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335
336화
강진이 양손 가득 들고 온 식재를 식탁에 올렸다.
“끄응!”
이아름과 장현희도 식재가 든 봉투를 올리며 말했다.
“혹시 음식 만들어 주겠다는 건 핑계고, 장 보러 갈 일꾼 필요했던 것 아니에요?”
장현희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그럴 리가요.”
웃으며 강진이 힐끗 시간을 보았다.
“배고프실 것 같으니 바로 시작하죠.”
강진이 봉지를 들고 주방으로 가다가 장현희와 이아름을 보았다.
“들어오세요.”
“저희도요?”
“그럼요. 오늘은 여러분들이 드실 걸 여러분들이 직접 하는 겁니다.”
“진짜요?”
눈을 크게 뜨고 묻는 이아름을 보며 강진이 웃었다.
“음식 못 하세요?”
“그건 아닌데…….”
사실 이아름은 요리를 잘하는 편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자라면서 부엌일을 거드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후에는 혼자 자취 생활을 했고 말이다.
“들어오세요.”
강진이 주방으로 들어가자 이아름이 장현희를 보았다. 그 시선에 장현희가 웃었다.
“들어가자.”
장현희가 봉지를 들고 주방으로 들어가자 이아름이 입맛을 다시고는 그 뒤를 따라갔다.
주방에 들어온 강진이 재료들을 꺼내 싱크대에 놓으며 말했다.
“각자 요리를 하기로 하죠.”
“각자요?”
“서로에게 먹여 주고 싶은 음식 같은 거요.”
“그럼 강진 씨는요?”
“저는 잡채 할게요.”
강진의 말에 장현희가 손을 들었다.
“그럼 나는 짬뽕 국물하고 중국식 돼지볶음 할게요.”
장현희의 말에 이아름이 재료를 보다가 피식 웃었다.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됐나 싶어 황당한 것이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겉절이 만들고 고등어 구울게요.”
“밥도 하셔야죠.”
“밥? 식당에 밥이 없어요?”
“오늘은 영업 쉬는 날이라서요.”
강진의 말에 이아름이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밥도 제가 할게요. 쌀 어디에 있어요?”
이아름의 말에 강진이 쌀이 담긴 항아리를 가리키고는 장현희에게 말했다.
“필요한 양념들은 이쪽에 있고요. 필요하신 것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알겠어요.”
장현희가 고개를 끄덕일 때, 강진이 이아름 앞에 압력밥솥을 꺼내 놓았다.
“여기다 하세요.”
“압력밥솥에다요?”
“할 줄 모르세요?”
“할 줄은 아는데…….”
이아름이 압력밥솥을 보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생일인데 이왕이면 압력밥솥에 맛있게 해서 먹어야죠.”
강진의 말에 이아름이 전기밥솥과 압력밥솥을 보다가 말없이 쌀을 씻어 압력밥솥에 넣곤 물을 맞췄다.
그것을 힐끗 본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리 할 줄 안다고 하더니 물 양 잘 잡네.’
압력밥솥에 물 잡는 것 보니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그런 이아름을 보며 강진도 소매를 걷었다. 그는 당면을 물에 담가 둔 뒤 야채 손질을 준비했다.
그때 옆에서 장현희의 감탄성이 들렸다.
“와! 칼 대박.”
장현희의 목소리에 강진이 보니 그녀가 탕수육을 할 고기를 썰다가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강진의 시선에 장현희가 식칼을 보며 말했다.
“이 식칼 너무 좋아요.”
“그래요?”
“썰리는 감촉이 너무 좋네요.”
말을 한 장현희가 당근을 꺼내 잘랐다.
서걱!
매끄럽게 잘리자 장현희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와! 이거 어디 브랜드예요? 날렵한 선을 보니 일본 회칼 같기도 한데.”
장현희가 감탄이 어린 눈으로 식칼을 보는 것에 강진이 웃었다.
검수지옥에서 나는 식물로 만든 식칼은 확실히 잘 썰려서 손맛이 좋았다.
“저도 어디 브랜드인 줄은 잘 모르겠네요.”
“어디서 사셨어요? 와…… 저희 가게에도 좋은 식칼은 많은데 이런 느낌은 처음이에요.”
감탄을 하며 검수림 식칼을 이리저리 보는 장현희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가게에 처음부터 있던 것이라 저도 어디 브랜드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말을 한 강진이 문득 눈을 찡그렸다.
‘거짓말도 죄인데…… 나중에 문제 생기는 것 아냐? 거짓말을 하면 무슨 지옥이더라?’
그런 생각을 하자 강진이 입에서 혓바닥을 우물거렸다. 생각이 난 것이다.
입으로 지은 죄는 염라대왕이 혀를 길게 펴서 거기다 농사를 짓는 발설지옥에서 다룬다.
강진이 입맛을 다시고는 검수 식칼을 하나 꺼내들었다. 강진의 가게에는 검수 식칼이 몇 개 더 있었다.
배용수와 강진 둘 다 요리를 하니 검수 식칼을 하나만 두고 쓰지는 않는 것이다.
검수 식칼을 꺼낸 강진이 야채들을 다듬기 시작했다.
야채들을 다듬는 사이, 밥을 올린 이아름이 힐끗 싱크대에 놓인 미역을 보았다.
“미역국은…… 누가 해요?”
이아름의 말에 강진이 야채를 다듬으며 말했다.
“저는 지금 야채 다듬느라 손이 부족해서요.”
강진의 말에 장현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중화요리는 일단 재료 손질부터 해야 해.”
두 사람의 말에 이아름이 미역을 보았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다가 배추를 집었다.
그녀는 배추를 자르고는 거기에 소금을 쳐 잘 버무렸다. 뒤이어 고등어를 꺼내던 그녀가 돌연 멈췄다.
지금 고등어를 구우면 식는 것이다. 생선이든 고기든 굽고 바로 먹어야 맛이 있으니 말이다.
반면 겉절이 배추는 숨이 좀 죽고 간이 되려면 20분 정도 있어야 하니 손이 남는 것이다.
그에 이아름이 힐끗 미역을 보았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다가 두 사람을 보았다.
장현희는 마음에 드는 식칼을 얻어서인지 기분 좋게 재료들을 썰고 있었고, 강진 역시 재료들을 다듬고 있었다.
그것을 보던 이아름이 미역 봉지를 보고는 한숨을 쉬곤 물을 받았다.
물을 받은 이아름이 미역 봉지를 뜯었다. 그러고는 봉지 안에서 미역을 적당히 집어 물에 담갔다.
그리고 손으로 미역을 살살 누르고는 한쪽에 놓았다.
“하아!”
별일 아니었지만 이아름은 뭔가 큰일을 한 듯한 느낌이었다.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한 번도 미역을 만져 본 적이 없는데.’
만지고 싶지 않았다. 그날의 기억이 계속 떠올라서 말이다.
그리고…… 이아름의 코끝에 미역의 비린내가 살짝 감돌았다.
“우욱!”
순간 이아름이 헛구역질을 하며 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우욱!”
“아름아? 왜 그래?”
이아름이 헛구역질을 하는 것에 장현희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자, 이아름이 강진을 보았다.
그 시선에 강진이 주방 옆을 가리켰다.
“나가서 이쪽으로 가면 화장실이요.”
강진의 말에 이아름이 급히 주방을 나가 화장실로 뛰어갔다.
그 모습을 걱정스럽게 보던 장현희가 강진을 보았다.
“무슨 생각이세요?”
장현희의 물음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짐작하시는 것 같은데요?”
“아름이 미역국을 먹을 수 있게 하시려는 거죠?”
장현희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미역국의 거부감을 없애 드리고 싶습니다.”
“거부감 때문에 못 먹는 건데…….”
그게 되겠냐는 듯 보는 장현희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제가 심리학과를 나왔습니다.”
“심리학과요?”
“아름 씨가 거부감을 느끼는 건 할아버지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죠?”
“그건…….”
장현희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장현희의 답에 강진이 힐끗 옆을 보았다. 정확히는 주방의 벽이었다.
“할아버지는 손녀인 아름 씨를 위해 미역을 사서 물에 불렸습니다. 친구 따라 가출을 한 손녀에게 화가 나기보다는 걱정이 더 많았을 겁니다. 그래서 손녀가 오면 해 주려고 미역국을 끓이려 하신 거겠죠.”
“맞습니다. 손녀가 가출을 하기는 했지만 화보다는 걱정이 많이 됐습니다.”
할아버지 귀신의 말에 강진이 그를 힐끗 보고는 다시 벽을 보았다.
정확히는 벽 너머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이아름을 보며 말이다.
“현희 씨는 요리를 무슨 마음으로 하세요?”
“마음요?”
“저는 제 음식을 먹는 분들이 맛있고 집에서 먹는 것처럼 편했으면 합니다. 아! 그리고 배도 불렀으면 하고요.”
“저도…… 그렇죠.”
“음식을 한다는 건 나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겁니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 주지는 않지요.”
강진의 말에 장현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아름 씨에게 음식을 해 보라고 한 것은…… 할아버지가 그날 무슨 마음으로 미역을 물에 불렸는지를 알아주셨으면 해서입니다. 죄책감이 아니라…… 할아버지의 사랑을 아셨으면 합니다.”
강진의 말에 그를 보던 장현희가 입을 열었다.
“왜 저희한테 잘해 주세요?”
어제 잠깐 본 사이일 뿐이다. 장현희도 중국집에서 요리 배우고 있어서 음식점 생리는 안다.
강진이 밥을 해 주고 싶다면 해 주면 된다. 굳이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직접 요리까지 하게 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손만 많이 가므로 강진이 혼자 차려주면 더 빠르고 편할 것이었다.
“생일날 먹는 미역국 좋아하거든요.”
“미역국?”
“특히 어머니가 끓여 주신 미역국을 좋아합니다.”
“어머니 음식 솜씨가 좋으셨나 보네요?”
장현희의 말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생일날 소고기 많이 넣고 끓인 미역국은 늘 맛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미역국 끓여 주려고 엄마는 평소보다 삼십 분은 일찍 일어나셨을 겁니다.”
말을 한 강진이 장현희를 보았다.
“직장인에게 아침 삼십 분이 어떤 의미인지 아시죠?”
“삼십 분이 아니라 오 분도 소중하죠.”
“생일날 먹는 미역국은 그런 것 같아요. 사랑이죠.”
“사랑이라…… 좀 오글거리지만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장현희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아름 씨가 미역국과 생일 음식을 만들면서 할아버지 마음을 아셨으면 합니다.”
“할아버지의 마음…….”
잠시 있던 장현희가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장현희의 목소리에 이아름이 벽에 몸을 기댔다.
그러고는 슬며시 눈을 감았다.
‘할아버지의 마음…….’
눈을 감은 이아름의 머릿속에 옛 기억들이 떠올랐다.
생일날 자신을 깨우며 미역국을 차려주던 할아버지의 모습…….
잠에서 깨어나며 맡아지던 미역국 냄새. 생일의 아침은 향긋한 미역국 냄새와 함께 다가왔었다.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미역국을 떠 주시던 할아버지의 모습…….
-아름아, 생일 축하한다.
환하게 웃으며 생일을 축하해 주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자 이아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할아버지.”
작게 미소를 짓던 이아름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음식 하는데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아름이 손을 씻고는 미역을 손으로 이리저리 흔들었다.
미역을 흔들 때마다 비린내가 올라와 이아름은 눈을 찡그렸다.
비린내를 맡을 때마다 텅 빈 자신의 집에 들어갔을 때 맡았던 그 냄새가 떠올랐다.
할아버지가 없는 집…… 앞으론 혼자 살아야 한다는 막막한 현실…….
냄새와 함께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떠오르는 기억에 이아름이 입술을 깨물었다.
토할 것 같았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이아름이 애써 미소를 지었다. 이 미역은…… 앞으로 혼자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의 증표이지만, 한편으로는 할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준비하던 생일 아침의 기억이기도 했다.
강진은 이아름이 천천히 미역을 씻는 것을 보았다.
이아름이 볼에 담긴 미역 씻은 물을 버리고는 새로 물을 받는 것이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쁜 기억은 씻어 버리고…… 할아버님에 대한 좋은 기억만 간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