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666
667화
박신예를 생각하는 듯 미소 짓던 김소희가 황민성을 보았다.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나와 같은 여인이 활약하는 드라마가 하나쯤 나오기도 좋은 세상일세. 여자도 나라를 위해 싸울 수 있고 남자보다 강할 수 있음이니.”
강진이 그 이야기를 전해주자, 황민성이 고개를 숙였다.
“아가씨 자료를 찾아 만들어 보겠습니다.”
“나는 전주 김 씨 우진공파네. 아버님의 함자는 김 인 자, 명 자로 숭인 학당을 하시었네.”
김소희가 설명을 하자 강진이 그것을 말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기억하며 황민성이 고개를 숙이자, 김소희가 강진을 보았다.
“쌍둥이라는 건 이야기하지 말게나.”
“네?”
“지금 이야기하면 애가 나올 때 기대가 줄지 않겠는가.”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에 대한 이야기는 적당히 하게나.”
이야기를 마친 김소희가 다시 푸드 트럭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자 황민성이 잠시 있다가 강진을 보았다.
“갔어?”
작게 속삭이는 황민성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말했다.
“자기 이야기 하지 말래요.”
“그래? 그럼 하지 말아야지.”
고개를 끄덕인 황민성이 말했다.
“그런데 드라마 이야기는 진심이신 것 같지?”
“임진왜란 드라마를 좋아하세요.”
“하긴, 우리에게는 그냥 드라마지만 아가씨께는 오래된 기억이니까.”
황민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통에서 내려와서는 이불을 옆으로 들어내고 물을 버렸다.
그러고는 수돗물을 틀어 자신이 내려놓은 이불에 물을 뿌리며 재차 밟기 시작했다. 이불을 밟으며 강진이 힐끗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변 곳곳에는 이불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운동장 한쪽에 있는 철봉, 그네, 의자, 그리고 나무 등 널 수 있는 모든 곳에 이불이 널려 있었다.
거기에 나무와 나무 사이에 길게 줄을 연결한 곳에도 이불들이 널려 있었다.
따스한 햇살과 살며시 부는 바람에 흔들리는 이불은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편안한 느낌이었다.
그것을 보던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빨래 널어 둔 것 보니 이상하게 힐링이 되네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이불을 밟다가 널려 있는 이불을 보았다.
“그러게. 뭔가 마음이 편안해지는 풍경이네.”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두 사람이 이불이 널려 있는 모습을 보고 있을 때, 강상식이 말했다.
“형, 빨리해요. 이것들도 말리려면 어서 널어야 해요.”
강상식의 말에 황민성이 한숨을 쉬며 그를 보았다.
“너는 낭만을 너무 모른다.”
“낭만요?”
“됐어. 이따가 이것들 널 때는 너하고 지나 씨 둘이 해.”
갑자기 자신을 끌어들이는 황민성의 말에 문지나가 그를 보았다.
“제가요?”
“모난 놈 옆에서 돌 맞는 겁니다.”
당당한 황민성의 말에 문지나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저하고 상식 씨가 널게요.”
문지나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통에서 이불을 빼고는 물을 버렸다. 그러고는 강진에게 이불 한쪽을 던졌다.
“잡아.”
강진이 이불 한쪽을 잡자 둘이 양쪽에서 힘을 줘 짜기 시작했다.
촤아아악! 촤아악!
거품 물이 빠지는 것을 보며 황민성이 웃었다.
“아따! 시원시원하게 빠지네.”
“이것도 기분이 좋네요.”
두 사람은 웃으며 물을 짜고는 깨끗한 물에 이불을 담가 헹군 뒤 다시 짜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며 깨끗한 물이 나올 때까지 짠 강진이 그것을 통에 잘 담아 두었다.
“빨래 끝!”
강진의 중얼거림에 효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 남았어요.”
“남았어요?”
“베개 커버도 빨아야죠.”
“아…….”
강진이 입맛을 다시고 있을 때, 대룡이와 남학생들이 베개 커버를 들고 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베개 커버는 금방 빨겠네요. 베개 커버는 금방 말라요. 그래서 마지막에 빠는 거구요.”
효진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피가 작은 만큼 이 정도 햇살이면 한 시간 내로 보송보송해질 것이다.
그래서 이불도 두꺼운 것을 먼저 빨고 얇은 것을 마지막에 빤 것이다.
대룡이가 통에 베개 커버를 넣고 세제를 푸는 것을 볼 때, 효진이 물었다.
“푸드 트럭 차리는 데에 돈 많이 들어요?”
“돈?”
강진이 푸드 트럭 쪽을 보고는 말했다.
“왜, 푸드 트럭 하고 싶어요?”
“메뉴 몇 개 정해서 하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전국 각지 가고 싶은 곳 다니면서 장사해도 될 것 같고.”
“음식 잘…… 아니, 좋아해요?”
“좋아하죠.”
“푸드 트럭 괜찮기는 한데…… 장사할 자리 잡는 건 쉽지 않을 건데.”
“자리요?”
“푸드 트럭 하려면 관할 지역 관공서 허락을 받아야 하거든요. 그리고 푸드 트럭이 들어설 수 있는 자리도 한정되어 있어서 전국 각지 다니면서 하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TV 보면 노점상처럼 그냥들 하던데?”
“그건…… 일단 불법이죠.”
“그래요? 그럼 아저씨는 어디에서 하는데요?”
“나는…….”
효진의 물음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사실 강진도 그냥 저승식당을 오픈하니 말이다.
물론 귀신들이 몰려 있어서 시내 중심에서 해도 단속에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귀신이 그리 모여 있으면 단속 차량이 코앞에 있어도 푸드 트럭을 보지도 못할 테니 말이다.
“나는 음식 봉사 할 때만 사용하고 있어서 영업은 안 해요.”
“그렇구나.”
효진이 푸드 트럭을 유심히 보는 것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말했다.
“몇 살이에요?”
“고3이에요.”
“그럼…… 내년에 사회로 나가겠네요.”
강진의 말에 효진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원장님이 스무 살 되고도 얼마 동안은 여기에서 지내도 괜찮다고 하셨는데…… 나가야죠.”
“그래서 푸드 트럭 생각하고 있어요?”
“저하고 대룡이가 내년에 같이 나가거든요. 둘이 돈 합치면 한 이천만 원 정도는 되니까, 그거면 되지 않을까 했는데…….”
“많이 모았네요?”
“우리가 모은 건 천만 원 정도고, 우리 나갈 때 인당 오백씩 나라에서 지원해 주잖아요. 그거까지 해서 이천만 원이에요.”
효진의 말에 강진이 푸드 트럭을 보았다.
‘이천만 원이라…….’
큰돈이기는 하지만, 세상에 가진 것이 그게 전부인 둘에게는 큰돈이 아니었다. 일단 살 집도 구해야 하고, 필요한 가구와 가전제품들도 구입해야 하니 말이다.
그리고 사회 나가서 바로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대룡이가 혼자 좋아하는 건 아닌 모양이네.’
둘이 나가면 같이 살 거라 했으니 말이다. 그것이 연인이든 같이 보육원에서 자란 형제이든 말이다.
그리고 둘이 같이 방을 구하면 그래도 초반에 정착하기 괜찮을 것이다.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까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세요. 푸드 트럭 말고도 할 수 있는 일은 많으니까요.”
“알겠습니다.”
효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강진이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언제든지 서울에 올 일 있으면 들러요. 내가 맛있는 음식 해 줄게요.”
“고맙습니다.”
효진은 명함을 받아 보고는 주머니에 잘 챙겨 넣었다.
그런 효진을 잠시 보던 강진은 대룡을 보았다.
‘이 아이들도 사회로 나가는구나.’
사회에 나가면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가끔 외롭기도 하고…… 눈물도 날 것이다.
‘그래도 이 둘은 같이 나가니 위로해 줄 사람은 있겠네.’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은 베개 커버가 들어가 있는 통에 들어가 밟기 시작했다.
***
강진과 황민성, 그리고 그의 가족들은 이불이 널려 있는 곳 근처에 의자를 가져다가 앉아 있었다.
햇살이 뜨겁기는 했지만 이불이 만들어 놓은 그늘과 이불이 머금고 있는 습기 때문에 살짝 시원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바람에 따라 살랑거리는 이불을 보고 있자니…… 이래저래 기분이 좋은 시간이었다.
멍하니 이불을 보며 앉아 있는 강진에게 황민성이 말했다.
“이렇게 멍 때리는 걸 불멍이라고 하던데…… 이것도 나름 괜찮다.”
“그러게요.”
“수박 좀 사 올걸 그랬어. 이러면서 수박 먹으면 참 좋을 것 같은데.”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제가 사 올까요?”
“됐어. 여기 애들 먹으려면 수박 한두 덩이로 될 일이 아닌데 그걸 언제 다 싣고 오냐.”
말을 하던 황민성이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고는 뭔가를 검색하더니 전화를 걸었다.
“슈퍼죠? 거기 배달됩니까? 수박…….”
황민성이 힐끗 보육원을 보고는 말했다.
“수박 열 통하고 참외 두 박스, 그리고 거기 과일 뭐 있어요? 그래요? 그럼 체리하고 포도도 여섯 박스씩 주문할게요. 아! 그리고 아이스크림하고 과자도 한 십만 원씩 하고 음료수도 콜라와 사이다로 세 박스씩 가져다주세요. 위치는 태운 보육원요. 멀어요? 그럼 주문 취소할게요. 해 주겠다고요? 그래요. 그리고 몇 분이나 걸려요? 아…… 조금 일찍 안 되나요? 여기 아이들 과일 먹고 싶어 하는데. 알겠습니다.”
그걸로 전화를 끊는 황민성의 모습에 강진이 웃었다.
“멀대요?”
“멀기는. 여기서 가장 가까운 마트인데. 그리고 이 정도 사는데 배달 정도는 해 줘야지. 15분이면 온대.”
“잘 됐네요.”
그러고는 다시 멍하니 이불을 보는 황민성을 보던 강진이 웃었다.
“돈이라는 건 참 좋은 거예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같이 쓰는 거지.”
“그러네요. 형은 참 정승같이 잘 쓰고 계시네요.”
꼭 자신을 위해 좋은 음식과 좋은 집을 구하는 것만이 정승처럼 사는 것이 아니었다. 남을 위해 쓰면서 인심을 베푸는 것도 정승처럼 사는 것이었다.
최소한 마음은 정승처럼 넉넉할 테니 말이다.
이야기를 나누며 힐링을 하던 강진은 나무에 걸려 있는 이불 사이를 오가고 있는 김소희를 보았다.
김소희는 그저 이불을 보거나 때로는 손으로 쓰다듬으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렸을 때 생각을 하시나?’
그녀의 집에서도 날이 좋은 날에는 하인들이 이불을 빨아서 이렇게 널어 두었을 테니 말이다.
그런 김소희를 보던 강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가만히 이불을 손으로 쓰다듬다가 말했다.
“복실 언니에 대해 내가 이야기했던 것 기억하나?”
“기억합니다. 손재간이 좋아서 전란 중에도 이런저런 것을 잘 구해 오셨다지요.”
언니라고는 하지만 몸종이었다. 그 험한 전란 중에도 아가씨 준다고 술을 구해 올 정도로 수완이 좋았던 몸종.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가 이불을 빨고 있으면 내가 그것을 자주 구경했었지. 새하얀 이불포 사이로 보이는 언니 얼굴이 그리 고왔는데…….”
말을 하며 김소희가 슬며시 이불 사이로 숨었다가 얼굴을 내밀었다. 그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도 고우십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눈을 찡그리고는 몸을 돌렸다. 그런 김소희를 보던 강진이 말했다.
“복실 씨도 환생을 하셨을 텐데 한 번 찾아가 보시지 그러십니까?”
“복실 언니는 환생을 하지 않았네.”
“하지 않으셨습니까?”
강진이 의아한 듯 김소희를 보았다. 복실이 죽은 것이 왜란 때인데 아직도 승천을 하지 않았다니?
강진의 시선에 김소희가 안쓰러운 얼굴로 작게 고개를 저었다.
“저승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네. 미련한 사람…….”
씁쓸함과 그리움이 담긴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처음 김소희가 사람과 귀신들에게 곁을 주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자신은 계속 이승에 남아 있지만, 귀신도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곁을 떠나는 것이다.
잠시 김소희를 보던 강진이 말했다.
“제가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제가 머무는 동안은 늘 아가씨를 생각하고 재밌게 해 드리겠습니다.”
“…….”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았다. 그 시선을 받으며 강진이 말했다.
“그리고…… 혹시 제가 저승에 있다가 환생했을 때, 그때도 이승에 계시다면 저에게 한 번 찾아와 주십시오.”
“자네를?”
“그때도 아가씨 심심하지 않도록 재밌게 해 드리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다가 작게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