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38
539화
안쓰러운 눈으로 자신의 얼굴을 보는 황민성의 모습에 배용수가 입맛을 다시며 자신의 머리를 긁었다.
“안 아파요.”
배용수의 말에 황민성이 작게 한숨을 쉬고는 그 어깨를 손으로 잡았다.
그와 동시에 황민성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배용수의 어깨를 잡자 손에 차가운 냉기가 느껴진 것이다.
하지만 곧 얼굴을 풀은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아프다니 다행이다.”
그러고는 황민성이 잔에 소주를 따라서는 그 앞에 밀었다.
“그래도 동생 이렇게 보니 좋네.”
황민성의 말에 배용수가 웃었다. 그러고는 소주잔을 들고 내밀자, 황민성이 잔을 들어 가볍게 부딪혔다.
장례식장에서 건배를 하는 것은 예가 아니지만, 상대가 귀신이고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으니 가볍게 부딪힌 것이다.
스륵!
물론 황민성의 잔은 배용수가 든 불투명한 잔을 뚫고 지나갔지만 말이다.
어쨌든 건배를 한 황민성이 소주를 마시고는 슬쩍 앞을 보았다. 강진의 옆에는 이혜미와 여자 귀신들이 주르륵 앉아서 황민성을 보고 있었다.
여자 귀신들을 본 황민성이 미소를 지었다. 다만 그 미소에는 안쓰러움이 어려 있었다.
여자 귀신들 역시 보기 어려운 모습이지만, 배용수를 봤을 때와 비슷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보니 또 반갑네요.”
황민성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하는 말에 이혜미가 미소를 지었다.
“고맙습니다.”
이혜미의 인사에 미소를 지으며 그녀들을 보던 황민성이 슬쩍 주위를 보았다.
그러자 이때까지 보이지 않았던 귀신들이 보였다.
‘귀신이 많구나.’
사람들 사이사이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는 귀신들을 보는 황민성에게 강진이 말했다.
“어떠세요?”
“그냥 안쓰럽네.”
“무섭지는 않고요?”
“귀신이 나 해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황민성은 여전히 귀신들을 보며 말했다.
“저승식당에서 현신한 귀신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딱히 무섭지는 않네.”
귀신조차 무서워서 오줌을 질질 쌀 만큼, 나쁘고 잔인한 놈들도 많이 봤던 황민성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비교적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귀신들을 보던 황민성이 배용수를 보았다.
“가서 강 회장님 좀 모시고 와라. 약발 떨어지기 전에 이야기 좀 하게.”
그에 배용수가 일어나서는 빈소로 걸음을 옮겼다.
그 사이 황민성이 소주를 한 잔 따라 마시고는 강진을 보았다.
“카스 요즘 우리 집 오는데 한 번 놀러 와.”
오동민 할아버지의 진돗개인 카스가 적응도 할 겸 황민성의 집에 놀러가는 모양이었다.
“카스 집 좋아해요?”
“어르신하고 요즘 우리 마당에서 공놀이 하는데 좋아하더라.”
“어머니 좋아하시죠?”
“카스 쓰다듬는 것 좋아하셔.”
말을 하던 황민성이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어르신하고 헤어지면 카스 많이 힘들어할 것 같아서 그게 좀 걱정이다.”
“그렇겠죠. 가족하고 헤어지는 건데.”
황민성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한 번 뒷산에 내가 산책도 할 겸 데리고 가려고 했는데, 어르신이 안 가는 것 알고는 꼼짝도 하지 않더라.”
“그래요?”
“처음에는 집 밖으로 데리고 가니 좋아하더라고. 그런데 어르신이 안 따라오니 뒷걸음질 치면서 다시 집으로 들어가 버렸어.”
“그랬군요……. 그런데 어르신 몸은 좀 어떠세요?”
“말로는 괜찮다고 하시는데…… 얼굴이 까맣게 타 들어가신 것 보니 안 좋아지신 모양이야.”
황민성이 고개를 저을 때, 강건희가 다가왔다.
“하하하! 많이들 먹고 있나?”
강건희가 웃으며 와서는 강진의 옆에 털썩 앉았다.
“많이들 먹게. 이 음식들 백제 호텔에서 만들어서 가져온 거야.”
백제 호텔은 오성그룹 계열사였다.
“맛이 좋습니다.”
“그래? 많이들 먹어.”
말을 하며 강건희가 크게 웃었다. 그런 강건희를 보던 강진은 문득 한쪽을 보았다.
강건희가 말을 하면서 연신 힐끗거렸던 곳이었는데, 그곳엔 사람들 틈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노인 귀신이 있었다.
오늘 새벽, 한끼식당에 강두치와 와서 밥을 먹고 간 VIP 노인 귀신이었다.
‘신경이 쓰이나 보네.’
하긴 그럴 수밖에…….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고, 지금은 VIP이니 말이다.
강건희가 노인을 볼 때, 황민성이 입을 열었다.
“회장님 이렇게 뵙게 돼서 유감입니다.”
황민성의 말에 강건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찾아와 줘서 고맙네.”
그러고는 강건희가 강진을 보았다. 자신의 말을 황민성에게 전달해 주라는 듯 말이다.
그런 강건희의 모습에 황민성이 말했다.
“저를 보시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황민성의 말에 강건희가 의아한 듯 그를 보다가 놀라며 말했다.
“내가 보이는 건가?”
“네.”
“헉! 설마 자네도 저승식당인가 뭔가를 하는 건가?”
황민성은 웃으며 작게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강진이 도움으로 잠시 귀신과 대화를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 이야기를 서둘러 했으면 합니다.”
그러고는 황민성이 강건희를 보았다.
“상식이에게 남긴 유산이나 안배 더 없습니까?”
“그걸 왜 자네가 묻나?”
“상식이가 형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오성화학 주식을 노리더군요.”
황민성의 말을 듣자마자 강건희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도 장례식장에서 자식들이 강상식에게 주식을 팔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았다.
좋게 이야기하면서 가격을 쳐 주겠다는 자식부터, 네가 무슨 염치로 오성화학을 가지냐면서 대놓고 모욕하는 자식까지…….
그래서 강상식에게 미안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기 때문에 강상식이 이런 대접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잠시 말이 없던 강건희가 입을 열었다.
“스위스에 내 비자금 계좌가 있네.”
“그게 상식이에게 주는 유산입니까?”
황민성의 물음에 강건희가 슬쩍 뒤를 보았다. 그의 뒤에는 장은옥이 서 있었다.
그에 강건희가 손을 내밀어 그녀를 옆에 앉혔다. 장은옥이 옆에 앉자 강건희가 그녀를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너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
“회장님…….”
“그날…… 미안하다.”
장은옥이 고개를 숙이자, 강건희가 말을 이었다.
“고개 들어라. 잘못한 건 나인데 네가 고개를 숙일 이유가 없다.”
강건희의 말에 장은옥이 고개를 슬며시 들었다. 그런 장은옥을 보며 강건희가 말했다.
“네가 상식이 옆에 붙어 있었으니…… 내가 상식이에게 네가 엄마라고 알려 준 것을 알고 있겠지?”
장은옥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도련님은 이미 알고 있었어요.”
장은옥의 말에 강건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더군.”
“알고 계셨어요?”
“녀석이 자네 가족이 사는 곳에 가끔 들르는 것 보고 그럴 거라 생각을 했지.”
그러고는 강건희가 황민성을 보았다.
“나 죽기 전에 상식이를 불러 은옥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네. 그리고 은옥이 납골당이 있는 곳도 알려 주었네.”
“납골당에 스위스 비밀 계좌 정보가 있군요.”
황민성이 짐작을 한 듯 말을 하자, 강건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외롭고 힘이 들면 납골함에 있는 편지를 읽어 보라고 했네. 그리고 그 안에는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만 맞으면 인출할 수 있는 돈으로 3천만 달러가 들어 있지. 그 정도면 상식이가 위기에 처했을 때 한 번은 살아날 구명줄이 되어 줄 거야.”
“누가 편지를 먼저 보면 어떻게 합니까?”
“후! 은옥이 납골당은 상식이와 나만 알고 있으니 괜찮네. 그리고 비밀번호는 상식이만 알 수 있는 조합이니 괜찮아.”
강건희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3천만 달러라면 한화로 삼백억이 넘는 돈이다.
그 돈이면 강상식이 정말 위기의 순간일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황민성이 강건희를 보았다.
“그게 끝입니까?”
“후! 더 있어야 하는 건가?”
웃으며 강건희가 말을 하려 할 때, 배용수가 말했다.
“상식 씨 온다.”
강진은 자신 쪽으로 다가오는 강상식을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잠시 데리고 나갔다 올게요. 마저 이야기 나누세요.”
황민성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강건희와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한편, 강상식에게 다가간 강진은 그의 앞에 멈춰 섰다.
“형.”
강진이 형이라고 하는 것에 강상식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 강진아.”
“손님이 정말 많아요.”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지.”
웃으며 강상식이 황민성에게 가려 하자, 강진이 그 손을 잡았다.
“답답한데 밖에서 바람 좀 쐬고 들어오죠.”
“그럼 민성 형도 같이 가자.”
“형은 아까 아는 사람을 만나서요.”
“혼자 있는데?”
“잠시 화장실 갔어요.”
“아…… 그래? 그럼 그러자.”
강상식은 몸을 돌려 밖으로 가다가 냉장고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필요하신 것 있으십니까?”
직원이 급히 다가와 하는 말에 강상식이 고개를 저었다.
“볼 일 보세요.”
“제가…….”
“괜찮아요.”
웃으며 강상식이 냉장고를 열고는 강진을 보았다.
“음료 뭐 마실래?”
“달달한 커피요.”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냉장고에서 달달한 캔 커피 두 개를 챙겨서는 장례식장을 나섰다.
아직도 줄을 길게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며 강진이 문득 물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밥을 안 먹고 가나요?”
강상식이 보자, 강진은 사람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아까부터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는데 밥 먹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강진이 앉은 식탁만 해도 한가해서 이야기 나누기 불편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가족들하고 알거나 우리가 직접 대접해야 하는 손님들은 그곳에서 식사하시고, 그렇지 않은 손님들은 다른 식장에서 식사를 하셔서 그래.”
“아…… 식장을 나눠서 받는군요.”
“사람 나누는 것 같아서 그렇기는 하지만…… 손님들이 너무 많이 몰려서 말이야.”
그러고는 강상식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강상식의 말에 강진은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유족과 아는 지인들과 그저 인사하러 온 사람들을 똑같이 대우를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이야기를 나누며 밖으로 나온 강진과 강상식은 커피를 마셨다.
“식사는 좀 하셨어요?”
강상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늘을 보다가 웃었다.
“평소에 아버지한테 의지한다는 생각은 안 들었거든?”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았다.
“숨겨 놓은 아들이라 아버지가 나한테 자상한 모습 보인 적도 없고, 나한테 아들이라고 한 적도 없었어. 그래서 아버지 돌아가셔도 그리 힘들거나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많이 힘드세요?”
강상식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좀 외롭다.”
외롭다는 말 이후로 잠시간 침묵하던 강상식이 커피를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미우나 고우나 그래도 아버지인데…… 다른 가족들은 날 남이라고 생각하거든. 후! 그래서 이제 혼자네.”
외로움이 진하게 느껴지는 강상식을 보며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강상식은 혼자 손님들을 상대하거나 이야기를 했지, 오성그룹 일가 사람들은 그에게 다가오거나 말을 걸지 않았다.
그래서 장례식장에서 강상식은 혼자였다.
강상식을 보던 강진이 힐끗 옆을 보았다. 장은옥이 슬픈 눈으로 강상식을 보고 있었다.
“도련님…….”
세상에 홀로 남겨진 아들을 보며 슬퍼하는 장은옥의 모습에 강진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슬며시 그녀의 옆에 서서는 한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스윽!
자신의 손을 잡은 강진을 장은옥은 간절한 눈빛으로 올려다보았다.
“도련님과…… 친하게 지내주세요.”
장은옥의 말에 강진의 눈가가 살짝 붉어졌다.
‘엄마가…… 내 친구 보고 하는 말 같네.’
자신의 엄마도 친구가 놀러 오면 ‘강진이하고 친하게 지내.’라고 했던 것이다.
그 점은 같지만…… 장은옥은 아직도 자신의 아들을 도련님이라 부르고 있었다.
‘아들이라 부르세요.’
장은옥에게 강진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을 마음으로나마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