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leashed and Talent Explosion RAW novel - Chapter 29
방출되고 재능폭발 29화
메이저리그 무대.
야구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곳이었다.
그곳에 처음 선다면 긴장하는 게 당연했다.
최소한 가디언스의 투수코치, 올리버가 봐온 선수 중 대다수는 그러했다.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이다. 누구나 중요한 무대, 많은 사람의 앞에서 긴장하고 본래의 실력을 온전히 내지 못하는 게 일반적이다.’
메이저리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일을 앞두고 실수를 저지르는 일은 허다했다.
그런 부분을 알기에 그는 정우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긴장하지 말고 평소대로 던지면 돼. 지금 네가 서 있는 무대가 메이저리그가 아니라 연습경기 정도라고 생각하면 긴장을 덜 할 수 있을 거야.”
처음 메이저리그 무대에 서는 선수에게 항상 해주는 말이다.
물론 그 말이 모두에게 닿는 건 아니었다.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방식은 다르니까.
“예!”
정우는 힘차게 대답했다.
그 목소리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표정에서도 긴장한 티가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더그아웃으로 걸음을 옮기면서도 마운드를 힐끔거렸다.
침착하게 준비를 해나가는 정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렇게 침착한 녀석은 오랜만에 보는군.’
첫 무대에서도 침착한 선수가 없었던 건 아니다.
‘처음부터 자신의 공을 던질 수 있는 녀석들은 모두 괴물이 되었지. 과연 너도 그럴 수 있을까?’
기대됐다.
단기간에 마이너리그를 패스하고 올라온 정우가 어떤 공을 던질지.
그리고 그건 그의 생각만이 아니었다.
“어땠어?”
더그아웃으로 돌아오자 가디언스의 감독인 로버트가 물었다.
“긴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 본인의 공을 던질 수 있을 걸로 보입니다.”
“단장이 이상한 녀석을 올린 건 아닌가 보군.”
메이저리그의 시스템은 한국과 달랐다.
한국에선 선수단을 꾸리는 데 있어 감독의 영향이 더 컸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단장이 선수단을 꾸리고 감독이 경기를 운영한다.
선수의 트레이드나 마이너리그 메이저리그의 이동은 감독에겐 권한이 없었다.
오직 단장의 의사로 결정된다.
물론 관계가 나쁘지 않을 경우 감독의 의사가 어느 정도 포함되지만, 기본적으론 단장의 의사로 선수단이 꾸려진다.
‘경험도 부족한 루키가 올라와서 단장이 내 의견을 무시했나 싶었는데.’
로버트는 말없이 정우의 피칭을 지켜봤다.
* * *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섰지만, 정우는 긴장하지 않았다.
4만 명이 넘는 관중이 지켜보고 있지만, 떨리지 않았다.
그 이유는 너무나 간단했다.
‘멋있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정우의 머릿속에는 오직 소연이밖에 없었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공을 던질 수 있는 자리에 오기까지 무려 10년이나 걸렸어.’
18살.
야구부의 에이스로 팀을 지역대회 결승까지 올려두었다.
개교 이래 최초의 일이었기에 학교에서는 단체응원을 나왔다.
응원단에는 소연이도 있었다.
정우는 그 경기에서 9이닝 완봉승을 거두며 팀을 전국대회로 이끌었다.
그 모습에 반한 소연이가 고백하며 사귀게 되었다.
하지만 이후 정우는 소연이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없었다.
‘소연이는 언제나 멋지다고, 잘했다고 해주었지만…….’
남자로서 정우는 욕심이 있었다.
점점 퇴보하는 자신의 능력에 그 욕심은 마음 깊숙한 곳에 잠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세계 최고의 무대에 섰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소연이가 이 자리에 있었다.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후우……!”
덕분에 정우의 집중력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야구의 신에서 라스베가스 가디언스와 상대하던 순간보다.
레이의 앞에서 첫 테스트를 받던 순간보다.
스프링캠프에서 첫 실전투구를 하던 순간보다.
지금이 가장 높은 집중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웃코스.’
포수의 사인에 고개를 끄덕였다.
와인드업에 이어 공을 던졌다.
쐐애애애액-!!
공은 정확히 바깥쪽으로 형성됐다.
코스는 다소 높았다.
그것을 확인한 타자가 발을 내디디며 몸을 회전시켰다.
후웅!!
배트가 대기를 가르며 돌아갔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묵직했다.
맞는 순간 넘어갈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정우의 손을 떠난 공은 배트의 위를 지나 그대로 미트에 꽂혔다.
부앙!!
뻐어억!!
“스윙! 스트라이크!”
헛스윙이 나왔다.
타자는 미트의 위치를 확인하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중간까지 궤적은 일치했는데. 어째서 헛스윙이 된 거지?’
중간까지만 하더라도 히트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는 헛스윙.
‘브레이킹볼은 아니었던 거 같은데.’
이상한 공이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는 그런 이상한 걸 던지는 녀석들이 많았다.
‘익숙해지면 된다.’
다시 타격 자세를 잡았다.
이번에는 집중력을 더욱 끌어올려 저 루키의 공을 지켜봤다.
쐐애애액-!!
이번에는 몸쪽 코스를 노리고 찔러왔다.
때리기 좋은 위치였기에 반사적으로 배트를 돌렸다.
배트의 궤적이 공의 궤적과 일치하고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날려 보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궤적이 어긋나는 게 보였다.
‘떨어지지 않는다.’
그것을 간파했지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부웅!!
뻐어억!!
“스윙! 스트라이크 투!!”
두 번째도 헛스윙.
하지만 이걸로 확실해졌다.
‘공이 덜 떨어진다.’
장갑을 고쳐 착용하면서 시간을 끌며 생각을 정리했다.
‘수직무브먼트가 좋은 투수다. 거기에 구속도 95마일 부근에 형성되고 있어. 무엇보다 존에 공을 집어넣을 수 있는 배짱도 있다.’
상대가 루키라는 생각을 버렸다.
‘메이저리그에 이 정도 공을 던지는 투수가 없는 것도 아니다. 충분히 때릴 수 있는 공이야.’
95마일은 메이저리그에서 빠르지 않다.
100마일을 던지는 녀석들도 수두룩하다.
그리고 녀석들의 수직무브먼트는 이보다 더 뛰어나면 뛰어났지, 덜하진 않았다.
그렇기에 저 공을 때릴 자신이 있었다.
‘와라.’
준비를 끝냈다.
녀석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무게중심을 낮추고 발을 내디뎠다.
뒤이어 몸을 회전시켰다.
여전히 손이 보이지 않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릴리스포인트에서는 손이 드러날 테니까.
상체가 앞으로 숙여지고 팔이 릴리스포인트에 도달하는 게 보였다.
이전과 같은 위치에서 공이 쏘아졌다.
쐐애애애액-!!
공이 날아오는 궤적 역시 이전과 같았다.
몸쪽으로 붙어오는 패스트볼이다.
타닥!!
‘이번에는……!’
발을 내디디고 하체를 회전시켰다.
부웅!!
‘때린다!’
뒤이어 상체가 돌아가면서 배트가 회전했다.
이번에야말로 공을 때릴 수 있다.
그렇게 판단한 순간.
의아한 게 있었다.
‘왜 공이 저기에 있지?’
배트는 1/3쯤 돌아간 상태였다.
그런데 공은 아직 저 멀리 있었다.
배트가 홈플레이트 위를 지날 때에도 공은 여전히 히팅포인트에 도달하지 않았다.
그 결과.
부앙!!
배트가 허공을 가르고.
퍽!!
공이 미트에 들어갔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와아아아아!!”
“프랑코를 삼진으로 잡았다!!”
“저 루키 녀석 뭐야?!!”
관중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 * *
김명국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프랑코를 삼구삼진으로 잡았다고?’
놀라는 그에게 이하연이 물었다.
“헥터 프랑코라면 작년에 MVP 투표에서 3위에 오른 선수 아니에요?”
“맞아. 작년에만 48개의 홈런을 때려낸 괴물이지. 올해는 작년 정도는 아니지만 30홈런을 넘어섰고.”
“와……. 한정우 선수 대단하네요. 그런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다니.”
“삼진을 잡은 것도 대단했지만, 내용도 완벽했어. 바깥쪽과 몸쪽을 찌른 공들이 각각 94마일과 95마일이 찍히더니 마지막에 던진 체인지업은 83마일로 들어오니 타이밍을 잡을 수 없었겠지.”
구속 차이가 무려 12마일이나 났다.
“거기다 디셉션도 좋았던 거 같아. 프랑코는 분명 패스트볼 타이밍에 맞춰 돌렸어. 한마디로 한정우가 던진 체인지업이 프랑코의 입장에선 패스트볼처럼 보였다는 소리겠지.”
변화구에서 가장 어려운 건 패스트볼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만약 그걸 해내지 못한다면 실전에서 던지더라도 타자가 알아채서 공략당하기 일쑤였다.
하물며 괴물들이 즐비한 메이저리그에서는 좋은 먹잇감이 될 뿐이었다.
“1년 사이에 구속이 상승하고 거기에 이어 주무기로 쓸 수 있는 변화구까지 장착하다니…….”
한정우의 잠재력은 상식을 벗어나고 있었다.
“음……. 그러니까, 한정우 선수가 개쩐다는 거네요?”
이하연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개쩌는 거지.”
단순무식한 요약.
하지만 그 말만큼 절묘한 건 없었다.
* * *
첫 번째 아웃카운트를 올린 정우가 몸을 돌려 로진백을 집었다.
그리고 외야의 관중석을 바라봤다.
수없이 많은 관중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딱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좋아하고 있어.’
표정까진 보이지 않았지만, 양팔을 휘저으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소연이었다.
‘잘 보고 있어야 해.’
그녀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자 자신감이 더욱 치솟았다.
로진백을 떨어뜨리고 다시 피처플레이트를 밟은 정우가 두 번째 타자를 맞이했다.
‘인코스.’
사인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 공을 던졌다.
“흡!!”
쐐애애애액-!!
이번에는 타자가 반응하지 않았다.
프랑코의 말이 있었기에 일단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공의 궤적을 확인했다.
뻐억-!!
“스트라이크!!”
구심이 스트라이크 콜을 외쳤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확실히 공이 더 뻗어서 들어온다. 거기다 95마일치고는 공이 도착하는 시간도 생각보다 빨라.’
익스텐션의 효과였다.
여기에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서는 평소보다 일찍 스타트를 걸어야 했다.
“흡!!”
쐐애애액-!!
2구가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바깥쪽이었다.
볼카운트가 몰리면 골치 아프기에 이걸 노리고 배트를 돌렸다.
하지만 그건 상대 역시 알고 있었다는 듯 공이 다가오지 않았다.
‘체인지업……!’
프랑코가 경고했던 체인지업이란 걸 떠올렸을 때는 이미 선택을 되돌리기에는 늦었다.
부웅!!
퍽!
“스윙! 스트라이크 투!!”
‘젠장……. 프랑코의 이야기대로 정말 패스트볼처럼 날아오다가 멈추네.’
골치 아픈 공이었다.
거기에 볼카운트까지 몰렸다.
이제 어떻게든 대응하는 쪽으로 바꿔야 했다.
하지만 그 생각을 가디언스의 주전포수, 코빈이 모를 리 없었다.
‘하이 패스트볼.’
사인을 받은 정우가 전력을 다해 3구를 뿌렸다.
쐐애애액-!!
후웅!!
뻐어억-!!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97마일.
오늘 최고구속의 공이 미트에 꽂히며 배트가 헛돌았다.
두 개의 아웃카운트 모두 삼구삼진으로 잡아낸 정우를 바라보며 코빈은 생각했다.
‘이 녀석 공을 던지는데 망설임이란 게 없네. 진짜 메이저리그 데뷔전 맞는 거야?’
메이저리그 경력 11년 차.
그동안 다양한 투수와 호흡을 맞추었고 그들의 시작을 함께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우만큼이나 공을 던지는데 망설임이 없는 투수는 처음이었다.
‘재밌는 녀석이 올라왔네.’
자신이 요구한 곳을 향해 전력으로 던져대는 녀석을 리드할 맛이 났다.
‘인코스.’
쐐애애액-!
딱!!
“파울!!”
세 번째 타자가 처음으로 공을 건드렸다.
하지만 타이밍이 완벽하게 어긋났다.
조심할 필요는 없었다.
‘아웃코스.’
쐐애애애액-!!
뻐어억!
“스트라이크! 투!!”
두 번째 공에는 반응을 하지 못했다.
예상이 맞았다는 소리다.
여기에서 이제 선택지가 여러 개로 갈린다.
공을 빼서 스윙을 유도해도 되고 승부를 들어가도 된다.
구종 역시 패스트볼, 체인지업.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기세가 올랐을 때 끝내는 게 좋겠지.’
결정을 내린 코빈이 손을 움직였다.
정우는 이번에도 바로 고개를 끄덕이고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3구를 뿌렸다.
“흡!!”
쐐애애애액-!!
정우의 손을 떠난 공이 맹렬하게 날아 그대로 타자의 몸쪽을 찔렀다.
뻐어어억-!!
타자가 미처 반응하지 못한 채 공이 지나갔다.
미트에 꽂힌 공이 굉음을 토해내고 뒤이어 구심이 요란한 몸짓과 함께 콜을 외쳤다.
“스트라이이이잌!! 배터 아웃!!”
세 번째 삼구삼진이 나왔다.
* * *
1이닝 9구 3탈삼진.
이 기록은 메이저리그의 긴 역사에서도 고작 119번밖에 나오지 않은 진기록이었다.
“설마 이런 기록을 세울 줄이야……!”
“그렇게 대단한 기록이에요?”
“대단하지! 하지만 더 대단한 건 그가 루키 시즌에 퍼펙트 이닝을 만들어낸 거야.”
김명국은 흥분했다.
한국에서는 퍼펙트이닝 미국에서는 Immaculate Inning이라 불리는 이 기록을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 기록이었다.
거기다가 루키 시즌에 이 기록을 달성하다니.
“지금까지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이 기록을 루키시즌에 달성한 건 단 3명밖에 없었어. 그중에 한 명이 전설 샌디 쿠팩스고.”
“와……. 정말 쩌는 기록이네요. 그런데 다른 세 명도 데뷔전에서 세운 거예요?”
“어……?”
“오늘 한정우 선수는 데뷔전이었잖아요.”
“그렇지. 그걸 잊고 있었어. 그럼 메이저리그 최초의 기록이야…….”
기나긴 메이저리그 역사속에서 최초의 기록이 나왔다.
당연히 클럽하우스는 기자들로 붐비고 있었다.
뒤늦게 그 인파에 끼어든 김명국이었지만,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젠장! 도대체 이 루키는 어디 간 거야?”
“아니, 경기 끝나자마자 바로 온 건데. 그사이에 어디로 사라진 거지?”
“헤이! 데이빗!! 기록을 세운 루키가 어디로 간 건지 몰라?”
기록을 세운 정우가 사라진 것이다.
이 황당한 일에 김명국과 기자들이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주인공인 정우는 소연과 함께 있었다.
관중들이 쏟아지고 있는 복도에서 그녀를 껴안은 정우가 물었다.
“오빠 어땠어?”
“울 오빠가 세상에서 제일 멋지더라!”
소연의 말에 세상을 모두 얻은 거 같은 미소를 지은 정우가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휘유~ 뜨겁네 뜨거워.”
“헤이~ 애정행각은 집에 가서 하라고!”
“어? 그런데 저 사람 아까 마운드에서 공 던진 투수 아니야?”
“바보냐? 선수가 왜 여기에 있겠어!”
“하긴 그것도 그런가?”
주위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지만, 정우는 신경 쓰지 않은 채 이 기쁨을 소연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