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999
1000화
임정숙의 부모님을 모시고 2층에 올라온 강진이 안방 문을 열었다.
“오늘 두 분 오신다고 해서 이불 새로 깔았습니다.”
“이거 자네가 쓰는 방 같은데…… 이걸 우리한테 주면 어떻게 해.”
“전 어디서 자도 상관이 없어요.”
“그래도…….”
진세영의 말에 임형근이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여기서 자.”
“당신은?”
“나는 소파에서 잘래.”
임형근이 거실 소파를 보자, 강진이 말했다.
“같이 여기서 주무시죠.”
“아니야. 난 소파가 좋아.”
임형근의 말에 진세영이 그를 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정숙이 쉬던 소파에서 자려고?”
진세영의 말에 임형근이 작게 웃으며 소파에 가서 앉았다.
“나는 여기가 좋아.”
“그럼 나도 거실에서 잘게요.”
두 사람이 다 거실에서 자겠다고 하자 강진은 더는 권하지 않았다.
“내가 편한 곳이 궁궐 침대보다 좋겠죠. 그럼 여기로 이불 깔아 드릴게요.”
강진이 거실에 이불을 깔며 말했다.
“저는 열한 시부터 한 시까지 예약이 있어서요. 내려가 봐야 해요.”
“그 시간에 예약이 있어?”
“회식 끝나고 오시는 분들이 종종 이 시간에 예약을 하세요.”
강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요즘 같은 시기에 손님을 마다할 수 없잖아요.”
말을 하던 강진이 냉장고를 가리켰다.
“냉장고에 음료하고 먹을 것들 있거든요? 입 심심하면 드세요.”
강진의 말에 진세영이 그를 보았다.
“혹시 여기 라면 있어요?”
“라면요?”
“이 사람이 술을 마시면 꼭 라면을 먹고 자거든요.”
진세영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밑에서 끓여 올게요.”
“아니에요. 곧 손님들 올 시간이잖아요.”
“금방 끓일 수 있으니까 괜찮아요. 쉬고 계세요.”
1층으로 내려간 강진은 라면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역시 딸이구먼.”
아버지 취향을 알고 이미 라면을 끓여 놓고 있으니 말이다.
주방으로 들어간 강진은 라면을 그릇에 담고 있는 임정숙을 볼 수 있었다.
“딸은 딸이네요.”
“네?”
임정숙이 보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께서 아버님이 술 마시면 라면 먹어야 한다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라면 가지러 내려왔어요.”
강진의 말에 임정숙이 웃으며 그릇 옆에 묻은 국물을 티슈로 닦았다.
“다 됐어요.”
김치 국물이 들어간 듯 김치 냄새가 올라오는 라면을 쟁반에 올리던 강진이 문득 물었다.
“그런데 아버님이 면이 푸욱 익은 것을 좋아하시나 보네요.”
그릇에 담긴 라면 면발이 불어 있었던 것이다.
“면이 좀 퍼질 정도로 끓인 것을 좋아하세요.”
임정숙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라면과 김치를 올린 쟁반을 들고는 2층으로 올라갔다.
강진이 2층으로 올라오는 모습을 임형근이 의아한 듯 보았다. 강진이 올라오자 라면 냄새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내려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라면을 끓여 왔어?”
임형근의 말에 강진이 식탁에 쟁반을 놓으며 말했다.
“용수가 이미 라면을 끓이고 있더라고요.”
“용수가?”
“정숙이가 예전에 용수한테 그랬나 봐요. 아버님이 술을 마시면 꼭 라면을 드신다고요. 그래서 아버님 라면 드실 거라고 라면을 끓였대요.”
강진의 말에 진세영이 웃었다.
“정숙이 덕에 오늘 우리 남편이 호강을 하네.”
“그러게 말이야. 내가…… 호강하네.”
딸 덕분에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들을 먹고, 좋은 사람들과 알게 됐으니 말이다.
‘녀석, 밖에서 할 말이 그렇게 없었나. 아빠 이야기만 미주알고주알 다 떠들었네.’
속으로 중얼거리는 임형근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딸이 밖에서 자기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는 건 그만큼 자신을 생각했다는 증거이니 말이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
강진이 다시 1층으로 내려가자, 임형근이 자리에 앉으며 젓가락을 들었다.
“여보, 먹읍시다.”
임형근의 말에 진세영이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놓으며 자리에 앉았다.
“라면…… 당신이 딱 좋아하는 스타일이네.”
추욱 늘어져 있는 면발의 모습에 진세영이 웃으며 남편을 보았다. 그 시선에 임형근이 면을 젓가락으로 들며 말했다.
“내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이야. 정숙이가 이런 것도 다 이야기를 했나 보네.”
“정숙이는 밖에서 할 말이 그리 없었나? 무슨 아빠 식성까지 이야기를 해.”
“그러게 말이야. 하하하!”
호탕하게 웃은 임형근이 면을 입에 넣었다.
후루룩! 후루룩!
라면을 흡입한 임형근이 웃으며 말했다.
“정숙이가 참…….”
임형근은 잠시 말을 멈추고는 면을 보다가 그릇을 들어 국물을 마셨다. 그러고는 가볍게 그릇을 내려놓은 임형근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참…… 잘 가르쳐줬네.”
임형근의 말에 진세영이 국물을 한 번 맛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회식을 하고 늦게 들어온 남편에게 딸이 끓여 주던 라면과 맛이 똑같았다.
김치 국물을 넣어서 살짝 얼큰하면서도 계란을 잘 풀어 넣어서 조금은 걸쭉한…….
그리고 면발은 임형근이 좋아하는, 약간 퍼진 스타일이었다.
임형근은 재차 면을 떠서는 입에 넣었다. 조금은 짠맛이 돌기는 하지만 맛이 좋았다.
술에 취하면 짠맛이 당기기도 하니 이 정도면 적당했다. 물론 다음 날에는 얼굴이 부어서 엉망이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후루룩! 후루룩!
빠르게 면을 먹고 국물까지 단숨에 마신 임형근이 숨을 크게 토했다.
“정숙아, 잘 먹었다.”
임형근이 웃으며 하는 말에 진세영이 멈칫해서는 그를 보았다. 그 시선에 임형근이 웃었다.
“괜찮아. 미친 거 아니니까.”
임형근이 웃으며 빈 그릇을 내려다보았다.
“그냥…… 이건 정숙이가 한 것 같아서. 만들기는 용수가 했겠지만 나는 정숙이가 했다 생각하려 해. 딸이 아빠한테…….”
잠시 입맛을 다신 임형근이 웃었다.
“라면 한 그릇 해 줄 수 있는 거 아니겠어?”
웃으며 임형근이 그릇을 싱크대에 놓고는 물을 틀었다.
촤아악!
그 모습에 진세영이 말했다.
“내가 할게.”
“아니야. 내가 할게. 정숙이가 라면을 끓여 주면 설거지는 내가 했어.”
임형근이 웃으며 그릇을 씻기 시작하자 진세영이 그 모습을 보았다.
그런 그녀의 옆에서 임정숙도 아빠가 설거지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내가 라면을 끓이면 아빠가 설거지를 했었지.”
임정숙은 슬며시 그의 곁으로 걸어갔다.
“아빠, 맛있게 먹었어?”
라면을 다 먹은 아빠가 설거지를 할 때 임정숙은 이렇게 다가갔었다. 그러면…….
“우리 딸이 끓여 줘서 너무 맛있게 먹었어.”
아빠의 중얼거림에 임정숙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주르륵! 주르륵!
아빠는 울고 있었다. 자신이 설거지하는 아빠를 보며 예전 기억을 떠올린 것처럼, 아빠도 자신이 끓인 라면을 먹고 예전 기억을 떠올린 것이다.
그리고…….
진세영이 슬며시 다가가 그를 뒤에서 안았다.
“우리 건강하게 오래오래 잘 살자. 그리고 나중에 정숙이 만나면…… 우리가 여기서 보고 여행한 이야기를 해 주자. 우리 정숙이는 이승에서 한 여행이 너무 짧았으니까, 우리가 정숙이 대신 많이 여행하고 많이 보고 이야기해 주자.”
삶을 여행이라 표현하는 엄마의 모습에 임정숙이 그녀를 뒤에서 안았다.
“그럼 나도 내가 만난 좋은 사람들 이야기해 줄게. 그때는…… 나하고 엄마하고 아빠하고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가자. 우리 같이 여행 다닌 적 없잖아.”
어디 가까운 곳에 놀러 간 적은 있지만, 가족 여행이라 할 만한 것을 가 본 적이 없었다.
아빠를 안고 있는 엄마, 그리고 엄마를 안고 있는 임정숙…… 셋은 꽤 오랜 시간 그렇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저승식당 영업을 마친 강진은 2층을 힐끗 보았다. 아까 올라간 임정숙은 저승식당 영업이 끝날 때까지 내려오지 않았다.
2층을 보는 강진의 곁으로 이혜미가 다가오며 말했다.
“정숙이 정말 기분 좋겠어요.”
이혜미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혹시 형수도 부모님들 모시고 싶으세요?”
강진의 말에 이혜미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다행히 두 분은 저를 많이 잊으셨어요.”
강진은 자식을 잊는 부모님은 없다고, 그러니 그 말은 틀렸다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강진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이혜미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했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아픈 손가락인 자식을 잊어야 부모님이 사실 테니…….
그래서 강진은 더는 부모님을 여기로 모시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임정숙은 부모님이 자신을 기억하기를 바라고, 이혜미는 부모님이 자신을 잊어 주기를 바란다.
방향은 달랐지만, 둘 다 부모님을 사랑하기에 한 생각이었다.
강진은 커피를 한 잔 타서는 가게 밖으로 나왔다. 가게 밖에는 강진이 아까 꺼내 놓은 의자가 아직도 그대로 놓여 있었다.
거기에 앉은 강진이 믹스커피를 후루룩 마시고는 하늘을 보았다.
강원도 산속 밤하늘과는 달리 뿌옇게 보이는 어두운 밤하늘을 보고 있을 때, 배용수가 가게 밖으로 나와서는 그 옆에 앉았다.
“잘 건데 커피야?”
“마시고 싶어서.”
강진이 잔을 내밀었다.
“한 모금 할래?”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손을 내밀어 컵을 받았다.
화아악!
배용수의 손에 들리는 불투명한 잔을 보며 강진이 웃었다.
“너하고 친구하니 이런 것이 좋네.”
“뭐가?”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고 하는데, 우리는 정말 나눠 먹어도 되잖아. 네가 먹어도 양은 그대로니까.”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손에 들린 컵을 보다가 피식 웃었다.
“그건 그러네.”
강진은 앉은 채로 다리를 쭈욱 펴고는 말했다.
“정숙 씨 부모님을 보니 우리 부모님 생각이 나.”
“부모님?”
“정숙 씨를 저렇게 보고 싶어 하는 부모님을 보니까, 우리 엄마 아빠는 왜…….”
잠시 말을 멈춘 강진이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왜 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무슨 소리야?”
“저승식당 하면서 자식이 걱정이 되어서 떠나지 못한 분들을 많이 봤잖아.”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까이 있는 강상식의 어머니만 해도 그랬고, 황태수와 황미소의 어머니도 그랬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은 내 옆에 없었어.”
“쓸데없는 소리 한다. 그럼 너는 부모님이 귀신으로 네 옆에 있었으면 좋았겠어?”
“그럴 리가. 귀신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아는데.”
“그런데 왜 그런 생각을 하고 말을 하냐?”
배용수가 하늘을 보며 말했다.
“부모님 들으시면 서운해하셔.”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강진을 보던 배용수가 말했다.
“아니면…….”
“아니면?”
강진이 보자, 배용수가 말을 이었다.
“귀신이 되셨다가 너 사는 거 보고 승천을 하셨을 수도 있지.”
“나 사는 거 보고?”
“응.”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내 모습 봤으면 더 못 가셨을걸.”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의 삶은 참 고단하고 힘들었으니 말이다.
“왜 그렇게 생각해?”
“부모님 돌아가시고 얼마 있지도 않은 돈 친척들이 챙기고, 나는 보육원으로 보내졌는데…… 엄마 아빠가 어떻게 승천을 하셔. 그거 보셨으면 승천 더 못 하셨을 거야.”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차라리 그거 안 보고 승천하신 것이 다행이다.”
그 모습을 봤으면 정말 가슴이 많이 아팠을 테니 말이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저었다.
“그 대신 열심히 살았잖아.”
“열심히?”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래. 넌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잖아. 난 너처럼 그렇게 열심히는 못 살았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