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48
148화
타닥, 타닥.
홰를 밝히자 뇌옥의 내부가 어렴풋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운암과 함께 진마관(鎭魔館)의 지하로 내려온 당세령은 길게 이어진 뇌옥을 바라보았다.
곤륜의 진마관.
마를 억누른다는 뜻을 가진 그곳은 뇌옥을 관리하는 곳이었다.
“열어라! 이놈들아! 내 당장에 네놈들을 쳐 죽일 것이다!”
“곤륜의 도사 놈들! 가죽을 벗겨 버리겠다!”
두 줄로 길게 늘어선 뇌옥에 갇혀 있는 이들이 원독에 찬 눈빛으로 고성을 질러 대고 있었다.
“이곳에 갇혀 있는 자들은 마교의 무인들 중에서도 계도가 되지 않는 악질적인 자들입니다. 오랫동안 저희 곤륜이 구금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 같네요.”
당세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당가였다면 모조리 죽였을 것이다.
하지만 곤륜은 전투에서 생포된 이들을 죽이지 않고 구금했다.
곤륜의 특성상 전투에서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었지만 생포된 자들까지 죽이지는 않았다.
곤륜 역시 근본은 도문이기에 그렇다.
끊임없이 계도하고 갱생시키려 노력하는 것이다. 삼시 세끼 밥까지 챙겨 주면서.
“자, 저쪽으로 가시죠.”
운암의 안내에 따라 당세령이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따라 한 층을 더 내려가 철문을 열자 적막한 분위기를 가진 방이 나왔다.
“저들입니다.”
운암이 가리킨 곳에는 세 명의 인물이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응? 심문을 따로 하지 않으셨나 보죠?”
“예? 했습니다만.”
당세령의 말에 운암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고문을 했다고요?”
“예. 이미 장로님들께서.”
운암이 당연하다는 듯이 진마관의 일대제자들을 바라보자 그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꽤 잔인했죠.”
“맞습니다. 차마 눈을 뜨고 보기도 힘들었다니까요?”
일대제자들의 말에 당세령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흐음, 그래요? 내가 중수법으로 고문을 하셨나? 분근착골 같은? 고문당한 것들 꼴이 너무 깨끗하네.”
“……예?”
“아, 아니에요. 일단 물이랑 천을 좀 준비해 주세요.”
“아, 과연 당가는 다르군요. 잔혹한 물고문을 하시려는 겁니까?”
“아니요. 제가 쓰려구요.”
“……?”
당세령이 배시시 웃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제자들은 운암의 지시에 이내 천과 물 한 통을 준비해 왔다.
“그럼, 비무할 시간도 부족하니 어서 시작할까요?”
당세령이 품에서 작은 천 두루마리 하나를 꺼냈다.
접혀 있던 천을 펼치자.
“이게 다 뭡니까?”
“오랜 전통을 가진 당가 고문법, 삼고형(三拷刑)에 필요한 도구들이요.”
“삼고형이라, 궁금한 이름이군요.”
삼고, 세 가지 고통을 주는 형벌이라는 뜻이다.
운암은 당세령의 말에 싱긋 웃으며 도구들을 꺼내 나란히 정리했다.
한 뼘 정도 되는 장침과 무수히 많은 단침, 생선포를 뜰 법한 얇은 소도 몇 개, 그리고 무엇이 담겨 있는지 궁금한 작은 약병.
운암은 의아하기만 했다.
“자, 그럼 지금부터 각자 뭘 알고 있는지 하나씩 털어 볼까나?”
“…….”
그리고 잠시 후.
“우웨엑!”
방을 뛰쳐나온 운암과 진마관의 일대제자들은 나란히 토악질을 해 대기 시작했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광경을 목도했고, 어째서 당가의 인물들이 독한 것들이라 불리는지 깨달았다.
당세령.
그녀는 단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다.
매우 상냥하게 웃으며 물었고, 되레 답하는 자들이 매섭게 눈을 치켜뜨며 소리를 지르고 침을 뱉어 왔다.
그리고 그녀는 미소 한번 잃지 않은 채 상냥하게, 아주 상냥하게 손톱을 죄다 뽑고 대침을 발가락과 손가락 끝에 하나씩 박아 넣었다.
그래도 거기까진 괜찮았다.
그 이후부터는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을 때마다 살갗을 얇게 벗겨 내었고, 그 위에 약병에 담긴 액체를 조금씩 부었다.
녹았다.
피가 끓고 살과 근육이 녹았다.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을 치는 와중에도 그녀는 무척이나 담담하고 여유로웠다.
물과 천을 자신이 쓴다 하더니 정말로 그랬다. 천으로 소도와 침을 닦아 내고, 물에 피 묻은 손과 얼굴을 닦았다.
사방이 벗겨 낸 살가죽이고 핏물이었다.
그렇게 이어지는 고문에 운암과 진마관의 제자들은 더 보지 못하고 중간에 뛰쳐나오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끼이익. 탁.
당세령이 밖으로 나왔다.
“대강 알아낸 것 같은데 내용이 좀 심각하군요. 삼궁이라는 자들이 정무맹에서 암약했다는 이야기는 어느 정도 들었지만 마교에도 있을 줄은 몰랐네요.”
“…….”
얼굴에 묻은 피를 쓱쓱 닦아 내며 해맑게 웃는 그녀의 모습.
그게 심각한 표정인 거냐?
그녀가 다가오자 운암이 자신도 모르게 흠칫 물러나고 말았다.
“자, 그럼 갈까요? 이야기가 길어질 듯한데.”
“……예, 아, 알겠습니다.”
뻣뻣하게 굳은 자세로 앞서 걷는 운암의 귓가에 당세령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아, 빨리 끝내고 진무랑 술이나 한잔해야지. 이 자식 어떻게든 자빠뜨려서…… 빼도 박도 못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왠지 진무 도장이 한없이 불쌍하게 여겨졌다.
저런 악독한 여자와 살게 될지도 모른다니…….
* * *
당세령이 고문을 시작했을 무렵, 진무와 풍환은 이미 곤륜에서 멀어져 산 아래를 달리고 있었다.
“……?”
앞서 달리던 진무가 갑자기 멈춰서 고개를 돌려 곤륜산을 쳐다보자 뒤따르던 풍환이 의아한 듯이 바라본다.
“왜 그러는가?”
“예? 아, 아닙니다. 뭔가 섬뜩한 기분이 들어서.”
“응? 게 무슨 소린가?”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근래 제가 좀 과민해진 것뿐이니까요.”
“……?”
풍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 가시죠.”
진무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드디어 풍환을 빼냈다.
무공에 대한 가르침을 부탁한다 구슬려 꾀어낸 참이다.
“한데 이렇게 멀리 가야 하는가? 본산에 알리지도 않았거늘.”
“사조님께서 허락받을 위치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네만 병증 때문에…….”
“뭐 별일이야 있으려구요.”
“그래도…….”
풍환이 곤륜산을 힐끗거렸다. 노인네, 불안해하기는.
하지만 멀리 가야 한다.
곤륜이 전혀 알지 못할 만큼 멀리.
진무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최대한 곤륜에서 멀리 떨어졌다. 인적은커녕 짐승 새끼조차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서.
그리고 얼마나 갔을까?
딱 좋은 곳이 나왔다.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 햇볕마저 가린 어두운 곳.
숲이 빼곡해 눈으로는 쉽게 발견할 수 없을 터였고, 곤륜에서 제법 멀리 떨어져 있으니 강기를 사용한다 해도 폭음이 들리지 않으리라.
“저곳이 좋겠네요.”
진무의 말에 걸음을 멈춘 풍환이 숲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청량림(淸凉林)이로구만.”
청량림?
“자네 이곳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그럴 리가 있나.
그냥 주변에 좋은 곳이 있나 살피다가 운 좋게 발견한 것뿐이었다.
“청량림은 말일세.”
“…….”
풍환이 청량림의 역사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아오, 시간도 없는데.
진무는 얼굴을 찌푸린 채 그 길고 긴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대충 고개나 끄덕여 주었다.
“……그런 곳이지.”
“아, 어쩐지.”
적절한 반응과 감탄사는 덤이다.
“하긴 나도 몇 번 이곳에서 수련했었지. 그때가 언제냐 하면…….”
또 설명이다.
그 스승에 그 제자라더니 둘 다 설명하는 걸 왜 이리도 좋아하는지.
더 듣다가는 애먼 시간만 버리겠다고 생각한 진무가 서둘러 말을 끊었다.
“제가 잘 선택했네요. 사조님.”
“응? 그렇지. 아주 잘 택하였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그러세. 비무를 원하는가?”
그럴 리가?
진무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그럴 수 없다.
풍환이 병증을 보이는 것은 무당의 이야기가 나올 때였다.
앞선 두 번의 경우를 생각했을 때 확실하다.
그리고 병증을 보일 때마다 희한하게도 진무를 오해하고 있었다.
아무리 운암을 통해 운룡대팔식에 대한 파훼법을 찾아냈다고 해도 정면 승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운암과 풍환은 경지 자체가 다르니까.
또한,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리한 조건을 선점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장소는 마련되었고, 다음은 그의 힘을 빼야만 한다. 그가 병증이 도져 공격해 온다고 해도 진무 혼자서 제압할 수 있을 만큼.
여기까지가 진무의 계획이었다.
그렇기에 아무도 끼어들지 못하도록 풍환을 곤륜에서 최대한 먼 곳까지 꾀어낸 것이다.
그리고 이제 계획의 첫 단추를 끼워 볼 참이었다.
“사조님이 구현하시는 운룡대팔식을 보고 싶습니다.”
“응? 운룡대팔식을?”
“예!”
“그건 운암과의 대련을 통해…….”
“사조님의 운룡을 보고 싶습니다.”
풍환이 진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진무의 말은 무척이나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비무라면 몰라도 자신의 무공을 외인에게 보여 주는 것은 엄격히 금하고 있었다.
아무리 같은 도문의 제자라고는 하나 무당과 곤륜은 엄연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또한, 다른 누구도 아닌 진무가 운룡대팔식을 보여 달라 함은 꽤 큰 문제가 있다.
그는 이미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는 무인이다. 무(武)에 대한 깨달음이 남다르기에 무공을 보면 그 안에 담긴 진의를 깨우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렇게 될 것이다. 진무라면 풍환이 깨달은 운룡대팔식의 심득마저도 헤아려 낼 가능성이 크다.
“허허, 그래서 이리도 멀리 데려온 겐가? 다른 이의 눈을 피하기 위해?”
“예.”
물론, 이유는 좀 다르지만.
“흐음…….”
풍환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무당의 제자인 그가 자신의 무공을 보고 난 뒤 한 단계 발전한다면 그 또한 기꺼운 일이리라.
본시 불가에서 이르길 득지본유(得之本有)요, 실지본무(失之本無)라 했다.
얻었으나 원래 있던 것이고 잃었으나 원래 없던 것이라.
만약 얻는다면 원래 깨달아 마땅한 것이고 얻지 못한다 해도 그만이니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모두가 진무에 의한 것이다.
더욱이 평소 무당을 애틋하게 여기고 있었던 풍환은 긴 고민 없이 진무의 청을 수락했다.
“좋네. 보여 줌세.”
풍환이 허락하자 진무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됐다.
이걸로 충분하다.
풍환이 진무의 앞에 양팔을 늘어뜨리고 섰다.
그저 서서 가볍게 숨을 골랐을 뿐이나, 그 자체로도 순식간에 자연에 어우러진다.
“후우…….”
들숨과 날숨이 공기에 섞여 들고, 그의 기운이 마치 무(無)의 경지에 이른 듯이 사라져 자연에 동화된다.
반개한 눈동자에 고요함이 감돌고 가볍게 찬 발에 그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타고 흐르듯이 양손이 천천히 들려 바람의 결을 쓸자 대기가 그의 움직임을 따라 실바람처럼 변해 부드럽게 흘렀다.
뗀 발이 지면의 흙을 밀어 내고, 그의 몸이 무게가 사라진 듯 떠오른다.
움직임에 학창의와 비슷한 도포 자락이 휘날리니 마치 선계의 신선이 하강하여 춤을 추는 듯했다.
아름답다.
그것은 무공이되 실로 춤사위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를 바라보던 진무의 미간이 잔뜩 일그러진다.
“사조님!”
“응?”
신경질적이기까지 한 진무의 고함에 흐름이 끊어져 버린 풍환이 현실로 돌아왔다.
“뭐 하세요?”
“응? 무슨 소린가? 자네가 운룡대팔식을 보여 달라 하여…….”
“아, 이해를 잘못하셨나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