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equaled Scholar RAW novel - Chapter 88
4권 17화
三
하하호호!
정자 안에서 젊은 남녀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취선정이라는 곳으로, 철가장에서 가장 경치가 빼어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취선정 주변은 울창한 숲이었다. 철가장 안에 숲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앙에 커다란 호수가 있었다. 호수 위로는 취선정과 연결된 기다란 구름다리가 놓여 있었다.
채수연과 진소희는 아까부터 자신들이 신선들의 세계에 들어선 것처럼 경치에 취해 있었다.
그녀들은 어제 약속했던 대로 조일관, 조일중 형제와 대장간을 구경했다. 그때가 유시 무렵이었다.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조일관, 조일중 형제는 한 달에 한두 번 친구들과 모임을 갖는다며 그녀들을 취선정으로 초대했다.
채수연과 진소희는 처음엔 시간이 늦어 거절했지만, 조일관과 조일중 형제가 간청하는 바람에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채수연과 진소희가 취선정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십여 명의 남녀가 기다리고 있었고, 정자 안에는 만찬이 차려져 있었다. 십여 명의 남녀가 그녀들을 따듯하게 맞아 주었다.
“두 분의 소문은 귀가 따갑게 들었습니다.”
“삼왕야의 부탁으로 목숨을 걸고 무기 설계도를 가지고 오셨다구요.”
“정말 감탄했습니다. 이 나라와 백성을 대신해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우, 우리는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
“정작 칭찬을 받을 사람은 따로 있는걸요.”
채수연과 진소희는 당황한 나머지 몸 둘 바를 몰랐다.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예가 지나치면 비례라 했습니다. 아무나 목숨을 걸고 약속을 지키는 건 아니지요.”
“더구나 이번 일은 나라의 명운이 걸린 일이 아닙니까?”
사람들은 황실을 걱정했다. 지금 나라 안팎이 어지러운 상태였다. 안으로는 간신배들과 탐관오리들이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있었고, 밖으로는 북원과 건주여진이 호시탐탐 대명제국을 노리고 있었다.
분위기가 사뭇 무거워졌다.
조일관이 헛기침을 하고 제법 아름답게 생긴 이십대 초반의 여인을 향해 말했다.
“장 소저는 이번에 서역담당부의 조장으로 승진하셨다면서요?”
“단주가 된 것도 아닌데 그게 무슨 축하받을 일인가요?”
“핫핫! 정주상단을 물려받을 사람은 장 소저밖에 없는데 무슨 걱정입니까?”
“나보다는 유 공자님이 축하를 받아야죠. 이번에 등주현의 현령이 되었으니까요.”
유청기는 깡마른 체격에 키가 작은 사내였다.
“장 소저, 소생을 놀리지 마십시오. 겨우 일천 호밖에 안 되는 조그만 마을의 현령을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이력을 쌓기에는 거기보다 더 좋은 곳도 없죠. 사건 사고가 적어서 초임 관리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이죠. 유 공자님의 아버님께서 꽤 힘을 쓰신 것 같던데, 아닌가요?”
“험험! 장 소저의 눈은 속일 수가 없군요. 그나저나 곡 형께서 한림원에 들어가셨다는데, 그게 정말입니까?”
유청기는 어색한 표정으로 화제를 옮겼다. 이번에는 안색이 창백하고 유약하게 생긴 청년에게 시선이 쏠렸다.
그의 이름은 곡추량!
정주지부의 아들이었고, 그 학식이 대단해서 어려서부터 천재로 불리던 자였다. 사람들은 유청기의 말에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헛헛! 곡 형! 축하드립니다.”
“그렇게 좋은 소식이 있었으면 진작 말씀을 하셨어야지요.”
“그리 내세울 만한 것은 아닙니다. 아버님의 추천이 있어서 간신히 들어갔을 뿐이니까요.”
“쯧쯧, 곡 형은 너무 겸손해서 탈이오.”
“누가 아니랍니까? 곡 형의 학문이야 세상이 다 알아주지 않습니까? 곡 형의 능력이라면 조만간 한림원 최고의 학자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때 우리를 잊으면 안 됩니다.”
“다들 소생을 놀리시깁니까?”
하하!
호호!
사람들은 신나게 웃고 떠들었다.
조일관, 조일중 형제가 채수연과 진소희에게 사람들을 일일이 소개해 주었다.
그들은 다들 힘깨나 쓰는 귀한 집안의 자제들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가문의 위세만 믿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저마다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조만간 이들이 정주의 정관계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이 모임의 이름은 와룡회입니다. 처음에는 다섯 명으로 시작을 했다가 지금은 열 명이 넘게 되었지요.”
많은 사람들이 와룡회에 들어오고 싶어 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만 사귀어도 신분이 상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허나, 모임에는 아무나 들어올 수 없었다. 집안과 배경이 든든하지 못하면 아무리 똑똑하고 잘났어도 근처에 오는 것조차 힘들었다.
모임은 조일관과 조일중 형제가 주도해서 이끌었다. 애초에 모임을 만든 사람이 이들 형제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하남 철가장의 위세가 다른 모든 가문을 압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사람들은 경제에 대해서 대화도 했다가 정치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고, 학문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는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조일관과 조일중 형제는 경제면 경제, 정치면 정치, 학문이면 학문, 어느 하나도 빠지지 않았다. 특히, 유청기와 곡추량과 대화가 될 정도로 학문에도 조예가 뛰어났다.
“헛헛! 자네들은 무기만 만드는 줄 알았더니 언제 그렇게 공부를 했단 말인가?”
“이거야 원, 한림원은 내가 들어갈 것이 아니라 자네들이 가야겠네.”
유청기와 곡추량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조일관 형제를 칭찬했다.
조일관과 조일중 형제는 얼굴을 붉히며 두 팔을 내저었다. 그 모습이 칭찬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허나, 그들의 눈빛은 지금 교활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랬다.
이 모든 것이 조일관과 조일중 형제가 사전에 부탁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원래 와룡회의 모임은 진짜였고, 유청기가 현령이 된 것과 곡추량이 한림원에 들어간 것도 모두 사실이었다.
허나, 그들은 이렇게 건설적인 대화만 하지는 않았다. 모이면 술도 마시고 마작도 했다가 아편을 하기도 했다. 심한 경우는 평소 눈에 거슬리는 자들을 손봐 주기도 했다.
여자의 마음을 훔치려면 이것보다 더 좋은 것도 없다.
좋은 친구들과 훌륭한 모임, 그리고 넓고 깊은 학식까지. 여자라면 이런 분위기에 넘어오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터였다.
‘흐흐, 오늘 밤 네년들은 우리 밑에 깔려 밤새도록 요분질을 하게 될 것이다.’
조일관과 조일중 형제의 눈빛이 교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지루해서 견디기 어려운 것을 가까스로 참고 있었다. 아마 조일관, 조일중 형제가 부탁하지 않았다면 벌써 집에 돌아갔을 것이었다.
‘채수연과 진소희, 확실히 아름다운 계집들이군.’
‘나였어도 두 계집을 차지하기 위해 이런 부탁을 했을 것이다.’
쩝!
사람들은 채수연과 진소희를 보고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그들 역시 그녀들의 육체가 탐이 나긴 했지만, 조일관, 조일중 형제와 마찰을 빚는 것은 원치 않았다.
장혜림을 비롯해서 몇몇 여인들의 두 눈은 질투심에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그녀들은 남자들이 채수연과 진소희를 바라보는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채수연과 진소희는 같은 여자가 봐도 아름다웠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익숙하지 않았다. 그녀들은 어딜 가든 남자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아 왔었다. 제법 반반한 외모 때문이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그녀들의 가문이 정주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대단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채수연과 진소희의 얼굴을 손톱으로 박박 긁어 놓고 싶었다. 하지만 정주에서는 조일관과 조일중 형제의 부탁을 외면하고 편히 지내기 어려웠다.
그녀들은 부탁받은 대로 채수연과 진소희를 대화에 끌어들이기 위해 금, 기, 시, 서, 화를 물어보았다.
금, 기, 시, 서, 화는 주로 여자들이 하는 것으로, 어색한 분위기에서 이것처럼 대화에 끌어들이기 쉬운 화제도 없었다.
허나, 조일관과 조일중의 계획은 따로 있었다. 그들은 금, 기, 시, 서, 화에 끼어들어 채수연과 진소희 앞에서 퉁소를 불고 금을 뜯으며 실력을 뽐내고 싶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최후의 계획이었다.
여자들은 음악에 가장 약한 법.
채수연과 진소희에게 자신들의 모습을 확실하게 각인시킬 절호의 기회였다.
분위기는 조일관 형제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채수연과 진소희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녀들은 그저 순진한 표정으로 장혜림 등 여인들의 수법에 말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흐흐, 그럼 서서히 우리가 끼어들어 볼까?’
조일관, 조일중 형제가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여인들의 대화에 끼어들려는 찰나였다.
문득 누군가가 구름다리를 건너 정자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상당히 준수하게 생긴 약관의 청년이었다. 청년의 얼굴에서는 은은한 광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로 인해 신비한 기운마저 일었다.
‘어떤 놈이지?’
조일관과 조일중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은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채수연과 진소희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건아!”
“공자님!”
그랬다.
정자 안에 들어선 사람은 바로 백이건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