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3
13화
“그래, 시연은 잘하고 있느냐?”
“예, 사부님.”
진혜가 진무를 힐끗거리며 대답했다.
“아, 오다 만났다. 진무가 영은궁 제자들의 시범을 보고 싶다 하더구나?”
“아, 예…….”
무척 달갑지 않았으나 사부가 함께 있으니 내색은 할 수 없었다.
“사형, 오랜만에 뵙습니다. 근래 해검지를 보수하느라 시간이 모자라 자주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어. 그래.”
진혜가 떨떠름하게 인사를 받았다.
‘뭐 보수 때문에 바빠? 이 자식이 어디서 거짓말을.’
진혜는 그간 몰래몰래 해검지에서 진무와 청자 배의 무인들이 하는 짓을 지켜보고 있었다.
벌써 보름이 넘었는데 보수라고는 마목을 몇 개 박아 놓은 것이 고작이고 연일 산짐승들이나 잡아 처먹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진무, 근자에…….”
진혜가 명공이 들으라고 그의 과오를 슬쩍 꺼내려는데.
“이분이 무당에 도움을 주신 그분이군요?”
어느새 진무는 진혜를 지나쳐서 금적산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진혜 사형의 사제인 진무입니다.”
“예? 아! 금적산입니다. 낮에 해검지에 계시던 분이군요. 나이도 어려 보이시는데 일대제자라니 대단하십니다.”
“하핫, 눈썰미가 엄청나십니다. 제가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아까는 감히 인사도 드리지 못했는데.”
“……예.”
낯을 가린다고 하기에는 너무 넉살이 좋아 보였다.
“제가 미리 오신다는 말씀을 듣고 청자 배 아이들에게 말해 두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 실례를 범할 뻔하였습니다.”
“예? 무슨?”
“검이요.”
진무가 밝게 웃는 얼굴로 금적산의 허리춤에 매어진 검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 이, 이건…….”
딱 봐도 장식용이었다.
하지만 진무의 싱글거리는 얼굴에 금적산은 뒷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해검지가 가지는 의미는 그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탓하려 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해검지에서 검을 풀지 않음을 제지하지 않았을 만큼 상단주님을 귀빈으로 대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금적산이 사과를 하자 명공이 짐짓 엄한 표정으로 진무를 말렸다.
“어허, 진무야. 그만하거라. 상단주께서 난감해하시지 않느냐?”
하지만 명공은 한편으로 뿌듯함을 느꼈다.
해검지.
무당의 자존심과 같은 곳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근래 들어서는 누구도 그에 관해 말하는 자가 없었다.
생각해 보니 그의 재물에 눈이 멀어 당당히 허리에 검을 차고 자소궁에 들었던 것에 대해 누구도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허, 역시 장문인께서 바로 보고 계신 것인가? 비록 육식의 금기를 어기고는 있으나 그간 누구도 말하지 않은 무당의 자존심을 이 아이가 거론하는구나.’
진무가 그 사실을 서로 언짢지 않은 범위에서 일깨워 주고 있으니 내심 기분이 좋아진 명공이었다.
“참, 제자가 듣기로 오늘 구궁검진을 시연한다 들었습니다.”
“오냐.”
“혹, 제가 참관을 해도 되겠습니까?”
“응? 네가 말이냐?”
“예. 무당의 대검진인 구궁이 펼쳐지는 것을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
진무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자 명공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근래 진무의 재능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커진 시점이었다.
또한 얼마 전 청우가 청상을 이겼다는 이야기는 명공의 기대와 호기심을 동시에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오냐, 알았다. 그리하거라.”
“감사합니다. 사숙!”
진무가 뛸 듯이 기뻐하며 눈을 빛내자 명공은 더욱 흐뭇해졌다.
“진혜야. 시작하거라.”
“예, 사부님.”
진혜가 명공을 향해 고개를 숙이자 진무가 끼어든다.
“사형, 기대가 큽니다.”
“오, 오냐.”
진혜는 내심 이를 갈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모든 분위기가 자신에게 쏠리고 있었는데.
그런데.
‘저 망할 놈이…….’
갑자기 끼어든 놈이 자신에게 집중되었던 시선을 분산시키고 있었다. 그것도 자신의 앞마당과 같은 영은궁에서.
나이도 어린 사제 놈이 마치 객이라도 된 것처럼 단에 올라 스승인 명공과 금적산의 옆에 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이 너무도 꼴 보기가 싫었다.
“구궁검진을 펼쳐라!”
하지만 일단은 시연이 먼저였다.
스승이 지켜보고 있으니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
진혜가 우렁찬 외침과 함께 대열에 끼어들자 이제제자들이 일제히 진을 형성했다.
“개진(開陣)!”
진이 열리고 스무 명의 제자들이 양쪽으로 나뉘어져 제각기 다른 방위를 점하며 검진을 펼쳤다.
모두 각각의 검로에 따라 검을 펼치자 흩어졌던 검격이 일순 하나로 모였다.
“재미있는 진이네요.”
진무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눈앞에 펼쳐지는 진을 응시하자 명공이 흐뭇하게 쳐다보았다.
“볼만하냐?”
“예. 하지만 집중이 조금 아쉽군요.”
“아쉽다?”
“예.”
“어찌 그렇게 느꼈느냐?”
“글쎄요. 검진에 대해서는 아직 배운 바가 없어 잘 모르겠으나 흩어진 검이 다시 모일 때 적을 단숨에 압박해야 하는데 묘하게 어그러진다는 느낌이 듭니다.”
“……?”
금적산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몰라 의아한 표정이었으나 명공의 두 눈은 경악으로 크게 뜨여져 있었다.
“계, 계속해 보라.”
“음, 너무 치중하는 느낌이 듭니다. 저라면 좌변(左邊)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도망치겠어요. 차라리 저쪽의 검을 느리게 해 적을 유인하고 그 안에 날카로움을 더해 적을…… 복잡하네요. 역시 좀 더 공부해 봐야 알겠습니다.”
“……!”
검진의 부족한 점을 날카롭게 짚어 내는 진무의 모습에 명공은 눈만 끔벅거렸다.
구궁검진을 해석한 진무의 말은 팔문(八門)을 섞은 ‘구궁팔괘진’의 묘를 가리키고 있었다.
“허! 정녕 검진을 처음 보았단 말이냐?”
“예?”
진무가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검진의 검(劍)자도 모르는 것처럼.
“죄송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괜한 말을…….”
놀라기는.
허접하기 짝이 없는 구궁진법을 펼쳐 놓고는…….
속마음은 영 달랐으나 진무는 머쓱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었다.
그를 바라보는 명공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럴 수가. 그저 보는 것만으로 깨우친단 말인가? 진의 파훼법을 아는 것뿐만 아니라 보완점까지 생각한단 말인가?’
재능이 출중하다는 것은 누차 들어 왔으나 직접 대해 보니 그 놀람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저, 무슨 말씀이신지? 제가 보기에는 그저 대단할 뿐인데…….”
대화에서 멀어졌던 금적산이 슬쩍 끼어들었다.
“아, 죄송합니다. 이거 손님을 모셔 놓고 제가 큰 결례를 범했군요.”
“아닙니다. 그저 두 분의 대화에 호기심이 생긴 덕분에…….”
금적산의 말에 명공이 고개를 끄덕이며 진무를 뿌듯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사실, 이 아이는 무공을 익히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그 재능이 뛰어나 본문에서 기대가 아주 크지요. 장문인께서도 눈여겨보시는 인재입니다.”
외인에게 검진에 대해 일일이 설명할 이유도 없고, 어차피 상인에게 말해봐야 알지도 못할 일이었다.
명공은 복잡한 설명으로 금적산을 혼란스럽게 하는 대신에 진무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금적산으로서는 묘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뭐야 이거? 무당 장문인이 눈여겨봐? 이거 대제자가 될 놈은 따로 있었던 거 아냐?’
자신이 투자하려는 대상은 진혜였다.
무당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그의 탐욕을 충동질해, 나중에 그가 장문인에 오르면 통째로 빨아먹을 계획이었다.
그 와중에 뜬금없이 새로운 놈이 나타났으니.
‘진무라…….’
금적산의 눈동자에 어리숙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는 진무의 모습이 깊이 각인되었다.
그리고.
진무는 금적산의 눈빛이 변하는 것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흐흐, 이 새끼야. 네놈들이 머리를 굴려 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이다. 자, 안면은 텄고 어느 정도 호감도 준 것 같으니 다음은 어떻게 접근하느냐인데…….’
진무는 본심을 감추고 계속 어리숙한 연기를 하며 검진을 참관했다.
그 사이 아무것도 모르는 진혜는 명공과 금적산의 눈에 들기 위해 열심히 검진을 지휘하고 있었다.
* * *
“흠…….”
스승의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 진무의 얼굴에 고민이 가득했다.
“하아, 어쩐다.”
진무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청양상단의 인물들이 돌아간 다음 날, 진무는 그들에게 접근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은위(隱僞)단주 명세찬에게, ‘야, 청양상단 좀 털어 봐.’라고 하면 하루가 지나지 않아 금적산이 입고 있는 속옷 재질까지 알아 올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무당산에 갇혀 지내는 일개 도사일 뿐이다. 도무지 청양상단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지금 아는 것이라고는.
금적산이 무당을 이용해 먹으려 한다는 것과 청양상단이 몰래 ‘밀수’라는 기특한 상행으로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진혜가 대제자가 되고 청양상단의 금적산에게 뒷돈을 받아 가며 타락하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것에 침 바르게 둘 순 없지. 싸그리 털어 버려야 하는데…….’
물론 그러자면 청양상단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제대로 알자면 그들에게 접근을 해야 했지만, 지금의 진무는 무당산을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명분이 필요했다.
“하아…….”
문득 돌아보니 한쪽에서 고기를 구워 처먹고 있는 청우가 보였다.
이젠 아주 대놓고 처먹는다.
뜨거웠는지 고기를 후후 불어 대다 시선을 마주치자 배시시 웃는다.
저 쓸모없는 식충이 자식.
고민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자식 같으니.
“청우야.”
“예! 사숙.”
“그만 처먹고 스승님 상 차려.”
“넵!”
쓸데없이 해맑지나 말든가.
그래도 시킨 일은 곧잘 하는 우직한 녀석이었다. 볼 때마다 천우명이 생각나 미워할 수가 없었다.
청우가 푸짐하게 고기를 올린 밥상을 들고 들어가자 명진이 환하게 웃으며 맞이했다.
“식사는 다 했느냐?”
“저희는…….”
“아니요!”
청우가 밥상 위 가득한 고기에 침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이 새끼가 방금 처먹어 놓고.
“그럼 모처럼 같이 먹자꾸나.”
“예!”
참 언제 봐도 한결같은 녀석이다.
하는 수 없이 명진과 진무, 청우는 함께 모여 육향 가득한 저녁 식사를 했다.
그사이에도 진무는 머릿속으로 청양상단에 접근할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진무야.”
“…….”
“진무야?”
“예? 아, 뭐라고 하셨나요?”
“흠.”
명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게냐?”
“아, 아닙니다. 그다지…….”
생각이 너무 깊었던 탓일까. 진무가 제 실수를 깨닫고 희미하게 웃는데 청우가 끼어들었다.
“청양상단이 왔다 가고부터는 계속 저러시는데요.”
“청양상단?”
“예. 이틀 전에 찾아온 상단입니다. 원화관에서 듣기로는 무당에 꽤 많은 후원금을 주어서 명선 사조님께서 엄청 좋아하셨다고 하던데요.”
청우가 입 안에 고기를 가득 물고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청양상단이라. 허, 하긴 세상 구경할 때도 되었지.’
명진은 그제서야 빙긋이 웃었다.
이미 약관에 오른 진무였다.
속세에서 온 이들을 보았으니 호기심이 일 만한 나이가 아니던가?
비록 봉문을 했다지만 자신의 몸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면 벌써 한참 전에 제 사형들처럼 산 밖으로 나가 보았을 나이였다.
‘녀석, 하긴 내 수발을 드느라 수년 동안 산중에 갇혀 있다시피 하였으니…….’
명진의 아련한 눈빛이 닿았으나 진무는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식사가 끝난 후 상을 내가는 진무를 향해 명진이 물었다.
“내일이 며칠이더냐?”
“초나흘입니다.”
“초나흘이라……. 알겠다.”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오냐.”
명진은 흐뭇해진 표정으로 진무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이 새낀 밥 잘 처먹고 왜 쪼개고 지랄이야?
그 웃음의 의미를 알지 못했던 진무는 그저 고개만 갸웃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