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57
257화
죽여 버릴 테다.
반드시 죽여 버릴 테다.
혀를 잘라 내고, 사지를 생으로 뜯을 것이며 뼈란 뼈는 모조리 으스러뜨릴 것이다.
잘 때 조심해라.
밥 먹을 때 조심해라.
하물며 뒷간에서 힘주고 있을 때도 언제나 나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네가 가장 마음 놓은 그때가 지옥으로 가는 순간이 될 테니까.
살의로 가득 찬 눈동자가 매섭게 빛난다. 숨은 걷잡을 수 없이 거칠어졌고,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가 독기를 품고 노려보는 곳.
그곳에 해가림을 얼굴에 덮은 이가 두 다리를 쭉 뻗고 누워 있었다.
스윽.
어느 순간 그가 몸을 일으킨다.
그러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바라보다가 독기를 머금은 눈동자를 마주했다.
그들은 미친 듯이(?) 조각해 만든 통나무배를 타고 우황채를 떠나 화곡으로 가는 진무와 황신이었다.
“시끄럽게 뭘 그렇게 궁시렁거려?”
“…….”
신경질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에 황신이 슬며시 시선을 깔았다.
“그리고 왜 이렇게 느려? 마실 나왔어?”
“…….”
“빨리 안 저어?”
촤아악! 촤아악!
진무의 으름장에 황신의 숨은 더욱 거칠어지고, 어깨까지 걷어붙인 그의 팔은 더욱 빠르게 움직여 노를 젓는다.
“이 새끼, 하여간 틈을 주면 안 된다니까. 내가 이것도 다 수련이라고 했냐, 안 했냐.”
“…….”
“넌 다리 힘은 좋은데 팔 힘이 약하다니까? 그게 문제야.”
“…….”
“어? 내공 쓰냐? 뒈질래?”
슬쩍 일어나려는 진무의 모습에 황신이 기겁을 하며 몰래 운용한 기운을 풀었다.
“몰래 쓰면 못 느낄 줄 알아? 꼼수 부리지 말고 더 빨리 저어!”
추악, 추악, 추악, 추악!
황신은 숨 쉴 틈도 없이 팔을 놀렸다.
노가 수면 아래 잠겼다가 한 번씩 물을 밀어 낼 때마다 통나무배가 일 장씩 쭉쭉 밀려 나간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멀리 강변에서 그물을 손질하던 어부들이 멍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교차해 지나가던 배 위에 탄 사람들은 신기한 광경이라도 본 것인지 한쪽으로 모여 구경한다.
정말이지 황신은 미친 듯이 노를 저어야만 했다. 장장 이틀이나 되는 긴 시간 동안.
따라오지 말걸. 은위단, 아니 하오문에서 탈퇴해 버릴걸.
죽여 버리겠다.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
혀를…….
“더 빨리!”
“……!”
추아아아아!
진무가 주먹을 들자 황신은 사력을 다해 노를 저었다.
“새끼, 잘할 거면서 꼭 갈궈야 알아듣지.”
반드시…… 죽인다.
피도 눈물도 없는 개천주.
* * *
진무와 황신이 하곡에 도착한 것은 우황채를 떠난 지 사흘 만이었다.
모두가 황신의 피와 땀이 서린 노력 덕분이었다.
턱.
배가 거대한 나루의 구석진 곳에 닿는 순간, 황신은 노를 손에서 놓자마자 기절하듯이 쓰러졌다.
사지육신의 근육이 비명을 질러 대고 뼈마디가 관절 단위로 끊어질 것만 같았다.
곱상한 얼굴은 고된 수련(?)에 몇 해는 더 늙어 보였고, 뽀얗던 피부는 구릿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나마 이전보다 튼실한 팔뚝을 얻게 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그래도 끝났다. 이 지옥 같은…….
“황신!”
“……?”
“뭐 해?”
쉬고 있는 게 보일 텐데.
“가서 객점 잡아.”
“…….”
이젠 때려죽여도 못 움직이겠다. 황신은 그냥 통나무배 위에서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몸이 안 움직여?”
설마 걱정해 주는 건가?
황신이 아련한 눈으로 힘겹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도 사람의 감정이 남아 있기는 한가 보…….
텁! 빙글! 풍덩!
“어푸푸!”
진무가 통나무배를 뒤집어 버리자 졸지에 물속에 빠진 황신이 허우적대며 수면 위로 올라왔다.
“뭐야? 잘 움직이네. 안 죽으려고 헤엄도 치고.”
“…….”
“빨리 기어 나와. 배 위에만 있었더니 온몸이 찌뿌둥하다. 어서 객점 잡고 쉬자.”
찌뿌둥은 개뿔이. 노는 나 혼자 저었는데.
이런 개…….
결국 황신은 물에 빠진 생쥐 꼴로 하곡의 도심으로 들어가야 했다.
섬서성 서북의 끝단에 위치한 하곡.
황하의 물줄기가 에둘러 돌아 삐죽하게 솟아오른 땅에 자리 잡은 도시.
그곳은 산서, 섬서의 경계이자 과거 북원과의 전투가 오랫동안 치열하게 벌어졌던 곳이다.
하지만 북원이 패망한 이후, 하곡은 상업 도시로 발전했다.
황하의 거대한 물줄기가 중원을 관통해 북쪽을 돌아 청해성까지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루의 배는 누런 황톳빛 강으로 연일 물자와 사람을 실어 내보냈고, 같은 양만큼의 사람들을 실어 하곡으로 들여보냈다.
그 때문에 나루와 이어진 기다란 관도에는 객점과 주루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진무와 황신은 관도의 깊은 곳에 위치한 다동루(多同樓)에 도착했다.
하오문에서 직접 운영하는 곳이라 미리 손을 써 둔 모양인지 곧바로 후원 전각으로 안내되었다.
황신은 곧바로 곯아떨어졌다.
쯧쯧, 호위라는 놈이.
하지만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닌지라 진무는 전각을 빠져나와 정원 한편에 있는 정자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천주님을 뵙습니다.”
식사가 들어오기 전, 고운 경장을 차려입은 여인이 찾아와 공손하게 정자 아래에 엎드렸다.
“다동루주이자 하오문 하곡지부의 종도, 연비려입니다. 조림정의 명으로 하곡에 계시는 동안 천주님을 뫼시도록 명을 받았습니다.”
“쓸데없는 격식은 치우고 올라와 앉아.”
“예? 제가 어찌 천주님과 동석을…….”
연비려가 머뭇거리자 진무가 슬쩍 손을 휘저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서게 된 연비려가 진무를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뭐 해?”
“……아!”
진무의 말에 연비려가 조심스럽게 정자 위로 올라가 앉았다.
“무릎은……. 편하게 앉으라니까?”
약관밖에 되지 않았다고 해도 그는 하오문주가 인정한 사패천의 새로운 주인이다. 그녀의 신분으로는 눈조차 마주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자인 것이다.
그가 방문할 것이라는 내용과 함께 전달된 명은 ‘상상 이상으로 포악하고 잔인하니 절대로 성질을 건드리지 말 것.’이었다.
혹시나 싶어 수소문해 본 결과 그가 지나온 섬서 중부, 북부 지역이 시체로 가득 채워졌단다.
야금당이고 수채고 녹림이고 죄다 죽이고 온 걸음이라 했다.
그런데 저 모습은 뭐란 말인가?
정자의 기둥에 대충 등을 기대고 앉아 귀를 후비적거리는 것도 모자라, 간간이 정자 밖으로 침을 뱉어 댄다.
고귀하고 고결한 사패천주가 아니라 어디 뒷골목 날건달이라 해도 믿을 정도다.
“근데 술 없어? 그냥 있기는 심심하니 술상이라도 좀 봐 오지?”
“……아, 죄송합니다.”
진무의 모습이 원체 충격적이라 미리 준비해 두고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연비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허둥지둥 뒤편을 향해 손짓하자 열대여섯 정도 되어 보이는 소동 둘이 소반과 술병을 들고 정자 앞으로 다가왔다.
“…….”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진무가 갑자기 일어나서 다가갔다.
무슨 실수라도 한 것인가?
연비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선을 집중하는데, 술병과 소반을 받아 내려놓은 진무가 소동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췄다.
“뭘 그리 바들바들 떨어?”
“……예?”
“누가 보면 내가 니들 잡아먹는 줄 알겠다, 이 녀석들아.”
“…….”
소동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진무가 품에서 은전 두 개를 꺼내곤 히죽 웃는다.
“자, 받아.”
“……예? 이, 이걸? 어찌?”
갑작스러운 상황에 소동들이 연비려를 힐끗거리며 눈치를 살핀다.
“쯧, 얼마나 닦달을 했으면 애들이 이렇게 겁을 집어먹었겠어.”
“…….”
“받으라고 해. 나보단 널 더 무서워하는 것 같으니까.”
진무의 말에 연비려가 허락을 했고 눈치를 보던 소동 둘이 은전을 조심스럽게 받아 들고 물러났다.
다시 정자 위로 올라온 진무는 연비려가 잔을 채울 겨를도 없이 술병을 쥐었다.
“아, 아니, 제가…….”
“니가 왜?”
“……예?”
“나도 손 있다.”
“…….”
술병째로 입가로 가져가는 진무의 모습에 연비려가 눈만 깜박거렸다.
난감하다.
분명히 잘 모시라고 했는데.
해서 산해진미를 준비했고, 흥을 돋워 줄 악공에 무희까지 준비했으며 잠자리를 돌보아 줄…….
“야! 뭘 그렇게 멍하게 봐?”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도 많네. 그냥 편하게 해.”
“……예?”
“뭔 지시가 내려왔는지 모르겠지만, 쓸데없이 사람들 닦달하지 말라고.”
“…….”
“그냥 며칠 묵어갈 생각이지 대접을 받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야. 그럴 만한 성격도 아니고.”
진무의 말에 연비려가 멍한 표정을 짓는다.
적응이 안 된다. 그동안 봐 왔던 인물들과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
처음 보았을 때는 날건달 같더니 아이들을 대할 때는 왠지 손주를 보는 노인네 같기도 하고…….
그리고 어찌 이리도 소탈하단 말인가?
“하아, 표정을 보니 말을 해도 안 될 것 같네. 대체 뭔 소리를 지껄여 놨길래. 쯧쯧.”
“…….”
“됐고, 살막에 대한 정보나 읊어 봐.”
“……예?”
“살막에 대한 정보.”
“아! 그…… 살막의 정확한 위치는 찾지 못하였고, 강 너머 활동하는 마적 패거리들에게서 묘한 소문이 있었습니다.”
“묘한 소문?”
“예. 하심곡이라는 곳이 있사온데…….”
순간 진무의 입가에 미소가 어린다.
“혹시 그 하심곡이라는 데가 해가 들지 않는 어두운 곳이야?”
“어? 이미 소문을 들으셨나요?”
그럴 리가 있냐?
“대충 그럴 거 같아서.”
“……어쨌든 그렇습니다. ”
“양쪽이 산으로 막혀 있고 동굴도 있고, 막 그렇겠지?”
“맞아요.”
“혹시 사람들이 들어가면 돌아오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다거나.”
“그걸 어떻게?”
뭔가 입장이 반대가 된 느낌에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보며 진무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왠지 익살맞은 웃음이었다.
어쩌면 천주라는 사람은 소문과는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생각하니 긴장되었던 마음이 조금 풀어졌다.
“맞네, 하심곡.”
“……예?”
“살막의 위치 말이야.”
“…….”
뭔 말인지?
“딱 거기야. 그 녀석 하나도 안 변했네, 정말.”
지금쯤 칠십이 넘은 노파가 되었을 것인데 자신이 알던 그때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음침하기 짝이 없는 녀석이었다.
항상 남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귀찮게 하던.
“수고했어.”
“…….”
뭘? 한 게 없는데?
몇 마디 묻고는 저 혼자 생각하고 저 혼자 답을 내렸다.
“참, 하심곡이라는 곳 위치는 알아?”
“알긴 하지만 저희가 가 보았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당연하지.
살막이 그리 허술할 리가 있나. 위치가 드러나더라도 절대로 찾을 수 없게 해 놓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조림정에서도 하심곡을 살막이라 단정 짓고 진무에게 연락을 보낸 것이리라.
“자, 그럼 바로 출발해 볼까?”
“예? 하면 안내할 사람을…….”
“됐어. 마적들에게 물어보면 될 걸 가지고.”
권위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 진무의 털털한 태도에 조금은 편해진 연비려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가는 길에 드실 주전부리라도 챙기겠습니다. 잠시만 쉬고 계시면…….”
“쉬긴 뭘 쉬어? 딱히 힘든 일도 없을 텐데.”
진무의 말에 연비려가 전각 쪽을 향해 고개를 슬쩍 돌렸다.
꽤나 떨어져 있는 정자까지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려온다. 피로에 지친 황신이 분명하다.
“황 은위께서 깨지 않으셨습니다. 차라리 좀 쉬시면서 저희들에게도 천주님을 모실 기회도 주시고요.”
“…….”
이전까지는 긴장해서 하지 못했던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는 그녀의 모습에 진무가 피식 웃는다.
참 사람을 대하는 변화가 빠른 여인이다.
경계할 땐 확실히 경계하고 마음을 열었을 때는 더없이 편하게 대한다.
“됐어. 그냥 볼일들 봐. 나 신경 쓰지 말고.”
“에이, 그래도.”
이제는 눈웃음까지 곱게 치면서 아양을 떤다.
“이 사람 참. 그럼 나중에 돌아올 때 술이나 한잔하고 가지.”
“약속하신 거예요?”
“알았다니까.”
연비려를 향해 웃어 준 진무가 전각을 향해 소리쳤다.
“야! 황신!”
대답이 없다.
“거 녀석, 많이 피곤했나 보네.”
“그래 보였어요, 천주님. 그러니까 쉬다 가세요.”
“에이, 남의 영업장에서 괜히 폐를 끼치면 되나.”
“천주님이신걸요.”
“흠…….”
잠시 고민하던 진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깨워서 가 봐야지. 야화 녀석을 빨리 보고 싶기도 하고.”
연비려와 함께 황신이 잠들어 있는 전각으로 다가간 진무가 문을 활짝 열었다.
대자로 뻗어서 세상모르고 자는 황신.
“하하, 이 녀석도. 참.”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모습에 연비려는 참으로 소탈한 천주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시켜도 될 것을 굳이 직접 깨우러 오다니.
“제가 깨울까요?”
“아냐, 내가 할게. 뭘 수고스럽게시리.”
연비려를 향해 환하게 웃은 진무가 발을…… 응? 발을?
콰직!
“이 새끼가 한번 부르면 벌떡 일어나야지 어디서 피곤하다고 자는 척이야!”
퍽, 퍽퍽! 퍽!
“꾸엑! 꾸에에엑!”
진무가 미친 듯이 황신을 짓밟기 시작했다.
웃으면서…….
“안 일어나? 이래도? 이래도?”
“…….”
“참, 마적들 위치가 어디라고?”
고개를 슬쩍 돌리며 웃는 모습에 연비려가 저도 모르게 납작 엎드리며 대답했다.
“강 넘어 황무지에 진마평이라는 곳이 있사옵니다. 그곳에 각종 불법적인 물건을 거래하는 시장이 있사온데 마적들 중 일부가 그곳에 숨어 있사옵니다, 존귀하신 천주님이시여.”
“에헤이, 왜 그래. 편하게 하라니까?”
“…….”
진무의 말에 연비려가 있는 대로 짓밟혀 파들거리고 있는 황신의 모습을 힐끗거렸다.
연비려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천주는 무척이나 소탈하게 잔인한 사람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