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400
401화
김승희가 비빔밥을 안주로 소주를 마시자 강진이 그녀의 빈 잔에 소주를 따라주었다.
“오빠 분이 비빔밥을 잘 해 주셨나 보네요.”
강진의 말에 김승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릴 때 저녁에는 오빠와 나 둘이 있었거든요.”
“부모님들이 바쁘셨나 보네요.”
“네. 좀 바쁘셨어요.”
부모님 이야기를 딱히 하고 싶지 않은 듯 김승희가 소주잔을 들다가 내밀었다.
“음식 맛있어요.”
김승희의 말에 강진이 잔을 들어 살짝 부딪히고는 말했다.
“오빠가 해 준 비빔밥이 더 맛있었을 겁니다.”
“아니에요. 둘 다 맛있어요.”
웃는 김승희를 보며 강진이 소주를 마시고는 슬며시 물었다.
“그런데 오빠가 착하네요. 동생 비빔밥도 해 주고.”
강진의 말에 김승희가 웃었다.
“오빠가 좀 많이 착했어요. 저 배고프다고 하면 뭐라도 해 주려고 하고. 근데 오빠도 어려서 그냥 있는 반찬들 섞어서 비벼 주는 정도였어요.”
말을 하던 김승희가 씁쓸하게 고개를 저었다.
“언니, 괜찮아요?”
옆에 있던 후배가 슬며시 김승희의 손을 잡았다. 그러다 강진을 보고는 말했다.
“언니 오빠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거든요.”
“아…… 죄송합니다.”
자신이야 이미 김승태가 죽은 것을 알지만, 안다는 티를 낼 수는 없으니 사과를 했다.
강진의 말에 김승희가 고개를 저었다.
“모르셨으니까요.”
웃으며 김승희가 자신의 잔에 소주를 따랐다.
“언니……”
그런 그녀의 안색을 후배가 옆에서 살폈다.
그러는 사이 박문수가 주방에서 냄비를 두 개 들고 나왔다.
“조갯국을 좀 했습니다.”
냄비를 식탁에 놓은 박문수가 말했다.
“이것도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요리를 했으니 국물 섞이지 않게 따로 드시면서 맛을 음미해 보십시오.”
“이미 음식 많은데.”
“술안주로 좋을 겁니다.”
박문수가 웃으며 하는 말에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조갯국을 보았다.
둘 다 뽀얀 육수가 우러나와 있었고, 반질반질한 조개가 입을 벌려 하얀 속살을 보이고 있는 것이 먹음직해 보였다.
거기에 파란 쪽파 종종 선 것이 뿌려져 있는 게 화룡점정이었다.
“맛있겠어요.”
“드셔 보세요.”
말을 하며 박문수가 조갯국을 그릇에 덜어 사람들에게 내밀었다.
그렇게 두 개의 국이 모든 사람들에게 나눠지자 박문수가 손을 들었다.
“일단 붉은 그릇부터 드셔 보세요.”
박문수의 말에 배용수와 도창복이 긴장된 눈으로 그릇을 보았다.
국그릇은 작은 우동 그릇처럼 생겼는데 하나는 검고 하나는 속이 붉은색이었다.
그중 배용수가 만든 것은 검은 그릇이고, 도창복은 붉은 그릇이었다.
사람들이 수저로 붉은 그릇의 국물을 떠 먹고는 미소를 지었다.
“속이 확 풀리네요.”
“감칠맛이 아주 좋아요.”
“칼칼한 맛이 아주 좋네요.”
사람들의 감탄성에 도창복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슬쩍 배용수를 보았다.
그 시선에 배용수가 눈을 찡그렸다.
‘실수다. 내 것부터 먹게 했어야 했는데.’
음식은 센 맛이 약한 맛을 잡아먹게 되어 있다. 특히 짜고 매운 맛은 다른 맛을 모두 잡아먹어 버리는 것이다.
그에 배용수가 걱정을 할 때, 박문수가 힐끗 두 귀신을 보고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죽어서 무슨 승부를 내겠다고.’
상품이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이렇게 음식 승부를 내겠다는 두 귀신이 한심한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평가를 내리자 검은 그릇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검은 그릇의 음식을 드셔 보십시오.”
박문수의 말에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배용수는 초조한 얼굴로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그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수저로 검은 그릇에 담긴 조갯국을 떠서 입에 넣었다.
‘어느 것이 용수 건 줄 알아야 손을 들어주지. 잘못 반응하면 용수한테 구박 엄청 들을 것 같은데.’
반응을 보면 지금 먹는 것이 배용수가 만든 것 같기는 한데, 확실한 것은 아니라 긴가민가한 것이다.
후르릅!
국물을 떠 먹은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좋다.”
강진의 중얼거림에 배용수가 힐끗 그를 보았다.
“맛있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그를 보았다. 말하는 것을 보니 이게 배용수가 만든 조갯국인 모양이었다.
‘다행히 집에 가서 구박은 안 당하겠네.’
혹시라도 도창복이 만든 것 먹고 맛있다고 하면 혼이 날까 봐 맛있어도 맛있다는 말을 못 했는데…… 다행히 제대로 맞춘 모양이었다.
“국물이 되게 진해요.”
“완전 맛있다.”
직원들의 말에 도창복이 작게 콧방귀를 뀌었다.
“한식에 버터를 쓰면 반칙 아닙니까?”
도창복의 말에 배용수가 웃었다. 배용수가 조갯국에는 확실히 버터가 들어갔다.
한식에 버터가 안 어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거 참…… 음식의 역사에 대해 이리 모르다니.”
“네?”
무슨 말이냐는 듯 보는 도창복에게 배용수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버터는 우리 조선에서도 만들어 먹던 한식입니다.”
“그게 무슨? 버터가 한식이라니요?”
버터가 한식이라는 말에 황당해하는 도창복을 보며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조선에서는 젖을 짜서 달인 뒤 위에 뜨는 걸 걷어내 뭉쳐서 수유를 만들었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버터라고 할 수 있겠지요.”
“수유가 버터?”
“수유는 아주 귀한 음식으로, 만드는 게 어려울뿐더러 정성과 시간이 많이 들어서 일반인은 잘 먹지 못해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 워낙 귀해서 임금님이나 겨우 먹고, 가끔 고관대작들에게 몸보신하라고 하사하던 음식이지요. 그만큼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그러고는 배용수가 미소를 지었다.
“엄연히 한식입니다.”
“조선 시대 버터와 지금 버터가 같지는 않잖습니까?”
“그거야 당연한 일이지요. 중세 시대에 먹던 파스타와 지금 파스타와 어디 같겠습니까?”
자신의 말에 도창복이 눈을 찡그리자 배용수가 재차 웃었다.
“음식을 하는 사람은 음식의 역사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하는 것인데…….”
“끄응!”
틀린 말이 아닌지라 차마 반박을 못 하고 있던 도창복이 박문수를 보았다.
“사람들에게 물어 주세요. 어느 것이 더 맛있는지.”
도창복의 말에 박문수가 그를 보다가 사람들에게 말했다.
“어떤 음식이 맛있었습니까? 검은 그릇이 맛있었다면 손을 들어 주세요.”
박문수의 말에 강진과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데……. 그리고 맛도 내 입에는 용수 것이 더 맞고.’
살짝 양심에 찔리기는 했지만, 확실히 강진의 입에는 배용수의 것이 조금 더 맛있었다.
배용수가 집에 가서 툴툴거릴 것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다섯 사람이 손을 들자 도창복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고, 배용수의 얼굴은 굳어졌다.
지금 있는 사람은 열한 명인데 손을 든 것이 다섯뿐이면…… 자신의 패배였다.
“그럼 이 붉은 그릇이 맛있었던 분.”
박문수의 말에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손을 든 사람은 다섯이었다.
‘동점?’
‘왜 한 사람이 안 들지?’
동점이라는 사실에 배용수와 도창복이 손을 안 든 사람을 보았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김이슬이었다.
“아가씨는 어느 것이 입에 맞으십니까?”
김이슬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박문수가 아가씨라 부르자, 그녀가 웃었다.
“저는 두 음식 모두 맛있어서 하나를 못 고르겠어요.”
“그러십니까?”
“오늘 사장님이 내어주신 음식들 모두 훌륭해요. 굳이 뭐가 더 맛있는지 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맛있으면 그냥 맛있는 거죠.”
그러고는 김이슬이 박문수를 보며 말했다.
“근데 저 이 조갯국 레시피는 배우고 싶어요. 검은 그릇 조갯국은 친구들하고 와인에 가볍게 먹기 좋을 것 같고, 붉은 그릇 조갯국은 한잔하면서 먹기 좋을 것 같아요.”
김이슬의 말에 몇몇 승무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박문수를 보았다.
“저희도 레시피 알고 싶어요.”
승무원들은 자신들이 요리 대결의 심사자였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저 박문수가 다른 레시피로 두 개의 음식을 만들고 뭐가 낫냐고 묻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승패에 대해 부담이 없었다. 어쨌든 두 음식 다 박문수가 했다 생각을 하니 말이다.
자기들도 배우고 싶다는 말에 박문수가 힐끗 두 귀신을 보았다. 그 시선에 배용수와 도창복이 입맛을 다시며 서로를 보았다.
“음식…… 잘하네.”
“그쪽도 잘하네.”
상대에게 음식 칭찬을 한 배용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일단 잘 해감이 된 조개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버터를 프라이팬에 넣고 녹입니다. 거기에 고추와 마늘을 넣고 볶다가 조개를 넣어 줍니다. 여기에 칼칼하게 드시고 싶으시면 고추를 좀 더 넣으면 되고, 부드럽게 드시고 싶으면 고추를 조금 넣으시면 됩니다. 그렇게 끓이시다가 조개가 입을 벌리면 청주나 소주를 넣고 물을 넣습니다. 술과 물의 비율은 일대일 정도로 하면 됩니다. 아! 소주가 없으면 맥주를 넣어도 괜찮습니다.”
배용수가 한 설명을 박문수가 전달해 주자 승무원 한 명이 말했다.
“일본식 조개 술 찜하고 비슷하네요.”
“비슷합니다.”
“그런데 맥주를 넣어요?”
“중국에는 육수 말고 맥주를 넣어서 만드는 국물 요리도 있습니다. 다만 맥주를 넣으시면 맛은 있겠지만 색이 탁해집니다.”
배용수의 설명을 승무원들이 핸드폰에 메모하자, 이번에는 도창복이 말했다.
도창복의 조갯국은 조금 평범한 스타일이었다. 그저 매운 고추와 마늘, 조개 넣고 끓이다가 마지막에 파를 썰어 넣는 것이었다.
자신의 음식에 대해 설명을 하던 도창복이 말을 덧붙였다.
“어머니의 음식은 특별한 레시피나 재료를 쓰지 않아도 자식의 입에 가장 좋은 맛으로 남습니다. 버터와 같은 특별한 재료가 아닌, 가정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도 말입니다.”
도창복의 말에 배용수가 눈을 찡그렸다. 틀린 말은 아니다. 가정집에 버터를 구비해 놓고 있는 집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특별한 재료나 레시피를 쓰지 않아도 자식에게 가장 맛있는 음식을 내어 주시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말을 여기서 한다고?’
배용수가 노려보자 도창복이 슬쩍 어깨를 으쓱했다.
“배용수 씨 어머니는 버터로 국을 끓입니까?”
‘내가 이런 놈한테 음식 잘한다고 칭찬을 했다니!’
배용수가 속으로 분노를 삼킬 때, 박문수가 고개를 젓고는 도창복이 한 말을 돌려서 말을 해 주었다.
“재료가 좋으면 평범한 레시피로도 좋은 맛을 낼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손맛에는 특별한 레시피가 없으니까요.”
박문수의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김승희의 얼굴은 서서히 굳어졌다.
“어머니의 손맛…….”
그녀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손맛은…… 그리 좋은 것이 아니었다.
식사를 마친 일행은 화이트 홀 호텔에서 보내온 버스를 타고 호텔로 들어왔다.
승무원들에게 황민성이 룸 키를 내밀었다.
“룸서비스와 호텔 구내 시설은 이 카드로 사용하시면 됩니다.”
“고맙습니다.”
김승희가 카드 키를 대표로 받자 황민성이 웃으며 말했다.
“쉬셔야 하는데 제가 식사 자리를 먼 곳으로 잡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승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황민성이 말을 이었다.
“저녁에도 수영장은 오픈한다고 하더군요. 물도 따뜻하고 바다가 보여서 쉬시기 편하실 겁니다.”
“너무 좋아요.”
후배의 말에 김승희가 미소를 지을 때, 황민성이 말했다.
“배가 터질 것 같지 않으시다면 당근 쿠키를 드셔 보세요. 당근 쿠키와 함께라면 맥주를 3리터도 마실 수 있지요.”
“감사합니다.”
“그럼 올라가서 쉬세요.”
승무원들이 룸으로 올라가자 황민성 식구들도 룸으로 올라갔다.
“형, 저 삼다식당 좀 갔다 올게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시간을 보았다.
“곧 11신데 가려고?”
“저승식당은 그 시간이 피크니까요.”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황민성이 말했다.
“조심히 다녀와.”
황민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