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86
186화
“무슨 일이냐!”
종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사방에서 뛰어나온 무인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접객대 앞을 가득 채운다.
과연 동림전장의 본점답게 그 반응이 매우 빨랐다.
전장 호위 무인들이 포위한 가운데 그들을 이끄는 수좌가 쓰러진 점원을 보며 얼굴을 찡그리며 앞으로 나섰다.
“본인은 서안 본점을 총괄하는 황각수라고 하오. 귀하께선 누구시기에 이리 소란을 피우는 것이오?”
황각수가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남궁창위 등을 향해 예를 갖추어 인사를 했다.
“흥, 개를 때리니 종놈이 나왔구나. 이제 종놈을 때리면 주인 놈이 나오려나?”
“말을 조심하시오!”
매섭게 쏘아붙이는 남궁창위의 말에 팽팽히 맞서는 황각수.
둘의 기세에 전장 안을 감싼 긴장감이 점점 정도를 더해 가고, 그 사이 뒤편에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던 제갈산산과 청상의 눈빛이 묘하게 변했다.
“청상 도장.”
“예?”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
제갈산산이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해 오자 옆에 있던 청상이 ‘역시.’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황각수라는 자가 등장했을 때 청상은 묘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을 본점 총관이라 밝혔으나 꽤 고강한 무공을 익히고 있음이 분명했다.
총관이라는 직책에 비해 과한 무공. 이것을 단순히 동림전장 본점의 위세로 치부해야 할 것인가?
그것을 그녀도 느낀 것이리라.
“스승 누나, 뭐가요?”
눈치를 못 채고 있던 청우가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진난만하기만 한 녀석.
주변의 분위기가 살을 에일 듯 따가워졌음인데, 전보다 훨씬 더 투실투실하게 살이 올라 이젠 완전히 자취마저 감추어진 눈으로 맹하게 묻는 꼴이란.
그리고 이놈의 자식이 스승이면 스승이지 누나는 또 뭐란 말인가?
누나라고 부르지 말라고 내 그렇게 단단히 일렀건만.
청상이 살짝 눈을 찌푸렸지만 굳이 탓하지는 않았다.
용봉관에 들어온 이후로 청우의 기초 학식을 함양하기 위해 전담 스승이 되며 둘이 많이 친해진 터다.
청상이 몇 번이고 도사의 품성에 어긋난다며 주의를 주었지만, 세상에는 늘 말로 해서 안 되는 놈이 있는 법이다.
청우가 ‘누나, 누나’ 하며 따르는 것이 귀여웠던지 산산이 오히려 두둔하고 나서서 청상은 더 이상 잔소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청우의 호칭 문제가 아니라 제갈산산의 의문이었다.
“제가 보기에도 이상한 자로군요.”
“예?”
“아, 저 황각수라는 사람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
의아하게 쳐다보는 것을 보니 청상의 예상과 달리 그녀는 황각수에게서는 별다른 것을 느끼지 못한 모양이었다.
“도장께선 다른 것을 느낀 모양이네요.”
“……?”
“제가 본 것은 전장의 반응입니다.”
전장의 반응?
청상이 제갈산산을 바라본다.
그녀의 관점은 청상과 달랐다.
청상이 황각수라는 인물에 대해 집중하는 동안 그녀는 다른 것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자들, 마치 미리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지 않나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청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소곤거렸고.
“음, 생각해 보니 그렇군요.”
잠시 고민해 보던 청상이 고개를 끄덕인다.
뭐가 그렇다는 거지?
청우가 고개를 좌우로 휙휙 돌려 청상과 제갈산산을 번갈아 보며 눈을 끔벅거렸다.
둘이 모르게 전음을 나눈 건가?
별말도 안 했는데 뭔가 둘이서만 아는 듯한 모습이다.
“저 사형, 스승 누나, 저도 이해가 가게끔…….”
청우가 소심하게 말해 봤지만 둘은 더욱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에 집중한다.
“아무리 소란이 있었다지만 반응이 너무 빨라요.”
“주시하고 있었다는 뜻이겠군요. 남궁 공자가 저리 나오게끔 유도를 한 것이 아닌가 싶고.”
“예. 한데 어째서 그럴까요? 전장 역시 상단과 마찬가지로 정무맹의 입김을 무시할 수는 없을 텐데요?”
이러한 관계적인 상황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청상이 되묻자 제갈산산이 설명하듯 답했다.
“맞습니다. 입김을 무시할 수 없죠. 통상적인 상황이라면 정무맹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어야 합니다. 한데 저들의 반응을 보면.”
제갈산산이 주의 깊게 황각수의 모습을 살핀다.
“아무리 전장이 상단보다 무림이 아닌 관과 연관이 깊…… 아! 이런!”
설명을 하던 제갈산산이 문득 눈을 크게 떴다.
“청상 도장, 남궁 공자의 행동을 막아야 할 것 같습니다.”
다급한 어조에 연유를 알지 못하는 청상이 의아하게 그녀를 쳐다보는데.
쩌어엉!
“크윽!”
청상이 막을 새도 없이 남궁창위가 주먹을 날렸고, 황각수가 거친 신음과 함께 벽에 처박혔다.
어?
청상의 얼굴이 굳는다.
어째서?
자신이 본 황각수의 기세는 생각보다 뛰어났다.
본인을 총관으로 밝혔지만, 풍기는 기세를 정확히 예측하기가 힘들었다.
기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 딱 두 가지였다.
상대가 힘을 숨기는 데 능숙하거나, 자신보다 월등히 강한 경지거나.
그런 자가 저리 쉽게 당한다고?
반항조차 하지 않고?
“고작 그 정도의 무위를 가지고 나 남궁창위의 앞을 막아? 간덩이가 부었구나.”
청상 등이 의혹을 품는 사이 황각수를 내던져 버린 남궁창위가 더욱 기세등등한 표정을 짓는다.
걸음을 내딛는 모습이 당장이라도 황각수를 곤죽으로 만들어 놓으려는 듯이 매서웠다.
한데 얻어맞아 피가 흐르는 황각수의 입가에 지어진 묘한 미소.
제갈산산의 머릿속에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조금 이상했다.
아무리 대단한 전장이라도, 일개 점원이 미치지 않고서야 남궁가의 이름을 들먹인 상대를 박대할 수는 없다.
또한, 마치 시비를 걸 때까지 기다렸다는 듯 나타나 기어이 얻어맞은 황각수라는 인물.
멍청했다.
미리 상황을 눈치챘어야 했는데.
“서둘러야 합니다. 더 이상의 소란은 좋지 않습니다. 잘못하면 조사 자체를 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제갈산산의 표정을 본 청상이 더 머뭇거리지 않고 남궁창위를 말리려 걸음을 내디뎠다.
자세한 설명이야 어찌 되었든 그녀의 판단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남궁 공자, 그만하십시오!”
“…….”
청상이 재빨리 황각수의 앞을 막아서자 남궁창위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지?”
“무분별한 무력행사는 좋지 않소. 저들에게도 입장이라는 것이 있지 않소.”
청상의 말에 남궁창위의 눈가가 씰룩거린다.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다.
청상이 자신의 앞을 막았다는 사실이.
“청상 도장의 말이 맞습니다. 우리는 조사를 하러 온 것이지. 싸우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제갈산산까지 나서서 말린다.
그것이 남궁창위의 눈동자에 맺혀 있는 열기를 더욱 타오르게 만들었다.
감히 네년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이 자식 편을 들어?
남궁창위는 싸늘한 시선으로 청상, 청우, 제갈산산을 넘어 갑무반의 무인들을 살펴봤다.
청우는 상황 파악이 안 되는지 여전히 멀뚱한 표정이었고, 나머지 갑무반의 무인들은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듯 나서지 않는 모습이었다.
“비켜라.”
남궁창위가 청상을 매섭게 노려본다.
“남궁 공자, 흥분은 좋지 않소. 일단은 기세를 가라앉히고…….”
“닥쳐라!”
“남궁…….”
“네놈이 지금 누구를 가르치려 하는 것인가!”
“…….”
“잊고 있는 모양인데, 이번 서안행에 파견된 조장은 나다.”
“…….”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가 조장이다.
그들이 떠나기 전 비흔 양소방이 직접 임명했다.
행선지상에 정무맹 예하 문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서신이 전해진 참이고, 수좌의 패(牌)까지 받은 참이다.
갑무반의 무인들은 알지 못했으나 그 임명의 배후에는 남궁무휴가 있음이었다.
처음에 청상이 거론되었으나 남궁창위 역시 뛰어난 실력을 보인 기재였기에 양소방 또한 큰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차라리 수좌로 삼아 그들의 면을 세워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들이 고려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청상에 대한 남궁창위의 시기와 질투심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이 순간 발화된 것이다.
“남궁 공자.”
“물러나지 않으면 즉시 항명으로 판단해 이번 일을 윗분들에게 고할 것이다.”
시기와 질투에 눈이 멀어 버린 남궁창위는 조금도 물러나지 않았다.
청상이 미간을 찌푸린 채 제갈산산을 바라본다.
그녀가 고개를 젓는 것을 보면 항명이라 할지라도 막아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는 뜻이다.
“남궁 공자, 청상 도장의 말대로 물러나세요. 지금의 행동은 좋지 않습니다.”
제갈산산이 청상의 옆자리에 서고, 여전히 영문을 알진 못해도 그것이 옳다 느낀 청우가 뒤따랐다.
“이, 이것들이!”
하지만 그것이 남궁창위의 화를 더욱 돋워 놓았다.
천한 태생의 무당 도사 따위가 명문 중의 명문인 자신의 앞을 가로막다니?
그것도 갑무반의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제갈산산까지 옆에 끼고!
“내가 분명 조장이라 했거늘!”
분노로 눈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남궁창위의 목소리가 전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하지만 막아야 했다.
더는 곤란하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청상 도장, 힘으로서라도 막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리되면 남궁 공자를 조장으로 임명한 양소방 어른의 체면이.] [체면이 문제가 아닙니다. 잘못하면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제갈산산의 말에 청상이 굳은 얼굴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그녀가 그렇게까지 말하는 데야.
그녀의 말대로 차후 있을 추궁은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다.
“네놈…… 지금 날 막겠다고?”
남궁창위가 콧김마저 거칠게 뿜어내며 검을 쥔다.
상황이 일촉즉발로 치닫는 와중에.
“이게 지금 뭐 하는 짓들이냐!”
전장의 문이 열리더니 거친 노성과 함께 운안흉배(雲鴈胸背: 구름과 기러기)의 관복을 입은 인물이 전장으로 들어섰다.
착, 착, 착.
그 뒤를 따라 갑주를 걸친 무장들이 열을 지어 뒤따라 들어오자 제갈산산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정확히 그녀가 우려했던 상황이었다.
서안의 관인들 중 구름과 기러기 문양의 흉배를 쓸 수 있는 인물은 단 한 명뿐이다.
정사품의 고위직 관리.
서안부의 수장 지부 대인 태양명.
“감히 미치지 않고서야 나 태양명이 다스리는 서안부에서 이따위 소란을 일으켜?”
태양명이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 갑무반의 무인들을 노려보았다.
그의 등장으로 인해 남궁창위의 흥분이 차게 식었다.
남궁가의 자제인 그였기에, 아무리 화가 났다고 해도 관의 수장에게 함부로 할 수는 없는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지부 대인, 본인은 정무맹 용봉관 소속 남궁…….”
“누가 네놈의 이름 따위를 물었더냐!”
인사도 채 하기 전에 태양명이 고성을 질러 그의 말을 막아 버렸다.
“일단 말을 들어 보시고…….”
“닥쳐라! 전장이 관의 통제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감히 무뢰배처럼 행패를 부려?”
“…….”
길길이 화를 내는 태양명의 고성에 남궁창위는 일이 잘못되어 감을 깨달았다.
시기와 질투로 눈이 멀었던 그의 머릿속이 차갑게 식자 상황이 정확히 보이기 시작했다.
얼굴을 맞아 피를 흘리고 있는 황각수와 그에 휩쓸린 점원이 부딪히며 부수어 놓은 탁자.
누가 봐도 자신들이 와서 행패를 부린 꼴이 아닌가.
“뭣들 하느냐! 이들을 모두 포박하라!”
착!
태양명의 명령에 군병들이 번뜩이는 창극을 갑무반 무인들을 향해 겨누었다.
물론 그들의 전력이라고 해 봐야 얼마나 되겠는가?
수십이 넘는 인원이기는 하지만 청우 혼자서도 찜 쪄 먹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들은 사파나 마교가 아닌 정무맹의 무인이었다.
관무불침.
서로가 관여하지 않는다 해도 관이 대놓고 개입한 상황에서 마찰을 일으켜서 득이 될 것이 없었다.
대항했다가 싸움으로 번지는 순간 그들 모두에게 모조리 현상 수배가 떨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되면 정무맹은 물론 각자가 속한 가문에 엄청난 악영향이 올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지부 대인, 저희는 정무맹의…….”
“내 분명 닥치라 했거늘!”
남궁창위가 퍼뜩 상황을 풀고자 말을 꺼내 봤지만, 이번에도 말을 채 끝맺기 전에 불호령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