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87
187화
“정무맹? 감히 나에게 하찮은 무림의 이름값을 들먹여 협박이라도 해 보려는 게야?”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그것이 아니라.”
“이노옴! 앞으로 한마디만 더하면 국법에 따라 다스리겠다!”
“…….”
“뭣들 하느냐! 이자들을 당장에 서안부로 압송하라! 내 직접 문초할 것이다!”
태양명의 분노 앞에 남궁창위는 물론 그 누구도 입을 떼지 못했다.
상대는 판관급 관리도 아니고 지부 대인이었다.
군병들이 다가와 포승을 묶고 있음에도 반항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하지만 갑무반 무인 중 단 한 사람만큼은 지금의 상황을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제갈산산.
그녀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남궁창위를 향한 점원의 태도와 때를 맞춰 등장한 호위 무인들과 황각수.
그리고 황각수가 맞은 시점에서 때마침 등장한 지부 대인과 군병.
모든 게 너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잡혀가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문제는 이곳에 대한 조사다.
남궁창위의 행동이 눈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심하긴 했으나 죽은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장에 큰 피해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혈기 방장한 무인이 일으킨 자잘한 소란으로 치부될 것이니 정무맹에서 사과 서신을 보내면 곧 풀려날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동림전장을 세부적으로 조사할 수 없게 될 것이 분명하다.
정무맹에서도 관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을 테니까.
갑무반의 무인들과 함께 포승에 묶여 끌려가면서도 제갈산산은 끝까지 전장 내부의 상황을 살폈다.
태양명이 황각수에게 다가가고 있다. 은밀하게 소곤거리는 그들의 입 모양은 분명.
“감사합니다. 지부 대인.”
“내 뭐 한 게 있겠는가? 자네 부탁이라면 이 정도야 어렵지도 않네.”
“저녁에 뵙겠습니다.”
“알겠네.”
황각수의 인사에 태양명이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눈짓을 주고받는다.
그 모습을 본 제갈산산의 얼굴에 싸늘함이 어린다.
우연히 지나간 것이 아니다.
누군가 신고를 했다고 해도 그들이 나타나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했을 터다.
역시 모든 게 계획된 일이다.
전장은 아마도 이런 상황을 미리 예측하고 남궁창위의 속을 긁은 것일 테고, 그는 멍청하게도 그 계략에 너무도 쉽게 당해 버렸다.
동림전장.
그들은 개방에서 의심한 대로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별다른 것이 없었다면 모르되 수상한 낌새를 확인했으니 좀 더 세밀하게 조사해야 마땅하거늘, 이를 어쩐단 말인가?
알아내려 해도 지금은 손쓸 도리가 없었다.
멍청하기 짝이 없는 남궁창위로 인해.
아, 용맹한 호랑이 밑에 개새끼가 태어났을 줄이야.
어째서 양소방 어른은 저따위 철없는 애송이를 조장으로 임명했단 말인가?
청상, 아니 차라리 청우가 조장이 되었다고 해도 이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제갈산산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너무도 짜증이 치밀었다.
일단은 어쩔 수 없다.
관의 취조 후에 양소방에게 서신을 띄울 수밖에.
“어서 움직이시오!”
군졸이 머뭇대는 제갈산산을 채근하며 밀었다.
* * *
척, 척, 척.
관병들이 무인들을 포승줄에 줄줄이 묶어 전장을 나가는 모습에 행인들이 좌우로 비켜났다.
“괜찮을까요?”
남궁창위에게 던져졌던 점원.
그가 함께 밖으로 나온 황각수를 향해 묻는다.
“괜찮냐고? 더없이 잘되었지.”
“그런가요?”
점원이 비열하게 웃자 황각수가 품에서 전낭 하나를 꺼내 건넸다.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점원이 탐욕스러운 눈을 빛내며 물러가고 난 뒤, 행인들이 이내 모두 흩어지고 나서야 황각수가 전장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향한 곳은 전장의 이 층, 주요 고객들을 모시는 별실이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
침묵이 흘렀지만, 그것이 허락임을 아는 황각수가 공손하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은 면사로 얼굴을 가린 여인이었다.
“앉거라.”
“예. 몽야(夢夜).”
그녀의 허락에 황각수가 조심스럽게 의자를 빼고 앉았다.
“준비는?”
“동결된 예치 구좌만큼의 돈을 모두 실었습니다. 곧바로 출발할 것입니다.”
“관부 쪽은?”
“이미 진회루(眞會樓)의 후원을 통째로 예약하였습니다. 지부 대인께 미리 말씀도 드렸구요. 오늘의 모임에는 지부 대인 이하 동지(同知)들도 함께 모셨습니다.”
“잘했군. 진회루주에게 일러 모심에 최선을 다하라 하라. 반반한 계집들로 준비하라 이르고.”
“암요. 이미 다 준비하였습니다.”
황각수가 비굴한 표정으로 손을 모으고 대답을 했다.
“좋다. 이번 일이 잘 처리되어 정무맹의 감시에서 벗어난다면 동림전장에서 너의 지위가 한 단계 격상될 것이다.”
담담하게 뱉어진 말이었으나 황각수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여인, 몽야.
본명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황각수는 그녀의 신분조차 알지 못했다.
두 달 전, 중원 오대전장의 하나인 동림전장의 새로운 주인이 된 여인의 수하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녀는 겨우 본점 호위대장이나 하던 그를 발탁해 본점의 총관으로 세울 만큼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자신의 경지로는 추측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고강한 무공을 가진 무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정체가 무엇인가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총관인 자신의 지위가 격상된다 하면 최소 지부장이다.
한 개 성에서 이루어지는 돈의 흐름을 총괄하는 동림전장의 지부장.
그 위세는 생각보다 어마어마하다.
일개 호위대장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던 그에게 엄청난 기회가 온 것이다.
팔자가 바뀌고 돈방석에 앉는 것이 아닌가?
그녀에게 충성한 대가로 촌구석에서 이름을 떨치던 황씨 가문이 대대손손 번영할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평생에 걸쳐 충성할 것이다.
간이며 쓸개며 무엇이 아깝겠는가?
“한데 지부가 뇌물을 바라는 눈치던데, 어찌 처리할까요?”
황각수가 조심스럽게 건넨 말에 몽야가 눈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운영 자금에서 금 한 관을 전하라.”
“예에? 그리 많이 말입니까? 하지만 지금 남아 있는 운영 자금도 최소치인데…….”
“이미 윗선에서 결정한 일이다. 탐욕이 커질수록 바라는 것은 많아지고, 입은 더욱 무거워질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동결 구좌에 문제는 없겠지?”
“넵. 예치한 고객 중 신분이 불확실하고 뒤가 구린 자들의 것만 골라 동결했습니다. 아마 알고도 내색하지 못할 것이고, 고변한다고 해도 관이 우리의 편을 들고 있는 이상 소용없을 것입니다.”
“알겠다. 돈은 곧바로 보내도록 하고, 나머지 일을 잘 마무리 지어라.”
고개를 끄덕인 몽야가 일어나자 황각수가 따라 일어나 묻는다.
“벌써 가십니까?”
“정무맹의 조사단을 떼어 냈다고 하지만 개방의 눈과 귀가 여전하다. 오래 있어 좋을 것이 없지.”
“알겠습니다.”
황각수가 급히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났을 때 몽야의 모습은 벌써 보이지 않았다.
“후우, 대단한 여인이군. 탄기에 오른 나의 이목을 깨끗이 속일 정도라니.”
황각수가 몽야의 신묘한 경공술에 혀를 내둘렀다.
* * *
“서안, 엄청난, 도시, 사람, 많아!”
“…….”
진무가 한심한 표정으로 운암을 쳐다봤다.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연신 고개를 돌리며 감탄사를 내뱉어 대는 꼴이란.
촌놈도 이런 촌놈이 없다.
이게 흥분해서 옹알이까지 할 일이냐?
이 장면을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흡사…… 청우?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없다.
그래, 멍청한 부하 놈은 청우 하나로…… 천우명까지 둘이면 족하다.
운암은 똑똑한 놈이다.
그저 오랫동안 척박한 청해성에 처박혀서, 곤륜이라는 산중에 갇혀서 마교와 전쟁만 하다 보니 이런 일상적인 활기가 신기해서 보이는 반응이 틀림없다.
그래, 분명 그게 맞을 것이다.
진무는 애써 부하 복이 없을지도 모르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당세령을 안타깝게(?) 떠나보낸 뒤 그들은 유장이 준비한 마차를 타고 서안까지 곧장 달려왔다.
중간중간 쉬기는 했으나 이제 마지막 여정이 아니던가.
잠시 전장에 들러 돈만 찾아서 유장에게 들려 보내고 난 다음 화산으로 가면 된다.
서안에서 화산이 있는 화음현까지는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는 아니지만 결코 먼 거리가 아니다.
진무와 운암의 경공이라면 뒤로 달려도 반나절이면 충분한 거리였다.
“한데, 진무, 어디?”
“…….”
그만해라.
진무가 한심하게 쳐다보자 운암이 멋쩍은 표정으로 심호흡 몇 번과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물었다.
“험험, 진무 도장, 한데 서안에서는 어디를 들렀다 가실 생각입니까?”
“그런 곳이 있어.”
“알겠습니다.”
이젠 대강 답해도 그저 ‘알았다.’ 한마디가 넙죽 나온다.
청우와 비슷한 지력 수준인지는 아직 의심스러운 일이나 충성도만큼은 제법 높아 보인다.
잘 커 가는구나. 내 새끼……아니 부하 삼 호야. 나중에 일 호와 이 호도 소개해 주마.
너희들이 정파를 장악할 나의 초석이니라.
진무는 연신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서안을 구경하는 운암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보게, 유장.”
“예.”
“혹, 서안에 이름난 기루는 없는가?”
“있긴 합니다만 음식이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공손히 대답하는 유장.
하하, 좌우를 돌아봐도 충성심이 넘치는 놈뿐이로구나.
진무는 기분 좋게 웃으며.
“괜찮네. 음식을 따지지는 않으니. 어떤가? 자네도 고생했으니 같이 가서 쉬세나. 맛있는 음식도 좀 먹고, 술도 한잔하고.”
“예? 제가 감히 어찌…….”
천주님과 동석을 하겠습니까, 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목구멍 아래에서 연달아 튀어나오려는 것을 유장은 다급히 생략했다. 운암 때문이었다.
“이 사람, 그저 술과 음식을 나누는데 신분이 뭐가 중요한가. 우리는 식구 아닌가, 식구.”
“……알겠습니다. 하면 이 근방에서는 진회루를 제일로 치니, 그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그래. 그곳으로 가세. 내 자네들이 여장을 풀고 음식을 시키면 식기 전에 훌쩍 다녀올 터이니.”
“……예, 하면 그리하겠습니다.”
유장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밖을 구경하던 운암이 의아한 표정으로 둘을 바라본다.
“뭐? 왜?”
“아니, 그냥…….”
“그냥 뭐?”
“그것이, 진무 도장께서 평소와 다르게 유 집사님과 대화하실 때는 한 칠팔십 먹은 노인 같으셔서…….”
“……내, 내가?”
“예.”
“그럴 리가…… 하하핫! 평소와 똑같구먼.”
이 새끼, 눈치 봐라.
확실히 청우보다는 똑똑한 게 분명하다. 역시 조심해야겠어.
유장이나 사패천의 사람들만 만나면 과거의 기억 때문인지 말투가 자연스럽게 늙은이처럼 변하는 진무였다.
“진짜 다른데…….”
운암이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자 진무가 더욱 호탕하게 웃으며 유장을 불렀다.
“이, 이보게, 유장!”
“……예?”
“마차가 왜 이리 늦어? 빨리 가지?”
“예?”
유장 쪽으로 아예 고개를 돌린 진무가 그를 잡아먹을 듯 눈을 홉떴다.
빨리 가, 이 새끼야. 마부든 말이든 죽도록 달리게 하란 말이다.
유장은 어깨를 흠칫 떨었다.
뭔 놈의 눈빛이 사람도 죽일 듯했다. 조금 전까지 식구 운운하면서 다시없는 혈육 같은 표정을 짓더니만, 순식간에 불공대천의 원수를 바라보듯 혈광을 뿜다니.
사람이 한순간에 이토록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란 유장이 급히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마부를 향해 자신이 가진 가장 큰 목소리로 외쳤다.
“달리게! 진회루일세! 어서!”
쫘악!
유장의 외침에 마부가 힘차게 채찍을 휘둘렀고, 갑작스러운 고통에 말들이 미친 듯이 투레질하며 관도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운암의 의심, 진무의 당황, 유장의 경악, 마부의 행동으로 이어지는 연계에 죄 없는 말들만 고생이었다.
마부가 어찌나 힘껏 채찍질을 한 것인지 진무 등이 탄 마차는 먼지구름을 만들어 가며 사람들에게 갖은 민폐까지 끼친 끝에 진회루 앞에 도착했다.
히이잉, 푸우…….
갑작스러운 전력 질주 때문이었을까?
말들이 투레질하는 가운데 여전히 고개를 갸웃대는 운암을 피해 마차에서 내려온 진무는.
“자, 먼저 씻고 밥 먹고 있어. 금방 다녀올 테니까. 알겠지?”
최대한 말투를 바꾸어서 유장에게 말했다.
“진무 도장?”
“들어가, 들어가. 나 신경 쓰지 말고. 후딱 다녀올 테니까.”
진무가 운암에게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도망이라도 치는 듯 경공을 발휘해 훌쩍 사라지는 진무의 뒷모습에 운암이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먼저 술 먹어도 되냐고 물어보려던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