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equaled Scholar RAW novel - Chapter 75
4권 4화
三
“당주님, 이곳으로 와 보십시오.”
“무슨 일이냐?”
“이곳에서부터 마차의 발자국이 얕아지고 있습니다.”
“그래?”
콧수염 사내가 가까이 다가간 곳은 바로 백이건이 빈 마차를 출발시킨 그곳이었다. 그는 바닥을 자세히 살펴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확실히 마차의 바퀴 자국이 달랐다.
‘갑자기 무게가 줄어들었다는 소리인데…….’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차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무거운 짐을 버렸을 가능성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 몇 개의 물건들이 버려져 있는 것이 보였다.
‘흥, 얄팍한 수를 부렸군. 겨우 저런 것 몇 개로 마차가 이렇게 가벼워질 리 없다.’
이곳에서 무슨 꿍꿍이를 벌인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허나, 그게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얼핏 보면 마차의 무게를 줄이려고 물건을 버린 것처럼 보였지만, 이건 틀림없이 마차를 버리고 도망친 것이었다. 바닥에 남아 있는 마차 바퀴의 흔적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더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상식적으로 혹을 세 명씩이나 달고서 마차를 버리고 갔다는 건 어불성설. 무림의 경험이 조금이라도 있는 자라면 절대 이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당주님, 어찌해야 합니까?”
수하들이 콧수염 사내의 명령을 기다렸다. 마차의 흔적을 포기하고 주변 다른 곳을 찾으라고 하면 그렇게 할 심사였다.
콧수염 사내는 눈살을 찌푸렸다. 놈의 의도가 무엇이 되었건 일단 이곳에서 상당 부분 시간이 지체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흐흐, 제법 교활한 꾀를 냈지만, 마차를 버리고 도망친 것처럼 속이려는 냄새를 이미 맡았단 말이다.’
괜히 여기저기 물건들만 버린 셈이었다.
그는 즉시 마차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체된 만큼 더 서둘러야 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그들은 저 멀리 마차 한 대가 버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백이건이 탔던 사두마차였다. 네 마리 말들은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마차의 바퀴살이 몇 개씩 부러져 있었고, 마차 곳곳도 부서져 있었다. 어찌 보면 사두마차가 부서지는 바람에 버리고 간 것처럼 보였다.
허나, 이것 역시도 속임수일지 몰랐다. 자세히 보면 마차의 바퀴살은 일부러 뜯어낸 흔적이 보였다.
‘멍청한 놈! 어설퍼! 이런 어설픈 잔꾀로 감히 나를 속이려 들다니.’
콧수염 사내는 차갑게 웃었다.
지금까지 마차의 발자국은 계속 얕았고, 중간에 사람들이 타고 내린 흔적은 전혀 없었다. 처음부터 아무도 타지 않았다면 모든 것이 딱딱 들어맞았다.
하지만, 이걸 액면 그대로 믿으면 바보 천치일 것이다.
그는 백이건이 결코 마차를 버리고 도망칠 리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분명 마차는 채성룡 혼자 탔을 것이다. 백이건이 양옆으로 여인들을 안고 뒤따랐다면 마차의 바퀴자국은 충분히 설명이 되기 때문이었다.
“일단 마차 안을 조사해 보도록!”
버려진 마차가 분명해 보였지만, 사람이 숨어 있을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콧수염 사내의 명령이 떨어지자 몇 명의 수하들이 다가가 마차 문을 열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마차가 폭발을 일으켰다. 엄청난 폭발이었다. 사두마차는 순식간에 산산조각 나며 화염에 휩싸였고, 문을 열기 위해 다가갔던 자들 역시 바로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나뭇조각이 박혀 뒤로 튕겨져 나갔다.
폭발의 여운은 주변에 있던 자들에게까지 덮쳐 갔다. 사람들은 재빨리 바닥에 엎드려 비산하는 마차 파편을 피하거나 뒤로 몸을 날렸지만, 그러지 못한 자들도 있었다.
“크악!”
“으아악!”
처절한 비명이 평원을 뒤흔들었다.
주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신이 바닥을 나뒹굴었고, 온몸에 파편이 박혀 피가 철철 흘러내리는 자도 있었다.
‘으으, 이런 말도 안 되는…….’
콧수염 사내는 그나마 사두마차에서 떨어져 있어서 횡액을 모면하긴 했지만, 간담이 서늘해지는 순간이었다. 그가 조금만 마차 가까이 있었다면 그 역시 목숨을 장담하기 어려웠을 것이었다.
‘설마 놈이 화탄을 가지고 있었단 말인가?’
무림에서 화탄을 만들 수 있는 세력은 북리자령이 있는 백안문과 열양세가 두 곳뿐이었다.
북리자령은 무기 제조에 일가견이 있어서 지난 백 년 넘게 열양세가가 지배하고 있던 화탄의 세계를 단숨에 뒤집어 놓은 천재였다.
열양세가는 수백 년 동안 오직 화탄을 연구하고 제조해 온 곳.
그들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북리자령은 당금 천하에서 가장 지혜롭고 똑똑한 여인으로 통하고 있었다.
열양세가는 세가의 명운을 걸고 더 위력이 강한 화탄을 개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북리자령의 능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위력만 놓고 보면 결코 열양세가의 화탄 못지않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었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지옥도를 방불케 했다.
폭발로 인해 죽은 자들이 다섯 명이었고, 부상자는 일곱 명이 넘었다. 순식간에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전력에서 이탈하는 순간이었다.
열양세가의 화탄이라 해도 무림 고수들을 단숨에 이렇게까지 살상하긴 어려웠다.
‘역시 삼왕야가 맡긴 무기 설계도란 말인가?’
콧수염 사내의 생각은 어느새 무기 설계도로 넘어갔다. 그것이 아니고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삼왕야가 천하의 장인들을 모두 모아 몇 년 동안 연구한 것이니 그 위력이 북리자령이나 열양세가의 화탄에 못지않을 것이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화탄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북리자령이나 열양세가 모두 화탄의 제조법은 극비에 부치고 있어서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때문에 무림에서 화탄을 사용하는 자는 백안문 아니면 열양세가의 제자라고 봐야 옳다.
물론 왕부에서도 화기를 구할 수 있었다. 허나, 그건 군부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대부분 화포에 사용되는 것이었으며, 그 위력이 북리자령이나 열양세가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래서 더 대단한 일이었다.
만에 하나 백이건이 사용한 화탄이 삼왕야가 건네준 것이라면 무서운 일이었다. 삼왕야는 군부의 무기를 몇 단계나 높이 끌어올린 게 틀림없었다.
‘처음부터 삼왕야의 무기 설계도를 생각하지 못한 것이 실수다.’
콧수염 사내는 뒤늦게 후회했다.
백이건은 처음부터 이걸 노리고 그들을 유인했던 것이었다. 물건들을 버렸던 것이며, 마차의 바퀴자국이 얕아진 것, 그리고 바퀴살과 마차 곳곳을 부순 것 역시도 철저히 그들을 속이기 위한 것이었다.
콧수염 사내는 백이건에게 농락당한 걸 깨닫고 견딜 수가 없었다. 이렇게 철저하게 농락을 당한 건 처음 겪는 일이었다.
하지만 화탄의 위력을 보았으니 반드시 무기 설계도를 빼앗고 볼 일이었다.
‘으으, 교활한 새끼! 네놈을 죽이지 않으면 내 사람이 아니다.’
四
초경 무렵!
해가 지고 어느새 주변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백이건은 채성룡이 누워 있는 들것을 끌고 평원을 횡단하고 있었다. 그의 옆으로 채수연과 진소희가 뒤따르고 있었다. 그녀들은 다리가 아파서 절뚝절뚝 걷고 있었다.
그녀들은 평생 이렇게 많이 걸어 본 적도 없는 데다, 지금까지 백이건은 단 한 번도 쉰 적이 없었다. 그녀들은 다리가 퉁퉁 붓고 발바닥은 물집이 잡혀서 제대로 걷기도 어려운 상태였지만,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아앗!”
갑자기 진소희가 비명과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백이건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괜찮습니까, 소저?”
“저, 저는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어서 가요.”
그녀는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지만, 마음뿐이었다. 그녀는 일어서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응?’
백이건이 그녀의 신발을 벗겨 냈다. 그녀의 발바닥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물집이 터지고 살갗이 벗겨져서 보기에도 끔찍했다.
백이건은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상태가 이 지경인데도 아무 내색 하지 않고 따라온 것이 기적일 정도였다.
‘더 이상 걷는 건 무리다.’
백이건은 눈살을 찌푸렸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환자는 채성룡 한 명으로도 벅찬 상황이었다. 헌데, 진소희까지 환자가 되었으니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이렇게 되면 움직이는 속도가 더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갈수록 태산이라고 했던가?
채성룡은 지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백이건이 그의 수혈을 찍어서 잠이 든 것이었다.
백이건은 그의 몸이 흔들리지 않게 끈으로 단단히 묶어 놓았지만, 들것이 한 번씩 흔들릴 때가 있었다. 돌멩이나 풀 같은 것에 걸리면 어쩔 수 없었다. 그때마다 채성룡은 끔찍한 고통을 겪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채성룡은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았다. 그러다 들것에 누워 이동하는 거리가 늘어나면서 점점 부상이 심해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끝까지 내색하지 않고 괜찮은 척했던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채성룡은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가 마음을 고쳐먹었다면 다들 이렇게까지 고생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나라의 운명을 생각하면 하남 철가장으로 가는 걸 포기할 수 없었다. 하물며 그는 들것에 누워 편하게 가고 있지 않던가?
그는 아무리 아프고 고통스럽다고 해도 표시를 낼 순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 실수로 신음을 흘렸는데, 그제야 백이건이 그의 상세를 눈치채고는 수혈을 찍어 고통을 덜어 준 것이었다.
갈비뼈는 부러졌다고 수술을 해서 고치진 않는다. 그저 자연 치유되도록 놔두고 다친 곳에 부목을 대서 뼈가 흔들리지 않도록 해 주는 것이 전부였다.
백이건은 의학 서적을 읽고 연구해서 어느 정도 의술에 대해 알고 있었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더 문제였다.
지금은 상황이 좋지 못했다. 주변에는 부목으로 쓸 것도 여의치 않은 데다, 들것에 타고 있어서 계속 몸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러면 상처가 더 악화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부러진 뼈가 폐를 찌르기라도 하면 돌이킬 수 없었게 된다.
휴!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이곳에서 조금 쉬었다가 가죠.”
그는 자신의 소매를 길게 찢어 진소희의 발바닥을 단단히 묶어 주었다. 지금 할 수 있는 응급처치는 최소한 고통이 느껴지지 않게 상처 부위를 싸매 주는 것밖에 없었다.
“하, 하지만…….”
진소희의 얼굴은 미안한 기색으로 가득했다. 자신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었다가 적들이 덮치기라도 하는 날엔 미안해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저는 정말 괜찮아요. 얼마든지 걸을 수 있어요.”
진소희는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나 몇 걸음 내디뎠다. 그때마다 그녀의 얼굴은 고통으로 인해 잔뜩 일그러졌다.
백이건이 고개를 흔들었다.
“진 소저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조금 쉴 수 있는 시간은 있으니까요.”
진소희가 이렇게 빨리 발에 물집이 잡힐 줄은 몰랐었다. 확실히 그의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채수연의 상태 역시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녀도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진소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구중심처에서 곱게 자라 온 여인들이란 건가?’
어쩌면 처음부터 마차를 버린 게 무리한 생각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사두마차를 버리지 않았어도 평원을 벗어나기 전에 적들에게 따라잡혔을 것이었다. 적들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서는 마차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 시간까지 적들이 쫓아오지 않는 것을 보면 자신의 계획이 성공한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시간을 벌었을 테지.’
일단은 그것으로 만족이었다.
하지만 마냥 안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정상적이라면 반나절 정도의 시간을 벌었겠지만, 채수연과 진소희의 걸음이 그리 빠르지 못했다.
더구나 채성룡의 상세도 생각해야 하기에 조심해서 움직여야 했다.
모든 악재가 한꺼번에 덮쳐 온 기분이었다.
백이건은 적과는 물론이고, 돌발 변수와도 싸우고 있었다.
백이건은 적들의 추격을 생각해서 어느 정도 이동하면 뒤로 돌아가서 자신들의 흔적을 지웠다가 다시 돌아와서 움직이곤 했었다.
허나, 그것만으로 적들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분명 빠른 시간 안에 쫓아올 것이다.’
마차 폭발 사건으로 인해 잔뜩 독이 올라 있을 터.
그들은 무슨 잔혹한 짓이든 서슴없이 자행하고도 남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