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17
217화
“이보게, 진무 도장.”
운기를 통해 내력을 제법 회복한 양소방이 전날보다 조금은 나아진 모습으로 진무의 옆에 쪼그려 앉았다.
“예.”
“그…… 내공 말일세.”
“……왜요?”
“그게…… 너무 느려. 자네가 몇 차례나 실험을 해 보았다고 했는데.”
못 미더워하는 눈치에 진무가 슬쩍 째려본다.
“그…… 회복은 되겠지?”
“된다니까요?”
“……언제쯤?”
“곧이요, 곧.”
삼 개월이면 돼, 삼 개월.
“내 자네 부탁으로 내공을 주긴 했네만…… 하아, 큰일이야. 세작도 붙잡아야 하고…… 하아, 어찌한다? 자네가 내공을 전부 가져가는 바람에……. 어찌한다……. 할 일도 많은데.”
“…….”
조심스럽게 진무의 눈치를 살피며 말하는 양소방.
이 새끼가 지금 내 탓을 하는 건가?
어제까지만 해도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좋다느니, 남을 걱정하는 게 어떻고, 정파의 미래가 어떻고 하더니.
“걱정 마세요. 회복됩니다.”
“그래.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기는 하겠지만…… 지금 내 상태로는…… 제대로 뛰지도 못할 것 같네. 마음 같아서는 개방으로 돌아가서 방주에게 청심단이라도 내놓으라 하고 싶은 심정이야. 아니면 자네가 가지고 있는 자소단이나…….”
“…….”
양소방이 슬쩍 진무의 눈치를 살핀다.
이 새끼 탓하는 거 맞네.
그리고 뭐? 자소단?
누가 거지새끼 아니랄까 봐서.
공짜……는 아니지만, 그 귀한 자소단을 내달라고 하다니.
넌 양심도 없냐?
그리고 자소단이 진무에게 있는 것은 또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분명 화산에 꼬치꼬치 캐물었을 것이 분명하다. 하여간에 남의 뒤는 더럽게 캐요, 아주.
양소방 덕에 채기법으로 채울 내공을 단번에 확보하긴 했지만 그건 그거고, 자소단은 안 된다.
어차피 시간 지나면 회복될 내공을 조금 더 빨리 회복하자고 그 귀한 영단을 쓸 순 없다.
“세작을…… 잡아야 하는데.”
그냥 한 번에 말해라.
아까부터 뭘 그리 뒷말을 흘려 가면서 말한단 말이냐.
“내가 아니면 세작을 확인할 방법이……. 하지만 자네가 나서 준다면…….”
부려 먹겠다는 거잖아, 그러니까.
하여간 생각하는 것하고는. 내공 그거 얼마나 된다고 사람을 부려 먹으려 한단 말인가?
단전에 알차게 연단된 내공을 다시 돌려줄 수도 없고…… 그래 도와준다 도와줘. 내 더러워서 원.
“어르신.”
“응?”
“세작 색출 작업을 바로 시작하시지요. 제가 돕겠습니다.”
“응? 자네가? 그래 주겠는가?”
순식간에 환하게 밝아진 얼굴로 누런 이까지 드러내며 웃는 양소방의 모습에 진무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예. 어르신께서는 제 계획대로 명만 내려 주십시오.”
“뭐라? 설마 벌써 계획을 세워 두었단 말인가?”
“암요.”
그럴 리가 없지.
지금부터 힘차게 머리를 굴려야지.
“그래, 어떤 계획인가?”
금세 조바심이 난 양소방이 채근하듯이 물어 왔다.
거, 노인네 성질머리도 급하네. 잠깐 있어 봐라. 생각 좀 하자.
자, 종남에 세작이 있다.
필시 다른 문파에도 잠입해 있는 놈이 분명히 있을 터다.
단번에 잡아내면 좋겠지만 정무맹만으로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할 터이고…… 음.
한 번에 솎아 내지 않으면 이놈들이 눈치 까고 종적을 감춰 버릴 텐데.
한참을 고민하던 진무가 번뜩 떠오른 묘책에 입꼬리를 한껏 말아 올리며 웃었다.
“……그, 횡소천군(橫掃千軍)은 어떠십니까?”
“회, 횡소…… 뭐?”
기대감에 부풀었던 양소방의 눈썹이 상하로 다르게 움직인다.
뜬금없이 뭔 개소리를 하는가 싶겠지.
삼재검법의 초식 중 하나로 널리 알려진 그것은 그저 가로베기라는 동작을 표현한 말이니까.
하지만 그 말을 살피면 가로베기 하나로 천 명의 군사를 베어 낸다는 광오한 뜻을 품고 있으니 매우 적절하다.
“이보게. 횡소천군이라는 전술이 있다는 소리는 처음 듣네만.”
나도 방금 생각했다.
그러니까 말 끊지 말고 일단 들어 봐라.
“횡소천군. 시작과 동시에 놈들을 일거에 쓸어 버리는 계책입니다. 놈들이 우리가 세작을 찾아내기 시작했다는 것을 눈치채는 날에는 도망을 칠 수도 있으니까요.”
“그 말이었군. 한데 일거에 쓸어 버린다라……어찌할 생각인가?”
그럼 아무 생각도 없이 초식 이름이나 말했겠냐?
거지 놈이 눈치도 없이.
대충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지. 쯧쯧.
“일단 종남의 장문인에게 은밀하게 세작에 대해 알리고, 조사에 협조하도록 요청해 주십시오.”
“장문인에게?”
“예.”
“하지만 그리하면 그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게 될 것인데.”
꽉 막힌 노인네야, 지금 자존심이 문제냐?
“어르신, 자존심이 정파를 구원하지 않습니다.”
“…….”
옳은 말이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때로 명분이니 대의를 따지지 않아야 할 때도 있었다.
이미 몇 번이나 놓친 적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대의와 명분을 제하면 어찌하여 정파라 불린단 말인가?
양소방은 못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도와주지 말까?
확 그냥 내공도 먹었는데 바로 튀어 버릴까?
하지만 이미 잡아 주겠다 약속을 했으니.
“어르신, 무엇이 목적입니까? 세작을 잡는 게 목적입니까? 아니면 쓸데없는 허울을 지키는 것이 목적입니까?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그렇다면 되는 건 뭡니까?”
“…….”
진무의 직설적인 말에 양소방이 한참을 고민한다.
“좋네. 그 부분은 내가 설득하도록 하지. 다음은 어찌하면 되겠는가?”
“정무맹에 연락해 종남파에 내려진 비상령을 해제해 주십시오.”
“비상령을?”
“예. 다만 종남파에 국한된 것이라야 합니다.”
“…….”
“그를 통해 외부로 나가 있는 종남의 무인들을 모두 불러들여 한자리에 모이게 해야 합니다. 한자리에 모아 놓고 급작스럽게 확인을 한다면 세작은 절대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한 번의 조사로 종남의 세작들을 모조리 솎아 내겠다는 말이군.”
“예.”
“음…….”
말 그대로 횡소천군이다.
“그 외에 또 해 주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외에?”
“예. 개방도들로 하여금 소문을 좀 내 주십시오.”
“…….”
소문이라니? 무슨 말일까?
“구파일방과 중소 방파를 합하면 조사해야 할 곳만 수백이 넘습니다. 정무맹은 물론 개방의 방도들을 전부 동원한다고 해도 인원이 부족하지요.”
“그렇지.”
“그러니 소문을 내는 겁니다.”
“……?”
“종남에서 세작이 발견되었다. 정무맹에서는 지금부터 모든 문파를 대상으로 감찰을 실시할 것이다.”
“아!”
진무의 말에 양소방이 불현듯 깨닫는다.
“소문을 들은 문파들이 정무맹의 감찰에 앞서서 스스로 자정(自淨)하게 한다?”
“예. 저잣거리에 호랑이를 만드는 것입니다.”
“옳거니! 삼인성호(三人成虎)의 책략이로구만!”
“…….”
뭐, 그렇다 치자.
삼인성호.
세 사람이 입을 맞추면 저잣거리에 호랑이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한비자에 나오는 유명한 고사다.
아무리 거짓이라고 해도 사람들의 말이 반복되면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무맹 예하의 무가들은 저마다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져 있지요. 자파에 세작이 숨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을뿐더러, 정무맹에 꼬투리를 잡히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옳은 말이네. 하지만 타초경사(打草驚蛇)의 우가 되지 않을까 염려되는군.”
“…….”
빌어먹는 거지 주제에 어려운 말 골라 쓰기는.
“오히려 그 점을 노려야 합니다. 종남의 세작들이 잡히고 감찰이 시작되면 놈들이 놀라서 뱀처럼 대가리를 드러낼 것입니다.”
“흐음, 일부러 불러낸다?”
“예. 그런 것이지요.”
“그렇군. 좋은 생각일세.”
“그리고 소문이 돌기 시작할 때 은밀히 각 파의 수장들에게 서신을 띄우십시오. 세작들이 가진 팔오금의 문양에 대해서요. 그럼 알아서들 움직일 터입니다.”
“과연! 뛰어난 차도살인지계로군.”
그래. 내가 원래 그쪽으로 매우 정통한 사람이다.
진무가 고개를 끄덕여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대신에 감찰단은 무조건 구성되어야 합니다. 저들이 믿게끔 해야 하니까요.”
“하면 일부러 널리 알려야겠군.”
이제야 알아듣는다.
당연히 그래야지.
전장의 북소리는 크면 클수록 적에게 심어 주는 두려움이 증폭되는 법이니까.
“그리고 감찰단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을 정도의 고수여야 합니다.”
“그렇지. 어차피 보여 줄 실체라면 강한 무인을 보여 줄수록 더욱 좋겠지.”
“예.”
진무가 세운 계획에 양소방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다 감탄한다.
언제 이런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단 말인가?
갈수록 놀라울 뿐이었다.
“자넨 참 대단하군. 무공이면 무공, 인성이면 인성, 이제는 계략까지 꾸밀 줄 알다니. 누가 보면 도사가 아니라 무림맹의 군사라고 해도 믿겠네. 마치 맹주님과 대군사를 합쳐 놓은 것 같아. 허허.”
이제 아는구나?
철지량? 제갈협진?
그깟 자식들이 어찌 이 몸하고 비교가 되겠느냐.
양소방의 칭찬에 진무가 피식 웃었다.
그가 모르는 것이 있다.
바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것.
만약 그 자리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앉으면 능력은 더욱 증폭되는 법이다.
진무는 사패천이라는 거대한 단체를 이끌었던 일패의 주인이었다.
언제나 숙적은 물론 예하 조직의 배신까지 감시해야만 했다.
충성을 바치는 수하들이라 할지라도 항상 의심해야만 했고, 충성하게끔 하기 위해 잔인한 행동도 서슴지 말아야 했다.
그에 반해 양소방은 고작해야 남의 뒤나 쫓으며 평생을 살았다.
비슷한 나이라 해도 겪어 본 것이 다르니 생각하는 것도 다르다.
진무는 양소방이 생각하는 것처럼 계략에 뛰어난 인물이 아니라 오랜 경험이 쌓여 자연스럽게 능숙해진 쪽이었다.
물론, 양소방은 죽었다 깨나도 모를 테지만.
* * *
다음 날, 양소방이 회담을 목적으로 불러온 장문인과 장로들에게는 다행히 푸른 문양이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진무의 계획을 들은 종남의 장로들이 일제히 반발했다.
세작 운운했으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누가 의심받고 싶겠는가?
하지만 직접 하지 않으면 양소방이 당장에 개방을 끌고 와서 조사를 하겠다 으름장을 놓으니 종남파의 수뇌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장문인과 장로들에게서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으니 남은 것은 제자들이었다.
은밀한 회동이 끝나고, 산하에 나간 무인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종남이 보유한 전서구가 한꺼번에 날아올랐다.
며칠 후, 복귀 명령을 받은 종남의 무인들이 모두 돌아왔을 때.
수뇌부만이 알고 있었던 은밀한 계획이 단숨에 시작되었다.
장문인의 명령으로 종남파의 직계 무인 수백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대연무장을 빼곡하게 채웠다.
“제자들은 모두 팔을 걷어 올리거라!”
유진산의 외침에 제자들은 의아해하면서도 명을 따랐다.
남녀가 함께 있으니 옷을 통째로 벗길 수는 없는 일이고, 어차피 문양은 팔오금에 있었으니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세작 놈이 눈치를 챈다고 해도 절대로 도망칠 수 없다.
종남의 직계 제자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모인 자리였다.
섣부르게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는 놈이 생기면 그길로 황천행이다.
제 놈들이 아무리 많다 해도 종남파의 제자보다는 많지 않을 것이고,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지금 종남에 있는 이들을 모두 상대할 수는 없을 터였다.
“세세하게 확인하셔야 합니다, 장문인.”
“알겠네.”
거듭 부탁을 하는 진무의 말에 유진산이 언짢음이 역력한 투로 퉁명스럽게 말했고, 장로들이 뒤를 따른다.
일부러 직접 조사하지 않고 그들에게 맡겼다.
자정의 기회를 줌으로써 최소한의 자존심을 세워 준 것이다.
그사이 진무는 줄지어 선 종남의 제자들의 표정에 생겨나는 변화를 면밀하게 살폈다.
밑도 끝도 없이 조사가 시작되었으니 분명 초조함을 느끼는 놈이 있을 터였다.
의심스러운 놈은 무조건 기억해 두어야 했다.
당장에 소란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잘 기억해 두었다가 확인이 모두 끝나면 움직여야 했다.
장문인과 장로들이 직접 수백이나 되는 제자들을 일일이 살피고 있었기에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진무는 그 뒤에서 몇 번이고 표정을 살피는 일을 반복했다.
“진무 도장!”
확인이 모두 끝났을 때, 장문인과 장로들이 잔뜩 독이 오른 표정으로 진무와 양소방에게 다가왔다.
“어찌 된 일인가! 자네가 말한 문양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네!”
“…….”
양소방에게는 차마 그럴 수 없었던지 대신 진무에게 따지고 드는 유진산.
그러나 진무도 지금의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
세작은 반드시 있어야만 했다.
오경이 거짓을 말했다면 고독이 발작해서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정사의 무공을 모두 가진 종남이다. 세작이 숨어 있기에 최적의 환경이 아닌가?
없을 수는 없다. 무조건 있어야만 했다.
뭐지? 뭘 놓친 거지?
“뭐라 말을 해 보게! 자네의 말대로 했거늘!”
이미 세작 운운에 자존심이 상한 유진산의 말이 무척이나 날카롭다.
양소방도 낯빛이 좋지 않았다.
진무의 말만 믿고 종남의 자존심을 무시한 채 시행했으니,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었다.
“진무 도장!”
유진산의 고함에도 진무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이 사람이 지금!”
아, 시끄럽다. 좀 닥쳐 봐라. 생각 좀 하자.
무엇을 놓쳤지?
종남의 무인들은 전부 모였다.
세작질을 하자면 반드시 종남에 있는 사람…… 어? 설마?
가늘어져 있던 진무의 눈이 부릅떠진다.
무인뿐이 아니다.
당연하다. 제자들이 모든 허드렛일을 다 할 수는 없으니까.
젠장, 그걸 간과하고 있었다니.
“진무…….”
“장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