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85
285화
비틀거리는 몸을 세운 송여방이 입가에 흐르는 피를 소매로 닦아 냈다.
“요행에 얻어맞다니…….”
“…….”
요행? 그래, 요행이긴 했지.
그런데 이 자식, 설마 자신의 무공이 가진 단점을 모르고 있는 건가?
진무의 생각이 맞다면 이것은 기산강막이라는 무공의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인지하는 즉시 해결해야만 하는.
그런데 모른다고? 어쩌면?
“…….”
진무는 송여방을 유심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어이, 노인네.”
“…….”
“종려군은 어떤 여인이었지?”
“……뭐?”
“그 여인 말이야. 지금 생각해 보니 꽤나 악착같았다는 느낌이 들었었거든.”
“흥, 그럴 테지. 출생이 비천하니 악착스러울 수밖에.”
“비천한 출생? 듣기론 내궁주라고 하던데? 내궁주면 궁주 마누라, 뭐 그런 거 아냐? 노인네보다 더 높은 신분이잖아.”
“나보다 신분이 높다고? 웃기는 소리. 나는 유서 깊은 가문에서 나고 자랐다. 갖은 암수를 부려 그 자리에 올라간 사갈 같은 여우 년하고는 태생 자체가 다르단 말이다.”
갑자기 성질은…….
하지만 대충 알겠다.
“그렇구만. 역시 그래.”
“……뭐?”
송여방이 치켜뜬 눈으로 진무를 노려본다.
그래, 그렇게 봐야 나중에 눈깔 뽑을 때 기분이나 좋지.
일궁주 송여방. 들은 대로라면 태어날 때부터 높은 신분이었을 것이다. 이른바 기득권으로 살아온 인생인 것이다.
그런 놈이 삶의 치열함에 대해 알 리가 없다. 아니, 알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무공.
“하나 더 묻지. 그 기산강막이라는 것 말이야. 한 번도 뚫려 본 적 없는 게 확실해?”
“……이미 경험해 보고도 모르겠는가? 기산강막은 완벽한 방어 무공이다.”
“역시…… 그렇군.”
“……?”
진무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세상에 완벽한 무공은 없다. 모두가 허점이 있기 마련이고, 무인들은 자신이 익힌 무공의 허점을 해결하기 위해 피땀으로 수련을 한다.
진무가 지금까지 겪은 놈의 실력은 종려군보다 낮았다.
강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독기가 부족했다.
놈의 말대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기산강막을 뚫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자연히 놈은 그 막강한 방어력에 의존했을 것이고, 굳이 치열하게 싸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기산강막의 힘 덕에 목숨이 경각에 달해 본 적도 없었을 테니까.
분명 대충 막기만 하다가 상대가 지치면 모가지를 따 버렸겠지.
쯧쯧, 이런 놈이 백년대계 어쩌고 중원 어쩌고 하다니.
중원이 그리 쉬워 보이냐, 이 새끼야?
“…….”
진무가 멀찍하게 떨어져 있는 천우명을 슬쩍 쳐다보았다.
어쩌면 이 단순하고도 단순한 약점을 깨달았다면 천우명이 졌을까? 뭐, 어차피 끝난 일이기는 하지만.
“잡설이 길었네. 그럼 다시 시작할까?”
“…….”
갑자기 재수 없는 미소를 머금고 있는 진무의 표정에 송여방이 눈을 가늘게 좁혔다.
어찌 되었건 간에 변하는 것은 없다.
송여방 역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고 한 가지 해결책을 찾아내었다.
놈의 공격법은 연환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놈이 숨을 차오를 때까지 버틴다. 그리고 틈이 보이면 이전보다 더 빠르게 숨통을 끊어 낼 것이다.
진무의 이마에 흐르고 있는 피가 바로 자신이 이길 수 있음을 알려 주는 증거니까.
“오너라, 이놈. 이번엔 반드시 숨통을 끊어 줄 것이다.”
“누가, 니가?”
피식 웃는 것과 동시에 진무의 신형이 빠르게 거리를 좁힌다.
세 번째 격돌. 진무의 공격은 이전과 동일했다.
단순한 놈.
방향은 당연히 좌측!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확인했으나 여전히 받아치기에는 버거운 속도에 송여방이 재빨리 두 팔을 십자로 교차해 막는다.
쩌어엉!
일부러 합을 짠 듯이 그 위를 사선으로 찍으며 힘껏 두들긴 진무의 무거운 주먹에 송여방의 몸이 측면으로 눌린다.
여기까지도 동일. 다음은?
송여방이 급히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꺾는다.
슈우욱!
역시나 반대편에서 사선으로 주먹이 솟구쳐 올라오고 있었다.
똑같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공격에 불과했다. 방어하기에는 늦었으니 이번에도 기산강막에 맡긴다.
대신 이번에는 네놈의 목에 상처를……?
콱!
“……!”
분명 같은 방법이었건만 등에 전해져 오는 충격이 없다.
흠칫 놀란 송여방이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그의 옆구리의 요대를 잡은 진무가 보였다.
“역시!”
히죽 웃는 진무.
그러곤 요대를 잡아당기며 휘두른 반대편 주먹이 송여방의 복부를 향해 크게 원을 그리며 날아왔다.
쩌어엉!
다시 발동된 기산강막.
“크으…….”
유효타는 아니었으나 생각보다 반탄력이 커서 얼굴이 절로 찡그려졌다.
“흐음, 그렇군. 역시나 기운에 반응한다 이거지?”
진무가 다음 공격을 이어 오지 않고 서서 턱 언저리를 쓸었다.
생각이 맞았다.
기산강막은 기운을 실은 타격에 반응한다. 즉, 기운을 싣지 않은 단순 타격에는 발동하지 않는다는 뜻.
아까 그의 발이 송여방의 턱을 가격했을 때 진기의 흐름이 끊어져 있었던 것이 그 증거다.
턱을 때린 것은 그렇다 치고, 잔 주먹으로 노인네를 제압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울 텐데 어찌한다? 기를 쓰지 않고 최대한 타격을 입히려면…….
아!
무언가를 생각해 낸 진무의 입가에 음산한 미소가 떠오르자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로 솟구치는 스산한 느낌을 애써 외면한 송여방이 먼저 공격을 시도했다.
“타앗!”
타앗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빠르게 다가서며 횡으로 휘둘러진 검에 허리를 젖혀 피했던 진무가 용수철처럼 튕겨 오른다.
“이런!”
동작이 너무 컸다.
송여방이 다급하게 검을 휘저으며 몸을 빼려는 찰나, 진무의 신형이 갑자기 사라졌다.
분명 앞에서 솟구치듯이 튕겨 올라왔으니, 주먹을 뻗어 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리고 연이어 뒤편에서 느껴지는 진무의 존재감.
설마 뒤에서?
송여방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되돌아올 반탄력에 대비를…… 어?
“크크크, 이런 경험은 처음일 게다, 이 새끼야.”
“……!”
살기등등한 목소리.
갑자기 중력이 사라진 듯한 착각과 함께 송여방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후아악! 콰아앙!
진무는 송여방의 허리를 뒤에서 움켜쥐고 그대로 땅바닥에 있는 힘껏 메다꽂아 버렸다.
“크악!”
머리가 깨지는 듯한 충격은 물론, 등줄기가 박살이 나는 통증에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커……컥.”
억눌린 신음을 토해 내는 송여방.
꽈악.
어느새 진무가 그의 두 다리를 움켜쥐고 웃고 있었다.
“땅은…… 내공이 없지.”
“……!”
그게 무슨?
휘익! 콰아아앙!
진무는 송여방의 다리를 잡은 그대로 마른빨래 털듯이 바닥에 때려 박았다.
“크아악!”
송여방의 입에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하하! 뒈져! 뒈져 버려!”
휘익, 콰쾅! 쾅! 콰콰쾅!
떡메 치듯이 좌우를 번갈아 가며 쉬지 않고 송여방을 때려 박기 시작하는 진무의 표정은 그야말로 악귀 같았다.
노인네, 늙어서 그런가 가벼워서 좋네.
애들이나 납치하는 나쁜 노인네. 무명촌의 민초들을 죽이려 했던 궁 노인네. 살막을 박살 내려고 한 노인네. 나보다 덜 산 주제에 감히 내가 찜해 놓은 중원을 집어삼키려 든 망할 노인네.
그리고 내 새끼 손에 칼질한 노인네.
쾅! 콰쾅! 쾅!
진무의 빨래 털기는 쉬지 않았다.
내공? 무공? 그딴 거 아무 소용도 없다.
벌써 몇 번째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땅바닥에 처박혔다. 경험해 본 적도 없는 생소한 패대기에 송여방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헥, 헥, 헥…….”
근 일각을 쉬지도 않고 손에 쥔 빨랫감을 털어 대던 진무는 호흡이 달릴 때쯤 되어서야 겨우 몸을 멈추었다.
일궁주 송여방. 귀한 태생으로 자라나 귀한 신분으로 귀한 자리에 앉았고, 가공할 무위로 일궁의 무인들을 수족으로 부리던 그.
천우명을 몰아붙이며 언제라도 죽일 수 있을 듯이 기세등등했던 그는 이제 머리가 터지고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걸레처럼 변해 축 늘어져 있었다.
사람 하나를 걸레로 만들어 놓고 사악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진무의 모습에 누구도 입을 떼지 못했다.
“저, 천 단주님?”
“……응?”
“당해 보셨어요? 저거?”
“……아니. 저런 무시무시한 건 안 당해 봤다.”
“그렇군요.”
천우명의 대답에 소동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혹시, 천주님께서 저렇게 화나신 게…… 이 손 때문일까요?”
소동보의 물음에 천우명이 마른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에이, 설마…….”
부정하면서도 싫지는 않았던지 어울리지 않게 홍조까지 띤 천우명.
그사이에도 진무는 여전히 무자비했다.
“어이, 죽었냐?”
“…….”
“새끼가, 대답 안 해?”
휙! 쾅, 콰쾅! 쾅!
“천 단주님?”
“……으, 응?”
“말려야 하지 않을까요?”
“……될까?”
“그, 그렇죠?”
천우명과 황신, 소동보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광기마저 감도는 진무의 눈빛 때문에…….
산서상회의 무인들은 죄다 점혈을 당한 뒤 포승에 묶여 꿇려졌고, 부상자들은 별도로 나누어졌다.
빨래를 터느라 지친 진무는 혼절한 송여방의 몸 위에 걸터앉아 숨을 골랐다.
푸드득!
황신은 서둘러 태원상단을 습격했던 적생에게 승전보를 담은 전서구를 날렸다.
* * *
산서상회의 대전각……이 있었다는 흔적만 남은 부서진 건물 잔해 앞.
쪼르륵.
붕대를 칭칭 동여맨 천우명이 진무가 내민 술잔을 채운다.
바들바들 떨어 대는 천우명의 손이 안쓰러울 법도 하건만, 지켜보는 이들 중 누구도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야, 흐른다.”
“이런, 죄송합니다. 하하.”
손이 많이 상한 천우명이 힘에 부치는지 술이 잔을 넘어 손에 넘쳐 흐르자 진무가 짜증을 내었다.
개천주. 미친 천주. 사람이 다쳤는데 쉬게 하지는 못할망정.
심지어 다 죽어 가는 적을 깔고 앉아서 술이나 처먹고 있다니.
둘의 옆에 시립한 황신과 소동보는 차마 입으로 뱉을 수 없는 욕설을 나란히 속으로 삼키고 있었다.
아니, 대체 왜 다친 이가 멀쩡한 이한테 환하게 웃으며 사과를 한단 말인가?
황신과 소동보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관계였다.
“그나저나, 좀 뒤져 봤어?”
“대궁이 궁수들과 함께 안쪽을 뒤지고 있습니다만, 포로들을 감시하느라 인원이 부족합니다.”
“감시는…… 어차피 진 놈들이 뭘 할 수 있다고.”
퉁을 놓으면서도 진무는 대충 수긍하고 있었다.
산서상회는 꽤 넓으니까.
술병이 비워져 갈 때쯤 밖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하더니,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익히 아는 얼굴들이 산서상회의 부서진 성벽을 넘어 들어왔다.
태원상단을 습격하고 산서상회의 주력을 괴멸시킨 적생이 본대를 이끌고 도착한 것이다.
“천주님!”
적생과 명세찬, 소약벽이 급히 달려와 진무에게 고개를 숙였다.
“끝났냐?”
“예. 태원에도 병력을 남겨 놓았습니다. 살막의 대살주들이 도망친 잔당을 뒤쫓고 있으니 곧 마무리될 것입니다.”
“수고했다. 경계병을 배치하고 다들 술이나 한잔하게 해라.”
“예!”
진무의 명을 받은 적생이 휘하에 명을 내리는 사이, 명세찬과 소약벽이 천우명에게 눈인사를 보내다 붕대를 감은 손을 바라본다.
“다친 거냐?”
“……뭐, 조금.”
소약벽의 말에 천우명이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치료는 잘했고?”
“저 녀석, 의술이 제법이더라고.”
“보자.”
“별거 아냐.”
“이 자식이!”
짜악!
등짝을 후드려 맞고서야 내민 손에 감긴 붕대를 푼 소약벽이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리며 휘하에 명해 약상자를 가져오게 했다.
“멍청한 녀석 같으니. 칠칠치 못하게 손이나 다치고…….”
“……아, 괜찮다니까.”
“가만있지 못해!”
“…….”
괜히 손을 빼려다 야단맞는 천우명과 치료를 하며 쉬지 않고 잔소리를 하는 소약벽.
마치 누이와 말 안 듣는 동생처럼 보인 것은 모두의 착각이었을지도.
“아야!”
“엄살을!”
짜악!
밤은 천우명을 후려치는 소약벽의 손바닥 소리와 함께 천천히 깊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