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어찌 그러는가?”
엉거주춤하게 섰던 진무를 향해 장문인 운해가 얼굴을 찌푸렸다.
“아, 아닙니다.”
자신의 실수를 알아챈 진무가 재빨리 예를 차리며 다가가 공손하게 절을 올렸다.
“무당의 진무가 곤륜의 어른들께 인사드립니다.”
“허허, 듣던 대로 당대의 무당지검께선 꽤나 젊으시구먼.”
“……예.”
“하긴 젊은 것이 뭐가 중요할까? 그만한 실력을 갖추었기에 명현자께서 그 칭호를 내리기로 결정하신 게지.”
운해의 말에 진무가 힐끗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한 사람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진룡(眞龍) 풍환.
혹은 곤륜지선(崑崙之仙)으로 불렸던 그는 정무칠성의 한 사람이자 오랫동안 곤륜을 이끈 인물이었다.
진무가 청해성에 들어온 적은 육십 년 전 이후 없었으나, 풍환에 대해서만큼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무공도 무공이지만 그 인품과 의기란 대단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가장 정파에 어울렸던 인물.
그렇기에 세상 혼자 살던 진무였음에도 동년배의 그에게 존경의 감정을 느낀 바 있었다.
“그래, 얼마나 머무를 작정인가? 청성에서는 사흘을 머물렀다 하던데?”
“모르겠습니다. 아직 정한 바는 없습니다.”
“그렇군.”
운해가 고개를 끄덕이다 넌지시 묻는다.
“청성에서 오경, 그분과 동수를 이루었다지?”
오경은 진무가 청성의 인증을 받기 위해 비무를 치렀던 전대 장로의 도명이었다.
“예. 운이 좋았습니다.”
“허허. 지나친 겸양은 과례일세. 무인에게 운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한 터럭의 방심에 목숨이 날아가는 곳이 무림일세. 그 정도면 응당 실력이라 할 만하네.”
평가마저 다르다.
확실히 곤륜은 그가 지나 온 어떤 곳과도 달랐다.
거대한 도관의 전경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기질 자체가 무당이나 청성과는 완전히 다른 성향이다.
뭔가 대화에 실전적인 느낌이 담겨 있다고 해야 할까?
마교와 경계한 곳이라 연일 싸움이 끊이지 않으니만큼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운해의 말속에는 감탄 이전에 은은한 자부심이 깔려 있었다.
진무의 실력에 정말로 놀랐다기보다는, 예의상 한 말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만큼 곤륜의 무공에 자신감이 있다는 의미.
또한, 운해와 진무가 묻고 답하는 사이 정좌한 장로들에게서는 어떠한 말도 들리지 않았다.
말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것처럼 듣기만 하는 모습. 입을 떼는 것은 오직 장문인 한 사람이었다.
그것은 마치 마교의 그것처럼 보였다.
강자에 대한 예우. 즉 강자존.
피의 율법까지는 아니었으나, 곤륜 또한 강자존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었다.
“자, 그럼 오늘은 이만 돌아가 쉬도록 하고. 혹,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하게.”
자리를 물리는 운해를 향해 진무가 물었다.
가장 궁금한 것.
“혹시, 풍환 사조님께선?”
진무의 물음에 장문인은 물론 장로들의 얼굴에 처음으로 변화가 생겼다.
운해의 눈에 한 줄기 수심이 스쳐 지나간다.
어째서?
“사숙께선 병환 중이시네.”
“……아!”
풍환의 연배라면 이해하고도 남았다.
자신도 말년에 병을 얻었지 않던가? 역시 도력이 높아져도 노화는 못 막는 모양이었다.
등선이니 열반이니.
신선계는 무슨. 죄다 뻥이다.
아무리 뛰어난 무인이라 해도 영원히 늙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공을 통해 젊음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을 뿐.
하지만 일정 시간이 되면 내공이 흩어지기 시작하고, 그동안 늦춰 온 세월을 직격으로 마주하게 된다.
진무도 그랬다.
칠십까지는 젊은이 못지않았으나 그 후부터는 하루가 다르게 늙어 갔고, 말년에는 손 하나 꼼짝할 수 없게 되었다.
당금의 정무칠성?
거의 대부분 진무와 같은 세대의 인물들이다.
대부분 칠십에 다다랐고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십 년 안쪽으로 다들 늙음에 대해 알게 될 것이 분명하다.
무당에 있는 운공이라는 노인네가 특이한 체질일 뿐이었다.
어쩌면 오래전 내공을 잃고 세월과 함께 늙었기 때문이리라.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좋은 거 안 처먹고 내공이 없어도 오랫동안 장수하는 축복받은 사람들이.
‘풍환, 아까운 사람. 그 역시도 세월을 흐름을 거스르지는 못했는가.’
이미 경험했던 일이나 풍환의 소식을 들으니 새삼 마음이 아릿해져 왔다.
먼저 겪어 본 사람의 마음이랄까?
“하면 만나 뵙지는 못하겠군요.”
“음…….”
진무의 말에 운해가 난감한 표정을 짓자.
“만나 뵈면 되지요.”
뒤편에서 앉아 기다리던 운암이 차분하게 말했다.
지가 뭐라고 어른들 말씀…… 잠깐, 운자 배면 장문인과 같은 항렬?
저 어린 게?
진무가 아무리 뛰어나다지만 고작해야 일대제자와 동급이다.
무당의 경우 다른 도문과 달리 환란을 겪었기에 그 연령대가 낮은 것임을 감안하면 운암이 장문인과 같은 항렬이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아, 그러고 보니 운암 사제와는 먼저 인사를 나누었다 들었네.”
“……예. 우연찮게.”
“허허, 우연이라니. 불가가 그러하듯 도가에도 우연이라는 것은 없다네. 모두가 인연인 게지.”
뭔 도사 같은 개소리인가?
“자네가 풍환 사숙을 흠모한 마음이 이어져 이 곤륜에서 운암을 가장 먼저 만난 듯싶네.”
도통 뭔 소린지?
당최 그게 그거랑 뭔 상관이란 말인가?
“운암은 풍환 사숙의 진전을 이었다네.”
“……?”
풍환의 제자라고?
그렇다면 운자 배인 게 당연하다.
아니, 그런데 전대 장문인의 제자면 당연히 운암이 장문인이 되어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진무가 의아해하자 운해가 이해를 돕듯이 설명을 이었다.
“사숙께서 병환을 얻기 전 장문인직을 나에게 넘기시고, 운암을 제자로 들이셨지.”
대충 이해는 되었다.
일종의 양위(讓位)를 한 것이다.
하지만 전대 장문인이면 장로원의 원주가 된다든지 해야 하는데 그저 사숙이라 부르는 것 또한 의아했다.
뭐, 곤륜 나름의 직급 체계가 있을 수도 있으니.
운암이라는 녀석, 나이답지 않게 무공이 제법이다 했더니 그 풍환의 제자일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자네와 비슷한 점이 많겠구먼. 자네가 약관에 무당지검이 되었듯, 그 역시 약관에 진룡이라 불린 사숙의 진전을 이어받은 곤륜의 수호자라네.”
곤륜의 수호자.
진무가 피식 웃었다.
뭔가 무당을 따라 한 듯한 냄새가 나는 것도 같고?
“미리 말해 두겠네만 이 곤륜에서 자네의 깨달음을 시험할 인물이기도 하네.”
운해가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흥분 좀 했다고 문장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옹알이 자식 정도야.
그보다 풍환이 병환 중이라니 만나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연이 닿았으니 한때 존경했던 인물의 마지막을 두 눈에 담아 두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끝은 어떠한가?
자신처럼 사무치게 외롭지는 아니한가?
“장문인, 해서 말씀드리는 것인데.”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운암의 말에 운해와 장로들이 귀를 기울였다.
진무가 무당에서 그러하듯, 진룡 풍환의 진전을 이었다는 그의 존재 또한 곤륜에서도 비슷한 모양이었다.
“진무 도장이 곤륜에 머무는 동안 천룡각에서 모시고 싶습니다.”
“천룡각에 말인가?”
“예.”
그곳이 어딘지 궁금했으나 진무는 입 밖에 내어 묻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운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그래서 사숙을 만나 뵈면 된다 하였구만. 알겠네. 자네 마음이 그러하다면 뜻대로 하게.”
“감사합니다. 장문인.”
“감사는 무슨. 그럼 기거하는 동안 자네가 그를 안내할 생각인가?”
“예.”
“알겠네. 그럼 오늘 하루 푹 쉬시도록 하게.”
운암의 말에 운해가 빙긋이 웃으며 일어나려 하자, 진무가 다급히 청했다.
“장문인!”
“뭔가?”
“한 가지 더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부탁? 말씀해 보시게.”
“혹, 조사전에 들러 먼저 인사를 여쭐 수 있겠는지요?”
“…….”
진무의 말에 운해는 물론 장로들까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뭐가 잘못됐냐?
조사전에 제를 올린다고 하면 마땅히 기뻐하며 칭찬할 일이지.
“진무 도장, 곤륜에는 조사전이 없는데요?”
운암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예? 하면 선대의 위패를 모신 사당은?”
“무당의 제자답게 먼저 예를 갖추시려는 모양이군요. 하지만 곤륜에는 선대를 모신 사당이나 조사전이 없으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
잠시 멍한 생각이 든다.
그러곤 갑자기 화가 치민다.
조사전이 없다고? 이런 후레자식들 같으니!
조사전이 없으면 선대의 위패는 어디에 모신단 말이냐!
응당 사람이 죽었으면 그의 공적을 대대손손 기리고 때때로 제를 지내 추모를 해야지, 어?
니들이 도사냐? 도사야?
조사전을 샅샅이 훑을 생각에 몸이 달아 있던 진무는 속으로 갖은 욕설을 퍼부었다.
청성처럼 조사전을 뒤지면 쉽게 얻지 않을까 부풀었던 가슴이 바람 빠진 공처럼 쪼그라들었다.
“자, 가시지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닥쳐라!
이 문장조차 제대로 구성할 줄 모르는 놈아!
어서 나를 조사전으로 안내하란 말이다!
마음속으로 피눈물이 흐른다.
조사전이 없다니. 하다못해 그 흔한 사당도 없단다.
망할, 그럼 양의심공 조각은 도대체 어디 가서 찾는단 말인가?
* * *
힘이 쭉 빠져 버린 진무는 운암을 따라 천룡각으로 향했다.
이 설명하기 좋아하는 자식의 말로는 그곳이 자신이 맡은 거처란다.
즉, 풍환의 거처이기도 했다.
그래. 풍환은 만날 수 있겠지.
그럼 뭘 하나, 조사전이 없는데.
“곤륜은 오랫동안 전쟁을 치르며 살아온 문파입니다.”
잘 안다.
“때로는 마교에 납치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거리며 들판에서 죽어 시체조차 찾을 길이 없지요.”
“…….”
“해서 저희는 마음속에 담습니다. 시신도 남기지 못한 분들이 있는데 위패만 모실 수는 없지요. 그저 도적에 올린 이름만을 간직하며 넋을 기릴 뿐입니다.”
비겁한 변명이다!
산문에 기관을 설치할 정도로 돈이 썩어 넘치는 놈들이 조사전을 짓지 않았다는 게 말이나 되냐?
시체는 없어도 영혼은 위로해 줘야 할 거 아냐!
“하지만 언젠가, 마교를 무너뜨리는 날, 조사전 지어, 도적에, 위패, 반드시!”
운암이 다짐하듯 말을 잇다가 흥분했는지 또 마구 잘라먹는다.
반드시 같은 소리 하고 있다. 마교를 무너뜨려? 그게 쉽겠냐?
그럼 조사전을 앞으로도 안 짓겠다는 거 아니야?
진무는 아무 대답 없이 운암의 말을 속으로 일일이 걸고넘어졌다.
실망감이 몸서리치도록 사무칠 때쯤 운암과 진무는 천룡각에 도착했다.
곤륜 도관의 가장 끝자락에 위치한 전각. 그리 크지 않은 외관이었다.
그래, 일단 풍환의 얼굴이나 보자. 병중이라 했으니 어딘가에 누워 있으리라.
“사숙! 오셨습니까!”
막 천룡각으로 들어선 운암의 모습에 서른 남짓한 도사가 황급히 달려왔다.
“무슨 일인가?”
“사조님께서 또 난리를 피우십니다.”
“뭐?”
운암이 그의 말을 듣자마자 급히 천룡각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많이 아픈가?
고통에 사무쳐서 난리까지 피울 정도로?
진무가 의아해하면서 안으로 들어가는데.
콰아앙!
갑자기 천룡각의 측면 벽이 터져 나가고, 안으로 들어갔던 운암이 튕겨 나왔다.
“놓아라, 이놈들아! 무당이 존폐의 기로에 놓였다 하거늘 내 어찌 가만히 곤륜산에 머문단 말이냐. 당장에 무당으로 갈 것이다!”
거친 쇳소리와 함께 터져 나간 벽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풍환자?”
진무의 눈이 황당함을 머금고 잔뜩 일그러졌다.
진룡 풍환자.
바로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