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18
218화
다급해진 진무가 유진산의 말을 끊어 버리고 외쳤다.
“뭔가?”
돌아오는 말투가 곱지 않다.
이걸 확 그냥?
하지만 일단은 다른 것이 더 중요하다.
“장문인! 제자들 외에 종남의 일을 돕는 이들이 몇입니까?”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잔뜩 독이 오른 말투와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일을 봐주는 이들 말입니다. 숙수에 나무꾼도 있을 것이고!”
“이 사람이 지금! 또 무슨 소리를 하려…….”
“장문인!”
진무가 매섭게 노려보며 안광을 토하자 유진산이 뒷말을 맺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진무의 눈동자에 이글거리는 흉포함.
어째서였을까?
순간적으로 유진산은 온몸이 경직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몇 명이냐니까요!”
“그, 그게…… 한 오십여 명.”
“당장 불러 주십시오.”
“…….”
“당장!”
살기마저 서린 듯한 진무의 고성에 장문인이 굳은 표정으로 장로들에게 명을 내렸고.
얼마 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연무장으로 불려 왔다.
그런데 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진무가 유일하게 아는 사람, 대숙수 목춘. 그가 보이질 않는다.
“목춘이라는 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진무의 물음에 숙수를 보조하는 아낙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아까, 무풍개 어르신을 대접할 식재료가 모자란다면서 몇몇을 데리고 아랫마을로 내려갔습니다.”
“내려갔다구요?”
“예.”
“언제쯤입니까?”
“반 시진쯤 되었습니다.”
“…….”
보양식.
듣기로 장문인이 양소방을 위해 매일 보양식을 준비하라고 채근했다 하니 적절한 이유였을 터다.
젠장, 그걸 놓칠 줄이야.
종남의 제자가 아니라 허드렛일이나 하는 신분이라면 누구의 관심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장문인! 없는 이들이 누군지 조사해 주십시오.”
빠르게 말을 뱉은 진무는 곧장 양소방을 쳐다보았다. 이미 그 역시 눈치를 챈 것인지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을 의심하는 건가?”
“추측입니다. 하지만 틀리지 않았다 생각합니다.”
“음.”
“주변에 천라지망이 펼쳐져 있다 했지요?”
“……그렇네.”
종남에게 알리지 않은 사실이었기에 양소방이 슬쩍 눈치를 살핀다.
지금 그게 중요하냐?
기껏 머리 짜내서 계략을 세웠는데! 그걸 모조리 날리게 생겼는데?
만약 놈들이 빠져나가서 다른 곳에 숨어 있는 동료에게 지금의 상황을 알린다면 다시는 세작의 꼬리를 잡을 수 없게 될지도 몰랐다.
“천라지망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립니까! 어찌 한마디 양해도 없이!”
옆에 있던 유진산이 화를 내며 끼어들었지만, 가볍게 무시해 버린 진무가 양소방을 향해 외치듯이 말했다.
“서둘러 뒤쫓아야 합니다. 제 생각이 맞다면 함께 간 놈들 모두가 세작일 것입니다!”
“음, 알겠네.”
양소방 역시 사태의 중함을 알기에 종남에서 추격대를 편성해 주기를 바라며 유진산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보게 장문인. 속히…….”
“어르신!”
“…….”
유진산과 장로들의 표정은 분노에 차 있었다.
“어찌하여 본파에 알리지도 않고 종남산에 천라지망을 펼쳤단 말입니까?”
이 자식이,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뭔 딴소리야?
“진산, 내 나중에 설명하겠네. 일단은 세작을 먼저…….”
양소방의 말에 유진산이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어르신, 평소 어르신을 존경해 온 마음은 변함이 없으나 지금은 해명을 하셔야 합니다. 어르신과 무당지검은 종남파 전체를 무시하신 겁니다. 천라지망이라니요. 이것은 종남을 적도(敵徒)로 본 것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저, 적도라니. 진산, 그게 아닐세 그건 그저…….”
양소방의 표정에 당황함이 역력했다.
하여간 정파라는 놈들.
명분이며 자존심이며 더럽게 내세운다.
당장에 적을 잡아야 하는 상황에서 저딴 것이나 따지고 있다니.
진무는 그까짓 것이 무에 문제가 될까 생각했다.
가진 무공이나 무림에서의 지위라면 양소방의 말에 모두가 따를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대놓고 반발을 해 온다.
하지만 진무가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
종남파의 정체성.
정사의 무인들을 골고루 받아들임으로써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으나,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이 도리어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자존심 강한 정파인들이 어찌 방문좌도로 평가되는 사도의 무공을 순순히 인정하겠는가?
작금의 정파 세력 내에서 종남은 구파이되, 정체성이 모호하게 되어 버린 반쪽짜리 구파였다.
그들이 가진 정신이 아닌, 문파의 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구파로 인정된 것이다.
종남의 수뇌들이라고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또한, 그렇기에 더욱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그들로서는 세간의 편견으로 인해 종남에 세작이 숨어 있다 의심받고, 나아가 적도로 오인받는 것이라 여길 수밖에 없었다.
“본 장문인은 이 문제를 정식으로 정무맹에 제기할 것입니다. 무풍개 어르신과 무당지검은 당장 본파를 떠나 주십시오. 그리고 지금 즉시 천라지망의 해제를 요청합니다.”
유진산의 싸늘한 목소리.
모두가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장로들이며 제자들이며.
그리고 표정을 굳힌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양소방.
“킥.”
“……?”
갑자기 진무가 웃음을 터트리자 눈매가 날카롭게 변한 유진산이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보았다.
“뭔가!”
뭐긴, 이 새끼야. 니들 하는 짓이 웃겨서 웃었지.
망할 명분과 자존심.
그딴 거 지키다가 세작 놈들 다 놓치겠다. 기껏 계획까지 세우고 도와줄 생각까지 했는데.
사실 세작 따위 잡아도 그만 안 잡아도 그만이다. 양소방에게 도와주겠다고 약속만 안 했으면.
그래, 이게 마지막이다.
도사의 거죽을 쓰고 정파 짓거리를 하는 건 이제 넌덜머리가 난다.
다시는 돕지 않을 것이다.
무당의 일만 아니라면.
“장문인.”
“…….”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세작을 놓치게 될 겁니다.”
“그건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네. 애초에 그들이 세작인지 아닌지 확실하지도 않은 일 아닌가!”
“…….”
상관이 없어? 궁이라는 놈들이 사방팔방에서 날뛰고 있다는데? 제 놈들 눈앞에서 약을 올리듯 신분을 감추고 있다가 튀었는데?
“재미있는 말이네요.”
“뭣이?”
“종남에 세작이 있었습니다. 알지요?”
“확실치 않은 일이네.”
“아니, 확실합니다.”
“자네 무엇을 근거로 그따위 말을!”
내가 그렇게 확신하고 있으니까.
오경이라는 놈은 종남파를 언급하며 고독이 발작해서 죽었다. 만약 종남에 세작이 없었다면 그가 죽는 일도 없었겠지.
하지만 지금 종남의 상태를 보면 설명을 해도 믿지 않을 것이 뻔했다. 시간도 없고.
“무당지검은 물러나게. 이것은 정무맹과 종남의 일이네.”
장로인 고두산이라는 놈이 끼어든다.
다른 놈들 얼굴을 보니 죄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멍청한 새끼들. 이런 놈들이 구파의 한 축을 담당하는 종남의 장로랍시고 고개 빳빳이 세우고 다닌다는 거지.
이런 놈들을 과거에 적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너무도 우습게 느껴졌다.
뭐, 차라리 잘되었다.
오히려 정무맹이 어떤 상태인지 너무도 잘 알게 되었으니까.
이렇게 된 김에 자존심 빡빡 세워 가며 병신 짓거리 해 대는 꼴 비웃기나 하며 물러날까도 싶지만…….
진무의 못돼 먹은 성격이 가만히 있게 두질 않는다.
어떡하냐, 더럽게 짜증 나는데.
“내 참, 그냥 두고 볼랬더니 참 가관이시네.”
“뭐라? 자네 지금?”
뭐라? 뭣이? 무슨?
니들은 할 말이 그것밖에 없지, 아주.
나였으면 벌써 아가리부터 찢었을 텐데 말이야.
“말을 가려 하게! 근래에 위명을 얻었다 하여 모든 언행이 용서되는 것은 아닐세!”
짝다리까지 짚고 서서 짙은 비웃음을 흘리는 진무의 모습에 장로 고대수가 눈을 크게 뜨고 진무를 향해 삿대질을 해 왔다.
하아, 이제 한 쉰쯤 된 어린놈의 새끼가 분위기 파악 못 하고.
손가락을 마디별로 한 수백 조각을 내 버릴까 보다.
“사과? 무슨 사과?”
일순간 진무의 입가에 지어진 비웃음이 싸늘함으로 바뀐다.
“뭣이? 이놈이 감히! 어찌 이리 방종한가!”
고대수가 참지 못하고 쌍심지를 세워 진무를 향해 손을 뻗어 오는데.
쿠우우우.
갑자기 뿜어져 나온 무시무시한 기운이 사방을 잠식해 나갔다.
“큭……!”
강의 무인, 그것도 정무칠성에 비견되는 진무의 살인적인 기운을 고대수 따위가 버틸 리가 없었다.
짧은 신음성과 함께 기운에 짓눌려 무릎을 꿇어 버린 고대수.
“뭐야? 뭔가 하려던 거 아니야? 계속해 보지 그래?”
고대수를 내려다보는 진무의 모습에 장문인과 장로들이 일제히 자신의 무구를 잡았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진무.
“니들…… 그거 뽑으면 죽는다.”
“…….”
차가운 한마디.
진무의 눈동자를 휘돌며 번져 나온 진한 살기가 끈적하게 주위를 채운다.
지금의 진무의 기운은 도사가 아닌 사황 혁련무강 시절의 그것처럼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한기를 머금고 있었다.
“이봐, 종남 장문인.”
“……!”
일문의 존장을 무시해 버린 반말이었으나 그 누구도 나서질 못했다.
움직이는 순간 온몸이 난자될 것만 같았다.
진무는 자신의 기운으로 일대의 공간을 모조리 지배하며 압살하듯이 짓누르고 있었다.
그 간격 속에 들어와 있는 유진산이나 장로들은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고, 고대수처럼 무릎을 꿇지 않기 위해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다.
“지, 진무 도장.”
일부러 기운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배려한 양소방이 말리려 했지만 들을 생각 따윈 없었던 진무는 유진산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갔다.
“지금 당신네들 문파의 자존심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야.”
“그, 그 무슨.”
유진산이 가까스로 기운을 끌어 올리며 항변했다.
“궁이라는 놈들이 정무맹, 아니 무림을 뒤집어 놓으려고 하고 있어. 그놈들이 심어 놓은 세작 중 몇이 당신네 문파에 숨어 있었단 말이야.”
“…….”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 세작이 당신네들의 정보를 모조리 빼 간 거야. 더욱이 정무맹과 주고받은 은밀한 정보까지 말이야.”
“그, 그건 우리의 잘못이…….”
“닥쳐.”
진무의 눈빛을 마주한 유진산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잘못이 없다고? 그래, 세작이 잠입했다는 것을 모를 수도 있어. 당신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지.”
“…….”
“근데 지금 당신이 세작을 잡으려는 우리를 자존심이나 명분 따위를 운운하며 막고 있어. 그 때문에 놈을 놓치게 되어서 궁의 무리를 뿌리 뽑지 못하게 되면?”
“…….”
“그로 인해서 어떤 누군가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건 누구 책임인 거지?”
“그건 비약이 너무…….”
“비약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일파의 수장이라는 자리는 말이야. 막강한 권한을 가지는 동시에 반드시 져야 할 책임이라는 것이 있어.”
“…….”
“당신이 대접받으며 거들먹거리게 해 주는 대신에 당신의 판단으로 생긴 모든 잘못에 대한 책임도 감수해야 하는 거야. 알겠어?”
“…….”
“그러니까 제발 병신 같은 소리 좀 집어치워. 해명? 지랄들 하고 있네. 당신에게 도우라는 말은 하지 않겠어. 대신에 걸리적거리지는 마.”
폭언에 가까운 언사.
화가 잔뜩 치민 진무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네, 네놈…… 지금 이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그렇게 설명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대가리에 똥만 찬 놈들 같으니.
퍼석! 까드득!
진무의 기운이 바뀌었다.
유형화된 살기가 사방을 헤쳐 놓기 시작했다.
바닥이 부서지고 장로들의 옷자락이 살갗과 함께 베일 정도였다.
“어떤 결과? 닥치고 그들이 잡히기나 기원하고 있어라. 만약에 그놈들을 놓치기라도 하는 날에는…….”
니들 죄다 죽여 버릴 테니까.
“크으으…….”
진무의 기세가 대기 자체를 짜부라뜨릴 것처럼 강해지고,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은 장로들의 입가에 붉은 선이 그려졌다.
진무의 거대한 기운을 이기지 못해 내상을 입고 있는 것이다.
“이, 이보게. 그만하게. 종남과 척을 질 생각인가?”
더 이상 두고만 볼 수 없었던 양소방이 진무를 말린다.
척을 져?
애초에 진무에게 있어 정파는 적이었다. 어차피 나중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조리 부숴 버릴 참인데 시기가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종남 따위? 우습지도 않다.
“어서 기운을 풀게.”
“…….”
“진무 도장.”
“…….”
재차 애원하는 양소방의 모습을 잠시간 응시하던 진무가 가볍게 한숨을 내쉼과 동시에 사방을 짓누르던 기세가 씻은 듯 사라졌다.
그래, 상대하지 말자.
병신들 병신 짓에 더 장단 맞춰 봐야 혈압만 오르지.
일단은 세작을 잡는 데만 집중한다.
“어르신, 종남의 도움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제가 놈들을 뒤쫓을 테니 어르신께서는 이곳에서 쉬고 계십시오.”
“……알겠네.”
“그럼 나중에 다시 뵙지요.”
진무는 양소방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세작으로 의심되는 목춘을 쫓기 위해 종남을 빠져나간 뒤, 누구도 입을 떼지 못했다.
‘어찌하여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인 것인가? 저리 막 나가는 성격은 아니었던 것 같았거늘…… 설마 사기의 영향은 아니겠지?’
그저 양소방만이 무거운 마음이 투영된 눈빛으로 진무가 사라진 방향을 뒤쫓고 있었다.
* * *
파라락!
옷자락이 달리는 속도를 이기지 못해 찢어질 듯 펄럭이고, 주위의 경물들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스쳐 간다.
종남을 떠난 진무.
그는 지금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종남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반 시진.
무척이나 긴 시간이다.
만약 놈들이 종남의 시선을 벗어나자마자 경공을 썼다면 이미 늦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종남의 무인들이 그러했듯 놈들도 종남산 주변에 천라지망이 펼쳐져 있다는 사실은 몰랐을 테니까.
일단은 천라지망을 믿어 볼 수밖에.
종남산이 시작되는 지점.
쿵! 타다닥!
앞을 막은 아름드리나무를 밟은 진무는 단숨에 끝자락까지 질주했다.
파앙!
꼭대기를 밟고 높이 솟구친 진무는 먹이를 찾는 새처럼 산하를 주의 깊게 살폈다.
벌집처럼 논두렁을 경계로 펼쳐진 논과 밭, 그 사이로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 소로.
그리고 은밀하게 진형을 이루고 주위를 경계하고 있는 이들.
찾았다. 천라지망을 이루고 있는 정무맹의 무인들이다.
그리고 익숙한 얼굴 하나가 시선에 걸렸다.
다행이다. 아는 놈이 있어서.
극점에서 낙하를 시작한 진무는 밟고 솟구쳤던 나무의 끝점을 차 냄과 동시에 섬전처럼 목표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