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474
475화
손님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자 가게 안에는 마지막으로 온 원승환과 황민성 테이블만이 차 있었다.
보통 한끼식당 저녁 장사 시간은 다섯 시부터 일곱 시 사이이니 더 이상 저녁 손님은 없다 봐도 무방한 시간대였다.
바쁜 시간이 지나 비교적 한가해진 강진과 차달자는 황민성과 같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모님은 여기 일할 만하신가요?”
황민성이 소주를 한 잔 따라주며 묻자 차달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이 편하게 해 주셔서 잘 하고 있습니다.”
차달자의 말에 황민성도 웃으며 말했다.
“강진이가 일 막 시키면 말씀하세요. 제가 좋은 일자리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후! 사장님이 구박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차달자의 농에 강진이 웃으며 맞받아쳤다.
“에이! 제가 언제 구박을 했다고 그러세요.”
“그러니까 ‘구박을 하면’이죠.”
차달자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놈이 구박하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저를 어디에 취직시켜 주시려고요?”
“음…… 마음 같아서야 저희 집에서 같이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황 사장님 집에서요?”
차달자가 놀란 듯 보자, 황민성이 머리를 긁으며 슬며시 말했다.
“강진이가 이야기했는지 모르겠지만…….”
황민성이 슬며시 원승환 쪽을 확인하고는 작게 속삭였다.
“저희 집에도 귀신이 몇 분 계십니다.”
“그러세요?”
“한 분은 저희 어머니 수호령이시고, 두 분은 제가 구입한 집에 이전부터 사시던 지박령입니다.”
“아…… 지박령이 살면 집에 우환이 있을 텐데.”
“그건 강진이가 잘 말해서, 집 안에는 안 들어오는 걸로 합의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있는 사람들한테 최대한 시선 안 주기로도 했고요.”
“그렇군요.”
“그리고 강진이가 귀신분들 밥 아침에 꼭 챙겨 주라고 해서…… 지금은 그런대로 잘 지내는 것 같습니다.”
황민성은 직접 귀신을 보지는 못했지만, 집에 아픈 사람 없고 별다른 일 없는 것을 보아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황민성의 말에 차달자가 강진을 보았다.
“귀신들 밥 차려 주라 한 것은 잘 하셨네요.”
“저승식당에 오지도 못하고 그곳에 발 묶여 있는 분들이라 배고프실 것 같아서요.”
강진의 말에 차달자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보다가 말했다.
“좋은 마음에 좋은 결과가 생겼네요.”
“네?”
“무당들이 굿을 할 때 왜 제삿밥을 거하게 차리는 줄 아세요?”
“귀신들 밥 먹으라고요?”
“맞아요. 사람이든 귀신이든 배가 고프면 신경이 날카로운 법이랍니다.”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개도 밥 주는 사람은 안 무는 법이죠.”
“맞는 말이에요.”
맞장구치며 미소 지은 차달자가 황민성을 보았다.
“귀신들 밥 차려주면 복 받으실 거예요.”
“강진이도 그런 말 하더군요.”
황민성이 웃으며 하는 말에 차달자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럼 저를 황 사장님 집에 취직시키려고 그러시는 건가요?”
“제 욕심일 뿐이죠.”
사실 황민성은 차달자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인성도 좋아 보이고 음식도 잘 하고…… 그리고 귀신도 보고 말이다.
어머니 곁에 이런 분이 한 분 계시면 참 좋겠다는 생각에 욕심을 내는 것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욕심일 뿐이었다. 차달자는 저승식당이 어울리니 말이다.
강하게 권하지는 않는 황민성의 모습에 차달자가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국물을 좀 내올게요.”
“이것도 많은데요.”
“소주 마시는데 국물이 있으면 좋지요. 혹시 좋아하는 국물 요리 있으세요?”
“그럼 라면 부탁드리겠습니다.”
“라면요?”
많은 국물 요리 중에 굳이 라면을 선택한 게 의아한 차달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강진이 주방을 향해 말했다.
“용수야, 형 라면 드신대.”
“알았다.”
배용수의 답을 들으며 강진이 차달자를 자리에 앉혔다.
“형한테 라면은…… 엄마의 음식이에요.”
“라면이요?”
차달자가 여전히 의아한 듯 보자, 황민성이 웃으며 강진에게 말했다.
“우리 엄마도 다른 음식 많이 해 주셨어.”
“말이 그렇다는 거죠.”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달자를 바라보았다.
“어릴 때 어머니가 분식집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라면을 자주 먹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래서 그런지 가끔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라면이 생각납니다.”
그러고는 황민성이 강진의 어깨를 손으로 잡았다.
“이 녀석하고도 그 라면 덕에 친해진걸요.”
“무슨 특별한 비법이 있는 건가요?”
차달자의 물음에 강진이 웃으며 답했다.
“매운 라면에 고추 넣고 김치 국물 넣어요. 계란은 풀지 않고 수란처럼 만들면 되고요. 아! 그리고 면은 살짝 퍼지게요.”
조리법을 듣고 있던 황민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거…… 혹시 형이 했던 말 아니냐?”
“기억하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피식 웃었다.
“그럼. 분식집 가서 주문할 때 내가 늘 하던 말이니까. 그런데…… 그렇게 잘 안 해 주더라.”
“라면 한 그릇 파는데 그렇게까지 해 주기에는 조금 귀찮죠.”
라면에 김치 국물 넣어주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지만, 수란처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은 꽤 귀찮은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가게에서 수란은 먹을 수 없었다.
보통은 그냥 계란 탁 깨서 넣고 저어 버리니 말이다.
물론 황민성이 오만 원을 내밀었다면 해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황민성은 라면 하나에 오만 원이나 낼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마음에 드는 라면을 먹은 적이 드물었다.
어쨌든 황민성은 강진이 작년에 자신이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는 것에 살짝 감동한 듯 온화한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그 시선에 강진이 웃었다.
“형이 한 대사를 외운 것이 아니라 그냥 음식 레시피를 외운 거예요.”
“그래?”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고…….”
둘이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핸드폰 벨소리가 식당 안에 울려 퍼졌다. 그 핸드폰의 주인인 이유미가 급히 전화를 받았다.
“응. 아빠. 응. 나 지금 친구 만나지. 응.”
이유미는 원승환을 한 번 보고는 서둘러 가게를 나갔다.
“아니야. 안 만난다니까. 진짜 왜 그래? 나 선 안 본다고.”
가게 밖에서 어렴풋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원승환이 작게 한숨을 쉬고는 소주를 마셨다.
그런 원승환의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입구를 보았다.
‘아버님이 선 보자고 하시는 모양이네.’
이유미의 사정을 알 것 같은 강진이 입구를 볼 때, 문을 열리며 그녀가 안으로 들어왔다.
“미안. 나……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
“그래. 데려다줄게.”
“그게…… 아빠가 이 근처래.”
“아버님이?”
“미안해. 나 먼저 갈게.”
서둘러 이유미가 가게를 나서자 원승환이 급히 일어나서는 그 뒤를 따라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진이 한숨을 쉬었다.
“연인들이 힘드네요.”
강진의 중얼거림에 황민성이 고개를 저었다.
“원 실장님 잘생기고 몸도 좋아서 남자로서 충분히 매력 있는데…… 세신사라 싫어하는 거지?”
황민성의 물음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모양이에요.”
“남의 눈에서 눈물 안 뽑고 돈 잘 벌면 그게 좋은 직업 아니냐?”
“사람들은 때밀이라는 직업이 더럽고 힘들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러는 그 아버님은 때 안 미신대?”
“미시겠죠.”
“자기도 밀면서 왜 그러는 거야?”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입맛을 다실 때, 원승환이 가게 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왔다.
원승환은 방금 전까지 식사하던 자리를 잠시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그는 이유미가 앉아 있던 의자를 손으로 한 번 짚고는 강진을 보았다.
“계산하겠습니다.”
원승환의 말에 강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유미의 빈자리를 보고는 말했다.
“오늘은 제가 서비스해 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먹었는데 계산해야죠.”
“그럼…….”
강진이 자리를 보았다.
“소주 세 병에 스테이크 해서 이만 육천 원입니다. 다른 메뉴는 제가 서비스로 드린 거고요.”
“너무 조금 받으시는 것 같은데…….”
“정가로 받는 겁니다.”
잠시 고민하던 원승환이 지갑에서 삼만 원을 꺼내 내밀었다. 그에 강진이 아크릴 통에 돈을 넣고는 사천 원을 거슬러 주었다.
계산이 끝나자 가게를 나서려는 원승환을 황민성이 불러 세웠다.
“원 실장님.”
황민성의 부름에 원승환이 급히 그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황 사장님.”
“호텔도 아닌데 그렇게 예의 차리지 마세요.”
“아닙니다.”
정중하게 예의를 차리는 원승환을 보며 황민성이 말했다.
“내가 원 실장님하고 알고 지낸 지 한 삼 년 됐죠?”
“그런 것 같습니다.”
“밖에서 이렇게 사적으로 보는 건 처음인데…… 괜찮으면 소주 한잔 같이 하겠어요?”
“아닙니다.”
“그러지 말고 한잔 같이 해요. 내가 원 실장님 소주 한잔 사 줄 나이와 인연은 되는 것 같은데…….”
원승환이 망설이는 듯 잠시 머뭇거리자, 황민성이 소주잔을 내밀었다.
“그리고 지금 딱 한잔 하고 싶어 하는 얼굴입니다. 숙소에서 혼자 소주 까지 마시고 저와 같이 한잔합시다.”
황민성이 거듭 권유하자 원승환이 잠시 있다가 고개를 숙였다.
“그럼.”
원승환이 슬며시 자리에 앉으며 황민성이 준 잔을 두 손으로 잡았다.
그러자 황민성이 소주를 따라주었다.
쪼르륵!
잔에 소주가 채워질 때 주방에서 배용수의 외침이 들렸다.
“라면 다 됐어!”
그에 강진이 주방에서 라면을 들고 와 테이블에 놓았다.
강진이 라면을 놓자, 황민성이 원승환을 보았다.
“라면 좀 먹어 봐요.”
“배부릅니다.”
“배가 불러도 남이 먹는 걸 보면 먹고 싶은 것이 라면 아니겠어요?”
웃으며 황민성이 원승환의 그릇에 라면을 덜어 주고는 수저로 계란을 떠서 그 위에 얹어주었다.
“내가 라면에서 계란은 남 안 주는데 원 실장님이라 특별히 드리는 겁니다.”
“아…… 감사합니다.”
두 손으로 그릇을 받는 원승환을 보던 황민성이 강진을 보았다.
“너도 앉아.”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그의 옆에 앉았다.
“먹어 봐요. 여기 라면이 참 맛있어요.”
“음식점에서 라면이 맛있다고 하면 이상하잖아요.”
“맛있는 걸 맛있다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하냐?”
황민성이 라면을 후루룩 먹자, 원승환이 입맛을 다시고는 젓가락을 들었다.
천천히 한 젓가락 먹은 원승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라면이 맛있습니다.”
그런 원승환을 보며 황민성이 입을 열었다.
“결혼 준비가 잘 안 되나 봐요?”
“네?”
“사우나 분들한테 이야기 들었어요. 원 실장님 결혼 준비한다고.”
“아…….”
“그런데 잘 안 되시는 것 같습니다.”
손님들이 원승환을 좋아하는 건 때를 잘 밀기만 해서는 아니다.
상대가 편히 말할 수 있게끔 배려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편하게 대화하다 보면 친분이 쌓여서 선을 넘을 수도 있지만, 그는 선을 넘지 않으니 손님들이 더 좋아하는 것이다.
이처럼 여러 손님들하고 편히 대화하는 원승환이다 보니, 그의 결혼 소식을 모르는 손님이 드물 정도였고 이는 황민성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결혼이 비틀거린다는 것은 강진에게 들어서 알게 된 것이지만 말이다.
원승환은 빈자리를 보고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열심히 일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면서 딸 둘에 아들 하나 해서 셋 정도 낳고 싶었는데…….”
원승환이 한숨을 쉬고는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꿀꺽!
단숨에 소주를 마신 원승환이 재차 한숨을 쉬었다.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자조 섞인 원승환의 목소리에 황민성이 그를 보다가 소주를 따라주었다.
“내가 사업적인 조언 하나 해 드릴까요?”
“사업적인 조언요?”
원승환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그 시선을 받으며 황민성이 자신의 소주잔을 들었다.
그에 원승환도 다시 잔을 들어 살짝 부딪쳤다. 그러곤 그대로 쭉 들이켜는 원승환을 보던 황민성이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