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 Street of the Third Empire RAW novel - Chapter (20)
1898년 2월. 뉴욕 월스트리트 23번지.
존 피어폰트 모건 회장의 집무실.
모건 회장은 검은가죽 중역의자에 앉아 통화하고 있었다. 책상 맞은 편에는 그에게 불려온 힐 철도이사가 숨죽이고 통화하는 모건회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집무실은 두 사람이 피우는 시가(Cigar)의 뿌연 연기로 가득했다.
삐걱-
중역의자에 등을 기댄 JP모건은 진지한 얼굴로 수화기를 만지작거렸다.
후우-
“그러니까 디트로이트. 네 말은 1억 달러짜리 분식회계를 폭로해서, 공매도로 뉴욕증시를 긁어내리겠단 의미구나.”
– 1억 전부는 아니고, 일부분만 폭로할 예정입니다. 다 폭로했다간 뉴욕증시가 무너질테니까요. 그리고 저는 이번 공매도 반드시 성공한다고 단언합니다.
그야 성공하겠지.
사실 모건회장도 둘째아들의 공매도가 실패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1억 규모의 분식회계 카드가 확보된 이상, 공매도로 돈을 버는 건 달팽이도 할 수 있었으니까.
문제는 따로 있었다.
“다 좋은데, 왜 JP모건은행이 네 공매도 놀이에 어울려 줘야하지? JP모건은행으로 하루에 쏟아지는 딜만 수십 건인데, 굳이 내가 어울려야할 메리트가 전혀 보이지 않는군.”
거래의 천칭은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법.
헤지펀드는 이번 공매도로 무지막지한 수입을 벌테니. 둘째아들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JP모건은행으로 가져와야했다.
만약 JP모건은행이 침을 뚝뚝 흘릴 만한 이권을 가져온다면, 기꺼이 손을 뻗어줄 의향도 있었다.
– 있습니다. 이유.
“흠?”
모건회장은 눈을 번뜩였다. 과연 천칭 위에 어떤 대가를 올려놓을까. 그는 조금의 기대감과 함께 수화기 너머로 들려올 둘째아들의 다음 대사를 기다렸다.
– 빅배스입니다.
“……!”
JP모건은 눈을 부릅떴다.
빅배스(Big Bath).
외부요인으로 인해 회사에 손실이 불가피할 때, 해당 분기에 미래의 손실과 비용까지 부실요소들을 있는대로 끌어와 한번에 털어내는 회계기법.
단어 뜻 그대로 회계장부를 목욕(Bath)시켜 더러운 때(Scrub)를 한번에 물로 깨끗이 씻어낸다는 의미다.
보통은 주식회사에서 주가의 폭락이 예측되는 분기에 비용과 손실을 다 털어내고 가는 것을 의미한다.
“공매도로 철도회사들의 주가(stock price)가 골로 갔을 때, 철도회사들의 부실요소들을 한꺼번에 털어버리란 소리구나.”
‘훌륭하군.’
빅배스란 단어를 듣자마자, JP모건회장의 머릿속엔 순식간에 헤지펀드가 그리고 있는 판도와 JP모건은행이 얻을 수 있는 이익들이 전부 연동되어 계산되었다.
‘이건 된다.’
디트로이트 놈, 앙큼한 걸 준비해왔구나.
둘째 아들놈이 그리고 있는 판도는 철도회사의 문제점의 핵심을 관통하고 있었다. 이거다. 이게 바로 JP모건회장이 그토록 원했던 ‘외부충격’ 그 자체였다.
– 정확합니다. 그리고 시치미 떼셔도 소용없습니다. 이중장부는 전부 저희 헤지펀드 회계팀에서 2중 3중으로 검증을 마쳤으까요.
“애시당초 숨길 생각도 없었다. 내가 작정하고 숨길 생각이었으면 처음부터 제임스를 회계자료에 접근조차 시키지 않았겠지.”
흥미롭군.
디트로이트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 첫째인 잭에게만 기회를 몰아준 것이 조금 아쉬울 지경이었다.
둘째에게도 비슷한 정도의 기회를 주었다면 고작 2500만 달러의 펀드가 아니라 400억 달러의 JP모건은행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상념은 짧았다.
지금이라도 눈에 들어왔단 사실에 모건 회장은 재밌다는 듯 웃었다.
“하지만 디트로이트, 너와 나의 역할을 명확히 나눌 필요가 있어보이는구나.”
– 저희가 선봉으로 공세를 취하겠습니다. 언론공작, 여론몰이, 폭로전, 리포트 제작베포, 공매도펀드 공모, 등 어그로는 전부 저희 헤지펀드에서 떠맡도록 하죠. 저희가 먼저 공매도로 수익을 챙긴 뒤, 빅배스를 위해 칼을 휘두르며 시간을 최대한 길게 끌어보겠습니다.
“그럼 우리 JP모건은행은 너희 헤지펀드가 칼을 휘두르는 동안, 후방에서 든든하게 받쳐주면 되는 거고.”
– 예, 그리고 제가 칼을 들고 선봉에서 미친놈처럼 휘두르는 동안, 아버지는 뒤에서 철도재벌들을 싹다 털어내고 철도회사를 집어삼키시면 됩니다. 미국 철도의 20% 정도면 철도계 독점 트러스트를 건설하는데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수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 이번 기회에 소원성취 하셔야죠.
“흐하하하하하!!!”
쾅! 쾅! 쾅!
JP모건 회장은 파안대소를 터뜨리며 두터운 손으로 오크책상을 부서질 듯이 내리쳤다.
철도이사회에서 쌓인 극심한 스트레스들이 방금 디트로이트와의 대화 한방으로 깨끗이 씻겨나가는 것 기분이었다.
JP모건회장은 눈앞에 앉아있는 힐을 향해 눈을 번뜩였다. 그런 JP모건회장의 반응에 고뇌에 잠겨있던 힐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아주 걸작이야. 디트로이트 놈이 철도이사 그 누구도 해결하지지 못한 걸 해내는 군. 힐, 어떤가? 자네가 봤을 때, 디트로이트의 작전은 타당한가?”
힐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해 볼만 할 것 같습니다. 이번에 극동아시아에서 새로운 운송거래처를 뚫었는데 빅배스와 함께 엮으면 회장님의 염원인 철도트러스트….가능할 지도 모릅니다.”
씨익.
“완벽하군.”
JP모건은 얼굴에 함박미소를 지으며 내려놓았던 수화기를 다시 들어올렸다.
“어울려주마 아들아.”
– ……!!!
“뉴욕경찰청과 뉴욕검찰청, 뉴욕 주 법원엔 내가 잘 말해놓도록 하마. 네가 말한 D 클래스 펀드에 대해서도 게이지 재무부 장관에게 잘 말해놓도록 하지. 로비부터 뒤처리까지 우리가 다 책임져주마.”
탁.
JP모건회장은 오크책상을 짚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입 꼬리가 찢어지도록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후방은 내게 맡겨라. 미국인들이 왜 JP모건, JP모건 하는지 네게 똑똑히 보여주지.”
***
따르르르르릉-!
따르르르르릉-!
따르르르르릉-!
– 예일 경영대학원 쪽에서 날아온 투서입니다. 이리철도, 뉴욕센트럴철도에 대한 추가 회계자료들이 보내져왔습니다.
– 프린스턴에서 보내온 자료들이랑 대부분 일치합니다. 교차검증 완료된 자료들입니다.
– 노던퍼시픽의 회계자료와 공시된 회계자료들 사이에 공백이 추가로 발견됐습니다. 이전에 코넬에서 보내온 자료들과 교차검증 부탁드립니다.
전화가 시끄러운 회계팀 내부.
철도회사와 신탁회사들에게 파견된 잠입취재원들의 통화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사실 이름은 회계팀이지만, 이번에 투입된 인원들은 대학전공자들, 석학들, 신문사 기자들이나 회계사들은 물론이고 철도회사의 재무이사 출신들과 회계법인 출신의 에이스들, 미국 재무부 출신의 엘리트들이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자료를 2중 3중으로 교차검증하며 리포트 초안을 만들고 있었다.
“JP모건은행도 대단하군요. 최고급 엘리트들만 100여명을 뽑아서 즉시 투입시키다니요.”
베이론은 회계팀을 관리하는 내내 JP모건은행의 스케일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자 JP모건은행에서 파견 온 비서실 직원이 어깨를 으쓱였다.
“오히려 100여 명밖에 끌어오지 못한 겁니다. 철도회사를 칼로 찌르고 철도재벌들의 목을 치는 작전인데, 철도회사에 연줄이 남아있는 인원은 못쓰지 않습니까? 수천 명의 재무관련자 중 깨끗한 사람이 저 100여명입니다.”
“……그렇습니까?”
베이론은 아득해지는 JP모건은행의 스케일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괴물이 따로 없군.’
하지만 JP모건은행의 비서는 오히려 회계팀 내부를 둘러보며 눈을 크게 떴다.
“제겐 각 대형언론사의 데스크(편집자)들이 한마음 한뜻을 가지고 머리를 맞대고 있는 장면이 더 경악스러운데요.”
“하하, 그것도 그렇군요. 보통은 서로 물고 뜯기 바쁜 사이니까요.”
찰스 다우의 인맥 파워는 대단했다.
그가 움직이자마자 순식간에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즈, 뉴욕트리뷴이 합류했다.
지금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위 세 곳의 수뇌부들과 손을 잡고 뉴욕의 언론사들을 계속해서 합류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회계팀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집단은 뉴욕프레스포럼이겠지.’
미국 동북부 8곳의 명문대.
찰스 다우는 뉴욕타임즈의 찰스 밀러와 함께 뉴욕프레스포럼(NYPF)을 조직해 대학기자들과 전공자들을 하나로 뭉쳤다.
뉴욕프레스포럼(NYPF)에서 회계팀으로 쏟아지는 정보들이 가장 많다. 질도 좋고.
‘국무부 직원들이 보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겠군. 정보기관에 가장 목을 메고 있는 집단이니까.’
“베이론님, 리포트초안이 거의 완성됐는데, 막바지에 철도팀에서 문제가 터졌습니다. 일단, 여기 초안입니다.”
그때, 목소리가 베이론의 상념을 깨뜨렸다. 베이론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을 건 철도팀 회계사에게서 공매도 리포트의 초안을 건네받았다.
“무슨 문제입니까?”
“예, 뉴욕센트럴철도의 분식회계 자료를 검증해보던 중에……”
꿀꺽.
철도팀 회계사가 긴장된 얼굴로 식은땀 흐르는 손을 꽈악 쥐었다.
“밴더빌트 가문으로 흘러들어간 횡령 및 배임 자금을 확인했습니다.”
“……!!!”
베이론은 눈을 부릅떴다.
밴더빌트 가문.
미국의 독점자본시대를 논할 때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철도왕 코넬리우스 밴더벨트가 일으킨 거대한 재벌가문. 초대 철도재벌인 밴더빌트 가문은 대대로 미국 전역에 문어발처럼 뻗은 거대한 철도망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아왔고, 또 불려왔다.
특히, 이곳 뉴욕의 철도시장은 뉴욕회랑을 장악한 밴더빌트 가문의 손에 꽉 붙들려있었다.
“교차검증은?”
“다른 회계자료들과는 달리 6중의 교차검증을 거친 결과, 아무래도 확실해보입니다.”
“하하…..”
베이론은 밴더빌트에 대한 보고서를 건네받았다.
팔랑-
‘밴더빌트로 흘러들어간 횡령자금은 500만 달러. 모건 이사님이 루스벨트 가문에서 끌어온 자금이 500만 달러인걸 감안하면 밴더빌트 놈들 많이도 처먹었군.’
밴더빌트가 소유한 철도는 뉴욕센트럴철도만이 아니다. 뉴욕할렘철도, 허드슨강 철도, 캐나다남부철도, 레이크쇼어-미시간 남부철도, 뉴욕-시카고-세인트루이스 철도, 등.
밴더빌트 가문의 손아귀에 떨어진 철도만 수십 개가 넘어간다.
뉴욕센트럴은 그 중 일부분일 뿐.
그 일부분에서 나온 횡령자금이 500만 달러다.
‘밴더빌트를 건드려야하나?’
덥석.
“….!!!”
그때 누군가 뒤에서 베이론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베이론은 도끼눈을 뜨고 순간적으로 품속에 숨긴 단도를 쥐었지만, 이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곳은 슬럼(Slum)이 아니다.’
후우-
베이론은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한차례 심호흡했다.
“베이론 고민이 많아보이는군. 괜찮으면 비서실장인 나와 상담을 해보지 않겠나? 이래뵈도 로이드(Lloyd)에선 말빨로 꽤 잘나갔거든.”
제임스였다.
“…….좋습니다만, 다음부턴 갑자기 제 몸에 손대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슬럼에서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아, 미안하네.”
제임스가 두 손바닥을 들었다.
푹 한숨을 쉰 베이론은 살기를 거두고, 품속의 단도에서 손을 놓았다. 그리고는 주름진 어깨를 탁탁 털었다.
“뉴욕센트럴철도에서 밴더빌트 가문으로 500만 달러의 횡령자금이 흘러들어갔습니다.”
“흠. 밴더빌트 가문인가. 까다롭군.”
베이론은 고개를 갸웃했다.
‘까다롭다….정도로 끝낼 문제인가?’
제임스는 베이론의 반응에 픽 웃음을 흘렸다.
“이건 JP모건은행과 헤지펀드 사이에서 맺어진 비밀동맹이라 자세한 내막까지는 알려줄 수 없지만, JP모건은행의 모건회장이 작심을 한 것 같더군.”
“……그 말은!”
“어, 자네 생각대로 밴더빌트 ‘따위’에게 더 이상 흔들릴 필요는 없다는 소리네.”
석유재벌 록펠러의 추정자산은 6억 달러.
JP모건이 JP모건은행을 통해 다룰 수 있는 총 액수는 400억 달러. 이것도 직접적인 금융 트러스트에 얽혀있는 자금들만 따졌을 때 이야기이다.
500만 달러 규모의 횡령 따위 400억 앞에선 주름도 못 잡지.
그저 짓밟혀 터질 뿐이다.
“고민이 필요한가?”
“…..당장 작업에 착수하겠습니다.”
‘밴더빌트 가문도 공격대상에 포함시켜야겠군.’
게다가 뉴욕센트럴은 뉴욕철도 중 가장 대중인지도가 높은 철도. 밴더빌트 가문과 뉴욕센트럴철도의 이름값만으로도 여론에 불을 지를 수 있다.
피식-
‘헤지펀드가 화끈하게 데뷔하려면 이 정도 퍼포먼스는 있어줘야겠지.’
베이론은 책상에 앉아 타자기에 백지를 꽂아넣었다.
타닥 타다다다닥 탁.
챙-!
베이론의 타자가 멈췄다.
‘이게……마지막 페이지.’
베이론은 타자기에서 마지막 페이지를 뽑아 두툼한 서류뭉치에 끼워넣고 탁탁 정돈시켰다.
‘이제 이 리포트 초안을 월스트리트저널 본부로 보내서 정제하면 끝이다.’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즈, 뉴욕트리뷴, 월스트리스저널의 데스크들끼리 머리를 맞대며 전공자들이 쓴 리포트를 일반인용으로 쉽게 정제시켜줄 것이다.
신문을 통해 뉴욕과 워싱턴 D.C. 전역에 뿌려야하니까.
그때, 제임스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오, 그게 공매도 리포트인가?”
“예.”
씨익.
베이론은 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손에든 공매도 리포트의 초안을 흔들어보였다.
“철도회사란 거대한 괴물(Troll)을 쏠 탄환이지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