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5
55화
설거지를 마무리하고 강진은 불 앞을 지키고 있었다. 불 위에 올려놓은 뚝배기에 물이 끓어오르면, 물을 버리고 새로운 뚝배기를 올렸다.
뚝배기들의 숨구멍에 들어 있는 기름기를 이렇게 마무리하는 것이다.
깨끗이 씻은 뚝배기들을 뜨거운 물로 한 번 더 끓여내야 다 끝난다.
그렇게 뚝배기까지 모두 닦아낸 강진이 그릇들을 싱크대에 뒤집어 놓고는 몸을 비틀었다.
우두둑! 우두둑!
몸에서 뼈마디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나는 것과 함께 강진이 한숨을 쉬었다.
“아이고…… 돈 버는 것도 좋지만 너무 힘드네.”
오늘도 점심 장사로 오십만 원 정도 벌기는 했다. 뿌듯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힘들었다.
“여사님이 대단하기는 하시네. 이 힘든 것을 평생 하시다니…….”
작게 중얼거리며 강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배용수 이놈은 어디를 간 거야? 사장이 힘들게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옆에서 말이라도 걸어 줘야지.”
아까부터 보이지 않는 배용수를 떠올리며 강진이 입을 열었다.
“배용수, 배용수, 배용수.”
“왜?”
이름을 세 번 부르자 배용수가 어느새 그 옆에 나타나서 강진을 보고 있었다.
그에 강진이 웃었다.
“이건 참 대단한 것 같아. 어떻게 세 번 불렀다고 이렇게 딱 하고 나타나지?”
“네가 불렀으니까.”
“그게 어떻게 들려? 거리와 상관없이 내 목소리가 들리는 거야?”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눈을 찡그렸다.
“너 심심하냐?”
“조금…….”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혀를 찼다.
“난 지금 한창 재밌었는데…….”
“뭐가?”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웃었다.
“아까 여사님 따라갔었거든.”
“그래서?”
“해장국집 지금 완전 개판 됐어.”
개판이라는 말에 강진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개판? 왜?”
“그 아들이 문 닫아 걸고는, 만들어 놓은 해장국들을 싸그리 다 버렸어.”
“버려? 음식 버리면 죄받을 텐데?”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죄받겠지. 그 사람도 참…… 버릴 거면 노숙자 쉼터 같은 곳에나 가져다주지. 그럼 JS 금융에 얼마라도 적립이 될 텐데 말이야.”
버릴 음식을 남에게 준다고 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못 먹는 음식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그런 이들에게는 오랜만에 먹는 만찬일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문 닫아 걸고 해장국을 다 버리니 며느리는 노발대발 난리를 피우고, 여사님은 잘한다, 잘한다 하고 소리를 지르고…… 완전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니까?”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이미 다 엎어 버렸는데. 그러고는…….”
선지해장국 통을 엎어 버린 조현수가 놀란 눈으로 소리를 지르는 임미향을 보았다.
“당신 미쳤어요! 이게 대체 무슨 짓이에요!”
“아니. 이제야 정신이 들었어.”
“대체…… 아까 그 밥집 사장하고 무슨 이야기를 한 거예요? 다 버리라고 그래요?”
“그게 아냐!”
버럭 고함을 지른 조현수가 임미향을 보았다.
“아까…… 선지해장국 먹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어?”
“무슨 말이에요?”
“난…… 엄마가 생각이 났어.”
“그야 어머니 레시피로 만든 선지해장국이니 당연히 어머니 맛이 나죠!”
“맞아. 그건 우리 엄마의 레시피로 만든…….”
잠시 말을 멈춘 조현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선지해장국이야.”
“그걸 누가 몰라요. 맞아요. 나도 어머니 생각이 났어요.”
“엄마는…… 내가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라면서 이 가게를 주셨어. 내가 가장 걱정이 돼서, 형들이 아닌 막내인 나한테 가게를 주셨어.”
“그거야 당신이…….”
말을 잇지 못하는 임미향의 모습에 조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내가 가장 걱정이 돼서 가게를 물려 주셨지. 이거라도 해서 먹고 살라고…….”
잠시 말을 멈췄던 조현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런데…… 나는 엄마의 선지해장국을 망가뜨렸어. 선지해장국의 기본은 육수라고, 그렇게 주의를 주셨는데.”
조현수의 말에 임미향이 굳은 얼굴로 그를 보았다.
“육수 만드는 것 힘들어 죽겠다고 한 사람이 당신이에요. 그리고 공장에서 육수 받아쓰자고 한 것도 당신이고요.”
“알아.”
“그럼 설마, 그 힘든 걸 다시 하겠다는 거예요?”
임미향의 물음에 조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시 할 거야. 그리고 엄마의 선지해장국을 진짜로 제대로 만들 거야.”
“어떻게? 몇 달 동안 한 번도 안 만들었잖아!”
“다시 만들면 돼. 그렇게 알아.”
“잠깐만 다시 생각해 봐요. 그거 가스 값만 한 달에 수천이야. 그리고 일 년이면 몇 억이고. 그 돈이면…….”
“그 돈 아끼려다가…… 엄마가 정성으로 모신 단골들이 다 떠나갔어.”
남편의 말에 임미향이 입술을 깨물었다. 매출이 많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육수 만드는 것 정말 힘든데…… 할 수 있겠어요? 나는 정말 자신 없는데…….”
주부이니 사골 끓이는 것 정도는 임미향도 자주 해 봤다. 하지만 매일, 그것도 하루에 두 번씩 끓이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게 힘들었다.
“그 힘든 걸……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하셨어.”
남편의 말에서 확고함을 느낀 임미향이 한숨을 쉬었다.
“몰라! 힘들다고 짜증내기만 해.”
임미향이 조현수의 말을 따르기로 하는 것에 옆에서 눈시울을 붉히며 보고 있던 오순영이 미소를 지었다.
“잘 생각했어. 그래! 잘 생각했어.”
“……이러고 있는데 네가 불러서 왔지.”
배용수의 설명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한테는 잘 됐네.”
“잘 되셨지. 지금 엄청 기분 좋으셔.”
“그러시겠지. 망하기를 바란 것도 제대로 된 해장국을 안 만들어서 그런 거니까. 가장 좋은 것은 역시 제대로 된 해장국을 만드는 거겠지.”
고개를 끄덕이던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그럼…… 할머니 바로 승천하시려나?”
“다른 귀신들과 달리 할머니 한은 보이니까. 조만간 하시겠지.”
조금은 부럽다는 듯 허공을 보던 배용수가 말했다.
“그래도 바로 승천하시지는 않을 거야. 아마도 손님들이 뚝배기 비우는 것 보고 가시겠지.”
“할머니 레시피대로 제대로 하면야…….”
말을 하던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곧 가시겠네.”
“그렇겠지.”
두 사람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어렸다.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두 사람 모두 오순영과 정이 많이 들은 것이다.
아쉬운 얼굴로 허공을 보던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너도 빨리 가라.”
“그래, 가기는 가야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았다.
“내가 어떻게, 도와줄까?”
“네 도움이 필요했으면 진작에 말했겠지. 근데…… 나도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할지 모르니 어떻게 도와달라고 말을 못 하겠어.”
“운암정에 한 번 가 볼까?”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안 가 봤겠어?”
“살아 있는 사람하고는 안 가 봤잖아?”
“그건…… 그렇지.”
배용수의 답에 그를 보던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뭐가 오케이야?”
“일단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는 오케이. 나는 지금 좀 자야겠다. 피곤하다.”
어제 11시에 귀신 장사를 하고 그 후에는 10시간 동안 사골을 우렸다.
거기에 점심 장사까지 했으니 피곤했다. 게다가 저녁에도 선지해장국을…….
‘끓여야 하나?’
조현수가 진짜로 정성을 들여서 선지해장국을 끓인다면 자신은 그만둬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선지해장국을 끓이기 시작한 것도 가게를 망하게 해 달라는 부탁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그에 잠시 생각을 하던 강진이 한숨을 쉬었다.
‘바로 끓일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고…… 일단 내일까지는 해장국을 끓이자.’
생각을 결정한 강진이 가게 문을 닫았다. 저녁 장사는 포기하고 11시까지 잘 생각이었다.
덜컥!
문을 닫던 강진이 문득 문을 올려다보았다.
“풍경.”
잠시 생각을 하던 강진이 한숨을 쉬고는 가게를 나섰다. 그동안 달려고 마음만 먹고 사지를 못했던 풍경…….
“생각 난 김에 가서 사야겠다.”
다있소가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음먹은 김에 가서 사야겠다 생각한 강진이 가게를 나섰다.
“어디 가게?”
“풍경 사서 달으려고.”
간단하게 답을 하는 강진을 보며 배용수가 급히 말했다.
“풍경 어디 가서 사려고?”
“다있소.”
“너무 싸구려 티 나지 않아?”
“싸구려 살 건데.”
“그래도 우리 가게 격이 있지. 몇천 원짜리 사다 달면 폼이 안 나잖아.”
“격은 무슨…….”
“그래도 너무 싸구려는 그렇지 않겠냐?”
“그래서 어떻게 하자고?”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풍물시장 가서 사자.”
“풍물시장이라…… 하긴 운 좋으면 싸게 좋은 물건 살 수는 있지.”
잘 아는 듯한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물었다.
“가 본 적 있어?”
“예전에 고물상 아르바이트 한 적이 있어.”
“고물상 아르바이트는 또 뭐야?”
“고물상에 굴러다니는 고물 중에 돈 될 만한 것들을 찾아내서 풍물시장 상인들한테 파는 거야.”
말을 하던 강진이 피식 웃었다.
“처음에는 잘 구하면 돈이 된다고 해서 했는데…… 힘만 들고 돈이 안 되더라고.”
“아르바이트비 받을 것 아니야?”
“내가 구해서 파는 거라 따로 아르바이트비는 없었어. 말 그대로 좋은 물건 싸게 구해서 팔면 돈 되는 거고, 아니면 꽝이고.”
“그래서 제대로 된 물건은 찾았고?”
“눈탱이만 맞았지.”
“눈탱이?”
“내가 어디 고물상에서 부처상 하나 구해서 가져다 줬는데 돈 안 된다고 오만 원 주더라고 내가 살 때는 삼만 원 주고 샀는데.”
“그래서?”
“다음에 가서 보니까. 백만 원에 팔고 있더라고.”
“그걸 가만히 놔뒀어?”
“그 바닥이 그래. 호구 되는 건 순식간이지. 그리고…… 나도 고물상에서 삼만 원 주고 사왔잖아. 그 사람이나 나나 똑같은 거지.”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너도 나쁜 놈이었어.”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맞잖아. 고물상에서 백만 원짜리 물건을 삼만 원 주고 사 온 것.”
“내가 안 샀으면 그대로 고철로 팔려갈 운명이었어.”
“게다가 너는 그게 백만 원짜리인 줄도 몰랐지.”
웃으며 말을 하는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었다.
“나는 모르고 속였고, 그 사람은 알고 속였다는 거네.”
“그렇지, 그 사람하고 너는 다르지. 너는 그냥 바보였던 거고, 그 사람은 장사꾼이었던 거야.”
“퍽이나 위로가 된다.”
“세상일이란 것이 다 그래. 그럼 갈 거야?”
배용수의 물음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다있소야 가게 근처니 그렇다 쳐도 풍물시장은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한다.
거기에 환승도 한 번 해야 하고…….
‘피곤한데…….’
밤새도록 사골 끓이고 점심 장사까지 했으니 몸이 무척 피곤했다.
잠시 고민을 하던 강진의 눈에 배용수가 피를 질질 흘리며 그를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고 싶냐?”
“내가 귀신이기는 하지만 매일 가게에 박혀 있으니 갑갑하네. 그리고 풍물시장 가면 재밌는 것들 많잖아.”
“가 봤어?”
“운암정에서 가끔 인테리어 할 소품들 사러 간 적 있어. 그립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말했다.
“혼자 가면 안 되냐?”
“나는 물건을 못 사잖아.”
“네가 물건 사서 뭐 하려고?”
“귀신이라고 사고 싶은 것이 없겠어? 못 사니 문제지.”
“그래 가자.”
한숨을 쉰 강진이 문을 잠그고는 배용수와 함께 지하철역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