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98
198화
스승이 어찌?
진무가 의아하게 쳐다보는데 얼굴 가득히 인자함을 머금은 명진이 다가와 포근하게 안는다.
팔을 에둘러 품어 주는 가슴에 따스하고 포근함이 느껴진다.
어린 스승 놈이 기억도 나지 않는 아버지의 품을 느끼게 하다니…….
근데 어쩐 일이지?
무당에 있어야 할 스승이 어째서 화산에 와 있단 말인가?
오가는 거리가 팔백 리가 넘는데, 몸도 아픈 양반이.
뭐 하려고 사서 고생이란 말인가?
제자 소식이 궁금하다면 서신……을 보낸 적이 없구나, 참.
한 번도…… 제길.
“자, 자. 들어가자. 장문인께서 기다리고 계시니라.”
“……예.”
진무가 머쓱한 표정으로 자신을 잡아끄는 명진을 따랐다.
근데 오랜만이라 좋은 것은 알겠지만, 손은 좀 놔라, 스승님.
땀 찬다.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빼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아마 도동의 기억이 그의 본능과 행동을 지배하고 있는 이상…… 어?
쑥.
빠져?
“……어?”
“……응?”
진무와 명진이 걸음을 멈추고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본다.
“왜?”
“예?”
“아니, 네가 걸음을 멈추길래.”
“아, 아닙니다. 스승님. 가시지요.”
“원, 녀석도. 싱겁기는.”
명진이 다시 환하게 눈을 접어 웃었다.
하지만 진무는 속으로 의아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어째서지?
뭣 때문이지?
스승의 명령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래서 손이 빠진 건가?
분명 스승의 손길을 거부할 수가 없어야 했는데?
이제껏 스승 앞에서만큼은 내 맘대로 뭐가 된 적이 없었는데?
진무가 고개를 삐뚜름하니 기울이며 명진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뭐, 오랜만에 보니 반갑기는 무지하게 반갑네.
“근자에 몸은 좀 어떠십니까?”
마음속은 딱히 그러하지 않았지만, 말로는 언제나 스승 걱정이 먼저인 진무였다.
“몸?”
진무의 물음에 명진이 자랑스럽게 손을 들어 허공을 휙휙 휘저어 놓는다.
“아!”
명진이 보인 움직임.
그저 가볍게 펼쳐진 것이기는 하지만 여러 개의 잔상을 만들어 내는 그것을 어찌 알아보지 못할까?
무당의 태청산수다.
그런데 그 손길이 닿은 대기가 슬며시 밀리는 듯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
“내, 내력이?”
“…….”
진무의 놀람에 명진이 흐뭇하게 웃기만 했다.
“스승님!”
“오냐. 다 네 덕분이니라. 네 덕분이야. 허허.”
그리 강한 기운은 아니었으나 명진의 손끝에 미약하게나마 선기가 어리는 것으로 보아 내력을 어느 정도 회복한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기쁠 수가.
무인이 내력을 찾았으니 이제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그동안 고기고 뭐고 열심히 처먹인 보람이 있구나.
이놈의 걱정덩어리를 어찌 해결하나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는데.
그 길었던 봉양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떠오른 진무의 눈동자에 습막이 차오른다.
“녀석, 그리 좋으냐?”
너 때문에 우는 건 아니야.
나 때문에…… 그 길었던 고생길이 떠올라서.
하루 세끼 밥 챙겨 먹이고.
산자락 뒤져 짐승들을 잡았던 그 기억이 떠올라서.
내가 막, 어? 국물을 우리고, 어? 내가 사패천주였는데! 나이 팔십에!
“내 육식의 효능이 이처럼 현묘할지 몰랐구나. 네가 떠나고 진허를 비롯해 일대들이 오룡궁의 제자들을 돌아가며 훈련시키는 동안 오랜만에 모든 잡념을 지우고 참선에 집중할 수 있었느니라. 기력 자체가 쇠해 있었을 땐 엄두도 못 냈던 일이지.”
“…….”
“그러더니 어느 날 기가 돌아오는 것이 아니냐. 허허, 고작해야 아직 일 성의 내공밖에 회복하지는 못하였으나 이제는 산문 밖으로 출타해 비교적 자유로이 단강구를 오가고 있게 되었으니 내 이제야 제자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되었단다.”
“에이, 오시면서 힘들어서 몇 번이나 쉬시고는…….”
듣고 있던 진허가 투덜거리며 끼어들자 명진이 진허를 향해 짐짓 눈을 부리부리하게 떴다가, 이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 다정하고 소탈한 웃음에 진무는 가슴이 뿌듯해져 옴을 느꼈다.
되었다. 이제 되었어.
쉬다 왔으면 또 어떠하겠는가?
일이 되려니까 그냥 막 되는구나.
어차피 화산에서 마지막 조각을 얻고 나면 떠날 참이 아니었던가?
마지막 걱정거리를 덜어 내었으니 정말로 훌훌 털고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아, 도동의 기억이여, 망할 놈의 금고아여.
너와도 이제는 이별이구나.
이제 그럴싸한 이유만 만들면 된다.
무당을 완벽하게! 떠날 수 있는 이유만 만들어 내면 자유로이 무림을 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표주를 하는 녀석이 뭔 행적을 그리도 많이 남겼느냐?”
옆에서 잠자코 따라 걷던 진허가 눈을 샐쭉하게 뜨며 팔꿈치로 진무의 옆구리를 찌른다.
조금 아팠지만…… 좋은 일이 생겼으니까 참아 주마.
“예? 그게 무슨?”
“이놈아, 너 때문에 무당으로 전서구가 하루에 몇 통이나 날아오는지 아느냐?”
“…….”
“청성, 당문, 정무맹, 곤륜에 공동, 개방까지…… 으휴. 도대체 뭔 착한 일을 그리 많이 했단 말이냐? 원화관에서 그 전서구를 분리하느라 따로 이대제자 녀석에게 별도로 임무를 맡기기도 하였다.”
투덜거리면서도 기분이 좋아 보이는 진허의 말에 명진이 진무를 기특하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것들이, 사람 무안하게.
뭐 그래도 좋다니 기분은 나쁘지 않다.
“근데 진무야. 네 사부님 좀 말려 주면 안 되겠냐?”
진허가 은근슬쩍 어깨동무하고 진무에게 속삭인다.
다 들릴 정도로 크게.
“뵈올 때마다 니 자랑을 하셔서 귀에 피가 날 지경이다. 어디 매화자(賣話者)에게서 화술이라도 따로 배우시는지 말씀하실 때마다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하시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더 길어지기까지 하느니라. 다들 아주 환장…… 흠흠, 아주 원성이 높아, 하하.”
“어허! 진허야.”
이야기가 거기까지 가니 아무리 그라도 조금 부끄러웠던 것인지 명진이 근엄한 표정으로 주의를 주었다.
“어이쿠. 제가 괜한 말을 했나 봅니다.”
진허가 장난스럽게 목을 움츠리며 제 입에 자물쇠를 채우는 듯한 행동을 했다.
놀고들 있네.
진무가 진허의 말을 무시하고는 명진을 바라보았다.
“한데 정말 어쩐 일이십니까? 오룡궁의 일은 어찌하시고?”
“허허, 오룡궁에 무슨 일이 있겠느냐? 일대제자는 물론 장로들까지 신경을 쓰는데.”
“그렇군요.”
진무가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실은 네게 줄 것도 있고 해서. 그 생각을 하니 좀처럼 앉아서 기다릴 수가 없더구나. 네가 공동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참지 못해 출발하였다. 그사이에 관부의 비리까지 밝혀낸 모양이더구나.”
“뭐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줄 것이라 하심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명진이 무언가 또 부끄러워하는 듯한 표정이다.
“이런 의뭉스럽기…… 어?”
“응?”
순간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 진무가 당황했고, 명진과 진허가 동시에 쳐다보았다.
“뭐라고?”
“……제가 뭐라 했나요?”
“의뭉스럽다고 한 것 같은데?”
“제가요?”
“……분명 그렇게.”
“제가 어떻게 스승님께 그런 불경스러운 말을 쓰겠습니까?”
당황한 진무가 어색하게 웃으며 시치미를 떼었다.
“허, 허긴. 네가 그럴 리가 없지. 허허, 내 잘못 들은 모양이다.”
“저도 분명히 그렇게 들은 것 같은데…… 에이, 그럴 리가 없지. 설마 스승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부모 대하듯 하는 진무가. 아무래도 사숙님과 제 귀가 어떻게 된 모양입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진허도 그럴 리 없다며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들은 것이 정확하다.
뭐지?
의뭉스럽기 짝이 없는 도사 놈.
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이제까지 스승에 대해 혼잣말처럼 투덜거린 마음이 입 밖으로 나온 적은 없었다.
어째서지?
그러고 보니 아까 스승의 손길을 뿌리친 것도 그렇고.
이상하다. 뭐가 지금 상당히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진무가 머릿속을 의문으로 가득 채우는 그때, 연화봉(蓮花峯)의 정상에 세워진 화산파 도량의 수좌 천주궁 앞에 도착했다.
“자, 들어가자꾸나.”
“……예.”
해소되지 않은 의문이 가득했지만, 차차 생각해 볼 문제였다.
지금은 집중을 해야 했다.
양의심공의 마지막 조각을 위해.
“어서 오시오. 장문인께서 무당지검을 기다리고 계시오.”
미리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 천주궁 문 앞에 익숙한 외모를 가진 백염의 도사가 인사를 해 왔다.
“서현동주(西玄洞主)이시자 화산파를 이끄는 네 분의 장로 중 한 분이신 태을 도장이시다. 인사드리거라.”
“태을 장로님을 뵙습니다.”
“반갑네. 태을일세. 무당지검이라, 이름만 높은 줄 알았더니 신수가 훤하구먼. 그 야릇한 미소만 빼면 절세의 귀공자라 불릴 듯한 외모일세.”
“…….”
서현동주 태을이라.
아는 놈이다.
올해 한 칠십쯤 되었나?
이놈을 포함해 화산을 대표하는 태자 배의 다섯 명의 검수.
태을, 태룡, 태선, 태상, 그리고…….
‘화산 적매검 태허(太虛). 이놈이 건재하다면 그놈도 아직도 장문인 노릇을 하고 있겠군.’
어찌 잊겠는가?
젊은 시절 그리 오랫동안 지지고 볶고 했었는데.
“자, 들어가세.”
“예.”
스승 앞이라 더 공손히 예를 갖춘 진무가 태을을 따라 천주궁의 안으로 들어갔고, 자격이 되지 못한 진허는 밖에서 기다렸다.
화산은 다른 도문과 달리 건물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연화봉 정상에 상궁(上宮)인 천주궁과 그 아래 자리 잡은 옥녀지(玉女池)가 멋들어지게 펼쳐져 있긴 했지만, 나머지는 볼품없는 전각에 불과했다.
천주궁 안으로 들어서자 그 거대한 내부에 예상했던 것처럼 태허를 중심으로 태룡과 태선, 태상의 세 노인네들이 앉아 있었다.
“무당의 명진이 화산의 어른들을 뵙습니다.”
인사만 몇 번을 하는 건지.
하지만 스승이 그렇게 하고 있으니 진무는 다소곳하게 명진의 옆에 서서 기다렸다.
“무당지검은 가까이 오라.”
화산의 장문인 태허의 허락이 떨어지자 명진과 함께 진무가 그들의 근처로 다가갔다.
“앉게. 차나 한잔하세.”
“…….”
또 다른 느낌이다.
오대도문의 마지막.
청성, 곤륜, 공동에 이은 화산.
화산은 다른 곳과 달리 속세와 떨어져 도를 닦는 도사들의 모습에 완벽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전투적이지도, 사치스럽지도 않았다.
또한, 젊은 시절 혈기 넘치고 호승심 가득하던 장문인 태허와 태…… 아 씨, 귀찮아. 아무튼 하나같이 희끗희끗한 백발에 오래된 도포를 입고 앉은 을룡선상의 모습은 그야말로 그림에서나 볼 법한 도사의 외양 그대로였다.
늙더니 많이 차분해진 모양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 모습이 더 화산에 어울렸다.
소소함 속에 날카로움을 품은 듯한 느낌을 물씬 들게 한다.
화산파에 속한 무인들은 원래부터 검을 붓 삼아, 허공을 화선지 삼아 화공처럼 매화를 그려 내고.
그 깊이가 더해져 향기마저 흐르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는 매화검과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운치 넘치는 녀석들이다.
여인도 아닌 것들이 소매에 아기자기하게 매화꽃 문양을 수놓아 다니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들은 그 검만큼이나 유려하고 선이 고왔다.
태허와 을룡선상 또한 사이좋게 나이가 들더니 고만고만하게 깨달음이 깊어져 화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으로 변한 것이리라.
탁.
명진과 진무가 앉자 열댓 살쯤 되어 보이는 도동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엽차를 그들의 앞에 놓았다.
“먼저 도착한 명진에게 말은 익히 들었네.”
태허가 마치 친손을 보는 듯이 온화한 표정으로 말을 꺼내자.
“허허, 장문인. 명진의 말을 듣기 이전에 무당지검의 이름이 중원을 떠들썩하게 하여 이미 알고 있었지 않습니까.”
태을이 그 말을 잔잔한 웃음으로 받는다.
“듣자 하니 명진을 쾌차하게 만든 것도 자네라면서?”
태룡이 묻고.
“무량수불. 천존께서 이제사 무당을 돌보실 모양일세. 자네 같은 젊은 선도(仙道)를 무당에 내려 주신 것을 보면.”
태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실로 무당의 홍복일세. 아주 잘된 일이야.”
태상이 진무를 바라본다.
그래, 칭찬인 건 잘 알겠다.
근데 좀 한 놈이 대표로 말해 주면 안 될까?
고개 돌리느라 어지럽다. 이 늙은 도사 놈들아!
안 그래도 무릎 꿇고 있어서 다리 저려 죽겠구만,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