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77
177화
시끌벅적하던 연회가 끝나고 일상의 차분함을 되찾은 정무맹.
후원에는 철지량을 비롯해 제갈협진, 양소방, 등여평과 벽운영이 남아 있었다.
“쯧쯧, 저들은 여전하군요. 일선에서 물러나 후학을 양성할 나이에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가문의 욕심을 채울 생각들뿐이니.”
벽운영이 자리를 떠난 남궁무휴와 팽의방을 향해 혀를 찼다.
“어쩔 수 없는 일이오. 용봉관을 만들 때부터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까. 그나마 검혜께서 도와주셔서 쉽게 끝이 났소.”
“도움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맹주님. 모두가 정무맹을 위한 일인 것을요.”
벽운영이 철지량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며 웃는다.
“맹주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검혜께서 도와주시지 않으셨다면 창천 어른과 광호 어른이 도움을 주시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철지량의 말을 받아 다시금 그녀에게 공을 돌리는 제갈협진의 말에 벽운영이 곱게 눈을 흘겼다.
“자네가 그리 말하니 재미있군. 애초에 이리될 것을 알고 미리 모든 안배를 끝낸 것 아니었나? 대표자를 세우려 했던 것도 그렇고……. 노인네들을 너무 놀렸어.”
자신의 속마음을 정확히 짚어 내는 벽운영을 향해 제갈협진은 빙그레 웃기만 했다.
그녀의 앞에서 속마음을 감출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검혜 벽운영.
그녀는 무척이나 기민한 감각을 소유한 무인이었다.
오감을 극도로 수련해야만 심득을 얻을 수 있다는 그녀의 검공으로 인해 한때 천수천안(千手千眼)으로 불리기도 했다.
천 개의 손, 천 개의 눈. 그녀는 눈앞의 작은 변화와 흐름조차 놓치지 않는다.
“하지만 괜찮겠는가? 황소처럼 성격이 급한 팽의방은 몰라도 남궁무휴는 심계가 제법 깊은 사람이네. 어떻게든 팽의방과 작당해 남궁창위를 대표자 자리에 올리려 할 것이야.”
“압니다.”
“방안이 있다는 것으로 들리는군.”
“조금은요.”
“그럼 되었네.”
벽운영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철지량을 바라본다.
“그보다 ‘궁’이라는 자들이 무림을 어지럽힌다 들었습니다.”
“음. 그렇소.”
보타문에도 연락이 닿았을 터이니 검혜가 아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떤 자들입니까?”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소. 하지만 섣불리 움직이기는 곤란하오. 무턱대고 그들을 뒤쫓았다가 꽤 큰 피해를 보았으니까.”
“의창의 일을 말씀하시는 게로군요.”
철지량은 대답 대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오랫동안 잡지 못했던 그들의 꼬리를 겨우 발견했으나, 어찌 알았는지 함정을 파 두고 도망쳐 버렸소. 화약 밀거래가 단강구에서 일어난 것만은 아니었던 모양이야. 덕분에 안타까운 이들이 여럿 죽었어. 그래도 지금 개방에서 의심스러운 종적을 발견하고 뒤쫓고 있으니 뭔가 밝혀지지 않겠소. 당가에서도 찾고 있는 모양이고.”
철지량의 말에 양소방이 고개를 저었다.
“당가와 개방이 나섰으나 쉽지 않습니다. 궁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사패천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은 터라……. 더욱이 황당한 건 토벌하러 갔던 철검단이 천웅방에 붙어 버린 것입니다. 심지어 천우명을 쓰러뜨린 강자가 천웅방에 나타났다 하니.”
양소방의 말에 제갈협진 역시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누가 천우명, 그자를 쓰러뜨렸다는?”
둘의 대화에 벽운영이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본다.
누구나가 알다시피 사패천의 최고수는 혁련무강이었지만, 그 휘하에서 항상 엄청난 신위를 보여 준 철혈붕권의 이름 또한 너무나 유명했으니까.
더욱이 그녀는 천우명과 몇 번이나 싸워 본 적도 있었다.
여인이고 나발이고 무시무시하게 날려 대는 그의 붕권에 질려 머리가 산발이 되어서 도망친 적도 있었다.
“천웅방에서 신진 고수를 영입한 모양이오. 그가 천우명을 쓰러뜨린 것도 모자라 천웅방과 철검단을 연합시켜 버렸습니다. 어찌나 아쉬운지. 그대로 천웅방이 무너졌다면 서쪽은 마교만 신경 쓰면 될 것인데.”
천웅방과 철검단의 연합 또한 쉬이 넘길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벽운영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천우명을 쓰러뜨린 자의 존재였다.
섣부른 가정이기는 하나 천우명을 제압할 정도로 뛰어난 자라면 일월마교주 북리도천에 필적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정도의 무인이 마른하늘에 별똥별처럼 툭 떨어질 리가 없다.
“도대체? 어떤 인물이?”
벽운영은 크게 뜬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게 참 이상합니다. 아직 파악된 것이 없어요.”
제갈협진은 물론 양소방까지 미간을 찌푸렸다.
그로 인해 천웅방으로 갔던 정보개들은 물론 공동파의 무인들까지 큰 고초를 겪지 않았던가?
또한, 그날 이후 천웅방이 본격적으로 사패천에 반기를 들고 움직이기 시작했으나, 천우명을 쓰러뜨린 고수는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흠, 어쨌든 달라질 것은 없네. 지금은 사패천 내부의 문제보다는 ‘궁’이라는 세력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해.”
철지량이 둘의 대화를 끊고 양소방을 바라본다.
“그래, 전장 쪽은 성과가 좀 있던가?”
“아닙니다. 전장이라는 곳이 원체 관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라…….”
“듣자 하니 그쪽은 당위 그 친구가 나섰다던데?”
“예. 사해전장 쪽을 뒤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해서 정무맹 쪽에서는 동림전장 쪽을 뒤져 볼까 하구요.”
“음, 만전을 기해야 하네. 괜히 관과 마찰이라도 일어나면 조사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어.”
“예.”
철지량과 양소방의 대화.
그 또한 파악이 힘들다.
“전장을 뒤지다니?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이러다간 바보가 될 것만 같았다.
그간 속세의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 무척이나 후회된 벽운영이 설명을 구하듯 둘을 쳐다보자, 제갈협진이 대신 입을 열었다.
“아, 실은 의창의 일 이후에 삼궁이라는 단체의 종적이 묘연해졌지요. 한데 얼마 전부터 상계에서 묘한 소문이 들려오기에 개방이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묘한 소문?”
“예. 얼마 전부터 전장의 주인들이 바뀌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
“아직은 확실하지 않아 이렇다 하게 드릴 만한 말씀은 없습니다. 하나 무언가 의심스러운 구석이 많아서요. ‘궁’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제법…….”
말을 아낌으로써 불확실한 정보의 전달을 스스로 배제하는 제갈협진.
정파 무림의 수좌인 정무맹의 대군사이니만큼 당연한 일이다. 그의 말 한마디에 수많은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경우가 허다하니.
“어쨌든 후에 무당지검을 볼 낯이 없게 되었어. 그가 목숨을 걸고 그들의 종적을 찾아내었는데.”
철지량이 사천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실로 안타깝다는 듯 고개까지 내젓는 그의 중얼거림에서 벽운영은 또 한 번 의아함을 느꼈다.
“무당지검이요?”
“아, 듣지 못하였소?”
“……예?”
“허허, 무당이 한동안 웅크리고 있더니 대단한 기재를 배출했다오.”
“…….”
“약관에 칭호를 받았지.”
진무를 떠올린 철지량이 언제 얼굴을 굳혔냐는 듯 싱글거리며 말을 맺었다.
무당지검의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내부의 분위기가 바뀐다.
미세한 감정 변화에 불과했지만, 감각을 극도로 수련해 온 검혜가 그 변화를 느끼지 못할 리 없었다.
무엇 때문에?
심지어 모두가 철지량과 같은 인물을 떠올리고 있는 듯 풀어지는 그의 분위기에 맞춰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야, 약관이요?”
“대단하지요? 그 어린 나이에 무당지검의 칭호를 받다니. 하지만 그 정도는 놀랄 것도 아닙니다.”
양소방이 말을 보태고.
“하마터면 맹주님께서도 큰 창피를 당할 뻔하셨지요.”
“…….”
제갈협진까지 가세하자 벽운영이 크게 뜬 눈을 깜박이며 철지량을 바라보았다.
창피라면?
“허허, 이 사람들. 놀리지들 말게. 안 당해 본 사람은 모른다니까?”
짐짓 나무라면서도 기분이 무척이나 좋아 보이는 철지량.
“실은 그 녀석이 인사를 하러 왔다 하길래 실력 확인도 하고, 기왕 고집을 피우는 김에 눌러 앉혀도 놓으려 했다가 하마터면 질 뻔했지 뭐요.”
“……예?”
그럴 리가?
무당지검의 칭호를 받았다고 해도 고작 청년인데?
벽운영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혹시나 적수공권으로 상대한 것인가? 사정을 봐주려다가 방심에 낭패를 당한 것은 아닐까?
그런데 이어진 말은 더 가관이다.
“이기어검을 쓰고, 기검까지 사용했지.”
“…….”
이제는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검성이다.
검으로는 중원 최강이라는 마교주 북리도천도 한 수 접어주는 그였다.
그가 평생의 심득이 담긴 이기어검을 쓰고, 기검까지 사용했는데 낭패를 볼 뻔했단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참 대단한 녀석이라오.”
“…….”
철지량의 말을 다시 양소방이 받는다.
“광서성에 들러서 패력당이라는 사패천 예하의 문파를 홀로 박살 내고 백가장을 구하질 않나, 청성에 가서는 궁의 무리를 소탕하고, 청해에 가서는 잔혼마도 이강백을 쓰러뜨리고 민초를 보호한 것도 모자라 곤륜의 제자들을 구했소. 어디 그뿐인 줄 아시오? 풍환 어른의 병증을 완화하고 목숨을 구했답니다. 그리고 곧장 감숙으로 오더니 천웅방주 원공후의 손에서 공동과 우리 개방의 제자까지 구했다지 않소.”
“…….”
무림 영웅의 공적비를 읽듯이 단숨에 이야기를 쏟아 내는 양소방.
진무가 이루어 낸 그 긴 업적을 들으며 벽운영의 눈은 점점 더 커지고, 벌어진 입은 다물리지 못했다.
한 사람이 한 일이라고? 약관의 도사가? 몇 달 만에?
저자에 나도는 군협지의 주인공도 그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다른 건 둘째 치고 대마두의 하나인 이강백과 사패오왕의 한사람인 원공후를 상대할 정도라면?
“설마? 강의 경지란 말입니까?”
벽운영의 읊조림 같은 경악에 철지량이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허허, 검혜께서는 뭘 들으신 겝니까? 제가 낭패를 볼 뻔했다니까요.”
그녀가 잘못 알아들은 거라며 정정해 줘도 모자랄 판에 모두가 그 믿지 못할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한다.
“허 참, 비무를 하는데 다짜고짜 검강부터 뽑아 들고 시작하더이다.”
철지량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자 모두가 푸근한 표정으로 웃는다.
오랜만에 강호에 나왔다고 자신을 놀리는 것일까?
“무당지검의 이름에 참으로 걸맞은 아이라오.”
“…….”
차라리 양소방이 말했다면 과장이 보태졌다 할 것이다.
그런데 검성 철지량이 말했다.
게다가 등여평과 냉철하기 짝이 없는 제갈협진마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사실은 그가 바로 제가 세운 대책입니다.”
“……응?”
“아까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창천 어른의 심계에 대항할 대책이요.”
아!
벽운영이 소리 없는 탄성을 내었다.
그 정도 업적을 이룬 실력이라면 듣기만 해도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연을 보인 청상이라는 도장의 수준은 고작해야 탄기였다.
나머지 또한 다르지 않을 터였다. 비슷하거나 모자란 정도가 틀림없다.
남궁창위가 아무리 뛰어난 기재라 해도, 광호의 가르침에 창천의 은밀한 조력까지 더해진다 해도.
이미 강의 경지에 오른 이를 어찌 넘을 수가 있단 말인가?
“은밀히 듣기로는 풍환 어른과도 동수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
양소방이 자꾸만 덧붙인다.
이젠 놀랄 힘도 없다.
그냥 강의 경지도 아니고 진룡 풍환과 동수를 이루었다니, 이건 뭐…….
벽운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세상사 상식으로 이해 안 되는 것은 그냥 그렇구나 하고 편하게 생각해 버리는 쪽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
* * *
“아, 또 간지럽네.”
분명히 이런 적이 언젠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귓속에 벌레가 있나?
진무가 짜증스럽게 뒤편을 노려봤다.
자신과 함께 열심히 마룻바닥을 훑고 다니는 당세령과 위패 옆의 공적 기록을 세세하고 읽고 있는 운암.
설마하니 쟤들이 귀찮은 일을 시켰다고 속으로 내 욕을 하는 걸까?
“왜?”
진무가 째려보자 당세령이 신경질적으로 묻는다.
“아니야. 그냥 하던 거 계속해. 그리고 좀 더 세밀하게 살펴야 해.”
“…….”
“작은 구멍이 있을지도 몰라. 알겠지?”
달래듯이 말했지만 당세령의 눈은 점점 치켜떠진다.
하여간 싸가지하고는.
그래도 어쩌겠는가?
사람은 써먹을 유형에 따라 다르게 대해야 한다.
두들겨 패서 말을 듣게 해야 하는 유형도 있으나 당세령의 경우 좀 지랄 맞은 성격에 허언증 환자이기는 해도 잘 달래서 쓰면 도움이 되는 녀석이다.
청성에서도 이 녀석 덕에 첫 번째 조각을 쉽게 찾았지 않던가?
그때 못 찾았으면 진무의 꿈과 희망은 일찌감치 무산되었을 것이다.
또 그 귀한 삼양보명단도 얻었고.
운암은 부하라는 느낌이 매우 강하지만 당세령은 왠지 성질 고약한 손녀를 보는 듯한 느낌이기도 하고, 더군다나 소매 안에 감추어진 그녀의 팔에 남은 상처를 볼 때면…… 좀.
“뭘 멀뚱하게 서 있어?”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진무의 모습에 당세령이 팍 짜증을 냈다.
안 그래도 세세하게 살펴서 눈알이 빠질 지경인데 뭘 자꾸 보냐는 식이었다.
벌써 며칠째였다.
첫날엔 공동의 서가에서 백 년 전의 기록을 뒤졌다.
당세령은 진무의 부탁으로 백여 권의 서책을 꼼꼼하게 뒤지며 파자나 언어유희가 된 부분이 있는지 살폈고, 운암은 개미가 땅을 쓸고 지나가듯이 몇 번이고 바닥이며 벽을 살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고, 이어진 곳은 조사전이었다.
다 합해서 닷새째.
피로를 호소하자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에는 역할을 바꾸어 주었다.
당세령이 진무와 바닥과 벽을 살피고 운암이 기록을 읽는 것으로.
문제는 도대체 뭘 찾는지 말을 안 해 준다는 것이다.
그냥 구멍이나 틈, 미세한 기관의 흔적이 있는지만 살피라고 했다.
공동의 장로에게는 조사전에 제를 올리겠다고 말해 놓고선, 절이라곤 시늉도 한 번 안 했다. 공동의 제자가 문을 닫고 나갈 때까지 서성이다가 곧장 행동을 개시했을 뿐.
“아씨, 진짜 못 해 먹겠네!”
참다못한 당세령이 벌떡 일어나서 뱀눈을 뜨고 진무를 쏘아보았다.
“안 해! 못 해! 이게 지금 며칠째야?”
“당 소저, 조금만 참으십시오. 마침 공적 기록을 거의 다 읽어 가니 금방 도와드리겠습니다.”
역시 부하 삼 호는 기특하기만 하다. 진무는 속으로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닥쳐! 너나 열심히 해. 난 안 해!”
당세령은 그새 많이 친해진 모양인지 운암에게 대놓고 반말지거리를 하고는 짜증스럽게 몸을 돌려 조사전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쯧쯧, 인내심이라고는 없는 쥐잡이 소 녀석.
그래도 내일은 뒷발질 좀 해야 한다. 쥐를 잡아야 하니까. 알겠지?
“야! 어디 가?”
“배고파! 밥 먹으러 갈 거야!”
벌써 밖으로 나가 버린 당세령의 모습에 진무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데.
“저어, 진무 도장?”
“응?”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요?”
“…….”
“무얼 찾으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곳으로 가 보시는 것이…….”
웃고는 있었지만 이미 있는 대로 벌겋게 충혈된 눈동자.
진무의 부탁(?)을 너무 열성적으로 수행하느라 눈도 쉬이 깜빡이지 않은 때문이었다.
“흠. 어디까지 읽었는데?”
“저기요.”
운암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거길 왜 읽었냐?”
“예?”
“내가 저쪽이라고 했잖아!”
진무가 가리킨 곳은 지금으로부터 육 대(六代) 이전의 장문인에서 삼 대(三代) 이전의 장문인까지였다.
“…….”
그 말에 운암이 하늘이 무너지는 표정을 지었다.
진무가 처음 가리켰던 손가락질을 오해한 것이다.
그저 위패를 가리켰다고 생각해서 초대 조사부터 하나씩 정성스럽게 훑고 있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니.
“아니, 진작, 말씀을, 그저, 위패 전부, 눈깔, 아픈!”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흥분에 휩싸여 옹알이를 시전하는 운암의 모습에 진무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죽을라고?
진무라고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당세령과 함께 혹시 있을지 모를 흔적을 찾느라 집중했기도 하고, 애초에 운암을 믿고 있던 터라 안심하고 맡긴 것뿐이다.
아니, 손가락이 가리킨 부분을 살펴야지. 왜 쓸데없이 전체를 모두 살핀단 말인가?
머릿속에 잘 기록해 두어야겠다.
부하 삼 호, 생각보다 이해력이 떨어짐.
“하아, 됐다. 됐어. 일단 나가자. 가서 밥부터 먹자.”
당세령이 밥을 외치고 나갔기 때문인지 갑자기 배가 고팠다.
“아, 그럴까요?”
그 말에 운암이 언제 실의에 빠진 표정을 지었냐는 듯 밝게 대답해 왔다.
마치 구원이라도 받은 듯한 표정.
이 새끼도…… 하기 싫었구나.
진무가 가늘어진 눈으로 운암을 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