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17
117화
콰앙!
종이를 구겨 쥔 주먹이 탁자를 거칠게 때렸다.
“이런 망할!”
때린 이가 당위다 보니 철제 탁자가 버티지 못하고 우그러졌다.
“세령이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불이 토해질 듯한 당위의 눈빛에 전서를 받아 온 삼양전의 호위 무인 곽상이 의아한 표정을 하면서도 곧바로 대답했다.
“진무 도장과 청성을 떠난 지 사흘이 지났습니다.”
“사흘…….”
당위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그에게 전해진 전서 한 장.
무풍개 양소방이 보내온 것이었다. 개인으로서가 아닌, 정무맹의 비흔으로서.
불의한 자들이 사천에 있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미 일부가 진무와의 격돌에서 드러났고, 청성과 연합한 당가의 무인들이 사천의 전역을 뒤지고 있지 않은가?
문제는 그 뒤에 이어진 또 다른 내용.
그들이 무당지검 진무를 노릴 가능성이 있다. 당가와 청성, 아미는 정무맹의 령에 따라 최선을 다해 그를 보호하라.
정무맹의 령?
당위는 그따위 걸 신경 써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얻다 대고 전서구를, 그것도 가주 친전으로 보낸 전서구를 반말로 쓴단 말인가?
그에게 있어서 정무맹은 협조의 대상이지 충성의 대상이 아니었다.
누구도 당가의 앞에서 충성을 거론할 수도, 요구할 수도 없었다.
그 때문에 용봉회가 개최되었음에도 당가의 후손들은 누구도 참가하지 않았다.
이미 직계 중 막내인 당세령마저 탄기의 경지에 올려 둔 자신이 아니던가?
하지만 진무가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내용.
추측성이기는 했으나 금쪽같은 자신의 딸인 당세령이 진무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였다.
당위의 명령으로 호위 무인의 수장인 구척이 그들의 뒤를 따르고 있었지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작은 일이었다면 양소방이 정무맹의 이름으로 전서를 보내지 않았을 터. 하물며 당가뿐 아니라 청성과 아미까지 거론하지 않는가.
정무맹 예하 세 개의 거파를 동원해 보호해야 한다 할 정도라면? 정확한 것은 몰라도 최소한 진무를 노리는 것이 보통의 적이 아님이 분명하다.
즉, 딸이 위험하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미 떠난 구척과 연락을 보낼 방법이 요원했다.
“당가정은 어디에 있나?”
“…….”
곽상은 대장로가 아닌 당가정이라는 호칭에 상황이 심각함을 눈치챘다.
당위가 아무리 당가의 가장 어른이자 대가주라 할지라도 수하들 앞에서 당가정의 이름을 부른 적은 없었다.
장로에게 예를 지키지 않을 만큼 그의 심경이 다급한 것이다.
“당장 불러오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즉시 독혈각 전원에게 비상 소집령을 내려라!”
“……예?”
이어진 말에 곽상이 예의에 어긋남도 잊고 놀란 표정으로 당위를 쳐다보았다.
독혈각(毒血角).
독을 머금은 뿔.
만독, 만병, 만관의 세 가지 시험을 통과한 자들.
오직 당가를 위해 충성해 온 그들은 명실공히 당가의 최정예 무인이었다.
그런데 그들을, 그것도 전원을 소집한다고?
이는 당위가 대가주가 된 이래 딱 한 번 있었던 일이었다.
“또한, 사천 전역에 비상 경계령을 내리고 모든 연락선을 동원해 세령이의 행방을 쫓아라. 행방이 확인되는 즉시 독혈각은 그 뒤를 쫓는다. 대가주의 명으로 집행하라!”
“알겠습니다. 지금 즉시 시행하겠습니다.”
곽상은 절도 있게 예를 취하고 삼양전을 뛰쳐나갔다.
“가주 호위대는 들으라!”
이어 당위의 외침이 삼양전을 쩌렁쩌렁하게 울리자 곳곳에 모습을 숨기고 있던 무인들이 그의 앞에 나타나 무릎을 꿇었다.
“내가 직접 갈 것이다! 채비하라!”
“……!”
양소방의 전서구가 가져온 폭풍.
당가의 정예 독혈각이 문제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사천의 거인으로 군림해 왔던 암황 당위가 움직인다.
사천의 전역에 그 사실이 알려지고 직계와 방계를 포함한 수천 당가인들이 그 뒤를 따를 것이다.
당위의 행보에 따라 사천 전체가 요동을 칠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 * *
소란은 당가뿐 아니라 청성산에도 찾아들었다.
진무가 떠난 지 사흘.
수색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인 시점이었다.
양소방의 전서구가 청성으로 날아들자 긴급하게 장로 회의가 소집되었고, 도인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빗자루를 들고 백운각 내부를 청소하는 척하며 바닥을 세밀하게 살피던 상우가 때아닌 소란에 지나가던 일대제자 상천을 불러 세웠다.
“무풍개 대협께서 전서구를 보내오셨다고 하네.”
“무풍……?”
상우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대랑은 분명 그가 무혈이 있던 백가장을 찾았다고 하지 않았던가?
“불의한 자들이 진무 도장을 노리는 모양이야.”
“……!”
상우의 눈이 크게 뜨였다.
지금만큼은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들이 어찌 안단 말인가?
설마? 사로잡혔다는 적영이 실토라도 한 것인가?
그럴 리가 없다.
적영은 물론 자신이 소속된 영은당의 무인들은 고문에 버티기 위해 고된 수련을 받았다.
중원에서 가장 강력한 자백제를 사용한다 해도 자신들이 가진 비밀은 쉽게 알아낼 수 없었다.
그런데.
“장로 회의에서 추격대를 편성하는 것으로 결정이 내려졌네. 장로님들 절반이 제자들을 이끌고 나설 모양일세.”
“그, 그게 정말인가?”
상우가 소매를 움켜쥐자 상천이 얼굴을 찌푸리며 상우의 손을 떼어 냈다.
“아니, 이 사람아. 내가 거짓말이라도 하는 줄 아는가? 정무맹에서 직접 서신을 보냈다고 하지 않는가? 이미 당가와 아미에까지 정무맹의 전서가 전해졌다네. 바쁘니 그만 놓게. 서둘러 채비해서 대연무장으로 집결하라는 명일세.”
상천이 달려가는 모습에 상우의 낯빛이 시커멓게 죽었다.
일이 단단히 잘못되어 가고 있다.
대랑과 청랑대의 무위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사천의 거파 세 곳의 전력에 미칠 수는 없었다.
양의의 조각이 문제가 아니었다.
잘못하면 그동안 철저히 감추어 왔던 궁의 전력이 드러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서둘러 알려야만 했다.
대랑은 진무가 모두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순간을 노리기 위해 이미 출발한 다음이었다.
진무가 청성을 떠난 지 사흘.
표주 중이니 그의 걸음이 빠를 리 없었다.
아직 사천을 빠져나가지 못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서둘러 청성산 인근에 대기하고 있는 저산과 추령에게 알려 대랑에게 이를 경고해야 했다.
그리고 일이 여기까지 틀어진 이상 삼궁주에게도 알려야 한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상우의 모습이 백운각에서 사라지고, 바닥을 쓸던 빗자루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 * *
“아 좀! 쉬어 가자니까!”
“…….”
당세령이 바락 외치는 소리에 진무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를 바라보는 눈이 곱지 않았다.
“이게 지금 며칠째야! 삼 일이라고 삼 일! 곤륜에 꿀단지라도 묻어 놨어? 뭔 죽자사자 달리기만 해?”
당세령이 먼지를 가득 뒤집어써서 거의 토인이 된 모습으로 신경질을 냈다.
“쉬었다 가자고, 어?”
“…….”
“술도 한잔하고! 느긋하게 비무도 좀 하고!”
“…….”
진무의 미간은 더욱 깊게 찌푸려진다.
아니 그러게 왜 따라오고 지랄이신지?
청성산을 떠난 지 사흘째.
산문 밖까지 배웅을 받은 진무는 곧바로 말을 구했다.
그리고 달렸다. 곧장, 쉬지도 않고.
낮이든 밤이든, 길이든 아니든 무조건 달렸다.
식사는 말 위에서 육포로 간단히 해결하고.
잠은 딱 한 시진하고 반.
솔직히 그것도 아까워 죽겠다.
마음 같아서는 자는 시간도 줄여서 최대한 빨리 곤륜에 도착하고 싶었다.
진무의 마음이 급해진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백가장에서 잡았던 목인겸.
그는 무월루의 노인과 관계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관계가 있는 게 확실하다. 무촌경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 자가 청성에 봉인된 양의심공 후반부의 열쇠인 무혈을 노렸다.
그리고 청성에서 자신을 습격한 놈들.
다른 이유일 리가 없다. 필시 그놈들도 무혈을 노리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자신을 대놓고 노렸으니 청성에 그들의 끄나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했었다.
어떤 놈인지 잡아서 족치고 싶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놈들이 양의심공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나도 알아주는 악당이었지만 악당 놈들은 참 대단하다.
기록에도 남지 않았고 아무도 모르는 양의심공에 대해서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그리고 만약 그놈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여 나머지 세 곳 도문에 잠들어 있는 조각들을 노리고 있다면?
진무는 닭 쫓던 개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반드시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최대한 빠르게 곤륜으로 가 놈들보다 빨리 조각을 얻어야만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진무가 얻은 조각이 일부라는 사실이다.
나머지도 마찬가지일 게 틀림없었다. 네 조각이 전부 모여야만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다른 도문에서 나머지 세 조각을 얻어 낸다 해도 진무가 먹어 치운 조각이 없으면 양의심공의 전반부는 몰라도 태극요결은 절대로 익힐 수가 없다.
진무의 입을 통해서만 알 수가 있다. 말해 주지 않는 이상 절대로 모를 것이다.
그리고 진무에겐 최후의 방법이 남아 있지 않은가?
무당 장문인이 알고 있는 양의심공.
운공의 말처럼 태극을 이루진 못해도 묵룡혼원공을 익히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어디 그런가? 자신이 못 얻으면 남도 못 얻어야 속이 풀리는 법이다.
진무는 혹시나 자신이 얻어야만 하는 것을 남에게 빼앗길까 애간장이 탔다.
“야, 내가 지금 상태가 어떤 줄 알아? 가랑이가 쓰리다 못해 피부가 벗겨질 지경이라고!”
아니 진짜 뭔 여자가 수치도 모르고 저딴 말을 저리도 당당하게 한단 말인가?
“캬악, 퉤! 이거 봐. 이 고운 입에서 먼지가 나오잖아, 먼지가!”
스스로 곱다는 저 입에 재갈을 물려 버리고 싶다.
“저기 보이지? 저기가 감자현이라는 곳이야.”
당세령의 손을 따라 진무가 별 감흥 없이 시선을 돌렸다.
매우 작은 마을이었다. 집이라고는 한 스무 채 정도?
행인들을 위한 객점이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간신히 마을 구색만 갖춘 곳이었다.
“그게 왜?”
“하아, 지금 내 말이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모양인데. 청성산에서 저기 감자현까지 천사백 리야, 천사백 리.”
멀리도 왔네.
“아무리 매일 말을 갈아타고 왔다고 해도 기록이라고. 하루에 근 오백 리를 달렸단 말이야! 도대체 왜 그래! 어디 전쟁이라도 났냐?”
그러니까 그게 왜?
“쉬자! 제발! 부탁이야, 이 빌어먹을 식객 놈아!”
참다못한 당세령이 삿대질까지 해 가며 고래고래 외쳤다.
확 씨, 어린 게 말본새하고는.
그냥 두고 가 버릴까 하는 생각이 꼭 열 번째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무척이나 감이 뛰어난 소였으니까.
사실 청성에서 첫 조각을 찾는 일은 거의 그녀가 다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것이 셋. 각기 어떤 비밀 속에 감춰져 있을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그래서 따라오게 두었다. 혹시나 도움이 될까 봐.
들숨에 귀찮고 날숨에 짜증이 나는 수준이기는 했지만.
“그럼 저기서 아주 조금만 쉬어 갈까?”
속은 미치게 타들어 갔지만, 백 년이나 잠들어 있던 것이 하루쯤 늦는다고 어디 사라질 건 아니니까…… 아니겠지?
뭐, 먼저 얻은 놈이 있으면 아가리를 찢고 대가리를 열어서라도 뺏으면 되고.
“그래, 좋다. 쉬자, 쉬어.”
당세령이 언제 화를 냈냐는 듯 배시시 웃었다.
웃었다 뿐인가? 벌써 마을 입구까지 달리고 있었다.
“야, 식객! 빨리 와!”
가랑이 아프다던 년은 어디 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