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983
984화
“후우…….”
작게 한숨을 쉬는 임형근을 보던 진세영이 그 어깨를 손으로 쓰다듬고는 말했다.
“소주 사 놨어.”
“그래. 잘 했네.”
“근데 강진 씨가 음식 해 온다고 했는데 정말 아무것도 안 해도 될지 모르겠어.”
“강진이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잖아. 그리고 전에 먹어 보니 강진이 음식 맛있더라고.”
“그래도…….”
아무래도 손님이 오는데 음식을 준비하지 않은 것이 진세영은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괜찮아. 강진이가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신신당부를 했잖아.”
“회라도 주문을 할까?”
“회? 강진이 곧 올 때 됐는데?”
“주문하면 밥 먹을 때 오겠…….”
띵동!
말을 하다가 벨이 울리자, 진세영이 걸레와 통을 받았다.
“강진이 왔나 보다. 가서 문 열어 줘.”
“내가?”
“빨리.”
진세영의 말에 임형근은 현관으로 가다가 거울을 한 번 보았다.
강진에게 잘 보이고 싶다거나, 진세영의 말대로 사위를 기다리는 마음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딸을 기억하는 사람에게 후줄근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정숙이 아빠는 멋지지는 않아도 깔끔한 모습이라고 기억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옷 중 가장 좋은 옷을 골라 입었던 임형근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을 열었다.
덜컥!
문을 연 임형근은 강진이 서 있는 것에 웃으며 말했다.
“어서 오게나.”
“아버님 안녕하세요.”
“그래. 어서 들어와.”
임형근이 환하게 웃으며 강진을 반겨 주었다. 딸은 아니지만, 딸을 기억하는 사람이 왔다.
그래서 임형근은 좋았다. 딸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 어서 들어와.”
자신을 반갑게 맞이해 주는 임형근에게 고개를 숙인 강진이 안으로 들어왔다.
“무겁게 뭘 이런 걸 들고 왔어. 내려놔. 내려놔.”
“음식이에요. 시장하시죠? 이 음식에 맛있게 식사하시게요.”
“그래. 그렇게 하자고.”
강진은 아이스박스를 들고 주방으로 가서는 진세영에게 인사했다.
“어머니, 저 왔습니다.”
“어서 와요. 서울에서 오는데 힘들었죠?”
“정말 하나도 안 힘들었습니다.”
사실이었다. JS를 통해 순식간에 부산에 도착했으니 말이다.
강진의 말에 임형근이 웃으며 말했다.
“세상 좋아져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두세 시간이면 오지만 그래도 먼 길 오는 건 마찬가지지. 일단 좀 앉지.”
“일단 저 손 좀 씻고 오겠습니다.”
“아! 그래. 그래.”
강진은 화장실에 가서는 손을 깨끗이 씻고 나왔다.
그러고는 식탁 위에 놓은 아이스박스를 열었다. 아이스박스에 가득 담겨 있는 음식들에 임형근이 웃었다.
“뭘 이리 많이 가져왔어.”
“음식 장사하는데 음식 손이 작아서 되겠어요? 반찬도 여럿 해 왔으니 두고 드세요.”
강진이 웃으며 진공 포장이 된 횟감을 꺼냈다.
“이건 제가 잘 아는 횟집 사장님한테 받아 온 거예요.”
“회야?”
“부산이잖아요. 오는 길에 잠시 들렀는데 주시더라고요.”
강진이 횟감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도마하고 칼 주시면 제가 썰게요.”
“아니야. 아니야. 내가 회는 잘 썰어. 이건 내가 할게.”
임형근이 웃으며 횟감을 들고는 싱크대로 가자, 임정숙이 웃으며 말했다.
“저희 아빠 낚시 좋아해서 회 잘 썰어요.”
강진이 보자 임정숙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닷가 가서 물고기 잡아서 바로 썰어 주고 그러셨어요. 그리고 좋아하세요. 회 써는 거.”
“회 써는 걸 좋아해요?”
배용수가 묻자, 임정숙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고기 잘 굽는 사람들이 고깃집에서 고기 집게를 다른 사람에게 안 주는 것과 같나 보네요.”
고기 굽는 것에 자부심이 있는 사람들은 고깃집에서도 자신이 고기를 굽는다.
고기 굽는 게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고기에 계속 신경을 써야 하고, 집게로 고기를 뒤집어야 한다.
집게로 고기를 뒤집는 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것도 많이 하다 보면 손이 저릴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집게를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는다. 고기 잘 굽는다는 자부심이 있으니 말이다.
“그런 것도 있지만…… 엄마하고 내가 잘 먹으니까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아!”
배용수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저었다.
“제가 좀 생각이 짧았네요.”
회 부심 같은 건가 생각을 했는데, 회를 써는 건 아빠의 마음이었다.
자신이 뜬 회를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는 건 아빠로서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 아빠는 회 같은 건 자기가 직접 써세요. 그리고 아빠가 썰면 더 맛있어요.”
임정숙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반찬들을 꺼냈다.
“이건 진미채볶음이에요. 드셔 보세요.”
강진이 반찬을 꺼내 놓자, 임정숙이 웃으며 진미채를 집어 입에 넣었다.
“음! 너무 맛있다. 맛이…… 묘하게 부드럽네.”
“마요네즈를 넣어서 좀 부드럽죠. 고소하기도 하고.”
“엄마, 오징어도 마요네즈 찍어 먹으면 맛있잖아. 그런 느낌이야.”
임정숙의 말을 강진이 거의 그대로 따라했다.
“오징어 마요네즈에 찍으면 맛있잖아요.”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강진은 아이스박스에서 다른 반찬들도 꺼냈다.
깻잎조림과 멸치볶음 같은 밑반찬과 김치 등 강진의 가게에 있는 맛있는 반찬과 임정숙이 한 반찬들이 하나둘씩 나왔다.
강진이 꺼낸 반찬들을 하나씩 맛을 보던 진세영이 미소를 지었다.
“정말 맛이 좋네요.”
“그러세요?”
“정말 맛이 좋아.”
임정숙은 일회용 봉투에 싸인 것을 보았다. 붉은 갈색을 띠는 내용물에 진세영이 의아한 듯 말했다.
“이건?”
“차돌박이 된장찌개예요.”
“이건 우리 집에서 해 먹어도 되는데 뭘 이렇게 소분 포장까지 해 왔어요.”
강진이 꺼낸 차돌박이 된장찌개 봉투는 총 열 개였다.
“부산에도 차돌박이 있고 집에서 직접 해 먹어도 되지만 제가 한 번 해 왔습니다. 이게 된장에 고추장하고 고춧가루, 그리고…….”
“호박, 팽이버섯, 양파 그리고 차돌박이를 넣은 거죠.”
“별거 아닌 건데 제가 괜히 설명을 하려고 했나 보네요.”
강진의 말에 진세영이 웃으며 봉투를 보았다.
“그냥 보이니까요.”
투명한 일회용 봉투에 싸여 있다 보니 딱 재료가 보인 것이다.
“정숙이가 이걸 참 좋아했는데.”
“알고 있습니다.”
“알아요?”
“정숙이 집에서 몇 번 먹어 봤거든요.”
강진이 슬쩍 임정숙을 보았다. 그녀는 웃으며 엄마를 보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한테 맛있는 음식을 가지고 와서 기분이 좋은 듯했다.
마치 타지에서 일하던 딸이 집에 선물 보따리를 들고 온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도 임정숙은 서울이라는 타지에서 일하다가 오늘 집에 음식 선물을 가지고 왔다. 다만 살아서가 아니라 죽어서 귀신으로 왔을 뿐이었다.
“정숙이 집에서 먹어 봤다고?”
“네? 네.”
“여자 혼자 사는 집에서…… 밥을 먹었다고?”
회를 썰던 중이라 칼을 들고 묻는 임형근의 모습에 강진이 아차 싶었다.
서로 편하고 친하게 지내던 사이라는 것을 어필하려고 했는데, 부모님이 들으면 좋아할 이야기가 아니었다.
여자 혼자 자취하는 집에 남자가 드나들었다는 것이니 말이다.
젊은 친구들끼리는 별일 아닌 것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딸을 둔 부모님 입장에서는 걱정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오해하시는 일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강진은 애써 부정을 하면서 임형근의 손에 들린 칼을 보았다.
‘회 써는 거 좋아하신다고 하더니, 칼도 일반 칼이 아니네.’
임형근이 들고 있는 칼은 가정집에서 쓸 만한 것이 아닌 일식집에서 쓰는 칼이었다. 흔히들 사시미 칼이라고 하는 회칼이었다.
강진이 칼을 보는 것에 임형근이 칼을 슬며시 내리고는 말했다.
“우리 정숙이가 정말 아무 남자나 집에 들이는 애가 아닌데.”
“그럼요. 친했습니다.”
“정말…… 친하기만 한 건가?”
의심스럽게 보는 임형근의 시선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정숙이가 동생처럼 여겨지더라고요.”
“동생?”
“제가 외동이라 동생이 없거든요. 그래서 동생 같았어요.”
강진의 말에 임형근이 입맛을 다셨다.
“정숙이가 동생 스타일은 아닌데 말이야.”
“정숙이가 냉동실에서 이거 하나 꺼내서 끓여 주곤 했습니다.”
강진의 말에 임형근이 그를 보다가 사시미 칼을 내려놓고는 다가왔다. 그러고는 봉투에 담긴 차돌박이 된장을 보다가 말했다.
“내가 낚시를 좋아해.”
“아버님이 낚시 좋아하신다는 이야기 들었습니다. 정숙이 데리고 가끔 가셨다면서요?”
“내 꿈이 자식하고 같이 낚시하는 거였어. 흐르는 물 보면서 이야기도 하고 소주도 한 잔씩 하고.”
임형근이 봉투를 들어 살며시 눌러 보고는 말을 이었다.
“낚시하러 갈 때 이런 거 하나 가져가면 물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되니 아주 간단했지. 그래서 낚시하러 갈 때는 이거 만들어서 가고는 했지.”
임형근은 웃으며 말했다.
“정숙이도 차돌박이 된장국을 좋아했어. 그 녀석이 누구를 닮았는지 술을 아주 좋아했거든.”
임형근의 말에 임정숙이 놀라 말을 했다.
“아빠.”
그리고 임정숙이 술을 좋아했다는 말에 귀신들이 웃으며 그녀를 보았다.
“정숙 씨가 술을 좋아하는지 전혀 몰랐네요.”
“그러게. 우리하고 먹을 때는 늘 그렇게 빼더니.”
“그…… 안 좋아해요. 그냥 아빠가 술 좋아하니까 같이 한잔하는 정도였어요.”
부끄러운지 손을 깍지 끼고는 손가락을 돌리는 임정숙의 모습에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술 좋아하는 것이 창피할 것이 있나요. 그냥 자기 주량만큼 먹고 절제만 할 줄 알면 술처럼 좋은 것도 없죠. 어떻게 보면 그 정도 돈 들여서 기분 좋게 즐기는 걸로는 술처럼 싸게 먹히는 것도 없죠.”
술집에서 비싸게 먹으면 돈이 많이 나오겠지만, 친구들과 간단하게 한잔하는 정도면 일 인당 오천 원에서 만 원만 써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물가는 오르고 월급은 변하지 않는 이 시대에 어떻게 보면 술자리처럼 가성비 있는 놀이 문화도 없었다.
물론 많이 먹지 않고 절제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지만 말이다.
부끄러워하는 임정숙을 강진이 슬며시 볼 때, 임형근이 차돌박이 된장을 보며 말했다.
“이게 술안주로도 좋고, 해장에도 좋아.”
“차돌박이 기름이 있어서 그런지 술 마시고 먹으면 해장도 되고 그렇더군요. 그리고 칼칼해서 맛도 좋고요.”
차돌박이 된장찌개라고 해서 구수할 거란 생각이 들지만, 고추장과 고춧가루 그리고 매운 고추를 넣으면 칼칼하면서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아주 간단하지. 게다가 날이 더워도 잘 상하지도 않아.”
“된장하고 고추장에 버무려져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낚시터에 자주 가져갔어. 그냥 물에 넣고 끓이기만 하면 바로 맛있는 된장찌개가 되니까. 라면보다 더 간단하지.”
말을 하던 임형근이 진세영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이거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
“그런가?”
“정숙이 집에 반찬 택배로 보내고 남은 것들이 내 차지였잖아. 후! 정숙이 반찬 보내는 날이 나한테는 생일날이었는데 말이야.”
서울에서 자취하는 딸이 걱정돼서 여러 반찬을 골고루 보내다 보니 그날은 집에 반찬이 여럿 나오는 것이다.
서울로 보내는 반찬 중에 이 차돌박이 된장은 늘 빠지지 않았다.
간단하게 고추장 된장 섞고 재료 넣어 봉투에 담으면 완성이니 말이다. 물론 그 정성까지 간단하지는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