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86
286화
산서상단에서 일어난 전쟁의 후속 조치는 빠르게 진행되어 갔다.
적생과 명세찬은 오히려 산서상회와 싸우기 전보다 더 바빠진 모양새였다.
천웅방에 있던 영보당(靈寶黨, 적생이 조직한 군사부)에 하오문의 핵심이라 불리는 조림정의 야묘들까지 죄다 옮겨 오면서부터는 일을 처리하는 속도가 배는 빨라졌다.
덕분에 오랜만에 유장 녀석을 보니 반가운 기분도 들고…….
어쨌든 원체 많은 사람이 북적거리다 보니 산서상회의 본장은 반란군, 아니 진(眞) 사패천의 전초 기지처럼 변해 버렸다.
임시로 지어진 산서상회 내부 사패천 수뇌부의 거처.
적생이 산서상회를 뒤져서 찾아낸 여러 가지 불법적인 정황을 종합해서 가져왔다.
“보고할 게 있다고?”
“……예.”
적생이 제일 처음 꺼낸 것은 고풍스러운 재질의 서신이었다.
맹주의 인장이 찍혀 있는 정무맹에서 온 전갈이었다.
“우리가 산서상회를 쳤다는 사실을 안 모양이지?”
“그만한 전투가 있었는데 언제까지 저들의 눈과 귀를 속일 수는 없겠지요.”
적생의 말에 진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당연하다. 제갈 얌생이나 거지 노인네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
서신에 적혀 있는 말들이 구구절절 많았지만, 핵심은 하나였다.
휴전 협정의 파기.
“……아쉽게도 정무맹이 예상대로 움직였습니다.”
“하남 북쪽에 방어선을 구축했나?”
“예. 정무칠성의 남궁무휴가 수좌를 맡고 팽의방이 부장이 되어 북진을 구축했습니다. 소림, 화산, 종남, 남궁, 팽가, 무당에 제갈, 그리고 용봉관이 움직였습니다.”
많기도 많다.
그 정도 숫자면 당장에 정사대전을 하자는 말과 똑같지 않은가?
그런데 무당까지 움직였다고?
돈 좀 생겼다고 아주 배가 불렀네, 불렀어.
오지랖도 넓다. 산중에서 도나 닦고 있을 일이지, 뭐하러 전쟁에 참여한단 말인가?
여러 가지로 의외이긴 했지만 크게 놀랍진 않았다.
어느 정도는 산서상회와의 전투를 준비할 때 적생이 예견했던 대로였으니까.
“남쪽, 강서성의 경계에는 정무맹의 본대가 움직였습니다. 검혜 벽운영이 수좌를 맡아 기존 현무, 주작, 백호, 청룡의 네 개 무인대를 이끌고 출정했습니다.”
“흐음……. 공후의 위치는?”
“강서성 남창(南昌) 인근에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흠…….”
진무가 잠시 턱을 쓸었다.
망할 자식들, 내가 내 땅 먹으러 가겠다는데 왜 지들이 방해를 한단 말인가?
이럴 줄 알았으면 정무맹에 잠입해 있는 세작을 그냥 내버려 둘 걸 그랬나?
예전이라면 좋다고 맞붙을 일이었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의 진무는 사패천의 천주이기도 했지만 무당의 제자이기도 했으니까.
다른 곳은 몰라도 무당이 전쟁에 휩쓸리는 것은 왠지 꺼림칙하니까.
“일단 공후에게 대기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
“산서상회가 거래해 왔던 물목 중 사패천과 관련한 내용입니다.”
“이게 왜?”
“……그 물목이…… 아이들입니다.”
“……뭐?”
아이들이라는 말에 무시무시하게 변하는 진무의 표정을 본 적생은 내심 크게 놀랐다.
적생을 대할 때면 언제나 온화한 모습만을 보여 왔던 진무였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냥 심드렁한 표정으로 앉아 있더니 순식간에 질식할 듯한 살기를 뿜어낸다.
마치 그 눈빛에 베일 듯한 기분에 적생이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낮게 엎드려 조아렸다.
“처, 천주님…… 흥분을…….”
“…….”
거처가 답답해질 정도로 가득 채워진 사기에 적생이 숨조차 쉬지 못하고 헐떡이자 진무가 끓어오른 화를 애써 잠재웠다.
“후우…… 그래서? 사패천이 애들을 잡아다가 산서상회에 바쳤다는 거야?”
“……예. 녹림, 수적패, 야금당, 흑사방에서 납치된 아이들이 사패천으로 흘러 들어갔고, 산서상회가 비슷한 물목으로 대가를…….”
“적생!”
진무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쏘아보자 적생이 대번에 말을 집어삼킨다.
“아이들은 물건이 아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언을…….”
화를 내며 노려보는 진무의 모습에 적생이 고개를 땅바닥에 처박고 사죄했다.
“산서상회에 바쳐진 아이들은 어찌 되었나?”
“그것이…….”
“말해 봐.”
“상단과 함께 때때로 어디론가 이동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디로 갔냐고!”
“그건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하오문주가 야묘들에게 지시를 내렸으니 곧 밝혀질 것입니다. 또 다른 궁의 세력에게 인계된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숫자는?”
“……추산되는 것만 오백이 넘습니다.”
“……오백?”
“예. 최소로…….”
“…….”
와중에 최소란다.
아이들을 납치하고 인신매매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오래전에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대규모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 민가에 피해를 끼칠 수는 있다. 객점이나 관도의 상점에서 보호비를 뜯을 수도 있다.
진무가 좋아하는 일은 아니나 사파라는 족속들은 언제나 그래 왔으니까.
하지만 이런 건 안 된다.
야금당에서 도박 빚 대신 아이들을 받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기껏해야 도박장에서 부리거나 오래전 자신의 어린 시절이 그러했듯 뒷골목 배수의 망꾼 노릇을 하겠거니, 막연히 짐작했을 뿐.
그리고 그 모두를 구할 수 없기에 사패천을 차지하고 차차 해결해 나가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오백이 넘는단다.
멀쩡하게 사는 아이들을 납치해다 부족한 자금을 메우기 위해 산서상회에 갖다 바쳤단다.
납치된 아이들은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고 잡혀갔을 것이다.
처우가 좋았을 리도 없으니 필시 고된 행로에 죽어 가는 아이들도 있었을 것이고, 그 아이들은 무의미하게 들판에 버려져 짐승들의 밥이 되었겠지.
뿌드득.
진무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어금니를 거칠게 갈았다.
“유월청,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민 진무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적생.”
“예!”
그 살벌한 기세에 적생이 잔뜩 긴장한 얼굴을 들며 대답했다.
“산서상회를 정리하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나?”
“하오문주의 말로는 최소 열흘 정도는 있어야…….”
“길어. 시일을 당겨라.”
“…….”
간결한 한마디에 적생이 잠시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사흘, 사흘 안에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사흘…… 좋아. 그 안에 모든 준비를 마쳐. 곧바로 사패천을 친다.”
곧바로? 정무맹이 그들이 하남으로 진입할 수 없도록 가로막고 있는데?
하지만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명령이 떨어진 이상 적생이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정무맹과의 교전 계획을 세우겠습니다.”
적생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진무가 무슨 생각에선지 고개를 젓는다.
“아니! 정사 간의 전쟁은 없다.”
“예? 하지만 저들이 이미 진을 구축하고…….”
“다시 말하지만, 전쟁은 없어.”
“…….”
“길은 내가 열어 주마.”
“……!”
진무의 말에 적생이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어찌 저들의 진을 뚫고 이 많은 수의 무인들을 사패천으로 진격시킬 생각이지?
하지만 적생은 그의 무시무시한 기세에 눌려 잠시 잊고 있었다.
진무가 무당지검임을.
* * *
중원의 물줄기는 크게 둘로 나누어진다.
황하(黃河)와 장강(長江).
황하는 북을 아우르고 장강은 중원을 관통한다.
천하로 통한다 하여 무림인들이 통천하(通天下)라 일컬어 온 장강에 비해 조금 낮은 평가를 받는 황하였으나 북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있어서 황하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삶의 터전이었다.
농사를 짓는 이들에게는 곡식의 살을 찌우는 농수였고, 어부들에게는 생의 보고(寶庫)였다.
그런데 그 물길의 일부에 흉흉한 기세가 자리를 잡았다.
창천 남궁무휴를 수좌로 하여 제갈세가, 무당 등 일곱 세력과 용봉관의 무인들이 참가했다.
삼문협(三門峽)에서 개봉(開封)에 이르기까지 천 리에 달하는 그 거대한 황하의 물줄기를 모조리 통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반란 세력이 사패천 본성과 전면전을 하자면 반드시 대규모의 병력이 이동해야 했고, 그만한 병력이 물길을 넘을 수 있는 곳은 매우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제갈협진은 개방의 도움을 받아 물길 내에 자리 잡은 크고 작은 나루에 무인들을 배치하고 곳곳에 배를 띄워 강 너머를 감시하게 했다.
또한, 영보, 낙양, 공의, 정주, 개봉에 이르기까지 강과 인접한 다섯 도시를 중점으로 무인들을 배치해 적이 발견되는 즉시 유기적으로 방어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른바 사패천 반란 세력의 남하를 막기 위한 정무맹의 북진이 구축된 것이다.
창천 남궁무휴는 무인들을 이끌고 북진의 중심과도 같은 정무맹 정주지부에 여장을 풀었다.
“흐음.”
뒷짐을 지고 활짝 열린 창으로 황하의 누런 물길을 바라보던 남궁무휴의 시선이 아래로 향한다.
정무맹에서 파견된 수많은 무인이 정주지부 앞의 강가에 진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 엄청난 수의 무인들이 움직이는 모습은 일견 장엄하기까지 했다.
“핫핫, 형님. 제법 잘 어울리십니다그려.”
“어울리기는…….”
옆으로 다가온 북진의 부장(副長), 팽의방이 히죽거리며 말하자 남궁무휴가 피식 웃으며 겸양을 떨었다.
“지금 형님의 이 모습을 보니 애초에 형님이 맹주가 되었어야 합니다. 산동성 촌놈 철지량이 아니라요.”
“…….”
남궁무휴는 팽의방의 말을 막지 않았다.
“생각해 보십시오. 강의 경지에 먼저 오른 것도 형님이십니다. 그런데 어찌 그놈이 검성이란 말입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지요.”
“거, 사람 참. 허허.”
“용봉관이니 감찰단이니…… 제 놈들 권력을 유지하려 꼼수를 보이는 것이 뻔히 보이지 않습니까?”
“그만하게. 남들이 들을까 무섭네.”
“틀린 말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놈이 맹주가 되고 한 게 뭐가 있습니까? 지금 상황을 보십시오.”
“…….”
“형님이 맹주가 되었다면 궁이라는 잡졸 놈들이 정무맹의 세력권에 세작을 심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사패천은 또 어떻고요. 하남에서 벌써 들어냈어야 할 놈들입니다.”
“허허.”
남궁무휴는 웃기만 했다.
하지만 그 또한 말은 하지 않아도 팽의방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남궁무휴는 오랫동안 안휘의 패자로 살아온 자신보다 철지량의 명성이 더욱 높은 것이 보기 싫었다.
자신은 가주직에서도 물러나 후학이나 양성하며 뒷방 노인이 되었는데 제 놈은 만인의 존경을 받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문도, 세력도. 모든 것이 철지량보다 나은 자신이 어찌하여 항상 그의 그림자만 쫓는단 말인가?
그렇기에 언제나 정무맹이 협의체 이상의 힘을 가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번 기회에 놈들에게 알려 주시지요. 황하를 넘어오는 사파 놈들을 모조리 쓸어 버리고, 이어서 천중산에 있는 놈들의 성도 부숴 버립시다.”
“…….”
“형님과 제가 힘을 합하면 못할 일도 없지 않습니까?”
일리 있는 생각이다.
혁련무강, 그 망할 놈이 오랫동안 정파의 영역이던 천중산에 터를 잡은 지도 어느덧 사십 년이 넘었다.
언제나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지만, 사황이 너무도 강했기에 누구도 그들을 쫓아내지 못했던 세월이었다.
하지만 그가 죽은 지금 내전에 휩싸인 그들은 반으로 쪼개졌다.
반란 세력에 소속된 철혈붕권, 가부자, 야화. 이 셋만 처리하면 힘을 잃은 유월청을 부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잘되었다.
어쩌면 말년에서야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일지도 모른다.
정파의 눈과 귀가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기회에 사패천을 무너뜨리면 자신의 위명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질 것이 자명한 일.
검성 철지량이 아닌 자신이 고금에 유례없는 업적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일단, 적이 언제 올지 모르니 예하에 일러 방비를 튼튼히 하라 이르게. 나머지는 사패천의 반란 세력부터 막고 나서 생각하세.”
“예, 형님!”
명을 받은 팽의방이 밖으로 뛰어나간 뒤, 남궁무휴는 홀로 흐뭇하게 창밖으로 펼쳐진 황하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