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10
511화
장병두가 미소 짓는 사이, 최순심이 웃으며 말했다.
“신혼 때 내가 늦잠이 많아서 밥을 못 차려 줄 때가 있었어요. 그럴 때는 빈속에 보내기 그래서 김에 밥을 말아서 줬어요.”
“이렇게요?”
강진이 김밥을 가리키자, 최순심이 그것을 보다가 말했다.
“나는 여기에 김치를 섞어서 했어요.”
“김치를요?”
“김치나 깍두기를 넣기도 했고, 때론 파김치를 넣고 설탕을 톡톡 친 걸 말아서 주면 좋아하더라고요.”
“아…….”
최순심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깍두기는 어떻게 썰어서 넣으셨어요?”
“좀 자잘하게 썰어서 넣었어요. 너무 크면 김밥이 안 말리니까요.”
최순심의 말을 듣던 강진이 장병두를 보았다.
‘김치를 섞어서 쓰신 것이 팁이네요.’
강진의 눈빛에 장병두가 미소를 지었다.
“뭔가 식감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깍두기였나 봅니다.”
장병두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일 때, 장인영이 웃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 많이 사랑하셨죠.”
그에 최순심이 그녀를 보았다.
“할아버지 기억나니?”
“응. 할아버지가 할머니 힘들다고 저 업고 다녔잖아요.”
“그게 기억이 나?”
“그럼요. 할아버지가 엄마하고 아빠 불러다 나 데려가라고 했던 것도 기억나요.”
“그것도 기억이 나?”
최순심이 신기하다는 듯 보자 장인영이 “흠흠.”하고 목을 가다듬더니 누군가를 따라하듯 말했다.
“인영이가 내 손녀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지만…… 내 여자 힘든 건 내가 못 본다.”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해?”
장인영은 빙긋 웃으며 답했다.
“그때 정말 충격이었으니까요. 매일 업어주고 예뻐해 주던 할아버지가 나 데려가라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데요.”
“이런…… 할아버지가 늙어서 우리 손녀 상처를 줬네.”
“아니에요. 그때는 좀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할아버지가 당연했던 거예요. 애 보는 게 어디 쉽나? 그런데 할아버지 일 가면 할머니가 나 계속 봤으니…… 할머니 진짜 힘들었을 거예요.”
“애 안 낳아 보고 그걸 어찌 알아?”
“친구 중에 애 낳은 애들 있으니까? 친구들 애 보는 거 힘들어서 죽으려고 하던데요?”
그러고는 장인영이 웃으며 할머니 손을 잡았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할머니한테 잘 하는 거예요.”
“그래. 고맙구나.”
“그리고 할아버지가 나 데려가라고 하니까 할머니가 말렸잖아요.”
장인영의 말에 장병두가 머리를 긁었다.
“그때 네가 계속 업어 달라고 해서…… 할머니 힘드니까 그랬지.”
장병두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장인영을 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무척 사랑하셨던 것 같아요.”
그러고는 장인영이 최순심을 보았다.
“어쩜 할아버지는 그렇게 할머니를 사랑했대?”
장인영의 말에 최순심은 잠시 가만히 있다가 눈가를 닦았다.
“할머니 왜 울어요. 할아버지 생각나서 그래요?”
장인영의 말에 최순심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이 슬며시 티슈를 꺼내 내밀었다.
그에 최순심이 티슈를 받아 눈을 살짝 닦고는 잠시 있다가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는 고아였어. 전쟁 때 폭격으로 가족을 다 잃었거든.”
“알고 있어.”
“가족이 다 죽고 혼자 남은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친구였던 분의 손에 컸어. 하지만 그때는 다들 어려운 시기라서 할아버지는 그 집에서 일도 하면서 컸지. 그러다가 열여섯이 됐을 때 서울로 오셨어.”
“서울에 혼자요?”
최순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서울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겠다고 오셨어요. 그 후로 정말 열심히 일하다가 우리 아빠 눈에 보인 거지.”
잠시 말을 멈췄던 최순심은 옛 기억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공사장에서 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같이 일을 했는데, 아버지 눈에 할아버지가 기특해 보이셨나 봐. 일 열심히 하고, 술도 안 하고 담배도 안 하고. 거기에 기계도 무척 잘 다루셨어.”
“그건 알아요. 할아버지 카센터 하셨잖아요.”
장인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최순심이 말했다.
“어느 날 공사장 차가 퍼진 거야. 그러자 할아버지가 자동차 밑으로 기어가서는 몇 번 뚝딱이더니 고치더래. 그때는 자동차가 흔한 시기가 아니라서 기술자도 드물었어. 그래서 할아버지가 이 녀석이면 우리 딸 고생 안 시키겠구나 하고는 나를 시집보내셨어.”
“어? 연애도 안 하고 바로 시집을 가신 거예요?”
“우리 때는 부모님이 좋다고 하면 시집, 장가가던 시기니까. 어쨌든 아버지가 남편감이라고 할아버지를 데리고 왔는데…….”
“좋으셨어요?”
장병두가 돌연 한숨을 토했다.
“뭘 그런 이야기를 다 해.”
장병두의 한숨에 강진이 그를 보았다. 장병두의 얼굴에는 쓸쓸함 같은 것이 어려 있었다.
‘왜 그러지?’
그에 강진이 의아해할 때, 이번엔 최순심이 한숨을 쉬었다.
“너무…….”
잠시 말을 멈춘 최순심은 고개를 저었다.
“싫었어.”
“네?”
“어?”
최순심의 말에 강진과 장인영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싫었다고요?”
장인영이 묻자 최순심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옷은 그나마 새로 사서 입었는지 그래도 깔끔했는데…… 손가락이 기름때로 새까만 거야.”
“기름때요?”
“얼굴을 들지도 못하고 손으로 손톱을 만지작거리는데 그것만 보이더라. 검게 물든 손톱과 손가락…… 하아! 그래서 너무 싫었어.”
한숨을 쉬며 말하는 최순심의 모습에 장병두가 머리를 손으로 긁었다.
“아침에 목욕탕 가서 때도 밀었는데…….”
장병두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그를 힐끗 보자, 그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보았다.
귀신이라 불투명하긴 했지만, 확실히 그의 손끝엔 검은 기름때가 묻어 있었다.
강진의 시선에 장병두가 한숨을 쉬었다.
“비누로 박박 지웠는데…… 안 지워져서.”
장병두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름때가 오래 가죠.’
손에 물감만 묻어도 잘 안 지워지는데, 그보다 더 독한 기름때는 정말 지우기가 힘들다.
강진은 공장에서 일할 때 기름때로 고생했던 걸 떠올리며 그의 말에 공감했다.
강진의 시선이 다시 손가락에 닿자, 장병두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는 입맛을 다셨다.
“기름때가…… 독해서. 몇십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안 지워지네.”
귀신으로 산 지 몇십 년인 지금도 손에 밴 기름때는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장병두가 자신의 손을 보며 중얼거리자 강진이 한숨을 쉬었다.
‘독하죠. 하지만 한편으론……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열심히 일한 흔적이니까요.’
손에 묻은 기름때만큼 장병두는 가족을 위해 일을 해왔을 것이니 말이다.
세상 모든 부모님의 손에는 가족을 위해 헌신한 흔적이 남아 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해온 노력과 가족을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한 희생이 손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은 투박하다. 가족을 위해 살아온 인생이 담겨 있으니 말이다.
강진이 장병두를 볼 때, 최순심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할아버지 처음 보고 집에 와서 펑펑 울었어.”
“싫어서요?”
“너무 싫었어. 특히 그 손이 너무 싫었어.”
“아…… 그래도 일해서 그런 건데.”
“그때는…… 나도 어렸으니까.”
최순심의 말에 장인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상이 할아버지니까 열심히 일하고 온 손이라며 좋게 생각하는 거지, 전혀 연관이 없는 남자가 그랬다고 한다면 다르게 생각할 것이었다.
“그 손을 보니 다 싫어 보이더라. 목소리도 너무 컸고, 웃음소리는 더 크고…….”
“할아버지가 목소리 좀 크고 웃음도 크셨죠.”
고개를 끄덕인 장인영이 물었다.
“그럼 할머니는 할아버지 싫어했어요?”
놀란 듯한 장인영의 모습에 최순심이 손녀를 보다가 웃었다.
“처음에는 싫었다는 거지. 지금은…….”
최순심은 잠시 멍하니 허공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무슨 생각을요?”
“나 처음 보고 수줍어하며 고개도 들지 못하던 그 사람에게…… 내가 먼저 환하게 웃어 줄걸. 그 사람한테 ‘당신 참 멋진 사람이네요.’라고 말을 해 줄걸.”
최순심의 말에 장인영이 그녀를 보다가 손을 잡았다.
“할머니.”
“그 사람 얼굴을 보기 싫어서 고개 숙인 채였던 모습 말고…… 그 사람을 보며 환하게 웃어 주는 나를 상상해보곤 했어.”
최순심은 작게 숨을 토하고는 말을 이었다.
“왜 나는…… 나를 보고 수줍게 웃어 주던 그 사람에게 웃어 주지 못했을까, 하면서.”
최순심의 말에 장병두가 급히 말했다.
“여보, 그게 무슨 소리야.”
장병두가 최순심을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수줍게 고개 숙이고 있는 당신 모습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어. 얼마나 귀엽고 예뻤는데.”
물론…… 수줍어서가 아니고 장병두가 싫어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것이었지만, 그의 기억 속에서는 사뭇 다른 모습인 모양이었다.
결론적으론 장병두 혼자만의 착각이었지만, 그에겐 별로 상관없었다. 아내에게는 안 좋은 기억일지 몰라도 자신에게는 가슴 설레던 기억이니 말이다.
“할머니도 할아버지 많이 아끼고 사랑하셨잖아요.”
“후우!”
장인영의 말에 최순심이 잠시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건 나도 모르겠단다.”
“왜?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엄청 잘 했잖아요.”
“그야…… 남편이니까.”
잠시 멍하니 있던 최순심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남편이라 잘 한 거지.”
“그럼 사랑 안 하셨어요?”
장인영이 묻는 사이, 강진은 슬며시 장병두를 쳐다봤다가 살짝 놀랐다.
‘이것도…… 알고 계셨나?’
장병두의 얼굴에는 충격이 아닌, 씁쓸함이 어려 있었다.
강진의 시선에 장병두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첫날 보고 집에 데려다주는데…… 집 앞에서 저에게 그러더군요. 장인어른께 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해 달라고요.”
‘아…….’
“미안한데…… 부탁한다고.”
강진이 입맛을 다시자, 장병두가 한숨을 쉬었다.
“근데…… 순심이가 너무 욕심이 났습니다. 지금이야 내가 싫다 해도, 앞으로 행복하게 살게 해 줄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탁을 끝내 외면했습니다.”
지금 시대라면 말도 안 될 일이겠지만, 그 시대에는 부모님이 결혼하라고 하면 그대로 따라야 하던 시기이니…….
그렇게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강진이 장병두를 안쓰러운 눈으로 볼 때, 최순심이 입을 열었다.
“지금은 사랑해.”
“지금요?”
최순심의 말에 장인영이 물었고, 강진과 장병두가 그녀를 보았다.
최순심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돌아가신 날 기억하니?”
“기억해요.”
“너 학교 보내고 집에 있을 때였어. 카센터에서 전화가 온 거야. 할아버지가 병원에 실려 갔다고.”
장인영은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그날을 떠올렸다.
학교가 끝나면 데리러 오던 할머니가 오지 않았다. 그래서 하염없이 기다리던 와중에 엄마가 자신을 데리고 병원에 갔었다. 그렇게 도착한 병원에서 할아버지는 결국 세상을 떠났다.
“병원에 갔는데 할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셨더구나.”
“할머니…….”
장인영이 자신의 손을 잡자, 최순심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쥐고는 말했다.
“이렇게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어.”
그러고는 최순심이 장인영의 손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늘 그렇듯이 할아버지의 손은 검은 기름때가 끼어 있더구나. 그걸 보는데…….”
최순심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더니 또르르 흘러내렸다.
“할머니…….”
“후우! 내가 너무 미안한 거야. 내가 그렇게 기름때를 싫어했는데…… 병두 씨는 그 기름을 묻히며 우리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다가…… 갈 때도 기름때를 묻히고 간 것이.”
눈물을 흘리는 최순심의 모습에 차달자가 그녀의 빈손을 잡았다.
“언니.”
최순심은 훌쩍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옷으로…… 옷으로…… 기름때를 지우려고 문지르는데…… 그게…… 너무 안 지워지는 거야. 흑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