… 어머니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황민성 입장에서 힘들 것이다.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웃었다. 그러고는 강진을 보며 입을 열었다.
“너는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고…… 제가 형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을 해 봤을 뿐이에요.”
“그래?”
강진이 그의 잔에 소주를 따르고는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려 하자, 황민성이 병을 잡고는 따라주었다.
쪼르륵!
“내 입장이었으면 너는 어떻게 할 것 같아?”
황민성의 물음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부모님이 고등학교 때 돌아가셨어요.”
멈칫!
황민성이 살짝 놀란 듯 자신을 보는 것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만약 지금 부모님이 살아 계셨다면…… 저는 모시고 살 겁니다.”
“그…….”
황민성이 뭔가 말을 하려 하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있을 때 잘 하세요. 있을 때 자주 보시고요. 저처럼 꿈속에서 한 번 뵐 때마다 울지 마시고요.”
강진의 말이 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황민성은 그 말이 뭉클했다.
자신은 정신이 없는 어머니라도 보고 싶을 때 가서 얼굴 보고 손이라도 쓰다듬을 수 있다.
하지만 강진은 보고 싶다고 해도 마음대로 볼 수 없다. 그저 꿈에서 한 번 나타나는 부모님을 보는 게 전부인 것이다.
‘꿈속에서 운다라…….’
잠시 강진을 보던 황민성이 말했다.
“꿈에서는 자주 오셔?”
“어렸을 때는 자주 오셨는데…… 요즘은 자주 못 뵙네요. 그리고 얼굴도 잘 기억이 안 나고.”
“왜? 사진 없어?”
황민성의 물음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보육원에 들어갈 때 정신이 없어서 사진을 못 챙겼어요.”
“그…….”
뭔가 말을 할 듯 입술을 달싹였던 황민성이 입을 다물었다. 왜 그런지 사정을 물을까 싶었지만…… 그건 강진의 아픈 부분을 건드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에 잠시 강진을 보던 황민성이 말없이 소주잔을 나눴다. 그렇게 몇 잔의 소주를 더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그가 살짝 미소 지었다.
“고맙다. 네 말 들으니 마음이 후련하다.”
“드세요.”
강진이 다시 소주를 따라 주자 황민성이 편한 얼굴로 소주를 마셨다. 마음을 정한 것이다.
소주잔을 내려놓은 황민성이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단골 대리기사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접니다, 기사님. ……로 보내 주세요. 몇 분이나 걸립니까? 알겠습니다.”
대리운전에 전화를 거는 황민성을 보며 강진이 물었다.
“가시게요?”
“가야지.”
그러고는 황민성이 일어났다.
“이슬 씨하고 상의도 해 봐야 하고, 일찍 들어가 봐야지. 오늘 잘 먹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황민성이 몸을 돌리다가 자신을 보는 처녀귀신들을 향해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그에 처녀귀신들도 마주 고개를 숙였다. 그런 처녀귀신들을 보던 황민성이 가게를 나서다가 지갑을 꺼내 아크릴 통에 5만 원짜리 두 장을 넣었다.
“형, 너무 많이 넣으셨어요.”
“아까 아가씨 돈 안 넣고 가시더라. 그것까지 넣었어.”
“아…….”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원래 그분은 돈 안 내고 드시는데…….’
속으로 중얼거리며 강진이 황민성의 뒤를 따라 가게를 나왔다.
“어머니 모시고 오면 말씀하세요.”
“출장 요리 해 주게?”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같은 서울에 사는데 굳이 제가 출장 갈 필요가 있겠어요? 여기로 모셔 오세요.”
“어머니 정신이 없으셔서…… 다른 손님한테 민폐가 될 수도 있는데.”
“가게 말고 2층에서 대접해 드리면 되죠.”
“하하하! 그래. 고맙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웃다가 슬며시 말했다.
“그런데 형수님이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모르겠네요.”
황민성이 출근하고 나면, 집에서 어머니를 모시는 것은 김이슬의 몫이니 말이다.
며느리 입장에서 치매가 있는 시어머니를 모시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일반 가정집에서는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 것이고, 황민성처럼 돈이 있어 요양사를 24시간 쓸 수 있는 집이라고 해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요양사에게만 맡겨 두고 손을 놓을 수만은 없으니 말이다.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잠시 있다가 미소를 지었다.
“일단 말을 해 봐야지. 하지만 이슬 씨는…… 오히려 좋다고 할 것 같아.”
“좋으신 분이네요.”
“좋은 사람이지…… 내가 미안할 만큼.”
이야기를 나눌 때 승용차 한 대가 옆에 와서 섰다. 곧 승용차에서 내려선 사람이 황민성에게 고개를 숙였다.
“황 사장님.”
자주 차를 몰았는지 바로 알아보는 대리기사의 모습에 황민성이 고개를 마주 숙여 보이고는 차 키를 주었다.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요.”
차 키를 받은 대리기사가 운전석에 올라탔다. 황민성이 조수석의 문을 열다가 강진에게 말했다.
“또 보자.”
“가세요.”
차가 출발하는 것을 보던 강진이 가게로 몸을 돌리다가 멈췄다. 가게 안에서 술을 마시던 처녀귀신들이 어느새 나와서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황민성이 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차 진짜 멋지다.”
“그러게…… 우리나라 차는 아닌 것 같은데?”
“언니, 차에 대해 잘 알아요?”
“모르지.”
“그럼 우리나라 차 아닌 건 어떻게 알아요?”
“딱! 보면 느낌 있잖아.”
“아.”
처녀귀신들의 대화에 강진이 웃으며 그녀들에게 다가갔다.
“자! 시간 없으니 어서 음식부터 먹자.”
말을 하며 강진이 식당으로 들어가자 처녀귀신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강진은 처녀귀신들과 술자리를 같이 하고 있었다. 이예림과 최가은이 술을 마시는 것을 보며 강진이 피식 웃었다.
“너네 이제 술 잘 마신다?”
“마셔 보니 좋더라고요.”
이예림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그래. 많이 마셔라.”
죽을 때야 미성년자지만, 살았으면 이제 대학생이 될 나이다. 그리고 귀신인데 무슨 상관인가? 게다가 잔뜩 취해도 가게 나가면 바로 술도 깨 버리고…….
술을 마시는 두 처녀귀신을 보던 강진이 문득 이혜선을 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나 물어볼 것 있었는데.”
“뭔데요?”
“귀신들은 옷 못 갈아입어?”
강진의 말에 이예림과 최가은이 이혜선을 보았다. 귀신도 옷을 갈아입을 수 있냐는 질문은 두 소녀 귀신에게도 아주 많이 궁금한 내용이었던 것이다.
두 소녀 귀신과 강진의 시선을 받으며 이혜선이 말했다.
“소희 언니 옷 사 주게요?”
“옷 갈아입으실 수 있으면 좀 갈아입게 해 드리고 싶기는 하지. 매일 한복만 입고 다니는데 불편하시지 않겠어?”
“귀신이 불편하기는…….”
작게 중얼거린 이혜선이 말했다.
“일단 귀신도 옷은 갈아입을 수 있어요.”
“그래?”
“그런데 요즘은 못 갈아입어요.”
“왜?”
강진의 물음에 이혜선이 말했다.
“옛날 한국 문화에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이 쓰던 물건들 태웠다는데 혹시 알아요?”
“들어 본 적은 있어.”
“자신이 쓰던 물건들 저승 가서 쓰라고 같이 태웠다는데…… 결론은 물건 태우면 귀신들이 그 물건을 쓸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
“물론 막 태운다고 쓸 수 있는 건 아니고 태우는 사람이 귀신에게 준다는 마음을 가지고 태워야 할 거예요. 그 귀신들이 밥 얻어먹는 것처럼요.”
“너는 받아 본 적이 없나 보네?”
“없죠. 요즘 누가 물건 태워요. 함부로 물건 태우면 그것도 다 불법인데.”
“하긴, 물건 함부로 태우면 불법이지.”
고개를 끄덕이던 강진이 턱을 쓰다듬었다.
“그럼 옷 태우면 너희가 입을 수 있다는 거야?”
“그렇죠. 옷 좀 태워 줄래요?”
이혜선의 부탁에 강진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옷이 새것일 필요는 없지?”
“어? 왜요? 여자 옷 있어요?”
“새것일 필요 있어, 없어?”
“더럽지만 않으면 되죠. 귀신이 그런 걸 왜 따져요.”
이혜선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워 줄게.”
“진짜요? 언제요?”
“음…… 이번 주 일요일에 가게 쉬니까, 그때 가서 옷 쇼핑하고 태우자.”
“진짜요? 진짜죠?”
잔뜩 기대감이 어린 이혜선과 여자 귀신들을 보며 강진이 슬며시 말했다.
“옷 쇼핑이라고 해도 너무 기대는 하지 마.”
“기대할 건데요.”
이혜선이 환하게 웃으며 소주잔을 들자 다른 여자 귀신들도 웃으며 잔을 들었다.
***
샤워를 하고 7시쯤에 가게를 내려오던 강진이 순간 멈칫했다. 가게에 신수호 형제들이 모여 있었다.
“어?”
신수호, 신수조, 신수용, 신수귀 이렇게 네 명이 카운터 옆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하고 있었다.
탁자들에도 크리스마스 장식이라 할 수 있는 녹색 장식이나 붉은 장식들이 달려 있었고, 벽에는 산타클로스 인형들이 걸려 있었다.
‘이게 다 뭐야?’
그 모습에 강진이 당황스러운 얼굴로 내려왔다.
“안녕하세요.”
강진의 인사에 신수호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신수용과 신수귀는 피곤한 얼굴로 강진을 보았다.
다만 신수조만이 기분 좋은 얼굴로 트리에 장식을 걸고 있었다.
“강진 씨도 할래요?”
“트리 장식요?”
“재밌어요.”
신수조의 말에 강진이 트리를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해 본 적이 없어서…….”
“크리스마스트리는 그냥 하는 거예요. 자!”
신수조가 붉은색 방울을 주자 강진이 그것을 보다가 입맛을 다셨다.
사실 강진은 크리스마스와 설과 같은 명절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부모님 계실 때에는 좋아했지만, 그 후에는 좋아하지 않았다.
잠시 붉은 방울을 들고 있던 강진이 슬며시 트리에 그것을 달았다.
“봐요.”
한편 신수조가 솜을 트리에 달다가 오빠들을 보았다.
“좀 잘 해요.”
“하고 있잖아.”
“큰오빠도 좀 적극적으로 하고.”
신수조의 말에 신수호가 작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나 열 시에 재판 있다.”
“누구는 일이 없는 줄 알아요?”
“그러니까 올해는 좀…….”
“매년 하는 건데 올해라고 왜 안 해요?”
“어머니도 안 계시잖아.”
“그러니까 더 우리끼리라도 모여서 하던 행사를 해야죠. 그렇지 않아도 오빠들 바쁘다고 자주 모이지도 못하는데…….”
신수조 형제의 그런 모습에 강진이 슬며시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오기 싫다는 걸 신수조 씨가 강제로 끌고 온 모양이네.’
속으로 중얼거리던 강진이 슬며시 말했다.
“식사들은 하셨어요?”
“이거 하고 먹어야죠.”
“식사 뭐로 해 드릴까요?”
“김치 수제비요.”
신수조의 말에 강진이 다른 사람들을 보았다. 신수호가 말했다.
“어머니 레시피의 김치 수제비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신수호의 말에 강진이 주방으로 들어가다가 TV를 보고 있는 배용수에게 눈짓을 했다.
그 시선에 배용수가 주방으로 따라 들어오자, 강진이 슬며시 말했다.
“언제들 왔어?”
“얼마 안 됐어.”
“김치 수제비 해 달래.”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밀가루를 꺼낼 때, 신수호가 다가왔다.
“죄송하지만 이 사장님이 해 주시겠습니까?”
강진이 배용수를 한번 보고는 신수호에게 말했다.
“용수 음식 잘하는데요.”
강진의 말에 신수호가 배용수를 향해 작게 고개를 숙였다.
“배용수 씨가 맛있고 정성이 깃든 음식을 만든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저희가 먹고 싶은 건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어머니의 손맛이라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신수호의 말에 배용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의 손맛을 제가 감당할 수는 없죠.”
웃으며 배용수가 주방을 나서자 신수호가 가게를 둘러보며 말했다.
“저희 집이 귀신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크리스마스를 안 챙겼는데…… 조 녀석이 어느 날 우리 집에는 왜 크리스마스트리가 없냐고 울더군요.”
신수호의 말에 강진이 신수조를 보았다.
‘하긴 귀신들 상대하는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챙기는 것도 이상하기는 하겠네.’
크리스마스와 귀신은 어울리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날부터 우리 집도 크리스마스를 챙겼습니다. 올해는 어머니가 안 계셔서 안 챙길 줄 알았는데…… 조는 아니었나 봅니다.”
그러고는 신수호가 강진을 보았다.
“연락도 없이 들이닥쳐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이곳은 여러분들의 집이기도 하니까요.”
“감사합니다.”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냉장고에서 재료들을 꺼낼 때, 신수호가 입을 열었다.
“오늘 점심때 작은 일이 있을 겁니다.”
“점심요?”
“갈빗집 사장이 용역을 샀더군요.”
신수호의 말에 강진이 눈을 찡그렸다.
‘용역?’
아르바이트 시키려고 용역을 샀을 일은 없고…… 깡패 용역일 것이다.
‘정말…… 찌질하게 나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