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16
216화
양소방에게 아침 문안을 드리러 왔던 종남 장문인 유진산은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지객당의 주춧돌에 앉아 기둥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양소방.
볼은 홀쭉하게 들어가고 눈은 퀭한 게, 하마터면 딴 사람인 줄 알 뻔했다.
바로 전날까지 나이가 칠십이라 해도 장년의 젊음을 유지하고 있었던 그가 순식간에 늙어 버린 듯이 쇠약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설마 대숙수 목춘이 손질한 구육에 무슨 문제라도 있었던 것인가? 그래서 밤새 뒷간을 수도 없이 들락거리기라도 한 것일까?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대접해도 모자랄 것인데 이런 고초를 겪게 하다니.
혹시나 그가 종남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이라도 가지면 어찌한단 말인가?
목춘을 불러 단단히 혼을 내리라 다짐한 유진산이 불안감을 품고 조심스럽게 양소방에게 다가왔다.
“어, 어르신?”
“아, 자네 왔는가?”
“간밤에 무슨 일이라도…….”
“응? 아닐세. 아니야.”
양소방이 힘겹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혹, 지난밤에…… 음식에 무슨?”
“응? 아니야. 잘 먹었네. 숙수의 솜씨가 일품이더군.”
양소방의 말에 유진산은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근데 음식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째서 이런 모습이란 말인가?
“한데 무당지검은 어찌 보이질 않습니까?”
“그 아이…… 운공 중이네.”
“운공이요?”
“그래.”
양소방의 말에 유진산이 지객당을 슬쩍 바라본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기운이 미세하게 느껴져 왔다. 도가의 기운이 아니라 무언가 사악한…… 사기?
어째서? 선기가 아니고 사기인가?
“그럼 호법을 서고 계신?”
“…….”
“어르신, 종남입니다.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불안하시면 차라리 제자들을 불러 시키도록…….”
유진산의 말에 갑자기 양소방이 그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본다.
눈이 퀭해서 그런가?
눈동자에 시퍼런 귀기마저 서려 있었다.
“신경 쓰지 말게! 접근도 하지 말고, 알려고도 하지 말아! 자네도! 종남의 제자들도! 절대로!”
“…….”
아니, 그렇게까지 화를 낼 일인가?
“그만 돌아가게! 내 좀 쉬어야겠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축객령이 떨어졌으나 어찌 정무맹의 큰 어른인 양소방에게 따져 물을 수 있겠는가?
유진산은 의문을 가득 품은 얼굴로 공손히 물러났다.
“하아…….”
깊은 한숨이 절로 나온다.
홀로 남은 양소방은 지난밤의 일을 떠올렸다.
정말로 쪽쪽 빨렸다.
단전이 텅텅 빌 정도로 내공을 빼앗겨 버린 양소방은 진무가 건네준 요상단을 취하고서야 겨우 기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곤 지금까지 호법을 서는 중인 것이다. 새로 얻은 내공을 연단해야 한다며 방으로 들어가 버린 진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내공을 빼앗긴 건 자신인데. 아직 제대로 운기조차 하지 못했는데…….
원래 내공이라는 것이 진원만 상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지나 서서히 회복되기는 한다.
문제는 너무 많이 뺏겼다는 것이다. 그것도 너무 급속도로…….
걸어 다니는 것도 귀찮아질 만큼 몸이 힘들지만, 호법을 설 수밖에 없다.
무조건 자신이어야 했다.
지금 진무가 익히는 것은 자신의 이름과 개방과…… 아무튼 이런저런 걸 다 걸고 죽음까지 가져가야 할 비밀이니까.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된다. 누구도.
* * *
우우웅!
진무와 양소방이 머물고 있던 지객당의 방 안에 끈적거릴 정도로 밀도 높은 사기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대단하다.
진무는 운공 중임에도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양소방, 정말 엄청난 양의 내력을 가지고 있었다. 너무 많아서 단전이 터질 듯한 느낌까지 받지 않았던가?
진무는 양소방의 내력을 흡수하자마자 지객당으로 돌아와 운기를 시작했다.
밤새도록 흡수한 내공을 연단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아직도 남아 있다.
정소와 오경에게서 빼앗은 내공이 푸줏간에서 파는 소의 어느 한 부위라면, 양소방의 그것은 그냥 소 한 마리를 통째로 먹은 것과 같았다.
양소방에게 채기법을 얻은 경위에 대해 알려 주길 잘했다.
그의 도움으로 한 백 명에게 흡수해야 할 것을 단 한 번에 끝내 버렸다.
묵룡혼원공의 연단법으로 불필요한 탁기를 뱉어 내고 순수한 기운만 담았는데도 단번에 의기에 이를 정도의 사기가 단전에 넘쳐흐른다.
원래 채기법으론 탄기 이상을 이루어 내는 것이 불가능한 무공임에도.
하긴, 생각해 보면 불가능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전생에 이 정도의 고수를 상대로 채기를 해 본 적이 없었거니와, 이 정도의 고수와 싸울 수 있는 실력이 되었을 때는 이미 묵룡을 불러내어 더 이상 채기법이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어쨌든 여기까지가 한계점일 것이다.
채기법으로 내공을 빼앗을 수는 있겠지만 불필요하다. 필시 쌓이지 않고 흩어지고 말 것이다.
몸에 무리도 많이 갈 테고.
양소방, 이 녀석, 이 고마운 녀석. 너를 거지 노예 정도로 취급한 걸 사과한다.
살아 있는 영물을 고작 노예 정도로 격하시키다니, 내 불경하기 짝이 없었다.
“후우우…….”
길게 호흡을 몰아쉬며 운기를 마친 진무의 눈동자가 짙은 사기로 번들거린다.
신광이 아닌, 음습한 느낌을 주는 칙칙한 눈빛.
묵룡혼원공을 운용한 진무의 눈동자는 흑요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끼이익.
자리에서 일어난 진무는 산뜻한 기분으로 지객당의 문을 열었다.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이 시리도록 눈부시다.
어제의 내가 아닌 다른 내가 된 듯한 기분.
상쾌하다.
비로소 다시 세상에 돌아온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제야 이전의 삶,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단전에 가득 채워져 독맥을 휘도는 묵룡의 기운이 당장이라도 세상을 향해 뻗어 나갈 듯이 들끓자 걸음마다 사이한 기운이 진득하게 피어오른다.
“끝났나?”
무기력한 목소리에 슬쩍 고개를 돌려 쳐다보는…… 아씨, 깜짝이야!
시첸 줄 알았잖아!
“성과는 있었는가?”
“…….”
힘겹게 물어 오는 양소방.
좀…… 측은하긴 하다.
“예. 어르신 덕분에 큰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이 정도 인사는 괜찮지 않은가?
산에서 산삼을 발견해도 심봤다며 천지신명께 고해 감사하는 판에.
인간 영물로 인해 큰 기연(?)을 얻게 되었으니 이 정도 감사는 별스러울 일도 아니었다.
“허허, 감사는…….”
손사래를 치며 진무를 살핀 양소방은 다시 한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허락은 했으나 마공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미 정파의 젊은 영웅과도 같은 도사가 마공이라니.
그래도 다행이다.
외적으로 풍겨 나오는 기운이 당장이라도 생사투를 벌이고 싶을 만큼 사이했지만, 인성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은 모양이었다.
분위기만 좀…… 많이 바뀌었을 뿐 여전히 공손하고 예의도 바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종남이 아니던가?
“혹, 도가의 선기는 쓰지 못하는 겐가?”
“아, 아닙니다. 양의심공을 운용하면…….”
“그럼 어서 기운을 바꾸게. 누가 볼까 두렵네.”
“…….”
양소방이 고개를 휙휙 돌려 혹시나 누가 보지나 않을까 주변을 경계하자 진무가 피식 웃는다.
녀석, 벌써 비밀 유지에 노력해 주다니.
진무는 흐뭇하게 양의심공을 운용해 육양진기를 담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끈적함을 머금었던 사기가 청량한 선기로 대체되었다.
“후우…… 이제야 좀 마음이 편하구만.”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제가 호법을 설 테니 어르신께서 운공을 하시지요. 몸이 쇠약해질까 걱정됩니다.”
“…….”
고양이 쥐 생각해 주는 것도 유분수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는데!
하지만 양소방은 되레 그리 생각하는 진무가 기특하기만 했다.
“이 사람, 어찌 그리도 남 생각만 하는가? 나는 오히려 자네가 걱정스럽네.”
“……?”
미친 것 같지만 눈빛이 진심이다.
원래 사람이 뭔가에 한번 꽂히면 무서운 법이다.
노인들은 더욱 그러했다.
한번 뇌리에 박힌 기억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 법이 아니던가?
진무라는 인물은 무척이나 바르고, 정파의 미래를 걱정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정파를 위해 살아가는 도인이라는 생각이 이미 그의 머릿속에 단단히 박혀 있는 것이다.
“어서 기력을 회복하십시오. 그래야 정무맹을 어지럽히고 있는 세작 놈들을 찾아내 소탕하지 않겠습니까?”
“암, 옳구말고. 언제나 정파를 걱정하는 자네를 보면 내 항상 부끄럽기만 하다네.”
“…….”
연신 칭찬을 늘어놓는 양소방으로 인해 진무가 머쓱할 정도였다.
괜스레 이용만 해 먹은 것 같아서…… 미안하게…….
“자, 어서 들어가십시오.”
진무가 양소방을 지객당 안으로 억지로 밀어 넣었다.
“허허. 이 사람.”
양소방은 자신을 챙기는 진무의 모습에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못 이기는 척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안으로 들어가고 난 뒤 미약하게 기운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운공을 시작한 모양이다.
아마 곧 회복되리라. 한 삼 개월쯤?
그 정도면 뭐 금방이다.
원래 시간이라는 것이 당장에는 안 가는 것 같아도, 지나고 나면 언제 지났는지도 모를 만큼 빠른 것이 아니던가?
양소방을 위해 호법을 자처한 진무는 흐뭇한 표정으로 종남파를 바라보았다.
좋은 곳이다.
아니 지금의 진무에겐 뭐든 다 좋아 보인다.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다.
이젠 굳이 세작 따위 찾을 필요는 없다.
내공을 흡수할 목적이었으나 이미 다 얻은 것을…….
하지만 시체 같은 모습으로 변한 양소방이 좀 마음에 걸린다.
당장이라도 세작들을 잡아 족치려는 마음이 굴뚝같으리라.
그러니 그저 진무의 운을 믿고 종남까지 달려오고, 은밀히 천라지망까지 펼친 것이 아니겠는가?
좀 도와줄까?
양소방의 내력을 흡수하지 않았다면 이놈 저놈 쫓아다니느라 못해도 반년은 족히 돌아다녔어야 할지도 모르는데 그걸 단 하루 만에 끝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대로 곧장 천웅방으로 돌아가 사패천을 접수해야겠지만…….
그래, 종남에서 세작을 찾는 것만 도와주도록 하자.
뭐, 세상이 당장 내일 망하는 것도 아니고.
진무가 턱을 괸 채 종남에서 세작을 찾을 방법을 고심하던 중에 누군가 지객당으로 다가선다.
사기?
묵룡혼원공의 발전으로 인해 기감(氣感)이 전보다 더 확장된 덕분일까?
선기만 가지고 있을 때보다 사기가 더욱 선명하게 느껴져 왔다.
웬 놈이지?
진무는 가늘게 뜬 눈으로 한 곳을 쳐다보며 감각을 집중했다.
다른 곳이 아닌 종남이기에 사기가 느껴지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다만 필요 이상으로 은밀하다.
먹잇감을 향해 다가서는 괭이 새끼인 양 발소리를 죽이고 기척을 감추는 게…… 설마 세작? 벌써?
아니다.
갑자기 무당지검에 양소방까지 나타났으니 살펴볼 만도 하지 않은가?
긴가민가 싶은 생각으로 기운에 집중하는데, 가까이 다가서던 기운이 어느 순간 멈추더니 기척이 더욱 약하게 줄어든다.
은신술을 사용한 것이 확실하다.
“이 새끼!”
파학!
싸늘한 미소를 머금고 앉아 있던 진무가 어느 순간 바닥을 찼고, 그의 신형은 순식간에 지객당의 담벼락 위까지 날아갔다.
“세자-악 놈…… 어?”
곧바로 주먹으로 후려치려던 진무는 상대와 눈이 마주쳤다.
눈을 끔벅이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의 손에는 요리용 식칼과 목이 잘려 피를 뚝뚝 흘리는 불쌍한 닭이 들려 있었다.
종남파 대숙수 목춘?
“당신이 왜?”
“…….”
진무가 날카로운 눈으로 경계하며 묻자 숙수가 겁먹은 눈으로 끔벅이며 제 손을 슬며시 들어 올린다.
“장문인께서 어제 구육이 상했는지 무풍개 어른이 밤새 설사를 하신 듯하다고…… 보양식을 준비하라고 해서…….”
“…….”
밤새 설사.
아,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
“그럼, 그게?”
“예. 닭을 잡아서 하수오를 넣고…….”
하, 하수오를 넣어?
“며, 몇 년짜리?”
“……한 십 년쯤.”
허, 이것들이 미쳤나?
고작 삼계탕 끓이는데 삼(蔘) 대신에 하수오를 넣는다고?
불로장생도 가능하다는 만 년짜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냥 하수오라고 해도 약방에서 제법 고가에 거래되는 약초이거늘.
사방 천지에 사치를 부리는 놈들뿐이로구나.
진무가 얼굴을 가득히 일그러뜨리고 목춘을 향해 힘껏 손을 들어 손가락 두 개를 폈다.
“둘!”
“……예?”
“사람이 둘이오!”
“…….”
“응당 두 그릇을 준비해야지!”
“아니, 그야 당연히…….”
“어허! 사람이 둘이라니까!”
진무의 말에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던 목춘이 탄성을 지른다.
“아! 두 마리를?”
끄덕끄덕.
당연하지 않은가?
위대하신 우리 스승님께서도 한 사람당 닭 한 마리를 먹어야 한다 가르치신 바 있다.
“알겠습니다. 속히 준비하겠습니다.”
“허허허.”
목춘이 알아듣는 듯하자 진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운기를 끝낸 양소방과 함께 삼계…… 아니, 하수오계탕을 먹으면서.
각기 한 마리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