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46
246화
“자네 그거 들었는가?”
“응? 뭘?”
“어떤 인물이 온암산의 산채를 털어 갔다는구만.”
“만산채를?”
“암만. 어저께 소화산 인근에 갔다가 직접 들었다네.”
“그게 무슨 소린가?”
거대한 관도의 중심에 좌판을 서로의 옆에 깔고 장사를 하던 양지와 장천이 근래 시끌시끌하게 들려오는 소문에 대해서 속삭이듯이 말하고 있었다.
만산채는 온암산 인근에 사는 사람들에는 무척이나 악명 높은 곳이었다.
소화산 북쪽, 낙천현과 양지와 장천이 사는 부현의 길목에 위치한 산.
놈들은 그곳에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다.
문제는 돌아서 갈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바로 통하는 길은 딱 하나밖에 없는 데다, 우회하게 되면 시간과 돈이 몇 배 이상 소요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상단과 표국이 울며 겨자를 먹는 심정으로 통행세를 가져다 바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그로 인해 북쪽으로 가는 표물 운송비와 상단의 물품 가격이 몇 배는 비싸졌고, 그 피해는 물건을 사고파는 상인들이 온전히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에겐 정말로 잘된 일이구먼, 물건값이 좀 내리겠어. 화산의 제자들이 제대로 한 건 한 모양이지?”
“엥? 뭔 놈의 화산? 자네 정말 아무것도 듣지 못했구먼?”
“응? 왜?”
“화산이 아니라네.”
“……?”
“스스로 산적이라고 했다던데?”
“산적?”
“그래.”
양지의 말에 장천이 물끄러미 바라보다 코웃음을 친다.
“이 사람, 별 시답잖은 소리를 하고 있구먼.”
“응?”
“이 사람아 내 살다 살다 산적이 산적을 털어 간다는 소린 첨 듣네.”
“……그건 그런데 소문이.”
“화산의 제자가 아니면 그는 필시 의적(義賊)일 게 분명하네.”
“의적?”
“그래. 자고로 정말로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들은 옳은 일을 하고도 자랑하지 않는 법이지. 생각을 해 봐, 도사 놈들이고 관아의 놈들이고 죄다 뭘 했다 하면 자랑질을 하기 바쁘지 않던가? 산적을 토벌했네, 뭐네 하면서 제 위명 높이기에나 바쁘지.”
“그런가?”
“암만. 만산채를 혼내 준 것은 분명 진짜 의적인 게야.”
“음……. 하지만 분명히 그 도움을 받은 사람들 말로는 나중에 통행세도 받았다고 하던데.”
“예끼. 헛소문일세, 헛소문. 필시 배 아픈 놈들이 소문에 덧붙여 지어낸 말일 게야.”
“그런가?”
“암만. 뭐, 그렇다곤 해도 만산채가 없어진 자리에 다른 놈들이 자리를 차지할 게 뻔하지만 속은 시원하구먼, 그런 의적이 있다는 소리를 들으니. 가세, 이 좋은 소식을 듣고 가만있을 수는 없지.”
“응? 어딜?”
“어디긴? 내 한잔 사겠네. 이런 날 술 한잔해야 하지 않겠는가?”
“벌써? 아직 해가 중천인데?”
“술 마시는데 뭔 시간이 중요해? 안 오면 혼자 갈 걸세.”
장천이 기분 좋게 좌판을 걷고 앞서자 양지가 급히 그 뒤를 따른다.
“같이 가, 이 사람아! 기다리라니까!”
공짜 술인데 어찌 마다할까?
양지와 장천이 기분 좋게 찾은 이가객점이라는 곳은 부현에서도 그다지 크지 않은 곳이었다.
부현이 그리 작은 도시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곳 말고도 좋은 객점이 열 곳도 넘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하면 부현 사람들은 단연 이가객점을 꼽았다.
딱히 음식이 맛있거나 유명한 술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술도가를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술값이 무척이나 싸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렇기에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상인들이나 싼 맛에 배를 채우려는 이들로 연일 붐비는 곳이다.
그리고 오늘은 평소보다 훨씬 사람이 많았다.
시끌시끌한 이야기 대부분이 만산채에 대한 내용인 것을 보면 모두가 양지나 장천과 같은 마음으로 낮술을 마시러 온 듯했다.
“자! 다들 들어 보시오! 내 오늘 기가 차게 좋은 소문을 들었다, 이 말이오!”
언제나 그렇듯, 소문이 이는 곳에는 항상 나타나는 이들이 있다.
바로 매화자.
다들 아는 소문이지만 그들의 입을 통하면 길거리를 걷다 동전을 주운 일도 구전 설화로 각색되고, 산속에서 풀뿌리 캔 일도 천고에 다시없는 영초를 발견한 것으로 묘사된다.
그 대부분이 과장인 것을 알지만, 그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이야기가 각박한 세상에 즐거움을 줌을 알기에 되레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술을 사는 것이다.
양지와 장천이 탁자를 잡고 앉았을 때는 이미 만산채를 털어 간 인물은 천고에 다시없는 의적에 영웅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객점의 한쪽 구석.
휙휙.
황신이 즐거워하면서 밥은 안 처먹고 진무를 향해 해맑게 손가락질을 해 댄다.
그래,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 안다.
아무리 그래도 새파랗게 어린 놈이 삿대질을 밥 먹듯이 하다니.
됐으니까 그냥 말하라고 하고 싶었지만, 삼도평을 떠나올 때 청상이 절대로 말을 시키지 말라며 몇 번이고 간곡하게 당부했기에 일단은 지키는 중이었다.
“황신.”
“……?”
“저 노인네가 우리가 기다리는 하오문도냐?”
진무가 탁자 위에 올라가 열심히 입을 놀리고 있는 매화자 노인을 가리키자 황신이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구나. 어쩐지 소문이 순식간에 퍼진다 했다. 저거 대부분 거짓말인데.
그나저나 매화자의 얼굴이 익숙하다.
저 노인네, 아직도 살아 있었나. 명줄이 길기도 하네.
생각은 그렇게 해도 반가웠음인지 진무가 피식 웃으며 매화자를 일별하고는, 황신이 미리 잡아 둔 객점의 별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묵룡혼원공을 수련하는 진무의 옆에 서 있던 황신이 귀를 쫑긋하며 문 쪽을 매섭게 노려보더니, 이내 손에 잡은 비수를 감추고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온 자는 조금 전까지 밖에서 소문을 부풀리고 있던 매화자 노인이었다.
황신은 이미 그의 신분을 아는 것인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을 제 입에 가져다 대었다.
“허허, 나도 보인다 이 녀석아. 걱정 마라. 수련 끝나실 때까지 쥐 죽은 듯이 있으마.”
매화자 노인은 진무의 수련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군말 없이 한쪽에 서서 대기했다.
“후우…….”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방 안을 가득 채우던 사기를 호흡을 통해 몸 안으로 빨아들인 진무가 눈을 뜨자 매화자가 급히 앞으로 다가와 엎드렸다.
“하오문의 야묘, 이가(李家)가 천주님을 뵙습니다.”
안다. 처음부터 알아보았다.
명세찬의 스승 격이며 자신 또한 오랫동안 만나 온 그를 어찌 모르겠는가?
하지만, 굳이 아는 척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 자신은 묵룡의 전인이니까.
“앉아.”
진무가 탁자로 자리를 옮겨 권하자 이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제가 어찌 감히…….”
“시끄럽고, 앉아. 노인네 꿇어 앉혀 놓고 나만 앉아 있으면 괜히 이상하니까.”
따지고 보면 진무가 한참 어른이었지만, 이젠 젊은 몸에 하도 익숙해져서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말에 이 노인이 빙긋이 웃는다.
새로운 묵룡.
말만 들었지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전대 천주였던 혁련무강도 그러했다. 무섭긴 했지만 격식을 따지지 않았다.
가장 윗자리에 앉아 있고 가장 강한 인물이었으나, 사패천에서 가장 어린 하급 무인들과도 마주 앉아 술을 마시며 웃고 떠들어 대던 사내.
묵룡의 전인이라더니 성격마저 비슷한 것인가?
이 노인이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 진무와 마주 앉자 황신이 급히 두 사람의 찻잔을 채웠다.
“뼈마디도 시원치 않을 것인데 뭐 하러 직접 왔어?”
진무의 퉁명스러운 어조에도 이 노인은 조금도 언짢아하지 않고 싱긋 웃었다.
“천주님께 어찌 아랫것들을 보내 보고를 드리겠습니까? 그리고 아직 쌩쌩하니 걱정 마십시오.”
“그럼 다행이고. 알아보란 건?”
“아직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했습니다.”
“…….”
이 노인의 말에 진무가 눈살을 찌푸린다.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하오문 북쪽의 지부 다섯 곳이 총력을 다하고 있으니 곧 찾아낼 것입니다.”
진무가 고개를 끄덕인다.
“살막주 녀석. 마음이 많이 상했던 모양이군.”
진무의 명에 의해 하오문이 찾고 있는 살막.
원래 그들의 거처는 섬서 북쪽, 대막으로 가는 경계에 있는 무량협(無量峽)이었으나, 유월청과의 마찰 이후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그들이 마음먹고 숨어 버리면 중원에서 살막의 종적을 찾을 수 있는 자는 전무(全無)하다.
중원 살수들의 조종(祖宗)을 칭하는 그들이니 어련하겠는가?
그나마 하오문이 오랫동안 그들과 연락 체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북쪽에서 미세한 흔적이라도 찾을 수 있는 것이리라.
명세찬이 진무를 만난 이후로 몇 번이나 연락을 보냈지만,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고 들었다.
“뭐, 기다리는 수밖에 방법이 없겠군. 총사 쪽은?”
“정무맹과의 협상이 끝났습니다. 그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한 사패천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겠다 하였습니다.”
“다행이군. 한동안 사패천 쪽으로만 집중하라고 해. 당분간 정무맹과의 마찰은 삼가도록 하고.”
“예.”
이 노인이 진무의 명령을 곧바로 받아 적으며 대답했다.
사패천 쪽은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무력이라면 원공후와 천우명이 잘 알아서 할 것이고 명세찬의 정보력까지 더해졌으니 적생이 한결 수월할 것이다.
이제 살막을 찾고 유월청에게 좌천된 장로들만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으면 되는데.
할 일 없이 기다리자니 너무 무료할 듯했다.
“이곳 부현 쪽은 어때? 흑사방이나 야금당의 세력은 없어?”
“당연히 있습니다.”
“그래?”
이 노인의 대답에 진무가 피식 웃었다.
하오문에서 살막주의 행방을 찾는 동안 시간 때울 거리로 삼으면 될 것 같았다.
“어떤 놈들이야?”
“야금당 예하의 도박장과 야시장, 흑사방의 고리패 한 곳이 있습니다.”
“젠장, 전부 잔챙이들이네.”
진무의 투덜거림에 이 노인이 빙긋이 웃는다.
당연히 그래야지. 앞으로 사패천을 손에 넣고 호령할 사람이라면 그 정도 자신감은 있어야 한다.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패천의 본성과 가까운 섬서인지라 제법 이름이 알려진 자들도 많습니다.”
“그래?”
“예. 더욱이 이쪽의 인물들이 사패천 본성에 가장 많은 자금을 대고 있는 산서상회와도 교류하는 것 같고요.”
“산서상회?”
살짝 흥미가 돋았다.
명세찬에게 듣기로 하오문에서도 쉽게 정보 파악이 어려운 곳이라니 뭔가 숨겨 놓은 게 많은 듯했다.
그리고 현 사패천 본성에 가장 많은 자금을 대고 있다고 했던가?
“시간 때우기 충분하다는 말처럼 들리는군.”
“제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이 노인의 말에 진무가 피식 웃었다.
“좋아. 모처럼 도박장 구경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도록 하지.”
“그럼 천주님께서 마음껏 활동하실 수 있는 위장 신분과 자금을 비롯해 몇 가지를 준비해 오도록 하겠습니다.”
“뭐, 알아서 해.”
* * *
밤을 맞이한 부현 외곽.
진무는 이 노인이 준비해 온 위장 신분으로 변장을 하고 야금당 예하의 도박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인피면구를 쓰고 비단옷에 황신에 호위 무인 넷을 대동하니 누가 봐도 상가의 자제 같아 보였다.
부현의 거리는 사파 영역권에 속한 곳답게 무척이나 자유분방했다.
곳곳에 칼을 찬 무림인들이 흉흉한 기세를 내뿜으며 돌아다니는데도 이상하게 여기기는커녕 수많은 호객꾼이 그들을 모시려 흥정을 하고 있었다.
와장창!
객점의 벽이 부서지고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칼을 뽑아 드는데도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는다.
길을 지나는 관인들도 민간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 관여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파의 영역. 참으로 익숙한 광경은 맞는데…….
도사로 살았던 짧은 기억 때문일까? 영 적응이 되지 않는다.
“휴우…… 이거 참.”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도박장이 있다는 뒷골목에 도착했다.
“뉘슈?”
진무 일행이 도박장 입구로 들어서자 으슥한 어둠 속에서 소매 안에 칼을 품은 이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