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95
195화
진무에게 구해진 갑무반의 무인들은 진회루에 거처를 잡았다.
갑무반의 무인들이 저마다 진무에게 인사를 건네 왔다.
특히나 개방의 취구개라는 놈은 열망해 오던 영웅을 만난 듯이 무릎까지 꿇고 절을 올렸다.
뭐 그렇겠지.
책으로나 읽던 영웅전기의 주인공이 눈앞에 떡하니 있으니.
어린것들의 선망의 눈초리란.
모두가 진무에게 가르침을 받은 사질들이나 친한 척을 해 오는 제갈산산을 부러운 듯이 쳐다본다.
더욱이 함께 표주 중이라는 운암에 그 시선이 이르러서는 부러움이 흘러내릴 듯한 눈빛이 되었다.
차마 다들 진무에게는 어려워 말도 못 붙이고 무당지검의 짝퉁인 곤륜 수호자 운암에게 들러붙어 있는 사이에.
탁자 가득히 음식을 시켜 둔 진무는 참새처럼 재잘거리는 두 사질의 이야기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청상이 제법 말하는 재주가 있고 청우가 그 두툼한 몸을 열심히 움직여 이런저런 재현까지 해 주니 적잖이 재미도 있었다.
갑무반이 된 이야기나 청우가 기초 시험에 낙방한 이야기, 그리고 그 외 여러 가지 임무를 했던 이야기들까지.
으이구, 청우 이 멍청한 자식.
하나부터 열까지 어떻게 천우명과 이리도 판박이란 말이냐.
살도 더 뒤룩뒤룩해졌고.
손주들 재롱에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진무가 딱 그 짝이었다.
더욱이 청상이 탄기에 이르고 청우마저 현기의 경지가 깊어졌다는 말에는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탁 쳤다.
기특한 녀석들.
멍청한 청우가 현기를 깨우친 것도 놀랍지만, 청상이 탄기를 깨우쳤다는 사실은 감탄이 절로 나올 일이었다.
현기도 말 한마디에 깨닫더니, 남들 수십 년 노력해도 될까 말까 한 탄기의 경지를 고작 몇 달 만에 깨우쳤다고?
진짜 어지간히 복 받은 놈일세, 이거.
“철지…… 아니, 검성께서 가르침을 준다고?”
“예. 청우는 백로, 아니 용봉관주님께 가르침을 받기로 했습니다.”
청상의 말에 진무가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턱을 쓸었다.
원래 고수들은 함부로 외인에게 가르침을 주지 않는 법이었다.
자신의 심득을 타인에게 전했다가 나중에 시퍼런 비수가 되어 돌아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무칠성이 갑무반의 무인들을 가르치기로 결정했다는 것은 무척이나 놀라운 일이었다.
“제갈 누님은 검혜 님께 배우기로 했습니다.”
검혜에게?
청우의 해맑은 웃음에 진무가 더욱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근데 누님이라니?
진무가 제갈산산과 청우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니들, 남매 먹기로 했냐?”
그저 궁금해서 물어본 것인데 청상이 질책이라고 생각한 것인지 대번에 청우를 나무랐다.
“이 녀석! 내 분명 그리 부르지 말라 했지 않더냐? 어찌 사숙 앞에서까지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게야?”
“아…… 죄송합니다.”
청우가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시무룩한 표정을 짓자.
“됐다, 됐어. 그럴 수도 있지.”
진무가 손사래를 치며 청상을 막았다.
“어쨌든 재미있게 보내고 있구나.”
“예. 사숙.”
“자, 먹자. 식겠다.”
“예.”
진무가 술잔을 들자 청상이 따라 젓가락을 들고, 청우가 탁자에 놓인 고기를 마구 퍼먹기 시작했다.
옆에서 다른 탁자에 자리한 갑무반의 무인들이 그 모습을 신기해하며 쳐다본다.
소문으로만 들어 온 무당지검의 모습도 그러하거니와, 청우는 몰라도 이제껏 무당 도사의 이름에 조금도 모자람 없이 근엄했던 청상이 아이 같은 표정을 짓는 것이 너무 의외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명 셋 다 동년배로 보이는데 청상과 청우는 지극히 공손했고, 진무는 마치 손주 보듯 둘을 바라보는 것이 의아할 따름이었다.
“한데 진무 도장.”
같은 자리에서 가만히 웃기만 하던 제갈산산이 입을 떼었다.
“동림전장의 일은 어찌 된 것입니까? 공동파를 떠나셨다는 소식은 이미 들었습니다만.”
무척이나 궁금했다.
어찌하여 그가 동림전장의 일을 알고 치부책까지 찾아 온 것인가?
“아, 그거. 동림전장에 맡긴 돈이 있어서 찾으러 갔다가 개방도들을 만나서요.”
“아!”
진무는 동림전장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필요한 부분만 설명했고, 귀 기울여 듣던 갑무반의 무인들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청상과 청우는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고 운암은 고개만 끄덕였다.
딱 한 새끼.
남궁창위라는 녀석만 빼고.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자꾸 꼬나보는 게, 흐음.
“둘의 유착 관계가 있을 것이라 의심했었는데, 역시 그리된 것이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제갈산산의 낯빛이 어두웠다.
“하지만 동림전장의 뒷배가 원화정이라니 조금 의아하군요.”
“뭐가요?”
제갈산산의 눈빛, 의심하고 있다.
“원화정은 절대 동림전장의 뒷배가 될 수 없지요. 어쩌면 궁이라는 자들은 일부러 원화정을 흘려 놓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
역시 똑똑한 여자다.
그녀의 의심처럼 원화정은 미끼일 것이 분명하다.
만약 일이 잘못되어 그곳이 드러난다 해도 정무맹은 절대로 원화정을 직접적으로 조사할 수 없다.
잘못하다가는 황실의 진노를 정면으로 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진무는 알면서도 일부러 모르는 체를 했다.
“저는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군요.”
“아, 원화정에 대해 잘 모르십니까?”
“예.”
“흠, 수도에 전념해 오셨으니 그럴 수도 있지요.”
진무가 어리숙한 표정을 짓자 제갈산산이 그럴 수도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원화정은…….”
제갈산산이 설명을 하려는데 남궁창위가 코웃음을 치며 끼어들었다.
“원화정은 황실의 사당이……오.”
“…….”
새끼, 존댓말도 아니고 반말도 아니고. 어중간하게 말하기는.
팔짱을 끼고 아니꼬운 듯이 말하는 게 조금 싸가지 없긴 했지만, 진무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뭐 저 때는 다 그렇지 않던가?
새로 나타난 인물을 경계하는 것이야 당연하고, 혈기 방장한 나이니 당연히 반항기가 넘칠 수밖에.
그래도 당세령에게 감사해라.
걔랑 한참 지냈더니 너 정도 싸가지가 밋밋하게 느껴져서 그렇지 예전 같았으면 벌써 뒈지게 맞았을 테니까.
“황실의 사당? 황제의 위패라도 모셔져 있는 것입니까?”
남궁창위를 무시해 버린 진무가 일부러 고개까지 갸웃거려 주는데.
“웃기는군. 저런 자가 무당을 대표하는 무인이라니. 이 나라의 역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건가.”
“…….”
진무의 질문에 남궁창위가 비웃음을 가득히 머금고 빈정거렸다.
저 새끼가?
표정 하며 말투 하며, 신경을 있는 대로 거슬러 오는 모습에 슬슬 짜증이 나려는데.
“남궁 공자! 말씀이 심하시오!”
진무를 대신해 운암이 앞으로 나서며 노기를 드러낸다.
놔둬라. 놔둬.
창천 남궁무휴, 그 싸가지의 아들이라지 않던가?
당위도 그렇고 남궁무휴도 그렇고, 늙은 놈들이 늘그막에 뭘 처먹었길래 저런 핏덩이 새끼들을 다 만들었을까?
하아, 신경이 몹시 거슬리지만 그냥 두자. 괜히 건드려 놓으면 귀찮기만 할 거고.
그래, 고작해야 서른 언저리다.
어린것과 드잡이를 해 봐야 나만 피곤하지.
그냥 무시하는 게 상책이다.
“원화정에는 황족이 아니라 그에 준하는 신분을 가진 이의 위패를 모신 곳입니다.”
“……?”
진무가 이번엔 진심으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원화정이 황실의 사당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지 누구를 모시고 있는지는 몰랐다.
“혹, 곽자흥이라는 이름을 들어 보셨습니까?”
“…….”
알기야 알지.
역사 따위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어서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그 이름이라면 들어 본 적이 있었다.
“백 년도 훨씬 더 전의 인물입니다. 태조께서 나라를 세우기 이전에…….”
백 년 전, 참으로 자주 듣고 자주 생각하는 시기가 아닐 수 없었다.
양의심공이 갈라진 때도 그때였다.
가만 그러고 보니 청무 조사님도 나라를 세울 때 한몫했다 하지 않던가?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운공의 말에 따르면 관무불침의 예를 만드신 분이 그분이라 했다.
“그분께서는…….”
제갈산산이 설명을 하려 했지만, 진무가 손을 들어 막았다.
들어 무엇할까?
대충 들어도 뭔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다는 것을 알겠다.
굳이 들어 머리 복잡해질 필요 없다.
그들이 무언가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원하는 만큼의 복수도 끝냈다. 그리고 아마 황금 사십 관이 통으로 사라진 것을 알게 되면 배가 아파 뒷간을 수도 없이 들락거리지 않을까?
생각만 해도 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이틀이면 오래 머물렀다.
이제 정말 화산으로 가야 한다.
정무맹의 일은 정무맹에서 알아서 할 일이지 진무가 끼어들어 도와줄 필요 없다.
궁이라는 놈들이 설쳐 대고 있고 스승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양의심공만 얻으면 모든 게 끝이다.
양의심공을 얻어 묵룡의 힘을 되찾게 되면 정무맹이고 사패천이고 나아가 일월마교까지 발아래서 기어 다니는 놈들일 뿐이다.
“아, 그만하면 됐습니다. 뭐든 간에 제가 관여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원화정이 어떤 인물의 사당인지, 황실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것에 대해서는 굳이 알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의 저는 표주 중에 있으니 정무맹에서 알아서 하실 일이지요.”
진무의 말에 제갈산산이 곱게 웃으며 말을 멈췄다.
하긴, 그게 뭐가 중요할까?
제갈산산은 검성 철지량이 그와의 비무 이후에 내렸던 평가를 기억하고 있었다.
어느 곳에도 가두어 둘 수 없는 야수 같은 인물.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옳은 길을 걷고 있고, 누구보다 더 무당의 도사로서 행동해 왔지 않던가?
언제고 무림에 위협이 생기면 그가 가장 먼저 나설지도 모른다.
아니, 반드시 그럴 것이 분명하리라 생각했다.
제갈산산이 말을 멈추고 물러나자 진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식사도 끝났고, 이쯤에서 헤어집시다.”
“사숙, 벌써 가시게요?”
청상이 짧은 만남이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따라 일어났다.
“근데 왜?”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어차피 서안의 임무가 끝났으니 잠시만이라도 함께…….”
“저두요!”
청상의 말에 청우까지 일어났다.
자식들.
그 두 눈에 담긴 존경과 애틋함을 보니 절로 마음이 뿌듯하구나.
“청상, 청우. 이 녀석들…….”
“예.”
“근데 니들이 날 따라올 시간이 있냐?”
“예?”
“쟤가 조장이라며?”
“…….”
진무가 일부러 힐끗거리자 시선이 닿은 남궁창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쟤? 아무리 무당지검이라고 해도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자가 감히 예의도 모르고.
남궁창위가 도끼눈을 뜨고 노려본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너 눈 계속 그렇게 떠라, 어린놈이 버르장머리 없이.
남궁무휴의 아들이라 참고 넘어가 주려고 했더니, 이 새끼가 눈깔 소중한 줄을 모르고.
혁련무강일 당시의 일이긴 하지만 진무는 남궁무휴와도 싸운 적이 있었다.
명문이라는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이기적인 놈.
처맞고도 이를 바득바득 갈던 놈. 그때 함께 처맞은 게 팽의방이었던가? 미친 호랑이 새끼.
당위는 그래도 무인으로서의 자존심이 있었지.
남궁무휴와 팽의방이라는 놈은 실력도 안 되면서 제 놈이 지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했었다.
이기기 위해서는 갖은 협잡을 다 부리면서 겉으로는 명문 정파처럼 점잔을 빼고, 지랄을 하고…….
그때의 그 눈빛이 딱 지금의 남궁창위가 진무를 바라보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왠지 기억 속의 남궁무휴와 남궁창위의 얼굴이 겹쳐지니 더욱 짜증이 났다.
“이 사숙은 심히 부끄럽다. 기껏 가르쳐 놓았더니 저런 녀석의 부하 짓이나 하고 있다는 사실이.”
“…….”
“그래. 내 말대로 둘 다 갑무반에 들었다만. 대 무당의 제자들이 그 정도에 만족해서야 되겠니?”
“…….”
“더욱이 너희는 무당을 대표하는 오룡궁의 제자다. 응당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곳에 있어야지. 스승님께서 아시면 얼마나 실망을 하시겠니.”
“그, 그게…… 조장이라는 직함이 임무에 따라 바뀌는 것이…….”
그 입 다물어 줄래, 청상아?
진무의 미소가 더욱 짙어지자 청상이 입을 닫고 눈을 아래로 확 내리깔았다.
위험하다. 사숙의 저 미소는…….
청상과 청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사색이 되었다.
미소의 의미를 안다.
송곳니가 슬쩍 보이는 미소.
교육이라는 명목하에 자신들을 무자비하게 구타할 때 드러내는 그것이었다.
“고작해야 탄기 따위나 깨닫고 말 거야? 나는 그 꼴 못 본다. 너도 청우도.”
“…….”
“다음에 만날 때는 반드시 갑무반의 수장이 되어 있었으면 좋겠구나. 무당이 남궁의 이름을 가진 저런 허접스러운 놈 따위에 밀린다면 이 사숙의 가슴은 정말이지 찢어지고 해어지고 분하고 원통하고…… 좌우지간 아주 엿 같을 거야. 알겠니?”
“옙!”
진무의 미소에 청상과 청우가 기합이 잔뜩 들어간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 그래야지. 암.”
흐뭇한 표정으로 진무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남궁창위가 더 이상 참지 못했는지 날카롭게 눈을 뜨고 다가왔다.
“무당지검이라 하지만 말이 심하지 않은가! 나이도 어린 자가!”
“뭐?”
“감히 남궁 따위라니?”
“그럼 뭐라고 불러 줄까? 남궁쟁이?”
“뭐요? 이런 예의라고는 모르는 자가 감히!”
쌍심지를 세우며 노려보는 남궁창위를 향해 운암이 눈을 씰룩거리며 막아서는 것을 진무가 피식 웃으며 비켜나게 했다.
“이봐. 남궁가.”
“이, 이봐?”
“예의를 논하기 전에 너부터 예의를 지키는 게 어때?”
“뭐라? 이자가 점점?”
남궁창위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다.
“희한하네. 내 알기로는 무당지검이라는 이름이 동네 똥개 새끼에게 붙는 것이 아닌데 말이야.”
진무의 저속한 표현에 남궁창위의 눈이 씰룩거린다.
“대놓고 빈정거리지를 않나, 째려보질 않나. 목숨이 한두 개쯤 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네 아비도 그러진 못할 것인데.”
싸늘하게 웃던 진무가 남궁창위를 향해 한 걸음 내딛는 순간, 그의 기세가 폭발적으로 증폭되어 사방으로 뿜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