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5
15화
“진허 사형?”
“무엇이 전통이냐?”
“…….”
진허의 물음에 진혜가 눈살을 찌푸렸다.
변변치 못한 사제에게 얻어맞아 며칠 동안 정동궁, 의실(醫室) 신세를 진 사형이다.
응당 부끄러워해야 마땅한 사람이 변절해 진무의 편을 들고 있었다.
“전통만 지키면 뭐가 나아진다더냐? 좋은 것을 찾아 변화시킬 생각을 하지 않고…… 쯧쯧.”
혀를 차며 비웃는 모습에 진혜의 양쪽 눈꼬리가 매섭게 치켜세워졌다.
“명진 사숙을 보지 못했어? 고기를 드시고 나서 거동까지 하시는 모습?”
“말을 삼가십시오. 계율을 어긴 것을 두둔할 참입니까?”
“계율? 허, 과연 영은궁을 맡은 실무 제자답구나. 그런데 그건 이미 해지된 금기 아니더냐?”
“그, 그건!”
“아까 보니 명공 사숙께서도 진무를 보내자는 의견에 찬성하시던데?”
“…….”
“진혜야.”
진허가 진혜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내가 보기엔 너는 그저 배가 아픈 것 같구나.”
“뭐요?”
“하긴 청양상단과 연을 맺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으니 당연한 일이지.”
“이, 이…… 감히…….”
“하지만 속내가 너무 빤히 보이는구나. 어찌 도사가 그리도 계산적이란 말이냐?”
“말을 삼가십시오.”
“삼가라? 글쎄. 네가 누구보다 세속에 밝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허나 그것이 옳은 방법으로 사용되지는 않는 것 같구나.”
“…….”
“진궁 사형께선 너를 어찌 보실 것 같으냐?”
“뭐, 뭐라구요?”
갑자기 거론된 진궁의 이름에 진혜가 흠칫하며 눈치를 살폈다.
“외부의 상단이나 세력과 조율을 하는 것은 응당 우진궁의 일이다. 응당 진궁 사형께 논의하고 명충 사숙께서 보고를 올리도록 해야 했던 일 아니더냐?”
“…….”
“한데 직접 장문인을 만나 아뢴 것은 무엇 때문이냐? 더욱이 청양상단주에게 도관을 안내했다지?”
“그, 그건 장문인께서…….”
“진혜야, 적당히 좀 하거라. 적당히. 대외 활동만으로 대제자가 될 것 같으냐? 각 궁을 얼마나 잘 이끌었는지, 그리고 제자들의 지지를 얼마나 받고 있는지가 더 중요한 것이다.”
“…….”
진혜가 진궁을 슬쩍 바라보았다.
미간에 내 천(川)자가 깊이 새겨져 있었다.
“대제자는 무당의 얼굴이다. 네 이득과 가문의 영달을 위해 무당을 이용하는 자리가 아니란 말이다.”
“사형! 말씀이 과하십니다!”
진허의 말에 진혜가 살기 어린 눈을 부릅뜨고 기세를 뿜어내었다.
쾅!
“그만들 하지 못해!”
결국 보다 못한 진궁이 매서운 눈으로 진혜와 진허를 노려보았다.
“죄송합니다.”
“죄, 죄송합니다.”
서로의 목소리를 높이더라도 실무 회의의 수장은 진궁이었다.
“쯧, 각 궁을 이끄는 중책을 맡은 이들이 어찌 이리 난잡한가!”
“…….”
“진혜도 진허도 서로에게 언사가 과했음을 사과하고, 더 이상 장로 회의에서 결정된 일에 왈가왈부하지 말라.”
진궁이 못을 박듯 말하자 진혜와 진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단, 기존에 결정된 대로 외유를 나가는 진무에게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는다는 원칙은 변함이 없다. 비록 장로들께서 결정을 하셨으나 십계를 어기고 징계 중인 녀석이다. 해검지 마목 보수 때와 마찬가지로 청자 배의 제자들이 휩쓸리지 않도록 각 궁에서는 통제를 단단히 하라.”
“예.”
“사형. 하지만!”
진허가 반대하려 하자 진소가 그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고개를 저었다.
“두 번 말하지 않겠다. 통제를 단단히 하되, 자발적으로 나서는 녀석들은 제재하지 않는다.”
진궁이 서슬 퍼런 기세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방을 나가 버렸다.
“사, 사형!”
그 뒤를 진혜가 급히 뒤따랐다.
“휴우…….”
모두가 나간 뒤 진소가 사람 좋은 표정을 하고 진허를 나무랐다.
“이 사람아. 대충 좀 하게. 진혜가 청양상단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몰라서 그러는 건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쯧쯧, 사람하고는. 그 불같은 성격 좀 고치랬더니. 진혜가 제 가문을 거론하는 것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몰라서 그래?”
“진혜가 잘못한 겁니다. 장로님들께서도 더 이상 거론하지 않는 죄를.”
“…….”
진허가 투덜거리자 진소가 물끄러미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그리 예쁜가?”
“예?”
“진무 말일세. 아주 예뻐 죽겠다는 표정이구먼.”
“아, 하핫! 예, 맞습니다. 아주 예뻐 죽겠습니다.”
“허참,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궁금하구만그래.”
“얼마나 대단한 녀석인지 아십니까? 무공에 대한 생각이 남다르다니까요?”
“남달라?”
“예. 생각해 보십시오. 검공을 변형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참오하고 또 참오하지 않으면 모르는 일입니다.”
“흐음, 신문십삼검을 말하는 게군.”
“예! 그뿐인 줄 아십니까? 원화관에 소속된 청우라는 녀석이 있습니다.”
“아, 들었네. 청상을 이겼다지?”
“이겼다 뿐입니까? 근래 무공에 대한 발전이 놀라울 지경입니다. 진무의 가르침 때문에요. 하하하!”
진허가 큰 소리로 웃자 진소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거참, 여인네도 아닌데 그토록 자네의 마음을 훔치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가끔 자네를 팰 걸 그랬네.”
“예? 사형도 참, 하하!”
“어쨌든 청상이도 요즘 충허암으로 달려가 올 생각을 하지 않더군.”
“하긴 청상이도 마음고생이 심했지 않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사형 잘못입니다.”
“음. 하지만 마음에 한을 씻어 내지 못한 아이를 생명을 다루는 정동궁의 제자로 들일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은가?”
“뭐, 그 덕에 전도유망한 녀석이 진무의 아래로 들어가게 되겠네요.”
“흠…… 글쎄. 그러하면 더욱 좋겠으나…….”
“사형께선 어찌 보십니까?”
“무얼 말인가?”
“대제자요.”
“자네 설마 진무 그 아이를 염두에 두는 건가?”
“예. 그리될 겁니다.”
“언제는 자네가 될 거라 그리 장담하더니…….”
“그땐 쓸 만한 사람이 없어서 그랬지요.”
“허, 말본새하고는. 진혜를 제외하면 자네 위로 죄다 사형들이거늘.”
“에이, 그래도 사형께선 제 마음을 아시지 않습니까.”
“글쎄. 다른 이는 몰라도 진궁 사형과 진혜가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을 터인데?”
“낭중지추(囊中之錐)라 하지 않습니까.”
잘난 놈은 어떤 상황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마련이었다.
“허헛. 어디 한번 두고 보세나.”
진소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실무 회의가 열리는 동안 진무는 사부인 명진을 부축해 저녁이 다 되어서야 충허암으로 돌아왔다.
자신이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아픈 몸을 이끌고 직접 나서 주니 기특해 죽을 것만 같았다.
“어찌 그리 보느냐?”
그 말에 ‘예뻐서요.’라고 답할 뻔했다. 진무가 피식 웃자 명진이 온화하게 웃었다.
“나갈 생각을 하니 좋은 게로구나?”
“뭐, 그저 스승님께서 걱정될 뿐입니다.”
“녀석…….”
마음에도 없는 소리였으나 명진은 진무가 자신을 챙기려는 마음이라 여기고 기특해했다.
“내 걱정일랑 말고 잘 놀다 오너라.”
“놀아요?”
“암, 도사는 놀지 말란 법이 있더냐?”
“음, 아마 내려가면 고기를 먹을지도 모르고…….”
“지금도 먹지 않느냐.”
“어쩌면 술도…….”
“허허, 녀석. 그 또한 어떠하랴? 술이라면 나도 소싯적 표주를 나갔을 때 먹어 보았느니.”
“기녀…….”
“…….”
“하룻밤…….”
“지, 진무야.”
“농입니다. 농.”
“녀석, 싱겁기는.”
눈을 찡긋거리는 진무의 모습에 명진이 헛웃음을 흘렸지만, 마음 한구석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왠지 제자 녀석이라면 진짜로 그럴지도…….
“사숙! 사숙!”
방 안으로 명진을 부축해 모시는데 청우와 청상이 한 짐을 꾸려서 달려왔다.
“응? 어쩐 일이냐? 그 짐은 또 뭐고?”
“외유 가신다면서요?”
“청양상단으로 가신다 들었습니다.”
동시에 터져 나오는 청우와 청상의 말에 진무가 눈을 끔벅거렸다.
“근데?”
“함께 가겠습니다.”
“저도…….”
“왜?”
“당연하지 않습니까? 제자가 스승을 보필해야지요!”
“제자? 누가?”
청우의 말에 진무가 코웃음을 쳤다.
“에? 제자…… 아니었나요?”
“지랄하네. 누가 너처럼…….”
멍청한 놈을 제자로 들인단 말이냐? 누구 좋으라고?
차마 끝까지 말할 수는 없었다.
“이미 명화 사숙조와 진소 사숙께 허락을 받고 왔습니다.”
“응?”
청상은 사형 진소가 주무를 맡고 있는 정동궁의 제자였다.
그런데 허락을 했다고?
진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 진허 사숙께서 잘 다녀오라면서 용돈도 주셨는걸요?”
자소궁에서 본 진허의 반응이라면 그럴 만도 했다.
분명 멍청한 청우를 자신에게 떠넘기려는 속셈이 틀림없었다.
“젠장, 됐어! 내가 왜 니들을 데려가냐? 쓸모도 없는데.”
“아니, 사숙. 그러지 마시고요.”
청우가 금세 울음이라도 터트릴 듯이 매달렸다.
“싫어! 내일 아침에 찾아오는 놈 중에 제대로 된 놈들 골라서 갈 거야.”
“사수-욱!”
청우가 주저앉아 비통하게 소리를 질렀다.
* * *
멀리 충허암이 보이는 자리.
진혜가 매서운 눈으로 진무와 청우, 청상을 노려보고 있었다.
‘네놈이 감히…… 몇 년 동안 기울인 우리 가문의 노력을 수포로 만들려고 해?’
진혜의 눈동자는 살기로 넘실거리고 있었다.
진혜의 본명은 우철환이었다.
단강구 우가장.
지금은 제법 무관으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는 곳이었으나 몇 대 전만 해도 단강구 뒷골목에서 알아주던 불량배 집단이었다.
그의 조부인 우주명의 노력으로 번듯한 무관이 되었으나 각종 더러운 일의 뒤를 봐주던 가문이라는 꼬리표는 여전했다.
그 꼬리표를 떼 가문의 숙원을 풀기 위해 우주명은 진혜를 무당의 제자로 들여보냈다.
벌써 이십 년도 전의 일이었다.
아마 무당에 어려움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진혜가 특출난 재능을 보이지 않았다면 턱도 없었을 일이었다.
진혜는 밤낮으로 노력했고, 일부러 계율을 담당하는 명공의 제자가 되었다.
그리고 끝내 무당칠자가 되었을 때의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꼬리표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대제자가 되는 길밖에 없었다. 무당의 장문인이 되는 길밖에 없었다.
지금의 무당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재정이었다.
세를 불리고 제자들을 먹여 살릴 돈이 없어 점차 쇠퇴하고 있었다.
진혜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리고 자신의 가문의 도움으로 청양상단과 연을 맺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제야 진저리 나는 꼬리를 떼기 위한 노력의 결실을 보려 하는데 웬 망할 놈이 끼어들어서 자신의 계획을 방해하고 있었다.
“천한 놈의 자식. 오냐, 네놈이 몸 성히 돌아올 수 있는지 두고 보겠다. 외유에서는 제법 험한 일도 많이 당하는 법이니까.”
푸드득.
진혜의 손을 떠난 전서구가 밤하늘을 향해 높이 날아올랐다.
무당의 일대제자 진혜.
그는 지금 무당 십계 중 절대로 범해서는 안 되는, 동문 살해를 저지르려 하고 있었다.
절대로 가서는 안 되는 길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