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09
510화
덜컥!
문을 연 강진은 기어 나오듯이 주방 바닥을 짚고는 몸을 내밀었다.
“끄응!”
중력이 변하는 이상한 감각에 고개를 저은 강진은 배용수가 봉지를 보는 것을 보며 말했다.
“나보다 식재가 더 중요하냐? 매정한 놈.”
“어지러워?”
“아니.”
강진의 답에 배용수가 더는 말하지 않고 식재들을 꺼내고는 과자를 한쪽에 놓았다.
“차가운 놈.”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그를 보았다.
“이상한 놈.”
그에 피식 웃은 강진이 옆을 보았다. 옆에서 장병두가 JS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안 쓰세요? 그거 되게 쓰던데.”
“커피는 원래 쓴맛으로 마시는 겁니다.”
그러고는 장병두가 웃으며 말했다.
“커피 정말 오랜만이군요.”
장병두는 향을 음미하고는 커피를 마셨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이 조립문을 바닥에서 떼고는 그것을 재조립했다.
탓탓탓!
잘 접힌 문을 벽에 기대게끔 세워 놓고는 JS 즉석밥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리며 말했다.
“아! 편의점에 애들 왔다 간 모양이야.”
“애들?”
배용수가 김 봉지를 뜯다가 그를 보았다.
“무슨 애들?”
“영수하고 예림이, 가은이 말이야.”
“그 애들이 JS 편의점에 왔다 갔다고?”
배용수가 놀란 눈을 하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직원이 했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이들 이야기를 마친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 같아. 승천하면 다들 JS 금융부터 가서 서류 작업하고, 편의점에서 물건 사서 가니까.”
“그럼 다들 편의점에 들렀다 갔을 텐데 다른 분들도 물어보지 그랬어?”
그동안 가게에서 이래저래 승천한 귀신이 많다 보니 그들 소식도 궁금한 것이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들렀다 해도 직원분이 기억을 못 할 거야.”
“왜?”
“하루에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직원분이 어떻게 모두 기억하겠어? 그리고 물건 사고 바로 저승으로 가시는 분들이라 딱 한 번만 볼 텐데.”
“그건 그렇네. 물건 사고 바로 저승에 가니까.”
고개를 끄덕이던 배용수가 물었다.
“그럼 애들은 어떻게 알고?”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면서 내 이름이 나온 모양이야.”
“아…… 그래서 알아봤구나.”
“다행히 직원분이 내 생각해서 애들한테 필요한 것 잘 챙겨 준 모양이야.”
“그래서 물건은 잘 사 갔대?”
“꼭 필요한 물건들은 사 간 모양이야.”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미소를 지었다.
“물건을 샀으니…… 고생은 덜 하겠네.”
“잘 됐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문득 그를 보았다.
“야.”
“응?”
“너 소희 아가씨한테 잘 보여라. 아! 신수호 씨한테도 잘 보이고.”
배용수는 의아하다는 듯 그를 보았다.
“소희 아가씨한테는 당연히 친절하고 예의 있게 하지. 누가 소희 아가씨한테 버릇없이 굴겠어.”
배용수의 말대로 세상 그 어떤 귀신도 김소희한테 버릇없이 행동할 수 없다. 오히려 본능적으로 자신을 낮추고 공손하게 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배용수도 김소희에게는 깍듯하게 대하는 것이다.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처녀귀신들 승천할 때, 저승에서 신수호 씨가 일하는 곳 변호사들한테 무료 변론 받을 수 있게끔 소희 아가씨가 돕는 것 같더라고.”
“그래? 그런데 신수호 씨 일하는 곳 변호사들이라니?”
“신수호 씨가 로펌 대표잖아.”
“근데 그건 이승 것 아냐?”
“저승에도 신수호 씨 로펌이 있는 모양이야. 즉 이승 서&백 로펌도 있고 저승 서&백 로펌도 있는 거지.”
“아…… 정말 대단하신 분이구나.”
“그러니까 잘해. 신수호 씨 밑에서 일하는 변호사들이면 일 잘하지 않겠어?”
“오…….”
배용수가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천장을 보았다.
“근데 지금 말하는 거 신수호 씨도 듣는 것 아니냐?”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천장을 보았다.
“내 친구 잘 좀 부탁드립니다.”
신수호가 들을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은근슬쩍 말을 꺼낸 것이다.
자기를 봐서라도 배용수 잘 봐 달라고 말이다.
“무슨 이런 부탁을 대놓고 해?”
“그냥 부탁하는 거지 뭐. 들어주고 말고는 신수호 씨 마음이겠지. 하지만 들어주셨으면 좋겠다. 꼭 들어 주십시오. 듣고 계시죠?”
배용수는 민망한 듯 천장을 한 번 보았다. 자신을 위해서 대놓고 부탁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민망한 것이다.
그에 배용수가 급히 말했다.
“아저씨 기다리신다. 음식 만들자.”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전자레인지에서 돌아간 즉석밥을 꺼냈다. 즉석밥을 그릇에 옮겨 담는 사이 배용수가 JS 간장과 고춧가루, 그리고 설탕으로 양념장을 만들었다.
“매실액도 좀 사 올 걸 그랬나? 양념장에 매실액 넣어야 하는데.”
“있으면야 좋겠지만…… 그렇게 하다가는 여기 서랍에 JS 식재 가득 찬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승에서 사용하는 식재와 저승에서 사용하는 식재는 겉보기와 맛 모두 차이가 전혀 없다.
이승 식재는 사람이 먹고, JS 식재는 귀신이 먹는다는 것만 다를 뿐이었다.
즉 귀신들 맛있게 먹으라고 JS 식재들을 다 사들이다가는 주방에 냉장고도 하나 더 들여야 하고, 양념들도 모두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저승 식재가 늘어날수록 사람 음식에 JS 식재를 쓰는 실수를 범하기 쉬워진다. 그럼 큰일이니 주방에 저승 식재는 최소로 두면서 필요할 때마다 사러 가는 것이었다.
어쨌든 배용수가 양념장을 만드는 사이 강진은 JS에서 사 온 포장 김치를 꺼내며 말했다.
“김치는 어떻게 해 드릴까요? 길게 넣어 드려요? 아니면 자잘하게 썰어서 넣어 드려요?”
“자잘하게 썰고 김칫국물 꾸욱 짜서 넣어 주십시오.”
장병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김치를 썰었다.
서걱! 서걱!
김치가 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장병두가 미소를 지었다.
“김치가 맛있게 아주 잘 익었네.”
“맛도 안 보시고 아시네요?”
“썰리는 소리만 들으면 알지요. 서걱! 서걱! 재료가 살아 있을 때 이런 소리가 나지요.”
“귀가 좋으시네요.”
“그냥 우리 이쁜이가 김치 썰 때를 자주 봐서 압니다. 잘 익은 김치는 썰 때 소리만 들어도 알지요.”
장병두의 말을 들으며 강진이 김칫국물을 짜서는 그릇에 담고는 말했다.
“김치에 양념할까요?”
“김치에 양념?”
“참기름이나 들기름으로 살짝 버무리면 향도 좋고 더 고소하죠.”
강진의 말에 장병두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그냥 줘요.”
그에 강진은 김에 즉석밥을 깔고는 그 위에 김치를 넣으며 물었다.
“이 정도요?”
“그 정도면 됐어요.”
장병두의 말에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간장 다 됐어?”
“응.”
배용수가 수저로 양념장을 떠서는 밥에 스르륵! 문대며 묻혔다.
그러고는 수저를 떼자 강진이 김밥을 말았다.
스륵! 스륵!
마무리로 꾸욱! 꾸욱! 잘 누른 김밥을 칼로 썰려 하자, 장병두가 급히 말했다.
“그냥 주세요.”
“그냥요?”
“원래 이런 건 그냥 통째로 뜯어 먹어야 제맛입니다.”
장병두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으며 김밥을 내밀었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
“고맙습니다.”
환하게 웃으며 장병두가 김밥을 잡고는 뜯어 먹자, 강진은 다시 하나를 더 말려고 김을 놓았다.
“음…….”
김밥을 말려던 강진은 장병두를 보았다. 장병두는 김밥을 씹다가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뭐 이상하세요?”
“아니…… 맛있습니다.”
“표정은 아닌데요?”
강진이 묻자 장병두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맛은 있는데…… 뭔가 우리 마누라가 해 주던 맛이 아니네요.”
“그래요?”
강진이 김밥을 보자, 장병두가 웃었다.
“하하하! 만든 사람이 다르니 맛이 다른 게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김치도 우리 집 것도 아니니 더더욱 그렇지요. 하하하! 맛있습니다.”
웃으며 장병두가 김밥을 다시 입에 넣고는 씹었다.
정말 맛있다는 듯 김밥을 먹는 장병두를 보던 강진이 홀을 보았다. 그러다 JS 식재들을 옆으로 밀었다.
“일단 그거 드시고 계세요.”
그러고는 강진이 이승 김과 밥을 꺼냈다.
“이승 식재로 양념장 하나 만들어봐.”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의아해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이승 간장과 재료들을 꺼내 양념을 만들었다.
김 위에 밥과 김치를 얹고 양념장을 발라 김밥을 만든 강진이 그것을 잘라서는 홀로 나왔다.
홀에서는 차달자와 최순심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장인영은 약과를 먹으며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그녀로서는 두 노인의 이야기가 딱히 재밌지는 않은 것이다.
“고생을 많이 했네.”
“고생은요. 저는…… 음식 할 때가 가장 좋아요.”
“그래?”
“제가 만든 음식을 사람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아요.”
“자식은?”
최순심의 말에 차달자가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답은 하지 않자 최순심은 그녀에게 뭔가 사정이 있다 생각하고는 차를 한 모금 마시다가 강진을 보고는 말했다.
“주방에서 뭔가 북적북적하던데요.”
“저녁 장사하기 전에 간단하게 요기라도 하려고 이것 좀 만들었는데 드셔 보시겠어요?”
“김치 김밥이네요.”
김밥 안에 김치만 들어 있는 모습에 장인영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그냥 제가 먹고 싶어서 한번 해 봤어요. 혹시 다른 것 드시고 싶으시면 그거 해 드릴게요.”
강진의 말에 장인영이 약과를 집었다.
“괜찮아요. 약과도 맛있어요.”
강진은 김밥을 식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가끔은 이렇게 먹고 싶다니까요. 그렇지 않으세요?”
강진의 말에 차달자가 뭔가 느낀 듯 힐끗 주방을 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가끔 이렇게 밥하고 김치만 넣어서 먹는 김밥이 먹고 싶을 때가 있죠.”
차달자가 김밥을 하나 집어 입에 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네요.”
강진의 말에 최순심이 김밥을 보다가 웃으며 하나를 집었다.
“나도 혼자 밥 먹기 귀찮을 때는 이렇게 해 먹었는데.”
최순심은 김밥을 입에 넣고는 씹었다.
“맛있네.”
최순심의 말에 강진도 하나를 집어 먹으며 말했다.
“이모님은 이거 할 때 뭐 넣으세요?”
강진이 묻자 차달자가 김치 김밥을 보다가 말했다.
“이건 김치에 양념간장 넣은 것 같은데…… 나는 여기에 멸치볶음을 넣을 거예요.”
“멸치볶음도 좋죠. 고소하고 씹히는 맛도 있고.”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진도 김밥에 멸치볶음을 넣어 만들곤 하니 말이다.
“언니는 뭐 넣으세요?”
차달자가 묻자 최순심이 웃으며 답했다.
“나 혼자 먹을 때야 그냥 김치만 넣지. 귀찮아서 끼니 때우려고 먹는 건데, 이것저것 넣으려면 차라리 차려 먹지.”
“그럼 다른 사람 해 줄 때는요?”
최순심은 강진을 보다가 김치 김밥을 보았다.
“우리 남편 생각나네.”
“남편요?”
“나!”
최순심의 말에 차달자가 물었고, 주방에서는 장병두가 소리를 지르며 나오려 했다.
“아저씨! 그거 놓고 가야죠! 아저씨!”
뒤이어 배용수의 고함이 들렸다. 최순심의 말에 장병두가 김밥을 들고 나오려고 한 것이다.
배용수 덕분에 들고 있던 김밥을 놓은 장병두가 홀로 나왔다.
“나 불렀어?”
상기된 얼굴로 묻는 장병두를 보던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최순심을 보았다.
“어르신이 김밥을 좋아하셨나 보네요.”
강진의 말에 최순심이 미소를 지었다.
“우리 남편은 제가 해 준 건 다 좋아했어요.”
“음식 솜씨가 좋으셨나 보네요.”
“새댁이 음식을 해봤자 얼마나 잘했겠어요. 그냥…… 남편은 제가 해 준 건 다 좋아했어요.”
그러고는 최순심이 웃었다.
“어느 날은 국에 소금 대신 설탕을 넣었는데도 맛있다고 두 그릇을 먹더라고요.”
최순심의 말에 강진이 슬쩍 장병두를 보았다. 그 시선에 장병두가 웃었다.
“저는 달달하고 맛있었습니다. 제 입에만 맞으면 맛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강진은 그를 보다가 피식 웃었다.
‘이게 사랑의 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