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64
264화
“이런 개새끼들이…….”
광도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망할 진법이 변해도 너무 변한다. 안개가 잔뜩 끼는가 하면 폭풍이 몰아치지를 않나, 울창한 숲이 나오질 않나. 변화가 반복되고, 또 반복되고.
그런데 이건 또 뭐란 말인가?
방금까지 세차게 몰아치던 폭풍은 온데간데없고 깎아지른 절벽 아래 거대한 철문이 나타났다.
마치 환영진이 자신을 희롱하는 듯한 기분에 광도가 얼굴을 와락 구긴다.
“쌍, 장난질도 정도가 있어야지.”
짜증이 치민 광도가 철문을 향해 일장을 뻗어 내었다.
터엉!
“……!”
비록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의 공력은 집채만 한 바위를 허물어뜨릴 정도로 강하다.
그런데 아무리 철로 된 문이라지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다니. 더욱이 되돌아온 반탄력에 손바닥이 저리기까지 하다.
자존심이 상했다.
고작 환영진 따위에 일궁에서 두 번째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자신이 밀렸다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광도의 눈동자에 피처럼 붉은 광채가 솟구친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에서 일어난 기운이 회오리처럼 솟구쳐 올랐다.
“흥, 고작 이따위 걸로 나를 막겠다고!”
광도가 손에 들린 참마도를 길게 늘어뜨려 쥐고 자신의 모든 내공을 담아 넣었다.
쿵!
강하게 지르밟은 발걸음과 함께 그의 신형이 쏘아지듯이 지면을 스치고, 참마도의 날이 바닥을 긁으며 기다란 고랑을 만들어 낸다.
가가각! 파앙!
사선으로 솟구친 광마가 참마도를 거대한 원을 그리듯 내리그었다.
* * *
밖으로 나온 진무와 소약벽의 모양새에 살막의 무인들은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무슨 대화를 했기에 저 소약벽이 저리도 공손하단 말인가?
더욱이 적이 면전에 와 있는 이 급박한 와중에 웃는 얼굴로 살막이 자리 잡은 하심곡의 이곳저곳을 안내까지 하고 있지 않은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소동보는 인정할 수가 없었다.
말해야 한다. 막아야 했다.
살막의 무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존심을 꺾고 후퇴까지 하려 했던 소약벽이다.
그런 그녀가 아무런 생각조차 없이 사패천의 본성과 싸우려 하는 저 광오한 젊은 무인에게 협력하려 한다.
둘 사이의 대화 내용을 알 리 없는 소동보는 소약벽이 전대 천주와의 추억 때문에 잘못된 결정을 내린 것으로 판단했다.
“막주님!”
슷!
하지만 소동보가 채 다가가기도 전에 황신이 재빠르게 그 앞을 막아서서 경고하듯 고개를 짧게 젓고는, 내가 호위니까 다가서지 말라는 듯이 역으로 잡은 송곳을 호기롭게 세우고 노려본다.
“이자가 감히…….”
턱 언저리에 진한 근육이 잡히도록 어금니를 깨문 소동보가 황신을 향해 살기를 내뿜자 대살주들마저 그 옆으로 가세했다.
“왜 저래?”
갑작스러운 소란에 진무가 고개를 돌린다.
“글쎄요? 그나저나 은위단의 어린 무인이 움직임이 제법이군요.”
소약벽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황신을 향해 놀란 표정으로 칭찬했다.
“제법은 무슨. 아직 한참 멀었어. 그래도 뭐, 조금 손보면 하오문의 대들보 정돈 되겠지.”
“그런가요?”
소약벽이 빙긋이 웃는다.
하긴 천주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 보이겠지.
하지만 황신이라는 어린 무인은 탐이 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세찬이 잘 키웠군요.”
“그저 그렇다니까.”
진무가 피식 웃고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황신을 불렀다.
“황신, 비켜 줘.”
명이 떨어지고 나서야 황신이 송곳을 내리고 비켜선다.
그제야 둘에게 접근할 수 있게 된 소동보가 성큼성큼 걸어서 진무와 소약벽 앞에 와 섰다.
“이미 만나셨지만 다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 손주입니다.”
소약벽이 정식으로 인사를 시키려는 듯이 말한다.
“잘 컸더군. 무공의 성취도 성취지만, 무엇보다 상황을 파악하는 머리가 빨라. 엇나가지 않도록 잘 이끌어만 주면 능히 일문의 주인이 될 아이야.”
“그리 칭찬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옆에 두면 도움이 될 아이입니다.”
소약벽은 소중한 손주 녀석에게 천주와의 인연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사황 혁련무강.
사람들이 모르는 그의 능력.
옆에 있기만 해도 무공이 오른다. 거의 무공 증폭기 수준이다.
물론 옆에 있으면서 맞을 수도 있고, 맞아야 했고, 맞을 수밖에 없었지만 기연을 얻는 데 그게 뭐가 대수겠는가?
고통스럽긴 해도 천주는 부족한 부분을 누구보다 이해하기 쉽도록 잘 가르쳐 준다.
천우명, 명세찬, 원공후, 그리고 자신까지.
그들이 사패오왕이라 불릴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의 구타 어린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사이 가까이 다가온 소동보가 결의에 찬 표정으로 부른다.
“막주님.”
“오냐, 어서 오너라. 내 너에 대해 천주님께…….”
소약벽이 웃으며 말하는데 소동보가 생각지도 못한 소리를 내뱉는다.
“설마, 이자에게 협력하기로 결정을 내리신 겁니까!”
“……소개를…… 뭐?”
버럭 외치는 소동보의 모습에 소약벽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지금 저놈이 뭐라고 한 거지?
“절대로 안 됩니다. 어찌 치기 어린 젊은 무인에게 살막의 미래를 맡길 수가 있단 말입니까!”
“…….”
금쪽같은 내 새끼가 갑자기 웬 개소리란 말인가? 개도 아닌데……?
소약벽은 순간적인 당황스러움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호오?”
더욱이 진무가 고개를 살짝 꺾으면서 웃자 소약벽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기연이나 다름없는 인연을 만들어 줄랬더니 저놈의 자식이 발로 걷어차고 있다.
“동보야. 말을 삼가는 것이.”
진무의 눈치를 살핀 소약벽이 서둘러 입막음을 하려 하는데 소동보가 또 한마디를 내뱉는다.
“고작 묵룡의 전인이라는 이유로 겁 없이 날뛰는 자를 천주로 인정하시다니요!”
“…….”
그 말에 진무의 미간이 구겨지고 늙은 소약벽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진다.
무당이 어찌하여 혈겁을 겪었던가?
핏덩이 도사 놈이 ‘사패천주는 잔학무도한 개새끼.’라고 손가락질하면서 욕했기 때문이었다.
서둘러 저 싸가지 없는 손자놈의 입을 틀어막아야 한다. 진무가 묵룡의 전인이 아니라 본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저는 막주님의 이번 결정을 인정할…….”
빠아악!
거친 타격음과 함께 소동보가 이전과 비슷한 모양새로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쓰러졌고.
섬전보다 빠르게 움직인 소약벽이 후려친 듯한 자세로 소동보의 옆에 서 있었다.
“응? 갑자기 왜 때려? 어렵게 얻었다는 금쪽같은 손주 아니었어?”
“……그래서 그런지 버, 버릇이 좀 없죠? 오호호호.”
진무의 물음에 소약벽이 어울리지 않는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으며 대살주 오익태에게 재빨리 눈짓을 보냈다.
‘이 새끼 빨리 치워!’
오랫동안 그녀를 모셔 온 오익태가 그 뜻을 읽지 못할 리 없었다.
소동보는 또다시 정신을 잃고 질질 끌려 나갔다.
“실력이 제법이던데 기절은 왜 시켜? 싸울 사람도 부족한데.”
“…….”
그럴 리가…….
소약벽은 다른 사패오왕과 마찬가지로 천주를 잘 안다. 조금 전 그 표정이라면 손주와의 인연은 둘째 치고 살막이 지금 이 자리에서 문을 닫을 수도 있었다.
더 큰 화가 생기기 전에 소동보를 지킨 것이다.
그리고 싸울 사람이 부족하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천주가 함께 있는데 무슨 사람이 더 필요할까?
저 인간의 얼굴에 은은하게 서려 있는 자신감. 과거의 힘을 되찾은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 저리 당당할 수는 없다.
아마 힘이 없다면 이기기 위해서 온갖 잡스러운 방법을 다 생각해 내었을 테니까.
즉, 힘을 되찾은 천주가 함께 있는 지금의 살막은 아마 천하제일이라고 불러도 좋으리라는 뜻.
적? 물론 자신 혼자였다면 살막은 반드시 도망쳐 후일을 도모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 그까짓 놈들이야 술자리 안줏거리도 못 될 터고, 세상에서 지금의 하심곡보다 안전한 곳은 없을 것이다.
적으로 만나면 지옥의 야차같이 무섭지만, 품 안으로 들어가면 누구보다 든든한 사람이 바로 천주이기 때문이다.
하심곡을 찾아온 놈들은 크나큰 실수를 했다.
다시 충성을 다짐했으니 살막은 이제 천주의 것. 자신의 것을 남이 먼저 손대거나 빼앗으려는 것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천주라면?
더 볼 것도 없다. 머지않아 그들은 지옥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하찮은(?) 적 따위에 신경 쓸 여유 따윈 없었다. 적보다 무서운 것은 바로 눈앞에 있는 천주였으니까.
“천주님, 저곳은 말이죠.”
“…….”
소약벽은 한시바삐 진무의 관심을 소동보에게서 끊어 놓기 위해서 하심곡에 대한 안내를 이어 갔다.
다행히 소동보를 향했던 진무의 시선이 돌아오자 소약벽은 손주를 지켰다는 생각에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렸다.
터어엉!
“…….”
소약벽이 설명을 이어 가는 가운데 갑작스러운 진동이 하심곡을 진하게 울려 놓는다.
“뭔 소리야?”
“적이 삼천변회의 마지막 관문인 세 번째 하늘에 도착한 모양이네요.”
소약벽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삼천변회? 그건 또 뭐야?”
“그건…….”
진무의 물음에 대답하려던 소약벽이 잠시 말을 멈춘다. 하긴 천주가 기억할 리가 없었다. 오래전 그가 처음 살막을 찾아왔을 때 단번에 뚫어 버렸으니까.
“뭐, 그저 그런 진법입니다.”
“그래? 흠, 어쨌든 적이 도착했다는 말이군.”
“예.”
소약벽의 말에 진무가 피식 웃는다.
먼저 진법 안으로 들어갔던 놈이다. 참마도를 쓰던. 황신이 말한 바에 따르면 이름이 광도라고 했었나? 여하튼 무식하게 강기를 쓰는 미친놈.
“자, 그럼 얼마나 미친놈인지 확인이나 좀 해 볼까?”
“직접 하시려고요? 저한테 맡기지 않으시고요.”
“…….”
소약벽의 말에 진무가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뭐, 옛날이라면 그랬을 텐데……. 지금은 이상하게 좀 껄끄럽단 말이야.”
“……예?”
“왠지 노인네 부려 먹는 지체 높은 대갓집 공자 같아서 말이야. 이제 늙어서 뼈마디가 쑤실 테니 좀 쉬고 있어. 괜히 살수들이 휩쓸리지 않게 뒤에서 보호나 잘해.”
“…….”
하여간 성격하고는.
젊어서 좋기도 하겠다, 망할 천주. 꼭 저렇게 말해야 직성이 풀리나?
나중에 시간 나면 자기도 천우명을 닦달해서 죽기 전에 불로초를 꼭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울컥하는 속마음과 달리 소약벽은 곱게 웃으며 공손하게 물러났다.
“황신!”
“……?”
“너도 괜히 나서지 말고 물러나 있어. 아까 보니 생각보다 강한 새끼더라.”
진무의 말에 황신이 고개를 숙이고 소약벽의 곁으로 물러난다.
“자, 그럼 어떤 새낀지 한번 만나 볼까?”
살막의 무인들을 뒤로한 진무가 어깨에 일휘를 걸치고 짝다리를 짚는다.
그리고 잠시 후.
콰아앙!
강렬한 폭음과 함께 환영진이 찢어지고, 커다란 참마도를 든 거한이 하심곡 안으로 들어섰다.
“후욱, 후욱…….”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안을 쓸어 보는 그의 눈빛에 황망함이 스친다.
살막의 무인들이 잔뜩 몰려 기다리고 있고, 그들의 앞에 웬 핏덩이 하나가 어깨에 검 하나 걸치고 짝다리를 짚은 채 서 있었다.
“하! 이건 또 뭐야?”
“어이, 광도.”
어이? 광도?
순간 광도의 양쪽 눈썹이 기묘하게 비틀린다.
“오느라 고생했다. 좀 쉬었다 할까? 힘도 빠졌을 텐데.”
“…….”
“근데 안 무겁냐, 그딴 거 들고 있으면?”
“…….”
“하여간에 쌈질 못 하는 새끼들이 무기만 크면 단 줄 안다니까, 쯧쯧.”
혀까지 차며 검지를 세워 좌우로 까딱거린다.
뭐 이런…… 생소하게 싸가지 없는 놈이?
자신의 이름을 아는 것 따윈 아무래도 좋다.
안 그래도 잡스러운 진법을 뚫고 오느라 지친 것이 짜증을 절로 나게 하는데. 웬 어린놈이 반말지거리를 찍찍 내뱉고 있다니.
“이런 개새끼가!”
폭발해 버린 광도가 참마도를 움켜쥐고 진무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 모습에 진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었다.
“뭐, 그냥 덤비면 나야 편해서 좋지.”
오른손에는 일휘, 왼손에는 묵룡.
칼로 맞을래, 손으로 맞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