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617
618화
강진은 마당에서 잡초를 뽑고, 군데군데 치워야 할 것을 정리했다.
“이런 거 안 해도 되는데.”
김다복이 웃으며 하는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이런 거 해 드리려고 온 걸요.”
강진의 말에 미소를 짓던 김다복은 눈가를 손으로 살짝 닦았다.
갑자기 우는 것에 강진이 당황해할 때, 김다복이 한숨을 쉬었다.
“우리 영감이…… 학교 지을 때 기부한다고 해서 나하고 몇 번 다퉜거든.”
“큰 금액이니까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영감이 잘한 거야. 죽어서 돈 가지고 갈 것도 아니고…… 기부를 하니 이렇게 사람들도 찾아와 주고 말이야.”
김다복은 미소를 지으며 강진을 보았다.
“거기 황민성 알아?”
“잘 알죠. 저하고 형 동생 하는 사이입니다.”
“그래?”
강진의 말에 김다복이 반색하며 말을 이었다.
“민성이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찾아와서 집 살펴주고 가거든.”
“그랬어요?”
“다 늙은 노인네 이렇게 잊지 않고 찾아주니 늘 고마울 뿐이야.”
그 외에도 강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김다복이 웃으며 말했다.
“밥 다 됐겠어. 밥 먹고 갈 거지?”
“주시면 먹고 가야죠.”
“그래. 내가 어서 밥 차릴 테니까 손 씻고 와.”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뽑아 놓은 잡초들을 모아 한쪽에 정리를 해 놓았다. 그리고 마당 한쪽에 있는 수돗가에서 손을 씻을 때,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누구입니까?”
낯선 목소리에 강진이 고개를 돌렸다. 집 대문 앞에 모자를 눌러 쓴 남자가 의아한 듯 강진을 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마을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누구십니까?”
남자가 다시 묻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일선 중고등학교에서 왔습니다.”
“아! 선생님이시구나.”
남자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저는 마을 이장 오문영입니다.”
“이강진입니다.”
이강진의 인사에 오문영이 웃었다.
“일선 학교 선생님들이 참 좋으세요.”
“네?”
“가끔씩 이렇게 찾아와서 어르신께 인사드리고 집안일도 도와주고 가시고요.”
“아…… 그러셨구나.”
“제갈경 선생님은 잘 지내시죠?”
“잘 지내십니다.”
강진의 말에 오문영이 웃으며 머리를 긁었다.
“제 자식 놈이 사고를 좀 치는데…… 몇 번 제갈 선생님에게 신세를 졌습니다.”
“신세요?”
“술 먹고 사고 칠 때마다 경찰들한테 잘 이야기를 해 주시거든요.”
오문영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그런데 저 선생님은 아닙니다.”
“선생님이 아니세요?”
“민성…… 황민성 형 아시죠?”
“그럼 알지요.”
“민성 형하고 친한 동생인데 오늘 학교에 놀러 갔다가 여기 할아버지 이야기 듣고 고맙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해서 음식 좀 드리려고 왔습니다.”
“아…… 그러시구나. 그런데 음식요?”
오문영의 물음에 강진이 푸드 트럭을 가리켰다.
“제가 음식 장사를 하거든요.”
“아…….”
푸드 트럭을 잠시간 보던 오문영은 강진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이야기를 나눌 때 김다복이 문을 열고 나왔다.
“이장 왔네.”
“어르신 찬거리 좀 챙겨 왔습니다.”
오문영이 웃으며 음식이 담긴 봉지를 들어 보이자, 김다복이 웃었다.
“늘 고마워.”
“고맙기는요. 저희 집 여기 정착할 때 어르신께서 저희 먹여 주신 것 생각하면…….”
오문영이 쓰게 웃으며 봉지를 내밀자, 김다복이 그것을 받다가 말했다.
“밥은 먹었고?”
“아직입니다.”
“그럼 같이 들어가서 먹고 가. 오늘 선생님이 이것저것 반찬들을 많이 해서 주셨어.”
김다복의 말에 오문영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다음에요. 마누라가 집에서 밥해 놓고 기다리고 있어서요.”
오문영은 몸을 돌려 강진에게 작게 고개를 숙이고는 서둘러 언덕을 내려갔다. 그 모습을 볼 때, 한선동이 웃으며 말했다.
“사람은 베풀고 살면 다 이렇게 나중에 돌아오는 것이여.”
강진은 그를 한 번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여 들어와. 곤드레 밥이 아주 맛있게 잘 됐어.”
김다복의 말에 강진은 옷을 한 번 툭툭 쳐서 먼지를 털어내고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깨끗한 집 안에서는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나고 있었다.
“냄새 좋네요.”
“된장찌개 좋아해?”
“아주 좋아하죠.”
김다복은 웃으며 거실 한가운데에 놓인 밥상으로 강진을 이끌었다.
학교 선생님들이나 황민성이 가끔 찾아 인사를 한다 하지만…… 어쩌다 한 번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이 그리웠던 그녀는 음식을 가지고 온 강진이 무척 반가운 것이다.
밥상 앞에 앉는 강진을 보던 배용수는 문득 된장찌개를 보았다.
“된장으로 나물을 버무리는 건 싫어하시는데, 된장찌개는 좋아하시나 보네요?”
“물에 풀어서 먹는 된장은 좋아하는데 된장 넣고 하는 나물 같은 건 안 좋아해. 식성 참 별나지?”
한선동이 웃으며 하는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저었다.
“식성이야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요. 고기 좋아하는 사람도 물에 빠진 고기 안 먹기도 하잖아요.”
“물에 빠진 고기?”
“국이나 찌개에 들어간 고기요.”
“아니, 그걸 왜 안 먹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인상을 찡그리는 한선동을 보며 배용수가 웃었다.
“그러게요. 왜 안 먹을까요?”
배용수의 말에 한선동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김다복을 보고는 천천히 끄덕였다.
“하긴. 사람마다 식성은 다 각각이니까.”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강진은 거실에 있는 커다란 유리창을 보았다.
거실 한쪽이 통짜 유리라 밖이 훤히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경치가 정말 좋네요.”
언덕 위에 지어진 집이라 창밖으로 산과 마을이 작게 내려다보이고 있었다.
“여기에서 밥 먹으면 경치가 반찬이지.”
한선동이 미소를 지으며 창밖을 지그시 보는 것에 배용수가 거실 한쪽을 보다가 강진을 툭 쳤다.
그에 강진이 보자, 배용수는 한쪽 벽에 걸려 있는 액자를 가리켰다.
그 액자를 본 강진은 입맛을 다셨다. 액자 안에는 한선동이 말을 한 취학 통지서와 등본, 그리고 가족사진이 끼워져 있었다.
환하게 웃는 어린아이와 그 아이를 안고 있는 김다복, 그리고 한선동이 담겨 있었는데 사진 속 김다복이 검은 머리인 것을 보면 꽤 옛날에 찍은 사진인 것 같았다.
강진에게 물을 떠다 주던 김다복은 그가 액자를 보고 있는 것에 미소를 지었다.
“우리 영감인데…… 본 적 있나?”
김다복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아주 훌륭하신 분이라고요.”
“훌륭하기는…… 그냥 죽기 전에 좋은 일 하나 했는데 그게 꽃이 펴서 향이 나는 거지.”
김다복의 말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말씀 예쁘고 멋지게 하시네요.”
강진이 칭찬하자 김다복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람이 생전에 한 일은 죽어서 꽃으로 피어나는 거야. 착하고 잘 살았으면 꽃이 예쁘게 피고 좋은 향이 퍼지는데…… 사람이 나쁘게 살다 가면 못생긴 꽃이 피고 구린 냄새가 퍼지는 거지.”
강진은 감탄을 하며 그녀를 보았다.
“되게 시적이면서 의미가 있네요.”
강진의 말에 한선동이 미소를 지었다.
“우리 아내가 시를 좋아해서 글도 쓰고 그래.”
“그러세요? 할머니 대단하시네요.”
“대단하지. 우리 아내는 대학도 나왔어.”
두 귀신이 이야기를 나눌 때, 김다복이 액자를 보다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왜 그러세요?”
강진의 물음에 김다복이 액자를 지그시 보며 입맛을 다셨다.
“등본을 보면…… 좀 그래.”
김다복이 등본을 보는 것에 강진도 그것을 보았다. 한선동 밑에 김다복의 이름이 있고 그 밑에 손주의 이름이 있었다.
“지금은…… 등본을 떼면 나밖에 없어.”
“아…….”
죽은 손주의 이름이 등본에서 빠지고, 남편마저 죽어 이름이 없어졌다. 그러니…… 이제는 등본에 그녀의 이름만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등본을 보면 마음이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김다복을 보던 강진이 문득 무슨 생각이 났는지 말했다.
“할머니 혹시 떼어 놓으신 등본 있으세요?”
“등본? 있지.”
“한 번 줘 보시겠어요?”
강진의 말에 김다복이 의아한 듯 그를 보다가 거실 서랍장에서 봉투를 꺼내왔다. 조금 두툼한 봉투에 강진이 의아해할 때, 할머니가 그것을 내밀었다.
봉투를 받아 안에 든 것을 꺼낸 강진은 여러 등본을 볼 수 있었다. 등본 중엔 오래된 듯 색이 바라기 시작한 것도 있었다.
각각의 등본을 살펴보던 강진은 입맛을 다셨다. 세 식구의 이름이 적힌 것과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이름이 적힌 것…… 그리고 할머니의 이름만 적혀 있는 등본까지 총 세 종류였기 때문이었다.
강진이 착잡한 눈으로 등본을 보자 김다복이 미소를 지었다.
“남편이 우리 손주 이름 들어간 등본을 떼어 올 때 눈이 아주 퉁퉁 붓고 붉어져서 왔었지.”
김다복은 등본을 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 남편 죽고 내가 사망 신고 하러 가서 등본을 떼고 보니까…… 내 눈도 그때 우리 남편처럼 생겼더라고.”
자신만의 이름이 남은, 비교적 깨끗한 등본을 보던 김다복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 힘든 일 하러 갈 때 나도 같이 데려가지. 그럼 우리 남편 울 때…… 내가 안아 주기라도 했을 텐데.”
김다복의 말에 한선동이 작게 헛기침을 했다.
“뭐 좋은 일이라고 당신까지 데려가. 그냥…… 나 혼자 하고 오는 거지.”
손주가 죽어 넋을 잃고 힘들어하는 아내를 데리고 사망 신고를 같이 하러 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입맛을 다시며 김다복을 보던 한선동은 한 걸음 다가갔다가 다시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귀신의 기운은 사람에게 안 좋으니 말이다.
“죽어서 귀신이 될 거면…… 당신 수호령이라도 됐어야 하는 건데. 이런 쓸모없는 귀신이 돼 버려서 당신을 안아주지도 못하는구먼.”
잠시 말을 멈춘 한선동이 한숨을 쉬었다.
“정말…… 미안해……. 당신이 먼저 죽었어야 했는데…… 내가 먼저 죽어 버렸어. 당신 죽고 내가 죽었어야 했는데.”
그런 한선동을 보던 강진은 김다복을 보다가 뭔가 생각이 난 듯 말했다.
“잠시만요.”
강진이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자, 김다복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왜? 가려고?”
“아니요. 차에 뭐 놓고 온 것이 있어서요.”
강진은 집을 나와서는 차로 뛰어갔다.
“뭐 하게?”
자신을 따라오는 배용수를 보며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죽었다고 해도…… 사랑하는 사람 안아보지도 못하는 건 너무한 것 아니냐?”
“그건 그렇지.”
강진은 조수석 문을 열고는 글러브 박스를 열었다. 그 안에는 작은 향수병이 들어 있었다.
“아! 그거 뿌려드리면 되겠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작은 향수는 귀기를 지우는 향수였다.
출장 영업을 하다 보면 가끔 처녀귀신들이 오기도 했다. 한끼식당에 오는 처녀귀신들이 올 때도 있고, 그 근처에 사는 처녀귀신들이 올 때도 있었는데 그때를 대비해 귀기를 지우는 향수를 한 통 챙겨둔 것이었다.
처녀귀신들의 강한 귀기를 지워, 다른 손님들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서 말이다.
향수를 손에 쥔 강진은 웃으며 서둘러 집으로 들어갔다.
“놓고 온 건 찾았어?”
“네.”
웃으며 답을 한 강진이 한선동을 향해 향수를 가볍게 뿌려 주었다.
치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