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 Street of the Third Empire RAW novel - Chapter (194)
방첩. 첩보.
뚫리지 않는 방패와 무엇이든 뚫는 창간의 대결. 정보를 지키는 자들과 정보를 캐내는 자들은 빛과 어둠속에 숨어들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조직을 위해, 국가를 위해 정보를 캐낸다.
목숨이 오가는 또다른 전장.
냉전시대의 정보전쟁은 가히 ‘전쟁’이라 부를만했다.
‘검은 황금이라 불리는 석유는 국가전략자원 중에서도 탑티어. 석유를 지키기 위한 방첩과 첩보는 필수다.’
방첩과 첩보는 필수다.
하지만 아직 방첩과 첩보에 대한 시각은 냉전시대처럼 전문적이진 못하다. 제국주의 시대는 냉전시대처럼 고도로 발달된 통신장비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통신장비가 없는가?
아니, 통신장비는 분명 있었고, 통신장비의 유무를 가리기에 앞서 방첩과 첩보는 그전부터 존재해왔다.
“에디슨 회장님, 오랜만입니다.”
워싱턴 D.C.
미국 재무부 청사 내부의 보안실.
방음벽이 설치된 신식 회의실에 나는 에디슨 회장님을 모시고 들어왔다.
단 둘.
나와 에디슨 회장님만이 회의실에 자리했다.
“모건회장님의 아들래미인가. 반갑네. 워낙 어렸을때 만나서 기억날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에디슨일세.”
토마스 에디슨.
현 20세기초, 미국을 대표하는 전기회사 제너럴 일렉트릭(G.E.)의 회장. 천재발명가이자 테슬라와의 치열한 경쟁으로 악명까지 얻은 냉철한 사업가.
나는 오늘 방첩과 첩보의 첫걸음을 떼기 위해 에디슨회장과 접촉했다.
미국, 통신장비의 대가.
그는 내게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에디슨은 입꼬리를 내리고 나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미국 재무부가 골방에 틀어박혀 발명이나 하는 이 중년에게 무슨 볼일인가?
“아 별일은 아닙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혹시 재무부에서 수주하고 싶은 국가사업이 하나 있는데 흥미있으십니까?”
“국가사업?”
순간 에디슨의 눈에 빛이 반짝였다.
사업가의 감이라고 해야할까. 그런 촉이 발동한 것처럼 에디슨의 눈빛은 초롱초롱해졌다.
하긴 국가사업만큼 사업가들이 두근거려할 얘기도 없긴 했다.
“뭐, 그렇게 거창한 것은 아닙니다. 전신사업을 의뢰하고 싶어서요.”
“전신사업이라… 어디에?”
“그건 이제부터 정해볼 생각입니다.”
“….?”
에디슨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내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아직 어디에 공사할지도 못 정했는데 나를 찾아왔다는 말인가?”
“아뇨. 아직 공사할 곳을 정하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공사할 곳은 분명히 존재하죠. 하지만 재무부는 단순한 공사수주를 받으려고 나온 것이 아닙니다.”
“…..흠.”
에디슨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단순한 공사수주가 아니라면 제너럴일렉트릭, 아니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솔직히, 저희 재무부가 원하는 쪽은 에디슨 회장님보다도 제너럴일렉트릭이란 회사입니다.”
“솔직하군.”
재너럴일렉트릭.
미국과 유럽, 아시아를 관통하는 글로벌 전신기업 중 하나. 독일제국엔 지멘스가 존재한다면 미국엔 제너럴일렉트릭이 존재한다.
“귀사와 합작해서 회사를 하나 설립하려고 하거든요. 그것도 페이퍼컴퍼니를 말입니다.”
“……!”
“SPV입니다. 특수목적법인으로 재무부와 제너럴일렉트릭의 합작회사를 설립할 예정입니다.”
SPV.
특수목적법인. 연방준비제도같은 공적기관에서도 자주사용하는 법인의 형태로. 특정 목적을 위해 설립된 법인을 일컫는다.
국가사업을 하기에, 비밀리에 일을 진행하기에 이만한 형태의 법인도 없었다.
에디슨은 상체를 서서히 당겼다. 그의 시선은 완전히 내게 집중되어 있었다.
“법인설립의 목적은? 특수목적법인이라면 특수한 목적이 있다는 소리 아닌가.”
“여기서부턴 유료서비스입니다.”
나는 싱긋 미소를 짓고 계약서 한부를 내밀었다.
“비밀유지서약서?”
“예, 참고로 이 비밀유지서약서를 어겼을 때의 대가는 목숨입니다. 신중하게 싸인하세요.”
나는 여유롭게 물컵을 들었다.
에디슨은 순간 머릿속 퓨즈가 아웃됐는지 멍하게 나를 바라봤다.
콰당-!
“……이 무슨!!!”
에디슨은 눈을 부릅떴다.
갑작스럽게 훅 들어온 펀치에 놀랐겠지. 나는 곧바로 검지를 들었다.
“다만 한가지는 장담하죠. 회장님께서 이 비밀유지서약서에 싸인을 한다면 적어도 미국행정부의 국가전신사업은 제너럴일렉트릭이 당분간 독점하게 될 겁니다.”
“……”
“제 목숨을 걸고 보장해드리겠습니다. 뭐, 증거라면… 이정도면 될까요.”
나는 명함 한장을 내밀었다.
에디슨은 말없이 명함을 받아들더니, 눈이 점점 크게 팽창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그것은 대통령의 명함이었고.
-친애하는 토마스 에디슨에게.
명함엔 자신의 이름이 대통령의 친필로 적혀있었다.
에디슨의 손이 잘게 떨렸다.
“……”
흔들린다.
서늘한 밤바람에 촛불이 일렁이듯, 에디슨 회장의 눈빛이 티나지 않게 흔들린다.
하지만 나는 허언을 하지 않는다.
아버지와 지금까지 거래해온 에디슨 회장이라면, 이 안건의 무게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내가 방첩과 첩보로 성과를 내고, 백악관과 연결해준다면 제너럴일렉트릭은 말그대로 날개를 달고 승천하겠지.’
일종의 악마와의 계약.
CIA가 목숨을 대가로 첩보활동을 하듯, 나는 재무부 정보국에서 첩보활동을 시작하려고 한다.
나중에 생길 통합된 중앙정보국(CIA)을 선점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원역사에서도 군부의 OSS에서 파생된 조직이 바로 이 CIA였으니까.
이 안건의 무게감.
에디슨 회장은 지금쯤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의 경험으로 느끼고 있을 테지.
쉽게 생각하고 손을 잡았다간 심장까지 뜯겨나간다.
이런 타입에겐 이런 방식이 먹히는 것이다.
“굉장히 살벌한 내용이군 그래.”
“대신 떨어질 과실은 매우 달콤합니다. 국가전신사업이란게 국내에 한정된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어쩌면 국내보다 국외사업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뭐? 흐하하하하하! 자네 그말을 이제야하면 어쩌나! 이제야 좀 무게추가 제법 그럴싸하게 균형이 맞는군.”
에디슨 회장의 얼굴이 밝아졌다.
골머리를 싸매던 그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좋아, 싸인하도록 하지.”
사사삭-
에디슨은 만년필로 시원하게 싸인을 갈겼다. 비밀유지서약서 위로 선명한 필체가 새겨졌다.
“그러니 알려주게. 너무 궁금해서 잠시도 가만있기가 힘들군.”
“에디슨 회장님.”
나는 진지하게 목소리를 깔았다.
“저희 재무부 정보국에 합류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본론은 이제부터였다.
***
“정보국? 하! 이제야 감이 오는군. 왜 내가 목숨을 걸어야하고, 비밀유지서약서에 서명을 해야했는지.”
에디슨은 헛웃음을 터뜨렸지만, 꽤 흥분한 기색이었다.
“이거…꽤 남자의 로망을 자극하는군. 나이 반백년이나 처먹은 주제에 주책이지만, 흥분해서 심장이 두근거려. 스파이 뭐 이런 거겠지?”
“예, 정확합니다. 하지만 방식은 조금 다르지요.”
나는 베네수엘라 지도를 꺼내들었다.
“베네수엘라군.”
“알고 계시는군요?”
“최근에 독일의 다스콩트-게젤샤프트 은행이 자금을 지원하고 크루프(Krupp)가 시공한 그레이트 베네수엘라 철도라면 좀 알고 있네.”
“예, 바로 그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 재무부는 이번에 베네수엘라의 모라토리엄된 채권들을 뉴욕대형은행에게 인수했습니다. 그레이트 베네수엘라 철도의 운영권도 얻어냈지요.”
“……그 뉴욕대형은행은.”
“예, 제 입김이 꽤 많이 들어간 뉴욕은행들입니다. 최대채권자는 디트로이트 투자은행이죠. 베네수엘라 철도채권만 수천만 달러했습니다.”
“하지만 자네의 현금동원력이라면 씹어먹고도 남을테고.”
“맞습니다.”
에디슨의 예상대로다.
그레이트 베네수엘라 철도에 대한 권리 과반수를 내가 차지하고 있었으니, 내 손아귀로 틀어쥔 철도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베네수엘라라는 국가통신의 척추를 담당하는 전실시설입니다. 베네수엘라의 핵심전보들은 다 이 전신을 통해 전달됩니다.”
“……잠깐. 잠깐 잠깐 잠깐.”
에디슨은 내말을 잠시 끊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손을 내저었다.
“일단 이것부터 확인하고 넘어가지. 자네, 만약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하면 대외적으로 지분율을 공시할 생각은 전혀 없겠지?”
“예, 모두 재무부 1급기밀로서 처리할 예정입니다. 정 위험하면 위장된 지분율로 넘길거고요.”
“위장된 지분율?”
“제너럴일렉트릭이 100%를 소유했다는 찌라시 말입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그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습니다.”
본질적으로 이 특수목적법인은 제너럴일렉트릭의 자회사다. 재무부 정보국이 뒤에서 장악한 자회사.
그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으며, 목숨을 오가는 블랙업무들이 난무하게 될 것이다.
그 에디슨이 진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 자회사는 전신시설을 건설하는 자회사겠지?”
“그뿐만 아니라, 전신시설의 유지보수 및 무선전신의 건설까지 포함합니다. 무선전신은 꽤 최근에 도입된 장비로 최신기술이죠. 그게 저희 자회사의 차별점이 될 겁니다.”
“유선전신시설, 무선전신시설, 그리고 잔신시설의 유지보수? 자네….이건.”
“거기에 플러스 암호 및 보안장비들.”
에디슨은 눈치가 빠르다.
내가 원하는 것을 단번에 캐치했다.
“예.”
나는 싱긋 웃었다.
“도청할 겁니다. 베네수엘라라는 국가전체의 통신내역을요.”
에디슨의 눈빛이 세차게 흔들렸다.
그는 이제서야 체감한듯 했다. 이 비밀유지서약서에 왜 목숨까지 걸었어야했는지.
스케일이 남다르다.
‘뭐, 원래 CIA가 잘 써먹던 수법이지. 내가 전문가는 아니라서 정확히 따라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흉내는 낼 수 있다.’
지금이 시대가 시대다보니.
이정도만 해도 반은 먹고 들어가겠지. 나중에 베테랑들이 나타나면 그들이 점점 발전시켜줄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이거, 발설하면…..”
나는 검지를 세우고 입술을 짓눌렀다.
“큰일납니다?”
우리 사이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끄덕.
결국 에디슨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원래 이런건 기세로 밀어붙여야한다.
“잘생각하셨습니다. 회장님.”
우리는 악수를 나눴다.
그는 손으로 이마를 짚더니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 누가 모건회장님의 아들래미 아니랠까봐.”
그의 입술엔 옅은 미소가 맺혀있었다.
***
워싱턴 D.C.
백악관(The White House).
루스벨트 대통령의 집무실.
최근 백악관에선 대통령의 의지에 맞춰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새롭게 조직했다. 그 회의를 총괄운영하는 주체는 바로 국가안보 보좌관.
백악관의 대통령 비서였다.
“재무부 정보국도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 같군.”
루스벨트 대통령은 서류철을 책상위로 툭 던졌다.
“대통령님, 이번에 새롭게 조직된 국가안전보장회의는 뭐… 사실상 공기나 다름없긴 하지만 다른 의도가 있지 않습니까.”
“정보국.”
“예.”
국무부의 강력한 요청만으로 방첩, 첩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새로운 행정부처를 설치하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
하지만 루스벨트 대통령은 정보기관의 필요성은 느끼고 있었고, 그래서 백악관에서 언제든 공기화시킬 수 있는 작은 회의를 조직했다.
그것이 국가안전보장회의.
네이밍은 대충 디트로이트와 함께 지었고, 정보기관의 유용성 실험을 위해 국무부 정보국과 재무부 정보국을 시범운영해보기로 합의했다.
‘백악관에서 운영하면 권한을 챙길 수 있고, 유명무실해지면 언제든지 공기화시켜 폐지시킬 수 있으니, 이런 형태가 제일 알맞겠지.’
해당 정보국은 독립적으로 활동한다.
상급기밀이라면 백악관조차 열람제한을 걸 수 있도록 권한을 허용하는 행정명령을 통과시켰고, 각부 정보국에겐 별도로 예산이 지급되었다.
물론 액수나 사용장부들은 전부 기밀사항이다
“설마 진짜 시작부터 G.E.를 끌어들일줄이야. 디트로이트 이 자식. 명함 하나 달라고 할때부터 알아봤지만, 스케일 한번 미쳤다니까. G.E.가 시설설치나 유지보수에 들어가는 모든 전신시설들은 언제든 다 도청할 수 있게 된다는 소리 아닌가.”
씨익.
루즈벨트는 미소를 지었다.
“안 그런가? 엘저.”
러셀 엘저.
전 전쟁장관이었지만, 미서전쟁 소고기 스캔들로 인해 파면되어 영국 바클레이스 임원으로 잠적하고 있던 인물.
디트로이트가 국가안보 보좌관으로 그를 지목했다. 애초에 엘저장관은 인생을 디트로이트에게 저당잡힌 신세였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디트로이트에겐 이만큼 믿을만한 사람도 없었다.
엘저의 얼굴은 4, 5년간 완전 별개의 사람이라고해도 믿을만큼 푸석하게 삭았다.
이것도 그를 채용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누구도 쉽게 알아보지 못한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디트로이트가 엘저라고 말해줘도 못 알아챘다.
“아, 이젠 잭슨이라고 불러야하나?”
대신 엘저장관은 이름을 개명했고, 잭슨이란 이름으로 국가안보 보좌관에 임명되었다.
엘저 보좌관은 후 한숨을 쉬었다.
“예, 잭슨으로 불러주십시요.”
“재미없군.”
“…..”
“농담일세. 베네수엘라 정부에선 뭐라하던가?”
“전신시설을 무료로 정비해준다고 하니 엄청 좋아합니다. 사실상의 운영권을 모건장관이 얻은 이상…..”
엘저의 눈에 안광이 서렸다.
“이제 베네수엘라의 모든 통신내역은 미국이 그대로 도청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루스벨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디트로이트가 말한대로 그곳에 검은 황금, 석유가 대량으로 잠들어있다면 베네수엘라의 첩보활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통신은 재무부가 장악하고, 인간은 국무부가 장악한다.
이제 베네수엘라의 모든 정보는 깨진 독처럼 미국으로 콸콸 쏟아져나올 것이다.
“온두라스, 과테말라,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등. 이번 베네수엘라 작전이 성공하면 백악관에서 주시할 중남미 국가들에겐 전부 적용시켜야할 걸세. 그 왜, 요즘 JP모건은행과 진행하는 파나마(Panama) 건도 있잖는가.”
엘저보좌관은 눈을 부릅떴다.
“그걸 재무부가 다 관장하게 하실겁니까?”
“아니. 내가 미쳤나. 훌륭한 재무노예…..아니 재무장관을 정보국장으로 쓰게.”
루스벨트는 극구부인하며 손을 내저었다.
대신 입꼬리를 올려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쯤이면 중앙정보국(CIA)이 설립될걸세.”
차근차근 다음단계로 나아가는 미국이었다.
하지만 그 진정한 종착지는….오직 디트로이트만이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