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48
248화
화가 났다.
당장에 사패천과 전면전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
지금의 분노를 풀기 위해서는 눈앞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했다.
그들이 도박장을 운영한 것과는 관계가 없다.
비정한 부정을 만들어 놓았고, 진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 그의 눈앞에서 자행되었다.
자신과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부현 땅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그곳에 뿌리를 내린 야금당의 모든 것들을 지워 버리고 싶었다.
저벅, 저벅, 저벅.
천천히 걸어간 진무는 굳게 닫힌 도박장의 뒷문께에 다다랐다.
그가 지나온 자리에 새겨진 발자국이 지금 그가 느끼고 있는 분노만큼이나 깊게 새겨져 있었다.
턱.
가볍게 올린 손이 문짝에 얹히고는, 이내 짓누른다.
쩌어억!
딱히 기운을 싣지 않았음에도 손이 닿은 곳을 중심으로 거미줄 같은 균열이 만들어졌다.
우두둑.
균열은 붕괴를 만들고, 문짝을 이루었던 나뭇조각이 우수수 떨어져 내린다.
진무는 밤새 도박꾼들이 피워 대었던 연초의 연기가 훅 뿜어져 나오는 안쪽을 향해 발을 들이밀었다.
“웬 놈……”
퍼억!
말을 다 맺지 못한 무인의 머리가 산산조각으로 터져 나가며 바닥을 피와 잔해로 시뻘겋게 물들였다.
어둠보다 더욱 칙칙한 빛을 띠고 있는 진무의 눈동자가 내부를 천천히 훑었다.
어둠 속의 그림자 몇이 빛을 등지고 선 진무를 발견하고 득달같이 달려든다.
“숨 쉴 가치도 없는…….”
진무의 입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중얼거리듯 흘러나오는 것과 동시에 제일 먼저 다가온 놈의 칼이 곧게 날아들고, 반보를 움직여 그를 슬쩍 피해 버린 진무가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퍼석.
수박이 눌려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머리의 윗동이 날아가 버린 몸뚱이가 털썩 쓰러졌다.
진무는 일말의 감정조차 실리지 않은 눈빛으로 그것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초식?
개보다 못한 종자들에게 그따위 건 사치다.
퍼억!
가볍게 후려친 주먹에 몸의 어딘가가 부서져 쓰러진 무인이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
귓가를 날카롭게 울린 소리에 진무의 얼굴이 살짝 찡그려졌다.
“시끄러워.”
콰직!
살짝 들린 발이 쓰러진 무인의 얼굴을 짓밟아 으깬다.
강제로 머리를 밟아 터트리는 그 광경은 실로 잔인했지만, 진무의 눈동자는 다만 담담하게 주변을 훑을 뿐이었다.
당장이라도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부수고자 날뛰는 기세도, 공간을 가득 채울 만큼의 난폭한 살기도 없었다.
섬뜩하리만치 차분하고 고요하기만 한 진무의 기세에 도박장 내부에 일순간의 정적이 찾아오고, 연기가 옅어져 가는 어둠 속에서 진무의 눈동자가 새파란 빛으로 번들거린다.
지이익, 지이익.
“…….”
고요를 정통으로 꿰뚫어 놓은 것은 진무의 발소리였다.
뇌수와 피가 질펀한 나무 바닥을 비비적거리는 소리가 모두의 등줄기에 소름을 돋게 한다.
“하나씩, 하나씩. 죽여 줄게. 니들이 죄책감 없이 다루었던 아이들의 고통을 느낄 수 있게.”
낮게 뇌까린 그의 음성에 소스라치게 놀란 도박장의 무인들이 핼쑥해진 표정으로 덜덜거리며 떨기 시작했다.
그들의 상대가 아니다.
살육에 대한 허기로 눈이 돌아가 버린 범을 어찌 양 떼에 비교할 수 있을까?
습격자가 누구인지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는 자신들을 죽이러 온 잔혹한 사신이었다.
지금 도망치지 않으면 죽는다.
무인들은 곧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칼을 버리고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도박장 바깥을 향해 몸을 날렸다.
“……죽음 외에는 아무것도 허락한 적 없다.”
높낮이조차 없는 목소리에는 한 가닥의 감정조차 실려 있지 않았다.
이내 가볍게 뻗은 진무의 손안에 검은 기운이 회오리치듯이 몰려들었다가, 동시에 수백의 가닥으로 나누어져 자리를 잡는다.
파파파파!
내뻗은 손을 따라 사방으로 무언가 날아갔지만, 그 색이 어둠과 닮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에 모든 움직임이 멈췄다.
도박장 내부에는 그 어떤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진무는 곧장 가장 안쪽을 향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다가갔다.
멈춰 선 앞의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숨소리. 두려움을 채 감추지 못한 그것이 일정한 간격 없이 되는 대로 내뱉어지고 있었다.
진무는 곧장 벽을 향해 손을 쑤셔 박았다.
콰드득!
두부 속에 손을 넣은 것처럼 아무런 제지조차 받지 않고 들어간 손에 잡힌 무언가가, 당겨진 힘에 세차게 패대기쳐졌다.
“크악!”
염등산.
조금 전 한가에게서 아이를 사고, 일곱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의 뺨을 때리며 위협하던 인간.
턱.
진무는 도망치려 발버둥 치는 그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이, 이놈! 내가 누군 줄 아느냐! 나는 야금당 부현지부의 도박장 책임자 염등산이다!”
허공에 대롱거리며 매달린 염등산이 제 멱살을 쥔 손을 어떻게든 뿌리치려 몸부림치고, 발로 진무의 몸을 미친 듯이 걷어찬다.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그 꼴을 무심히 바라보던 진무는 조용히 대답했다.
“알아.”
“…….”
“그래서 말인데, 넌 몇 살이냐?”
“뭐?”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에 염등산은 순간적으로 움직임을 멈추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고작 그걸 물어보려고 이 사달을 낸 것인가?
이렇듯 많은 사람을 죽인 게 그저 자신의 나이를 묻기 위한 것이라고?
“아니, 그게 무슨……?”
염등산의 의아한 표정은 날벌레라도 쫓는 듯 가볍게 내저은 진무의 손에 가려져 버렸다.
빠가각!
“카아악!”
후려친 손바닥 한 방에 턱뼈가 으스러지고, 부서진 이빨이 우수수 떨어진다.
“묻잖아. 몇 살인지.”
“우어어억.”
말하고 싶어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흔들릴 때마다 부서진 턱의 고통으로 눈물, 아니 진물이 흘러나왔다.
흰자위에 온통 핏발이 곤두선 염등산은 빌고 싶었다. 살려 달라고,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자신이 다 잘못했다고 그리 말하고 싶었다.
“어른이 물으면 대답을 해야지, 어린 새끼가.”
“…….”
표정에 따라 장난처럼, 조롱처럼 들려야 할 말이건만 한없이 소름이 돋아 오른다.
지독스러운 공포에 몸이 덜덜 떨리고, 힘을 잃은 하반신에서는 절로 오줌이 흘렀지만 부끄러움 따윌 느낄 겨를이 없었다.
“입으로 못 하겠으면 손가락으로라도 해야 할 거 아냐, 응? 애보다도 못한 새끼야.”
진무가 다른 한 손에 염등산의 손을 깍지 끼듯이 움켜쥔다.
“한 마흔쯤 되나?”
“……?”
우두두둑!
움켜쥔 손이 염등산의 손가락을 마디와 관계없이 부숴 놓는다.
“끄아아아아!”
고통스러운 비명이 도박장 안을 거칠게 울렸다.
“턱뼈가 박살 나도 비명은 지를 수 있나 보네.”
진무의 목소리는 마치 지옥에서 막 기어 올라온 사자(死者)의 그것처럼, 고통으로 흐려지는 염등산의 의식 속으로 파고들었다.
“……아직 모자라네……. 네 나이를 표시하기에는…….”
우드드득!
손가락이 또다시 꺾였다.
“끄아아악!”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정신을 놓아 버리려 했으나, 곧장 또 다른 고통이 찾아와 염등산의 정신을 또렷하게 일깨운다.
“뭐, 상관없겠지.”
“끄으으…….”
허연 게거품까지 무는 염등산은 이제 두려움만 남은 눈으로 진무를 바라봤다.
“하지 말았어야지.”
“살……려……. 제……발…….”
간신히 쥐어짜 낸 애원에도 진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슨 잘못을 했니?”
“사…… 살려…….”
“아비를 잘못 만난 게 그 아이의 잘못은 아니잖아. 가난하게 태어난 것도 그저 운명일 뿐이었잖아. 네놈의 삶에 무슨 피해를 준 것도 아니었잖아.”
“제……발…….”
실핏줄이 터져 흐른 피가 눈물과 섞여 그의 볼을 타고 흐른다.
“세상엔 어떤 경우에라도 해서는 안 되는 일도 있는 거야.”
“제……. 제……발…….”
염등산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이 사내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이 지옥 같은 시간에서 도망칠 수만 있다면…….
“천주님!”
그때, 누군가 목소리와 함께 도박장 안으로 뛰어들었다.
“천주님, 안 됩니다. 그래선…….”
도박장 안으로 들어온 것은 이 노인이었다.
그 뒤를 따라 하오문의 무인들이 홰를 들고 비추어 밝히고는 흠칫하는 표정으로 걸음을 멈춘다.
“안 돼?”
진무의 시선이 이 노인을 향했다.
“뭐가?”
“…….”
“이 노인. 똑똑히 알아 둬. 너희들도 방치를 한 거야.”
“…….”
잔인하리만큼 싸늘한 광망에 이 노인은 눈이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을 느껴야 했다.
“나는 니들이 지금의 상황을 몰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안다. 알고 있다. 어찌 모를까?
야묘는 하오문의 최상위에 올라 있는 자들. 아무리 연을 끊었다고 해도, 간섭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해도 사패천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무엇이 되었건 대략이나마 알고 있었다.
“천주님, 저희가 모든 것을 안다 해도 막을 수 있는 일이…….”
이 노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무의 손이 염등산의 머리를 내리눌렀다.
퍼어억!
어깨 속으로 파고들어 버린 머리. 염등산은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절명(絶命)했다.
“구차하게 변명 따윈 하지 마라.”
“처, 천주님…….”
“지금까지의 일에 책임은 묻지 않겠다.”
“…….”
이 노인은 쉴 새 없이 넘어가는 침을 삼키기 위해 울대를 계속해서 움직여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안 돼.”
털썩.
이 노인은 급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힘이 빠져서가 아니었다. 그래야 할 것 같아서였다.
하오문의 무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머리가 죄 터져 죽어 버린 시신들이 가득한 그곳에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이는 진무 하나뿐이었다.
“그래, 모두 막을 수는 없겠지. 우리가 신도 아니고, 애초에 정의 운운하려고 모인 것도 아니고 말이야.”
“…….”
“비열하고, 간악하고, 야비하고…….”
“…….”
“우리네들끼리는 그럴 수 있어. 우린 그걸 직접 선택했으니까. 하지만 선택권이 없는 힘없는 자들에게까지 강요해선 안 된다. 적어도 나의 사패천에서는.”
“천주님.”
이 노인이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나이의 많고 적음과는 관계없다. 그릇됨을 꾸짖는 것에 가슴이 답답하고 시선을 둘 곳을 찾지 못해 민망할 뿐이었다.
“이 노인.”
“……예.”
“야금당, 고리대를 놓는 놈들이 있다 했지?”
“…….”
“어디냐?”
묻고 있는 의도를 안다. 이미 어떤 연유에서 지금의 상황이 벌어졌는지도 들은 뒤였다.
하지만 안 된다. 진무의 말이 전적으로 옳다고 해도 이런 방식은 매우 위험하다.
야금당이 아무리 아무것도 아니라고 해도 무작정 싸움을 걸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잘못하면 사패천의 본성과 전면전으로 치달을 수 있는 일이다.
“천주님, 고정하십시오. 일단은 화를 푸시…….”
“너한테 의견 따윌 물은 게 아니다.”
“…….”
“결정은 내가 하고. 너희는 따르는 거야. 그게 싫으면 당장에 때려치우고 떠나라.”
이 노인은 순간적으로 숨이 멎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진무의 눈빛이 자신의 머릿속을 헤집어 파헤쳐 놓는 것만 같았다.
내부적으로 그저 묵룡의 전인이라고 알려진 그였다. 명세찬조차도 그 외의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정도의 존재감이라니. 흡사 대기가 짓눌리는 것 같지 않은가? 마치 전대의 천주, 혁련무강 본인을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북쪽 관도에 하도방의 장원이 있습니다.”
그의 대답에 진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어느새 돌아온 황신을 쳐다본다.
가까이 있지 않으면 아이들에게서 기운을 느낄 수가 없기에 쉽게 찾을 수가 없다.
하지만 황신의 청력이라면 작은 숨소리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있다. 찾아.”
“예!”
황신은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 대답을 해 버렸다.
“하도방……. 지금부터 모든 것들을 바로잡는다. 이곳 섬서에서부터.”
말을 마친 진무는 몸을 돌리자마자 곧바로 도박장을 빠져나갔다.
이 노인은 다급히 외쳤다.
“젠장, 뭣들 하느냐! 너희 열 명은 황 은위를 따라 아이들을 찾아라. 나머지는 나와 함께 천주님을 따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