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equaled Scholar RAW novel - Chapter 228
10권 23화
三
백이건은 본능적으로 선후인이 자신들을 쫓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이목을 속이기 위해 강을 횡단해 보기도 하고 체향을 바꾸기 위해 향수도 뿌려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애초에 선후인의 이목을 속이려 한 게 잘못이다.’
떨칠 수 없다면 가능한 한 빨리 도망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쉬지 않고 달렸다. 그의 품에는 단목예설이 안겨 있었다.
그들은 하루 열두 시진을 거의 함께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 남녀 간의 이상야릇한 감정을 느끼는 건 아니었다.
백이건도 다른 때였다면 벌써 단목예설의 전신을 떡 주무르듯 했겠지만, 지금은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단목 소저, 오이라트 부족에서 오행신주를 하나 더 얻으면 그다음에는 어찌할 생각입니까?”
사실 단목예설도 뚜렷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었다.
“전설에 따르면 오행신주는 악마를 물리치기 위해 신이 내려 주신 선물이라고 해요. 하지만 그 위력이 너무도 강해서 사람들은 오행신주를 이용해서 신의 자리까지 넘보려 했죠. 이에 신은 오행신주를 다섯 조각으로 나누었고, 누구도 찾지 못하게 천하 각지에 숨겨 놓았어요.”
전설은 전설일 따름이다.
과연 신이 존재를 하고 오행신주를 주었는지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설을 더듬어 오행신주의 기원을 알아 가는 방법밖에 없어요.”
오행신주가 신이 주신 선물이라는 점을 믿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전설에는 태산에서 처음 신이 인간을 만나 오행신주를 전해 주었다고 해요.”
“태산?”
“현재 무림에 나와 있는 건 네 개밖에 없어요. 그중 세 개를 오이라트 부족에서 가지고 있었죠.”
그들은 원래 원나라 왕족이었다.
원나라는 오래전부터 오행신주의 전설을 알고 국운을 걸면서까지 오행신주를 수집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알아낸 것은 세 개가 전부였다. 하나는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었고, 나머지 한 개는 행방이 묘연해서 도저히 찾아낼 수 없었다.
“어쩌면 한 개는 처음부터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아요.”
신이 세상을 걱정해서 오행신주를 천하 각지에 흩어 놓았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네 개의 오행신주를 가지고 태산을 무작정 뒤져 보는 수밖에 지금으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어요.”
오행신주는 서로가 서로를 부르는 영성을 가지고 있었다. 한 개일 때는 교감이 약하지만, 두 개와 세 개로 늘어날 때마다 반응이 커진다. 그렇다면 네 개를 가지고 있을 때는 더 커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단목예설은 거기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었다.
‘끙! 이거야 원, 북경 한복판에서 왕 서방 찾기나 다름없군.’
백이건의 눈에는 무모해 보였지만, 이게 아니면 선후인에게 맞설 방법이 없었다.
선후인은 지금 백이건이 살기 위해 발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백이건이 중원을 가로질러 대막으로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의외의 결과였다. 처음에는 백이건이 천하 무림과 합류해서 자신과 맞설 줄 알았던 것이다.
“중원에서 멀어지면 내가 추격을 포기할 줄 아느냐?”
천만의 말씀이었다.
그는 대막이 아니라 북해라 해도 추격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이번에는 백이건의 흔적이 오이라트의 부족으로 이어졌다. 백이건이 오이라트와 친분이 있을 리 만무한 일. 도움을 청하러 갔을 리도 없었다.
‘이놈이 무슨 꿍꿍이를 벌이려고 여기에 온 것일까?’
백이건 옆에 단목예설이 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녀라면 무슨 수작을 부리고도 남았다.
아니나 다를까.
오이라트는 무슨 일인지 비상이 걸려 있었다. 수천 명의 병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한족이다!”
“저 늙은이가 수상하다!”
병사들은 선후인을 보는 순간 다짜고짜 그를 체포하려 들었다.
“이놈이 감히?”
자신과 오이라트 부족을 충돌시킨 다음 도망치려는 수작이 틀림없었다.
그의 눈에 병사들이 들어올 리 없다. 그저 손짓 한 번이면 족하다.
허나, 그는 병사들과 충돌하지 않았다. 그렇게 했다가는 오이라트 부족 전체가 달려들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만큼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네놈의 의도대로 따라줄 성싶으냐?’
그는 병사들을 피해 달아났다.
그리고 은밀하게 오이라트 부족 주변을 조사해서 어렵게 단목예설의 체향을 찾아낼 수 있었다. 워낙 오이라트 부족 주변에 수많은 병사들이 지나다녀서 단목예설의 체향이 어지럽게 섞여 있었던 것이다.
“네놈이 여기 머물지 않고 어딘가로 도망칠 줄 알았다.”
오이라트 부족에 숨어 있었다면 병사들이 이 난리를 치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몸을 날려 단목예설의 체향을 추격했다. 다행히 그가 병사들과 충돌하지 않은 덕분에 거리는 벌어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다시 중원으로 이어졌다.
그러면 그렇지.
자신을 오이라트 부족과 충돌하게 한 다음 행보는 역시 중원이었던 것이다.
“흐흐, 네놈 딴에는 잔재주를 부린 모양이다만, 이제 서서히 끝이 보이는구나.”
四
태산은 오악의 하나로, 제왕이 된 사람이 봉선 의식을 행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옛날부터 신성하게 여겨지던 곳이었다.
때문에 태산에는 종교와 관련된 사원과 사당, 그리고 종묘와 제사와 관련된 것들이 많았다. 어쩌면 그래서 오행신주의 전설이 태산과 관련된 것인지도 몰랐다.
백이건과 단목예설은 어제부터 태산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의 품에는 네 개의 오행신주가 있었다. 남은 하나가 태산에 있다면 반응이 보여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백이건이 오이라트 부족에 들어가 또 다른 오행신주를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이 대막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세 개의 오행신주가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뒤에는 백이건이 은밀하게 잠입해서 오행신주를 가지고 나왔다. 금색을 띠고 있는 것을 보니 금에 해당하는 구슬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나무에 해당하는 것이겠구나!’
한편, 단목예설은 약간 장난을 쳐 놓았다. 금행신주를 가져가면서 중원의 물건이므로 중원에서 가져간다는 글귀를 남겨 놓았던 것이다.
오이라트 부족과 선후인 사이에 충돌을 일으켜 시간을 벌려던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어 자신들이 오행신주를 찾으러 왔다는 것을 모르게 하기 위해서였다.
어제는 북쪽 산맥을 수색했고, 오늘은 남쪽 산맥을 돌아다녔다. 그들이 남쪽 기슭으로 내려간 순간, 네 개의 오행신주가 무섭게 뛰기 시작했다.
백이건이 깜짝 놀라 품속에서 네 개의 오행신주를 꺼냈다. 수정처럼 투명하던 오행신주에 오색찬란한 빛이 깜빡거렸다.
“찾은 것 같습니다.”
“어디 봐요.”
단목예설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오행신주를 쳐다보았다. 전설을 따라 태산으로 오긴 왔지만, 그녀 역시도 확신하진 못하고 있었다.
‘전설이 진짜였을 줄이야…….’
백이건은 신이 준 선물이니 뭐니 하는 허황된 전설 따위는 믿지 않았는데, 이제는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즉시 오행신주를 따라 기슭의 깊은 데로 들어갔다. 문득 그들의 앞에 폭포가 나타났다. 오행신주는 폭포를 향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차앗!”
백이건이 단목예설을 안고 폭포 안으로 뛰어들었다.
폭포 뒤에는 커다란 동굴이 있었다. 세찬 물줄기에 동굴의 입구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동굴 안쪽에서 밝은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백이건과 단목예설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들처럼 멍한 표정으로 다가갔다. 순간 그들의 앞에 커다란 광장이 나타났다.
“음.”
“세상에…….”
백이건과 단목예설은 탄성을 터뜨렸다. 광장에는 다섯 개의 기둥이 있었다. 그중 네 개의 기둥은 비어 있었고, 하나의 기둥에만 구슬이 있었다. 아까 그들이 보았던 빛은 이 구슬에서 흘러나왔던 것인데, 천장에서 흘러들어오는 햇빛에 반사가 되어 신비로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백이건의 안색이 홱 변했다.
소름이 돋고 머리카락이 쭈뼛 일어설 정도로 가공할 기운이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선후인이 따라왔습니다.”
“아! 어느새 여기까지 따라왔을 줄이야…….”
“시간이 없습니다. 일단 신주를 가져오겠습니다.”
백이건이 몸을 날려 목행신주를 가지고 내려오려고 할 때였다.
“잠깐만요. 신주를 만지지 마세요.”
단목예설이 백이건을 막아섰다.
“기둥이 다섯 개가 있어요. 그리고 목행신주가 놓여 있고, 햇빛을 받아 신비한 빛을 발하고 있구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무래도 구슬을 기둥 위에 올려놓으라는 뜻인 것 같았다. 바로 그때, 선후인이 폭포를 뚫고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흐흐, 드디어 너희 연놈들을 찾았구나!”
그가 살기를 띠며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백이건은 더 이상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다시 한 번 단목예설의 말을 믿고 도박을 걸어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황급히 구슬을 각자의 방향에 올려놓았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동굴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요란하게 흔들리더니 갑자기 오행신주가 천장 높이까지 날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와 동시에 목행신주에서 시작된 빛이 나머지 신주들에게 흘러갔다. 그리고 마침내 중앙에 서 있던 백이건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백이건은 엄청난 힘이 무서운 속도로 밀려들어 오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있다가는 그대로 몸이 폭발해 버릴 것만 같았다.
“으아악!”
그의 눈과 입에서 강렬한 빛이 흘러나왔다. 선후인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천천히 다가오다가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바람처럼 몸을 날렸다.
“백이건, 당장 멈춰라!”
그가 장력을 휘둘러 백이건의 몸을 후려갈겼다. 순간, 그의 주먹이 백이건의 몸에 닿기도 전에 거대한 반탄지력에 밀려 뒤로 튕겨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그의 여의심공으로도 도저히 항거 불능이었다.
“컥!”
그의 신형이 십 장 뒤로 날아가 쿵 하고 바닥에 세차게 떨어졌다.
“으으, 이게 무슨 개 같은…….”
그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이건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그러고 보니 천장 위에서 이상한 빛을 내던 다섯 개의 구슬이 눈에 거슬렸다.
‘서, 설마 다섯 개의 구슬이라면?’
선후인이 그제야 오행신주의 전설을 떠올렸다. 그와 동시에 어쩌면 오이라트 부족에 들렀던 것이 단순히 자신과 그들 사이에 싸움을 붙이려던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백이건은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백이건의 눈동자에 금목수화토의 기운이 번갈아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건 곧 오행신주의 모든 힘이 백이건의 몸에 들어갔다는 뜻이었다.
‘전신에 힘이 넘쳐 난다. 마음만 먹으면 천 리 밖의 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 같고,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아갈 수도 있을 것 같구나!’
백이건은 자신이 신선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이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선후인이 비릿하게 웃었다.
“쥐새끼 같은 놈! 그동안 본좌를 잘도 속였구나!”
“후후! 죽을 자리를 알고 찾아온 그대의 잘못을 탓하시오.”
“흐흐, 그까짓 오행신주의 전설 따위…… 개나 줘 버려라.”
그는 애써 오행신주를 무시했다.
하지만, 방금 전에 느낀 반탄지력은 지금 생각해도 무시무시했다. 처음부터 여의심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리고 공간이형술로 제압하지 않으면 그가 당할 공산이 컸다.
“지긋지긋한 악연을 여기서 끊어 주마!”
차앗!
그가 백이건을 향해 몸을 날렸다.
허나, 중간쯤 가서 갑자기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바로 공간이형술이었다. 그나마 중간쯤에서 사라진 것도 잔상에 의한 착시현상이었다. 사실은 처음부터 그는 백이건의 옆쪽으로 돌아갔다.
그가 여의심공을 일으켜 주변의 기운을 끌어모았다. 그러고는 거대한 창을 만들고 백이건의 옆구리에 꽂아 넣었다.
‘관통했다.’
그의 손끝에 확실하게 느낌이 전해졌다. 이 정도면 피를 철철 흘리고 쓰러져야 정상이었다. 헌데, 백이건의 몸에서는 전혀 피가 나오지 않았다. 그제야 이상한 기운을 느낀 순간, 백이건의 신형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헉? 자, 잔상이다.”
선후인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이 튀어나왔다. 바로 자신의 수법이었다. 백이건은 그의 능력을 뛰어넘어 그의 눈까지 속여 버린 것이었다.
그때, 백이건이 그의 등 뒤에서 나타나 그의 등짝을 강하게 후려갈겼다.
펑!
“흐윽!”
선후인이 피를 토하며 비틀거렸다.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을 만큼 무지막지한 힘이었다. 그가 잔상을 확인하고 주변의 기운을 끌어모아 결계를 펼쳤지만, 백이건은 그 결계를 뚫고 들어왔던 것이다.
“으으, 지금 무슨 사술을 부린 것이냐?”
“오행신주의 기운이오. 오행신주는 천하의 기운을 담고 있으니, 내가 곧 천하의 기운이 아니겠소?”
“미친놈! 그게 지금 말이나 되는 소리냐?”
자신이 천하의 기운이란다.
천하에서 가장 심오한 무학인 여의심공도 그런 광오한 이치는 담을 수 없었다.
선후인은 입가를 쓱 닦은 다음 백이건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아까처럼 쉽게 당하지 않는다.”
그는 잔상을 만들어 놓고 백이건의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활을 만들어 멀리서 날려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가 활을 만들기도 전에 백이건이 팔을 뻗어 와 그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컥! 어, 어떻게…….”
선후인의 두 눈이 경악과 공포로 크게 흔들렸다. 인간의 육안으로는 식별하기조차 어려운 공간이형술이 너무도 쉽게 무너진 것이다.
“내가 이미 말하지 않았느냐? 내가 곧 천하의 기운이고, 천하의 기운이 곧 나라고.”
백이건이 선후인을 바닥에 패대기쳤다. 선후인은 온몸이 떨어져 나갈 듯한 충격에 빠졌다. 태어나서 이런 고통은 처음이었다.
“미, 믿을 수 없다. 이 몸은 누구도 연성하지 못한 여의심공을 익혔단 말이다!”
그는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백이건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공간이형술을 사용했다가 백이건의 근처에 가기도 전에 걸려들었다.
“켁!”
그의 몸이 다시금 바닥에 패대기쳐졌다.
“흐흐, 흐흐흐흐!”
선후인이 실성한 사람처럼 미친 듯이 웃어 댔다. 무기력한 상황에서 오는 절망감이었다. 그는 마치 거대한 호랑이 앞에 선 힘없는 토끼처럼 비참한 심정을 느꼈다. 미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닐 것이다.
백이건이 그에게 다가가 그의 가슴을 짓밟았다.
“원통하구나! 네놈을 몇 번이나 죽일 수 있었거늘…….”
“죽이지 않아 줘서 고맙구나. 보답으로 훗날 비석이라도 세워 주마!”
우드득!
백이건의 발이 단단하기 이를 데 없는 선후인의 몸을 두부 짓이기듯 으스러뜨려 버렸다.
“아, 안 돼!”
선후인은 절규했지만, 그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동굴 안을 울릴 뿐이었다.
인세에 다시없을 고금제일인, 선후인.
그와 동시에 천 년을 막후에서 천하를 움직여 왔던 은현장의 전설이 그렇게 절륜공자의 신화 앞에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