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84
284화
찌이익.
진무의 왼발이 땅을 밀어 내듯이 길게 뻗어지고 뒤편에 굽혀진 오른 다리의 근육이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찰칵.
일휘가 검집을 빠져나와 어깨에 걸리고, 왼손이 오른손 아래로 향해 천천히 검병의 끝에 힘을 더한다.
쿠르르르.
한계까지 끌어 올리는 힘에 대지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진무와 송여방이 만들어 낸 기운이 마주 얽혀 폭풍의 전조처럼 괴성을 만들어 낸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맞선 둘의 기운은 일진일퇴를 반복하며 경계를 명확하게 나누었다.
진무가 송여방과 대치하는 사이 산서상회의 전투는 이미 끝나 있었다.
본 전력이 모조리 빠져나가 버린 산서상회는 철검단과 대궁이 이끄는 궁수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황신과 소동보가 치료하고 있는 천우명을 비롯해 산서상회를 제압한 철검단 등의 무인들이 그 둘에게서 멀찍하게 떨어져 진무와 송여방을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으로 눈앞에서 마주하게 되는 주인의 싸움.
거기에는 중대한 의미가 있었다. 전대 천주의 무위는 사패천에 소속된 이들의 자존심이며 자부심이었으니까.
모두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하나였다. 묵룡, 그의 전인인 진무의 무위는 과연 어떠할 것인가?
팽팽한 기세로 맞서는 둘을 지켜보는 이들은 목구멍이 타는 듯한 갈증에 연신 마른침을 삼켰다.
스으윽.
양손으로 잡은 일휘가 어깨를 쓸고 내려와 뒤편으로 향하는 것과 함께 반쯤 돌아가는 진무의 허리.
쿠득, 쿠드드득.
작은 움직임이었음에도 두 사람의 기운에 의해 만들어졌던 대기의 경계선이 뒤틀린다.
꿀꺽.
긴장감을 참지 못한 누군가 입 안에 고인 침을 삼켜 울대를 움직이고 눈을 깜빡거리는 찰나, 진무와 송여방의 눈이 광기 어린 빛을 토해 냈다.
쓔아악!
휘둘러진다.
가슴이 부풀도록 한껏 숨을 들이켰던 진무가 왼발에 무게를 싣고 나아가며 일휘를 빠르게 잡아당겼다.
마치 거목을 뿌리째 뽑아내듯이 당긴 힘에 일휘가 호선을 그리며 휘는 것과 동시에 송여방이 높이 들었던 검을 수직으로 그었다.
진무는 횡으로 나누었고 송여방은 종으로 나누었으니, 뻗어 나온 기운이 그들의 중심에서 부딪혀 열십(十)자를 그리고 공간이 넷으로 나누어졌다.
꽈과광!
터져 나오는 폭음과 함께 폭풍이 사방으로 휘몰아치고, 가득 일어난 흙먼지가 두 사람의 신형을 가렸다.
피윳!
발검에 묵룡을 담아 휘둘렀던 진무가 검을 던지고 쏘아져 나간다.
그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진공 상태가 된 대기의 틈으로 비산하던 먼지가 빨려 들어 기다란 꼬리를 지었다.
쩌어엉!
후려친 주먹이 마주 달려온 송여방의 주먹에 부딪힘과 동시에 공간이 터져 나갔다.
서로의 힘에 밀려나는 순간 진무가 빠르게 손을 움직인다. 이기어검의 기예로 자욱하게 피어난 먼지를 꿰뚫는 일휘.
묵룡을 운용한 진무인지라 무당의 검공은 사용할 수 없었으나 이기어검은 상관없었다. 그것은 무공이 아닌 검에 대한 깨달음이니까.
쉬아악! 까아앙!
검을 휘둘러 급히 쳐 낸 송여방이 다음 공격을 대비해 급히 뒤로 몸을 물리며 먼지 속에 몸을 숨긴 진무의 모습을 찾았다.
좌측!
기운이 느껴짐과 동시에 재빨리 두 팔을 십자로 교차해 막는 송여방.
쩌어엉!
일부러 합을 짠 듯이 그 위를 사선으로 찍으며 힘껏 두들긴 진무의 무거운 주먹에 송여방의 몸이 측면으로 눌렸다.
슈우욱!
때리자마자 반대편으로 몸을 날렸다 지면을 밟고 솟구치는 진무의 주먹이 다시금 날아들었다.
투우웅!
“……!”
그야말로 섬전 같은 속도에 송여방은 진무의 주먹을 막아 내지 못하고 고스란히 맞아야 했다.
그러나 아직 진무가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하기는 일렀다.
송여방의 몸에서 만들어진 투명한 기운, 기산강막.
그것이 가공할 힘이 담긴 진무의 기운을 흩어 내고 주먹의 궤적을 틀어 버린 것이다.
“크으…….”
하지만 맞닿은 순간 거세게 밀려든 반탄력에 송여방이 진한 신음을 흘리며 이를 악물고 진무의 머리를 향해 검을 짧게 찔러 넣는다.
슈육!
고개를 뒤로 젖힘과 동시에 물러난 진무가 송여방과의 거리를 벌렸다.
나풀.
“…….”
한 뭉텅이나 되는 머리카락이 그제야 흩날려 바닥에 천천히 떨어진다.
서로 일격을 주고받은 공방.
얼굴을 찡그린 송여방을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진무의 등줄기에는 어느덧 소름이 가득 돋아 있었다.
고개를 젖히는 것이 조금만 늦었다면 머리가 천공(穿孔)될 뻔했다.
하지만 진무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생과 사의 경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극도의 희열이었다.
송여방의 실력은 허투루 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비록 모자라긴 했지만, 이런 놈을 천우명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몰아붙였지?
이런 인물을 상대로 두 가지 무공을 혼용해서 쓰는 것은 좋지 않았다.
이기어검은 기의 소모가 크고, 양의심공으로 선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해도 겸해서 사용하다가는 금방 지치게 될 것이다.
더구나 자신은 사패천의 천주임을 밝혔고, 수하 된 이들 모두가 지켜보고 있는 시점이다.
될 수 있으면 묵룡혼원공만으로 이겨야 한다.
“쓰읍, 후우…….”
숨을 크게 마셨다 내쉰 진무는 허공에 뜬 일휘를 회수해서 바닥에 던져 버렸다.
쩔거럭.
그 모습에 송여방이 한쪽 눈을 씰룩거린다.
진무가 느낀 것을 송여방 역시 똑같이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더 이상 나이 따위가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것쯤은 조금 전의 격돌로 충분히 깨달았다.
기산강막이 운용되었음에도 자신의 몸에 충격을 심어 줄 정도로 강했으니까.
그런데 어째서 검을 던진 거지?
송여방은 진무의 움직임을 찬찬히 살폈다.
하지만 진무는 그저 가만히 서서 송여방을 응시할 뿐이었다.
“야, 그거 이름 있는 거냐?”
“……?”
“그 호신강기 같은 거 말이야.”
“……기산강막.”
대답은 순순히도 한다. 뭐, 무조건 이긴다는 자신감이겠지만.
“흐음, 기운을 흩어 놓는 강기의 막이라…… 알아듣기 쉬운 이름이네, 제법 유용하고.”
진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허, 뚫을 생각인 게냐?”
“당연하지.”
“광오한 놈이로구나. 기산강막은 이제껏 단 한 번도 뚫린 적이 없는 절대의 방어기다.”
“이 몸이 또 최초를 좋아하거든.”
“미친놈. 좋다, 어디 한번 뚫어 보아라!”
송여방이 양손으로 검을 움켜쥐어 사선으로 세우고 자세를 낮췄다.
“지랄하네. 안 뚫리면 니가 천하제일이게?”
진무가 비릿하게 웃으며 다시 묵빛 기운을 끌어 올려 몸을 감싼다.
전신의 근육을 이완해 극도의 부드러움을 가지게 만드는 묵룡혼원공 투사체.
말 그대로 골격과 근육이 유연해져 신체가 허용하는 모든 움직임을 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까짓 잔재주, 반드시 뚫어서 우명의 손처럼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 주마.
파학!
진무의 발이 지면을 세차게 파헤친다.
단 일 보에 공간을 좁혀 낸 진무를 향해 송여방의 검이 빠르게 휘둘러졌다.
슈우욱!
검격을 피해 방향을 바꾸는 진무의 뒤로 검은 잔상이 흔적처럼 길게 꼬리를 냈다.
서걱.
실체가 아닌 잔상을 베어 낸 송여방이 빠르게 피하자 진무가 그 뒤를 쫓아 달려 주먹을 뻗는다.
쩌엉!
후려친 주먹에 비틀거리며 밀려나는 송여방의 검이 허공에 수많은 호선을 그리고, 그 검격들을 일일이 피해 내는 진무의 잔상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감히 다무는 것조차 죄인 듯 입을 벌렸다.
그들의 전투는 화공이 그려 내는 한 폭의 묵화(墨畫).
휘두른 검은 붓이 되고, 검을 피해 굽이굽이 비틀린 진무의 움직임은 묵룡이 되어 허공을 노닌다.
쩌어엉! 쩌정!
간간이 이어지는 공방은 마치 먹잇감을 쫓으며 내뱉는 용의 포효처럼 세상을 울리고, 어느 순간 붓이 되었던 검은 묵룡의 속도에 추월당했다.
방향을 가리지 않고 몰아치는 진무의 주먹을 온전히 막지 못한 송여방이 그 충격으로 검을 온전히 휘두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묵룡이 붓을 떠나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 송여방의 검은 더 이상 무기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크윽!”
진한 충격을 견디며 검을 휘둘렀지만, 진무의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앞쪽을 막았다 싶으면 어느새 뒤쪽에서 날아오고, 그를 피했다 싶으면 정수리를 쪼갤 기세로 날아드는 흉맹한 주먹.
쩌정!
등줄기가 휘는 듯한 충격이 온몸에 퍼져 나간다.
기산강막이 제힘을 발휘하고 있음에도 쉼 없이 내리꽂히는 충격이 그의 몸에 연신 진한 떨림을 남겼다.
쩡! 쩌정! 쩡!
묵룡은 어느덧 검은 회오리바람으로 변했다.
진무의 주먹은 여전히 빠르게 몰아치는 반면, 송여방의 검은 계속해서 뒤처졌다.
시간이 갈수록 어느 곳에서 주먹이 날아오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어진 것이다.
“크으, 이런 개자식……!”
송여방은 검은 회오리바람 속에 휘말린 갈대처럼 맞을 때마다 세차게 휘청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유효타에 격중되지는 않았고, 충격이 거세기는 했지만 이를 악물고 버틸 정도는 되었다.
송여방은 진무의 움직임을 잡기 위해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내내 이 속도를 유지한다면 언제고 호흡이 턱 밑까지 차오르게 될 터. 그 찰나의 틈을 노려야 했다. 그 순간이 놈에게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될 테니까.
쩌어어엉!
연거푸 몰아치던 진무는 짜증을 느꼈다.
더럽게 귀찮은 무공이다.
움직임에 속도를 더하면 기산강막의 방어가 그 속도를 따라올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것은 오산이었다.
뭔 놈의 무공이 이따위란 말인가?
송여방이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일어나 제 주인을 방어하는 느낌이었다.
내궁주라는 여인도 그렇고 이놈도 그렇고, 별 잡스러운 무공을 다 익혔다 싶었다.
빌어먹을. 기산강막이란 무공만 아니면 진작에 뒈졌을 놈이.
쩌어엉!
그 순간 주먹을 날리던 팔이 무거워지고, 휘몰아치던 바람이 잦아든다.
“파하!”
반복되던 들숨과 날숨의 교차가 한계에 다다르는 순간 거친 호흡이 터져 나온다.
호흡은 곧 진기의 흐름. 호흡이 흐트러짐과 동시에 진기가 끊어지고 송여방을 공격하던 진무의 움직임이 둔화되었다.
천우명에게 항상 지적해 왔던 연환격 이후의 빈틈.
망할, 하필이면.
진무는 재빨리 지면을 찍어 밟으며 훌쩍 뒤로 물러났다.
“……!”
송여방은 거북이처럼 처맞아 가며 기다려 온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고 고통을 씹어 삼키며 재빨리 따라붙어 검극을 찔러 넣었다.
슈아악!
미간을 노리고 곧게 뻗어 오는 검에 기겁한 진무가 고개를 젖히며 뒤로 제비를 돌았다.
핏!
베였다.
미간이 뚫리는 상황은 면했으나 이마에 검날이 스치고 피가 튀어 오른다.
내력을 운용할 수 없는 지금, 몸이 무거워진 진무는 다음 공격이 이어지면 꼼짝없이 죽게 될 것을 직감했다.
진무는 상처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몸이 뒤로 넘어감과 동시에 따라오는 발에 힘을 주었다.
뻐거걱!
“……?”
진무의 발이 송여방의 턱을 강타했다.
“큽!”
강제로 아래턱이 쳐들린 송여방의 고개가 솟구쳐 오르고, 부러진 이빨이 튀어 올랐다.
가까스로 물러난 진무는 급히 호흡을 고르고 진기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크으…….”
턱을 맞았기 때문인지 입가로 피를 줄줄 흘리는 송여방이 비틀거리며 물러나 검을 지팡이 삼아 몸을 겨우 세웠다.
“……?”
이 새끼…… 설마.
기산강막이라는 것이……?
진무는 갑자기 번뜩 떠오른 생각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정말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르지만 만약 자신의 생각이 맞다면?
망할 노인네, 뼈마디를 잘근잘근 씹어 먹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