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12
212화
“크아악!”
날카로운 비명이 밤하늘을 가득 채운다.
서안의 남쪽 도시 장안(長安)현 외곽에 위치한 작은 장원.
진석장, 조상 대대로 향리를 지낸 문사 가문인 장안 오가(吳家)의 장원이었다.
지방 관리에 불과하지만 대대로 주변에 선정을 베풀어 인근 부락민들에게 존경을 받아 온 곳이었다.
그런 그곳에 때아닌 흉적(凶賊)이 찾아왔다.
쿠아앙!
부서진 대문의 파편들이 뜰 안에 어지럽게 뿌려지고, 행랑아범 근식이 튕겨 들어와 처박혀 구른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학창의를 걸친 사내, 진석장의 주인인 오경은 경전을 읽다가 밤중의 소란에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그의 시선에 부서진 대문으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오는 인물이 보였다.
검은 복면으로 하관을 가리고 옆구리에 웬 사내 하나를 낀.
“네놈은 누구냐!”
오경의 호통에 복면을 쓴 괴인, 진무가 덤덤하게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니가 오경이야?”
“……?”
자신의 장원을 찾아온 앳된 목소리의 습격자.
딱 봐도 흑의를 입고 복면을 쓴 것이 야음을 틈타 물건이나 훔치는 양상군자가 분명할 것인데 어찌 저리도 당당하단 말인가?
그리고 정문을 깨부수며 당당하게 들어오다니.
그럴 거면 뭐 하러 복면 따위를 썼단 말인가? 그리고 옆구리에 끼고 있는 인물은 또 누구고.
“국법이 지엄하거늘 한낱 흉적 놈이 어찌 이리 활보한단 말이냐!”
장원 안에 보는 눈이 많았기에 오경은 근엄하게 호통을 쳤다.
“하! 국법? 지랄하는 소리도 참 가지가지다.”
물론 그게 진무에게 먹힐 리는 없다.
“뭣이?”
“지방 향리로 위장해서 뒤로 호박씨나 까는 새끼가 국법 운운하니 웃겨서 그런다.”
“그,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 안 되긴 뭐가 안 돼? 저기 행랑아범으로 위장한 새끼, 딱 봐도 현기 정도 되는 조무래기더구만.”
“…….”
진무의 코웃음에 오경의 안색이 싸늘하게 변했다.
실상 오경은 위장한 것은 아니다. 그는 실제로 오랫동안 오가의 가주이자 장안의 향리로 살아왔다.
단지 감추어진 신분이 따로 있을 뿐이었다. 설마 저자가 자신의 진짜 신분을 알고 있단 말인가?
이미 밀명을 받아 모든 행적을 지우고 일체의 정보 활동을 중단한 상태였다.
자신의 정체를 아는 자는 아무도 없다.
한데 어째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말투란 말인가?
설마? 정무맹에서 보낸?
그럴 리가 없다.
그렇다면 홀로 올 리는 없을 것이고, 복면을 쓸 리도 없을 터였다.
더욱이 서안을 조사하는 화산의 무인들과 관부의 조사단이 진작에 다녀간 뒤였다.
아무것도 찾지 못했고,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스윽.
혹시나 있을 불미스러운 일에 대비해서 가문의 노비로 위장해 있는 수하들이 진무를 향해 다가서는 모습이 보였다.
오경은 슬쩍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일단은 상대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 먼저였다.
“무슨 오해가 있는 모양이신데. 이곳은…….”
“오해? 뭔 오해? 영은당 서안지부 조장 새끼야. 혹시라도 나는 그런 사람 아니라는 잡설을 하려면 집어치워라.”
“……!”
자신의 신분을 정확히 알고 있다.
오경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뭐? 네놈이 그, 그것을 어떻게?”
어떻게 알긴?
진무가 피식 웃으며 옆구리에 낀 인물을 바닥에 놓는다.
“좀 상했지? 이 자식이 틈만 나면 자꾸 도망가려고 해서 말이야. 덜 패서 그런가?”
“…….”
진무의 말에 오경이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인물을 쳐다보았다.
덜 팼다고?
눈앞에 있는 것이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곤죽을 만들어 놓고?
팔과 다리가 아작이 난 듯 덜렁거리고 얼마나 얻어맞은 것인지 부어오른 얼굴을 알아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살아는 있어. 단전은 박살 났지만.”
“…….”
“몇 대 패니까 니들 여기 짱박혀 있다고 친절하게 알려도 줬지.”
“그, 그런!”
알려 줬다고?
그렇다면 설마 저 곤죽이 같은 영은당의 무인이란 말인가?
그것 역시 말이 안 된다.
영은당의 무인들은 혹시나 잡힐 것을 대비해 각종 고문과 신문에 버티는 법을 수련해 왔다.
칼로 가슴을 도려내고 불로 얼굴을 지진다 해도 발설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불안함을 감추지 못한 오경이 가늘게 뜬 눈으로 곤죽이 된 사내를 살폈다.
너무 심한 상처를 입어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느낌.
‘그래! 표식!’
점조직으로 이루어진 영은당.
그가 같은 소속이라면 자신처럼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새겨 둔 표식이 있을 터였다.
오경의 시선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의복이 찢어져 드러난 정소의 팔오금에 닿는다.
“……!”
순간 오경의 눈동자가 걷잡을 수 없이 떨린다.
영은당의 무인이 확실하다.
“왜? 팔에 뭔가가 있냐?”
눈치 빠른 진무는 오경의 떨리는 눈동자가 한 곳을 향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
정소의 팔오금.
언뜻 보면 살갗에 비쳐 보이는 핏줄처럼 새겨진 푸른색 문양.
눈여겨보지 않으면 찾기도 힘들 정도로 미세했다.
요 새끼들 보게?
진무는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정소의 팔을 잡았다.
확인을 위해 자세하게 살펴본 진무의 눈가가 흥미롭다는 듯 가늘게 휜다.
“이런 게 있으면 진작 좀 말해 주지.”
“…….”
너 같으면 말하겠냐?
넉살 좋은 진무의 말에 오경의 눈두덩이가 씰룩거린다.
“뭐, 이런 걸 알았다고 해도 한 놈씩 찾아다니기는 그렇고, 자, 이제 다음 안내는 누가 할래?”
“…….”
복면으로 감춰진 진무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떠오르는 순간 오경의 입에서 살기를 머금은 명령이 외쳐진다.
“죽여라!”
대뜸?
하긴, 들킨 마당에야 뭐 당연한 일이겠지만.
파핫!
노비들 틈에 숨어 있던 무인들이 오경의 명이 떨어짐과 동시에 일제히 솟구쳐 진무를 향해 검기를 날려 왔다.
에이. 너 같으면 죽어 주겠냐?
진무가 자신을 향해 몸을 날린 놈들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하나, 둘, 셋…… 여덟.
먼저 처맞고 쓰러졌던 행랑아범 놈처럼 고작 현기 정도의 경지.
먹을 것도 별로 없는 놈들은 나중에 제압하고, 목표는……!
파악!
진무가 일 보를 내디뎌 밟으며 힘껏 지면을 차듯이 밀어 낸다.
조장, 오경.
제일 먹음직스러운 놈.
독단 깨물고 뒈지기 전에 줘 패고 다음 놈이 어디 있는지 물어봐야 한다.
공격해 온 무기들이 진무가 있었던 곳을 난자하는 사이, 섬전처럼 쏘아진 진무는 순식간에 오경과의 거리를 좁혔다.
“허억!”
생각지 못한 움직임에 오경이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재빨리 손을 떨친다.
취리릭!
순식간에 만들어진 수십여 개의 장영(掌影)들이 진무의 요혈들을 노리며 눈앞을 어지럽혔다.
과연 일성의 지부를 맡고 있다고 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이지만…….
저딴 걸로 무슨 공격을 하겠다고.
태청산수 정도는 되어야지.
진무의 손이 가볍게 가슴께에 닿았다가 원을 그렸다 앞으로 뻗어지자.
후아악!
한곳에 겹쳐졌던 종이 인형이 수천 개로 펼쳐진 것처럼 나누어졌다.
단번에 보이는 공간 전부를 채워 버린 태청산수의 장영.
“억!”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의 세……, 아니 열 배는 족히 될 법한 수.
태청산수에 의해 그의 공격이 목소리 한번 내 보지 못하고 흩어져 버리자 오경이 대경실색해 도망친다.
콱!
“……!”
하지만 놀랄 새도 없이 그의 손목을 강하게 잡아당기는 진무의 아귀힘에 오경은 물러나던 것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로 진무를 향해 빨려 들어갔다.
“일단, 뒈지면 안 되니까.”
“……!”
중심을 잃어버린 오경이 황급히 손을 휘젓는데 활짝 펴져 솟구쳐 오른 장심(掌心)이 턱 아래를 재빨리 갈겼다.
콰직!
“큭!”
졸지에 다물려 이빨이 부러지는 듯한 통증으로 찡그려진 오경의 머리가 쳐들리고.
휘릭!
옷자락이 빳빳하게 설 정도로 빠르게 회전하며 찬 진무의 발뒤꿈치가 오경의 뒤통수에 때려 박힌다.
쩌억!
마룻바닥을 뚫고 처박혀 버린 오경은 잠시 몸을 부르르 떠는가 싶더니 축 늘어지고 말았다.
세 개의 동작이 단 두 번의 호흡에서 일어났다.
“…….”
뻔히 눈앞에서 수좌가 제압당하는 와중에도 진석장의 무인들은 움직이지도 못했다.
츄릅!
진무는 혀로 입술을 쓸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어느 놈부터 조져 줄까?”
“……!”
* * *
잠시 후.
“…….”
진무의 앞에 무릎을 꿇은 오경.
그가 오경과 그의 수하들을 피떡으로 만들어 놓는 것은 불과 일각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한 놈씩 찬찬히 손목을 잡고는 내공을 빨아먹은 진무가 오경을 앉히고 물었다.
“자, 다음 놈은 어디에 있냐? 너보다 센 놈이면 좋겠는데?”
“…….”
마치 먹음직스러운 음식이라도 보고 있는 듯한 눈빛에 오경은 소름이 돋아 올랐다.
죽지도 못한다.
좌정을 시켜 놓고 마혈을 점했고, 입 안에 있던 독단도 미리 빼 버렸다.
악귀 같은 놈, 마인…… 등등.
눈앞에 있는 놈을 도대체 어떤 욕설로 표현해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저 눈빛에 담긴 사악한 기운. 분명 마기일 것이다.
“죽여라.”
“응?”
“나를 제압했다고 해서 무언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으냐? 나는 영은당의 조장이다.”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진무를 쏘아보는 오경의 눈동자.
“……아씨, 귀찮게 하네.”
이 새끼들은 왜 잡히면 죄다 죽여 달라고 하는 걸까?
목숨이 그렇게 가볍냐?
진무가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냥 대답하면 참 좋을 텐데?”
“닥쳐라! 이 간악한 놈아! 내가 고문을 한다고 정소처럼 고변을 할 것 같으냐!”
“……그래. 그렇겠지.”
다들 그러기는 하더라고.
진무가 한숨을 쉬며 소매를 걷었다.
오경은 알지 못했다.
진무의 구타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정소가 왜 고변을 택했는지…….
“끄아아악!”
퍽, 퍽, 퍽, 퍽!
진무의 구타는 오랜 수련을 통해 발전해 온 하나의 기예와도 같았다.
“끄아아아악!”
고통스러운 비명에도 측은지심을 품지 않는 굳건한 마음을 가져야 하며.
퍽! 퍼벅! 퍽! 뻑!
절대로 정신을 잃지 않도록 세밀하게 힘 조절을 해야 했으며.
콰직! 콱! 뻐억!
오랜 시간 구타할 수 있게끔 강건한 체력을 갖추어야 했다.
그것이 바로 분골착근을 구타로 승화시킨 예술적인 경지인 것이다.
혼이 담긴 구타.
그게 바로 진무의 장기였다.
“살려…… 쿠에엑!”
진무는 구타를 하는 내내 단 한 마디의 질문도 하지 않았다.
급기야 제발 살려 달라고, 물어보시면 무엇이든 답변하겠다고 외쳐 대는 오경의 목소리도 무시했다.
아직 몇 대 더 남았다.
“후우…….”
구타를 끝낸 진무가 깊이 들이마셨던 호흡을 내쉬었을 때, 오경은 정말로 숨만 붙어 있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죽지는 않은 것이다.
“죽여…… 제발…… 부탁……드……려요.”
오경이 바닥에 대가리를 처박고 진물처럼 눈물을 흘리며 최선을 다해 부탁했다.
안 그래도 내력을 모조리 빼앗기고 한 줌이나 될까 말까 하게 남아 있었던 오경이었다.
얼굴이 시퍼렇게 부어올라 원래보다 두 배는 크게 변해 버린 오경.
코뼈는 진작에 부러지고 이빨조차 두 개? 한 개? 정도밖에 남지 않아 마치 합죽이처럼 보일 정도였다.
더욱이 한참 전에 뼈가 으깨져 버린 팔다리는 움직일 수도 없었다.
지금은 차라리 그냥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자, 이제 다시 물어보자. 너보다 윗선 좀 토해 내 봐. 아니면 이놈처럼 안내를 하든가.”
“그……건…….”
아직은 이성이 남아 있는지 오경이 말하기를 주저한다.
스윽.
그의 머리맡에 쪼그려 앉은 진무가 오경의 머리를 움켜쥐고 들어 올린다.
주먹을 보는 순간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어 버린 듯한 표정의 오경이 질겁해서 외쳤다.
“조, 종남입니다! 종남에…….”
갑자기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오경이 너무도 또렷하게 소리를 질렀다.
종남? 진무가 눈을 찡그린다.
하, 참. 이 새끼가 아무리 급해도 그래도 그렇지. 어디서 약초를 팔어?
세작 놈이 구파의 핵심 중 하나인 종남에 있다고?
“너 이빨 까다 걸리면 진짜 뒈진다.”
“저, 정말입니다. 영은당의 영수 중 한 명인… 종남의…… 종남의…….”
“…….”
갑자기 오경이 초점을 잃은 눈으로 같은 말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이게 뭔?
진무가 의아해하는 순간 그의 몸에 힘줄이 지렁이처럼 툭툭 불거지고.
“종남의…… 끄으으…….”
괴이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콰득, 콰드득.
“……!”
몸이 기괴하게 뒤틀리며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던 오경이 칠공에서 검붉은 피를 토해 내기 시작했다.
“…….”
고(蠱)?
하? 이 새끼들 봐라?
고독을 썼어? 제 부하 놈에게?
당세령이 복용했던 추향고 따위가 아닌, 진짜 고독이다.
비밀을 들키지 않기 위해 수하들에게 금제를 걸어 죽게 만드는 진짜로 잔인한 고독.
그렇다는 것은…….
진무가 죽어 버린 오경의 팔오금을 살핀다.
푸른 핏줄 문양.
정말 개새끼들이다.
말 안 들어서 패는 것과는 다르다. 전투에 나서서 싸우다 죽게 하는 것과도 다르다.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으려고.
대장이라는 새끼가 자신을 믿고 따르는 부하에게 고독을 먹였다.
발설하면 죽으라고.
부하를 소모품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뭐 그런 건데.
“종남에…… 있단 말이지?”
진무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