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15
215화
양소방은 같은 길을 걷는 동료로 생각하고 있겠지만, 진무는 추호도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뭐 하러 얻는 것도 없이 공짜로 정보를 내어 준단 말인가?
뭘 알고 있든지 먼저 토해 내지 않으면 절대 알려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른다면 몰라도.
“허허, 왜 이러는가? 내 이미 자네가 양의심공을 얻었음을 알고 있다네.”
“……?”
“화산에 있었던 일은 이미 다 들었네.”
다 들었다고?
“내 운공 어른과 친분이 두터워 양의심공에 대한 내용은 어느 정도 알고 있네. 그리고 자네 근황이야 뭐, 알려고 하면 얼마든지……. 아무튼 자네가 양의심공을 대성하려 선도와 반대되는 사공을 익힐 것으로 추측되네만, 아닌가?”
“…….”
운공, 이 망할 노인네.
문파의 비사가 어쩌고,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 어쩌고 하더니 온 동네 소문을 다 내 놨네.
그렇게 물정 모르고 나불대니까 저 사생활 침해를 업(業)으로 삼는 거지새끼가 알아서 앞뒤 짜 맞춰다가 여기까지 와서 간을 보는 거 아니야.
젠장, 일단 더 들어 본다.
“자네가 한 달여의 행적을 감추었을 때 생각했다네. 무당지검에다 정무칠성에 비견된다는 설까지 떠도는 자네가 흔하디흔한 사공을 익힐 리는 없을 터이니 응당 신분을 감추고 사패천으로 갔거나…….”
갔거나?
“아예 마교 쪽으로 떠나 절세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무공을 찾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
응, 그건 너무 갔다.
“한데 자네는 종남으로 왔어.”
“…….”
“우리는 자네가 아무 이유 없이 종남을 찾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네.”
“…….”
진무의 팔십 년 묵은 대가리가 빠르게 회전한다.
“제가요? 무슨 그런 말씀을. 저는 그저 표주 중에 화산을 들렀다가, 걸음 닿는 대로 이곳까지 왔을 뿐입니다.”
“뭐라고?”
양소방의 되물음에 진무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멍청한 표정을 지어 주었다.
“또 뭐가 있어야 합니까?”
“…….”
백날 쳐다봐라.
나의 완벽한 연기력에 조금이라도 허점이 있을 줄 알고?
“저, 정말 이유도 없이 왔다고? 그냥?”
“암요.”
모른 척 잡아뗄 때는 모름지기 순진무구한 표정이 가장 잘 먹히는 법.
허탈한 표정으로 진무를 바라보던 양소방이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런, 그런 겐가? 음, 대군사의 판단이 이번엔 틀린 모양이군.”
“예? 그게 무슨?”
“실은 대군사가 나를 이곳에 보낸 이유는 자네 때문이라네.”
나 때문이라고?
진무가 의아하게 쳐다보자.
“지금까지 자네가 한 일을 생각해 보게. 곳곳에서 잘도 궁의 인물들과 부딪혀 왔지 않은가?”
“그건 우연히…….”
“그래. 우연일 수도 있지. 하지만 우연도 반복되면 필연이라지 않는가.”
“……그럼?”
양소방으로부터 무언가를 알아내리라 생각했던 진무의 표정이 어이없음으로 물든다.
이 새끼들, 설마?
정무맹의 최고위직이라는 놈들이?
“그냥…… 감으로?”
진무의 물음에 양소방이 고개를 끄덕인다.
“어쩔 수가 없었네.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랬겠는가? 대군사와 나는 ‘궁’이라는 자들에 대해 알게 된 뒤로 오랜 세월 공전계를 준비해 왔어. 같은 식구들에게까지 숨겨 가면서 말일세.”
어딘가 넋두리와도 같은 양소방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그리 준비해 왔던 계획이 막 시작되었는데 백마사 이후로 놈들의 흔적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어. 개방의 방도들은 물론이고 각 파의 무인들이 중원을 이 잡듯이 뒤지고 있음인데, 고작 세작 몇 놈 잡아내는 것이 전부라네.”
“…….”
혹시나 했던 생각이 점점 확신으로 바뀐다.
이런 미친놈들이!
“하루라도 빨리 잡고 싶은 조바심인 게야. 그 때문에 우리도 운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자네의 그 우연에 기대 보기로 한 게지. 이상하게도 자네 팔자가 참 그렇단 말일세. 그냥 걸어만 다녀도 ‘궁’ 놈들이 꼬이는 팔자. 뭐, 자네가 진짜로 무언가를 알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아주 안 한 건 아니고.”
“…….”
정무맹 꼬라지 한번 잘 돌아간다.
미친놈들. 아무리 조바심이 났어도 그렇지, 말 한마디에 수백 명을 움직이는 놈들이 고작 운에, 팔자에 기대 여기까지 자신을 쫓아와?
와중에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는 건 맞지만, 이걸 그들이 알 리가 없지 않은가?
“지금 종남산 주위로 인근의 문파들이 은밀하게 간이 천라지망을 구축하였네. 한 사람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말이지.”
갈수록 가관이다. 천라지망까지 펼쳤다고?
와, 이딴 놈들이랑 이전의 삶에서 중원의 패권을 놓고 경쟁을 했네, 내가.
“아쉽게 되었군. 자네를 통해 무언가를 알게 되리라 기대했는데.”
양소방이 아깝다는 표정으로 내려 두었던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자네의 주위에서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네.”
“…….”
정신 나간 찰거머리 거지 놈 같으니. 단서가 없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떨어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이걸 어떻게 떼 버려야 하나 진무는 잠시 고민했다.
알려 줘야 할까?
종남에 세작 놈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그들을 구분해 낼 수 있는 방법을?
얻는 것도 없이?
으음, 그럼 먹잇감이 줄어드는데. 양소방 앞에서 대놓고 기운을 빨아먹을 수도 없…….
“…….”
진무가 갑자기 떠오른 기가 막힌 생각에 양소방을 쳐다보았다.
양소방은 진무가 양의심공을 위해 사공을 익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을 제 입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어르신!”
“……응?”
“저를 얼마나 믿으십니까?”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린가?”
“…….”
양소방의 질문에 진무는 대답하지 않고 눈을 부릅뜬 채 쳐다보기만 했다.
“그, 그야 자네에게 협전을 주었을 정도로…….”
“그 정도로는 안 됩니다.”
“……어? 뭐?”
“만약 제가 마공을 익힌다면 어찌하겠습니까?”
“허허, 이 사람. 자네가 설마 그럴 리…… 설마 마공을 익힐 생각인가?”
양소방이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진무를 바라본다.
“답부터 해 주십시오.”
“이 사람아. 아무리 그래도 마공은…….”
“어르신!”
“…….”
힘을 잔뜩 주어 바라보는 진무의 눈빛에 양소방이 난감해진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쉰다.
“믿네, 믿지. 관심이 없을지 몰라도 자네는 이미 정무맹의 영웅이 아닌가?”
됐다. 그 대답을 기다렸다.
돌파구를 찾아낸 진무의 비열한 머리가 엄청난 속도로 회전한다.
“실은 제가 ‘궁’의 세작을 확인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정보를 발견하긴 했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당연하지.
여기서 다시 거래의 기본. 일단 상대가 가지고 싶은 것이 명확하다. 그렇다면 슬슬 약 올려서 원하는 것을 얻는다.
“예. 하지만 확실하지 않기에 말씀드리기가.”
“괜찮네! 그게 무엇인가!”
순식간에 몸이 달아오른 양소방이 부릅뜬 눈으로 진무를 다그친다.
그럴수록 진무의 속내는 점점 더 음흉해졌다.
“그 전에…… 한 가지 저와 약속하실 것이 있습니다. 또한, 반드시 들어주셔야 할 부탁도 있구요.”
“약속과 부탁?”
“……예.”
“그게 뭔가?”
“실은…….”
슬쩍 말을 흘려 조바심이 나게 만들어 주자 양소방이 침 삼키는 소리가 귓가에 선명하게 들린다.
“……예상하신 대로, 제가 지난 한 달 동안 마공, 아니 사공을 익혔습니다.”
“버, 벌써?”
양소방의 눈이 크게 뜨였다.
고작 한 달여의 시간. 아무리 사공을 익힐 것이라 예상했기로, 이렇게까지 빠르게 익혔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진무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은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 됩니다.”
“으음…… 알겠네.”
“어르신의 명예와 이름, 개방의 이름, 개방의 선대들의 이름을 걸고 천지신명께 약속해 주십시오.”
“아니, 뭘 그렇게 거창하게?”
“어르신!”
진무가 또다시 양소방을 쏘아보았다.
양소방은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다.
자신의 이름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고, 개방의 역사와 선대가 가진 명예를 지켜 온 인물인 것이다.
“알겠네. 내 이름과 개방을 걸고 천지신명께 맹세하지.”
“좋습니다.”
모든 준비가 끝난 진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은…….”
“…….”
진무는 화산에서 멀리, 아주 멀리 떠난 이후 이름 모를 협곡에서 매우-! 아주! 오래된 동굴 하나를 발견한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사악한, 아니 매우 우수한 무공을 익히게 된…….
“뭣이! 타인의 기운을 흡수한다고? 설마 마교의 흡정을!”
“어르신……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닥치고 좀 처들어라.
믿기 편하게 말 꾸미기도 힘들어 죽겠구만.
“아, 미, 미안하네. 계속하게.”
양소방이 멋쩍은 표정으로 사과하는 것을 슬쩍 째려본 진무는 이 무공이 비록 타인의 기운을 흡수하기는 하지만 육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뿐더러, 빼앗긴 자의 내공 또한 시간이 지나면 돌아온다는 말까지 곁들여 주었다.
“음…… 생기가 아니라 내공만이라. 말을 들어 보니 흡정마공까지는 아니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당연히 생기는 아니지.
얻다 대고 흡정과 비교를 한단 말인가? 그런 허접스러운 마공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죄악이다.
생기를 흡수하면 백표처럼 된다. 마인이 되는 것이다.
“어르신.”
“응?”
“남아일언…….”
“…….”
양소방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진다.
이미 천지신명에게까지 고한 마당에 말을 바꾸게 되면 자신과 사문의 명예가…….
“알겠네. 내 무덤까지 비밀로 하겠네. 한데 그 무공에 대해 나에게 알려 주는 이유가 무엇인가? 누군가 듣고 오해라도 하게 되면 자네의 위명에 큰 오점이 될 것인데…….”
응, 그러니까 너만 입 닥치고 있으면 돼.
“제가 이미 실험도 해 보았습니다.”
“해 봤다고?”
그래. 무려 수십 년에 걸쳐 수도 없이 했지. 짐승은 물론 사람에게까지 아주 골고루다가.
“예. 어르신께서 보시기에 지금 제가 사악한 마공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십니까?”
“그건…….”
양소방이 가늘어진 눈으로 찬찬히 진무를 살핀다.
그의 기운이 진무의 전신을 훑고 다니는 느낌이 선명했다.
“음, 아닐세. 자네는 여전히 내가 처음 보았을 때와 다를 바가 없군.”
“그렇습니다. 아무런 영향도 없었습니다.”
“음.”
“해서 저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도와 달라고?”
“예.”
한참을 고민하던 양소방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약속하셨으니 이제 제가 발견한 단서를 말씀해 드리지요.”
이젠 슬쩍 먹잇감을 던져 주어야 한다.
반신반의하는 양소방의 마음을 완전히 휘어잡을 만한 단서.
‘궁’과의 싸움을 뒤집어 놓을 만한 그것.
진무는 우연히 서안에서 쫓게 된 어떤 인물과 싸운 이야기를 꺼냈다.
“아!”
어떤 괴인이 세작 놈을 구해 갔다는 소식은 양소방도 서안으로 오는 길에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진무가 그를 만난 모양이겠거니 하고 계속 경청하던 차에, 이야기가 팔오금에 새겨져 있다는 푸른 문양에 이르자 양소방의 눈동자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엄청난 단서다.
만약 확실하다면 세작들을 뿌리 뽑는 커다란 기회가 될 것이다.
순식간에 흥분으로 차오른 양소방이 당장이라도 일어날 듯 엉덩이를 들썩이는데.
“어르신.”
“……응?”
“단서를 드렸으니 이제 어르신께서 약속을 지키실 차례입니다.”
“…….”
“절대로 반항하거나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
“일단 좌정하시고…….”
“…….”
진무의 인도에 따라 양소방이 얼떨결에 앉은 그대로 자세를 잡는다.
그리고 진무가 그의 등 뒤로 다가가서 섰다.
뒤에서 내려다보는 진무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감돌고, 하얀 송곳니가 반짝 드러났다.
양소방에게 채기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납득시킴으로써 진무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면책권을 얻은 것이나 진배없다.
그는 이제 이후 진무가 채기법을 한다 해도 절대 의심하지 않을 것이며, 혹여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거나 소문이 돈다 해도 전력을 다해 막아 줄 것이다. 개방을 총동원해서라도.
앞으로의 싸움도 양소방에게 맡기면 된다. 단서를 줬으니 아마 무림을 뒤집어엎어서라도 찾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제 먹잇감을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다. 복면까지 뒤집어쓰고 궁의 놈들 꽁무니 따라다니면서 몰래몰래, 야금야금 내공 빨아먹을 필요가 전혀, 저언혀 없다.
양소방이 누군가. 정무칠성의 일인. 개방 최강의 고수.
내공?
개많음.
지금의 양소방이라면 모르긴 몰라도 진무의 비어 있는 단전을 빵빵하게 채워 줄 것이다.
티끌 모아 태산? 웃기네.
텁.
진무가 눈 앞의 어깨를 잡는 순간 양소방의 눈이 크게 뜨였다.
“꾸어어어!”
인~생은~ 한 방~
* * *
“…….”
종남파의 뒷문 안쪽.
한 인물이 벽에 귀를 밀착시키고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양소방이 기막을 쳐 두었기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닷새 전, 그가 지니고 있던 사령고(邪靈蠱)가 죽었다.
음양고의 일종인 사령고는 한 쌍으로, 점조직으로 이루어진 영은당이 하부 조직에게 제재를 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삶과 죽음을 함께하는 사령고.
그중 하나가 죽었다는 것은 자신의 하부 조직원인 오경이 죽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는 분명 누군가에게 금지된 비밀을 말했다는 뜻.
그와 동시에 무당지검이 찾아왔다. 이어서 양소방까지…….
자신의 정체가 드러난 것일까?
오경과 자신은 다르다.
영은당주 아래에 있는 아홉 명의 영수(影首) 중 하나.
만약 자신이 잡힌다면 영은당 전체의 정보가 드러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정무맹 내에 잠입해 있는 세작들의 기반이 통째로 흔들리게 된다.
모든 활동을 중지하라는 명을 받은 지금.
도망쳐야 하는가?
최대한 빠르게 몸을 빼 지금의 사실을 당주에게 알려야 하는 것인가?
속단할 수 없다.
쉽게 결론을 내릴 수도 없었다.
과거 청성의 도사 상우로 위장했던 귀영(鬼影)이 양의심공을 확보하기 위해 무리하게 움직이고 말았다.
대랑은 죽고 청랑대의 대부분이 당가에 잡혀 궁에 대한 정보가 정무맹에 드러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그들이 충성해 왔던 삼궁주 상관평이 좌천되었다.
귀영 또한 그 책임을 물어 잔인하게 살해당한 것은 물론이다.
‘일단 그들이 찾아온 이유를 확인해야 한다.’
벽면에서 은밀하게 상황을 살피고 있던 사내는 어느 순간 모습을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