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274)
“비, 피비가 내리다니. 피비가. 이건 말도 안 돼. 안 되는 일이 일어났어.”
티티제가 구석에 처박혀 중얼거렸다.
[마커스, 쟤 왜 저래?]-피비가 충격이었나 봐.
[그건 나도 충격이었어.] [그게 다 피는 아니었잖아. 그냥 피가 살짝 섞인 그런 비였지.] [그게 피비잖아.] [그런가? 그런데 왜 피비가 내린 거지? 용사님, 그때 피비가 내리고 나서 어떻게 됐어요?]카이가 용사님을 소환했다.
피비가 내리자마자 나는 거둬들였던 수호방패와 드래곤 방패를 펼쳤다.
마침 벨라가 오면서 우리를 동굴로 끌고 갔다.
우리는 동굴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시뻘건 비가 주르륵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이미 유리아가 피비에 스며든 마기를 제거했기 때문에 마기 피해는 없었다.
그냥 붉은색 피가 땅을 적시고 있는 게 기분이 나쁠 뿐.
[삭았지. 무구가 모조리 망가졌다. 철모는 구멍이 숭숭 뚫렸고, 그러나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람 역시 철모 꼴이 났으니까.]-철모라면 사람 머리도 구멍이 났다는 거예요?
마기가 사람 머리를 뚫는다는 소린 처음 들었다.
[그런 셈이지. 피비를 맞은 사람들은 그길로 모든 걸 망각했으니까.]-망각이라니요? 설마 머리가 백지가 되었다는 소리예요?
[그건 아니다. 단지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기억을 못 한다는 거지. 아마 내일이면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거다.]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건가?
너무 충격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집단 전체가 그랬다는 건 수상한데?
[차라리 기억이 지워진 게 나았지. 만약 그들이 그 상황을 기억했다면 집단 혼란에 빠졌을 거다.]-무슨 일 있었어요?
물어보면서도 싸한 느낌이 있었다.
[서로를 죽였지. 보이기만 하면 죽였다. 산 사람을 세는 게 빠를 정도로 사망자가 속출했다. 피비가 내린 도시는 폐허로 변했다.]집단 세뇌에 걸린 거로군.
-그런데 용사님, 저 비가 사람은 죽이지 않았나요? 그러니까 마기 중독은 일어나지 않았냐, 그거죠.
마기 중독이 발생했다면 사람들이 돌아다니며 살인을 저지를 상황이 아니었을 거다.
고통에 괴로워하는 것조차 힘들 텐데.
-그렇죠?
[그래서 마신이 무서운 거지. 그놈은 자신 뜻대로 인간을 조종했다. 마기가 필요하면 사람을 즉시 죽여 마기를 뽑았지. 그 피비 사건은 우리에게 보여 준 경고였다.]-경고라니요?
[우리 용사들도 언제든지 서로를 죽일 수 있다는 것. 마신은 우리에게 의심과 불안함을 안겨 주려고 안간힘을 썼지. 비라는 건 우리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그, 피비 사건이 언제 일어났어요?
[마밸리 전투 이전이었다. 한창 우리 용사들이 활약했을 때였지.]-마신은 용사들의 힘을 꺾을 생각이었어요. 마신은 용사님들이 두려웠던 거죠. 처음 피비 사건이 일어났을 땐,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는 이유를 몰랐을 거 아니에요?
싹수가 보이는 놈은 미리 짓밟아야 한다. 그래야 기어오르지 않지.
상황을 보니, 마신은 자신을 추격하는 인간들이 두려워한 게 틀림없다.
[음, 일리 있다. 그날 이후, 용사들이 동요했지. 내가 동료를 죽일 수도 있고, 동료가 나를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용사님은 잠시 말이 없으셨다. 아마 그때를 회상하고 있을 테지.
[그때, 그런 불안감을 없애 준 이가 바로 호헨 베이크, 그였다. 그땐, 우리는 그를 영웅이라 불렀지.]-어떻게요?
마물이 티티제를 찾아간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 같았다.
[그가 피비를 맞으면 세뇌를 당한다는 걸 밝혔지, 그리고 그걸 막을 방법을 말해 줬다.]역시, 짐작한 대로군.
-그 방법이 뭐예요?
[드래곤 비늘을 갈아 마시는 거였지.] [드래곤 비늘? 나 그거 많은데?]카이가 갑자기 먹에 건 주머니에서 드래곤 비늘을 주섬주섬 꺼냈다.
[나도 많아.] [나도.]이어 팅거와 벨라까지.
-얘들아, 일단 넣어 둬.
말을 하는데, 티티제가 구석에서 머리를 처박고 중얼거리는 게 보였다.
-하나만 줘 봐.
나는 하나를 받아 들고는 티티제를 불렀다.
“베이크 님.”
“…….”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는지, 티티제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티티제 어깨를 툭툭 쳤다.
“히익! 주, 죽이지 말아 주세요.”
티티제가 부들부들 떨면서 나를 바라봤다.
“정신 차리고 이거나 먹어요.”
드래곤 비늘을 티티제 손에 쥐여 줬다.
“이, 이건?”
티티제의 얼굴에 생기가 돌아왔다.
“드, 드래곤 비늘!”
“맞아요.”
“이 귀한 걸 제게 줘도 됩니까?”
“먹어요. 그래야 피비를 이겨 내죠.”
“가, 감사합니다.”
티티제는 허겁지겁 드래곤 비늘을 입에 넣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확신했다. 티티제는 마물들이 원했던 연구자료에 대해 알고 있다.
* * *
“후읍.”
마신은 마기가 넘치는 풍족한 기운을 만끽하며 미소 지었다. 마치 맹수 한 마리가 초식 동물을 한껏 포식한 후 여유를 만끽하는 모습 같았다.
“좋았어.”
몸이 빠르게 회복하고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눈도 깜빡하지 못했다. 생각도 하지 못했고.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말도 안 되게 좋아진 상황. 더군다나 그의 능력 개방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었다.
마기 조각, 혈흔을 이용한 능력 전가. 거기에 비에 기운을 실어 보내는 것까지.
마신이 기분이 좋은 이유는 바로 이거였다. 비.
자신의 능력을 비에 개방시켜서 세상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것.
그건 마기를 일으켜 인간들을 집어삼키는 것 이상의 효과가 있었다.
집단공포.
마기중독이라는 건 당사자가 그 상황에 노출이 되어야만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피비로 인한 세뇌는 모두에게 해당한다. 운이 좋아 피비를 피했다고 해도, 그것에 세뇌당한 사람들은 피할 수 없다.
적어도 한 집에 한 명은 세뇌를 당했다, 그게 아니라면 옆집 사람이 넘어와 살육을 저질렀다.
어찌 되었든 마신은 가만히 있어도 마기가 굴러들어왔다.
“인간들은 어리석어서 세뇌에서 풀려나도 복수한답시고 내게 마기를 선물해 줬지. 단, 그게 풀리기 전까지는.”
마밸리 전투도 사실, 마신은 승리를 확신했다.
피비로 한바탕 인간들을 세뇌한 후, 그냥 거저먹을 생각이었던 것.
마물을 대거 투입한 건 바로 부하 마물들의 능력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랬는데,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그들은 패배했다. 뛰어난 기량을 자랑하는 마물들이 그때, 목숨을 많이 잃었다.
물론 그때 대부분의 마물들은 부활했다. 카셀, 케링, 라테온, 갈라스, 웨인 등이 그 전투로 목숨을 잃은 이후 수백 년이 지나 부활한 마물들이었다.
하여 마신은 이번에는 그때 자신의 피비를 무력화했던 상황을 미리 막고 시작할 생각이었다.
지금 내리고 있는 피비는 그 정보를 끄집어낼 미끼가 될 것이고.
“호헨 그놈이 내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지.”
패착이었다.
지금 마물들이 원로원을 부리듯이 마신도 카르텔이 있었다. 그중 한 놈이 호헨이었다.
콧대 높은 드워프들의 횡포가 심해질 무렵, 실력 있는 마법사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다. 마신은 호헨을 옆에 두면서 필요한 것들을 제작시켰다.
그중 하나가 바로 혈구.
자신의 피를 구슬에 담아, 부하들에게 줄 수 있게 되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혈구를 삼키면 끝이다.
그 과정에서 마신은 자신의 비밀을 호헨에게 개방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걸 알아야 혈구 제작을 할 수 있었으니.
그게 부메랑이 되어 자신을 친 것이다.
마신은 루엘에게 명령했다.
호헨의 핏줄을 잡아오라고.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분명 자신의 약점을 후손에게 일러줬을 거니 그걸 막기 위함이었다.
또 하나.
“호헨의 후손이라면 능력이 최소 그놈 반 정도는 되겠지.”
그 정도면 자신의 대리인으로 삼을 수 있겠지.
마신은 생각했다. 만약 호헨을 자신의 분신으로 삼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지금과 같은 결과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테페론 그가 나 대신 갇혀 있을 수도 있지. 음, 그건 무리일까? 그렇다면 적어도 그놈, 징그러운 보라색 괴물 놈은 잡아서 봉인했겠지.”
공동에 마신이 킬킬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으으, 왜 갑자기 한기가 드는 거지?]용사님의 말을 듣고 있던 카이가 짧은 앞다리를 쓱쓱 문질러댔다.
-너 감기 걸린 거 아니야?
[그런가? 동굴에 온도를 좀 높여야겠네.]카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동굴 안이 훈훈해졌다. 드래곤이란 종족은 참으로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
나는 새삼 감탄하면서 용사님께 되물었다.
-대리인이라고요?
[그렇다. 마신에게 대리인이 있었지. 분신이라 부르는 게 낫겠군.]-그래, 분신이요. 분신이 왜 필요해요? 부하도 있는데.
[그래서 더더욱 분신이 필요한 거지. 부하는 호시탐탐 위를 노리지 않느냐?]-아, 그렇겠군요.
지도자들이 후계자를 키우면서도 경계하는 게 바로 그거 때문이지.
[부하는 반역할 수 있지만, 분신은 그렇지 못하지. 어쨌든 우리는 마신을 잡을 수 없었다. 잡았다 하면 그 자리에서 폭발했으니까.]-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겠네요.
나는 마물의 죽음을 떠올리며 말을 받았다.
[내가 본 건 그건 아니었다. 연기가 피어오르긴 했지만, 시체는 그냥 있었지. 인간이었으니까.]-마물을 이용했다가 배신당할까 봐 인간을 쓰고 버린 거군요.
분노가 일었다.
[그렇지. 아무튼, 저 녀석을 납치한 것, 그 루엘이라는 마물이 널 끌어들이려고 노력한 걸 보며 마신의 힘이 커진 건 틀림없다.]그렇겠지. 분신이라는 게 그냥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테지가 분신체를 사용하는 건 그냥 마나가 쑥쑥 빠져나가는 거라고 말했다.
또한 갈라스 역시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전 대륙 곳곳에 자신의 분신체인 킹퍼스를 배치했겠지.
“고맙습니다. 이렇게 귀한 걸 주시다니.”
드래곤 비늘을 먹은 티티제가 이제야 안심이 되는지, 말을 평소처럼 걸어왔다.
“이제 괜찮아요?”
“아, 예. 그게 사실은 피비에 관한 내용을 선조님의 연구 자료에서 읽은 적이 있었는데, 너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죄송합니다.”
“얼마나 대단한 내용이 쓰여 있었길래 그래요?”
티티제가 책 내용을 말해 줬다. 내용에는 피해 방법도 나와 있었다.
“바트롱가 검에 테페론의 눈물에 드래곤 비늘을 녹여 바른다고요?”
“예, 그런데 거기에 뭔가 하나 더 들어갔는데, 그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거 두 가지를 검에 발라서 하늘을 찌르면 된다는데, 사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가 뭔데?
“혹시 칼레이 마법사는 알까요?”
“알 겁니다. 동생은 선조의 모든 자료를 달달 외웠으니까요.”
영지로 돌아가 봐야 하나? 아니면 그냥 통신구로 간단하게 끝내도 되는 건가?
그건 아닌 것 같군.
단순히 재료만 물어본다면 모를까. 책 내용 전반적인 것, 그리고 호헨의 연구에 뭐가 있는지, 어떻게 마신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알아내려면 직접 봐야 할 것 같았다.
-얘들아 집에 가고 싶지 않냐?
[집? 우리 집?]-그래. 우리 집.
[마신은 어쩌고?]-후딱 갔다 와서 잡지 뭐.
결정을 내린 나는 티티제에게 물었다.
“동생, 보고 싶지 않으세요?”
“도, 칼레이 말씀입니까?”
“예. 칼레이 마법사님 말이에요.”
티티제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눈빛엔 그리움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