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87
287화
산서를 떠나 하남의 경계를 넘은 진무는 곧장 정무맹이 만든 북진의 중심, 정주를 향해 말을 달렸다.
북진을 이끄는 수뇌들이 그곳에 모여 있어서기도 했지만, 그곳이 산서에서 사패천 본성이 있는 천중산까지 가는 직선 경로이기 때문이었다.
망할 유월청, 그놈을 한시라도 빨리 만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한 진무에게 다른 길은 필요하지 않았다.
“천주님! 강입니다.”
옆에서 달리던 황신의 손가락 끝에 쉼 없이 흐르는 거대한 강줄기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크고 작은 건물들이 가득한 도시, 정주.
히잉, 푸르륵!
산서상회를 떠난 지 사흘째. 진무는 정주의 반대편에 위치한 마을이 시작되는 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말을 멈췄다.
지금쯤이면 산서상회를 점거했던 무인들이 남하를 시작했을 터였다.
그들이 사패천 본성으로 가기 위해서는 황하를 넘을 배가 필요하다.
적생의 말에 따르면 이미 정무맹이 자신들을 막기 위해 북진을 구축했다고 하니 나루의 배 또한 모조리 통제되었을 것이다.
“신, 동보.”
“예!”
“마을 안에 객점을 잡고 기다려라.”
“예? 저희 둘만 말입니까?”
소동보의 말에 진무는 고개를 끄덕인다.
“적진에 어찌 혼자 가려 하십니까?”
적진? 니들은 적이지만 나는 아니다.
지금은 사패천주가 아니라 무당지검으로 온 것이니까.
하물며 이곳을 북진의 본거지로 삼은 정무맹이 강 건너를 그대로 두었을 리 없다. 지금쯤 개방의 거지 떼가 오가는 사람들을 살피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객점을 잡고 기다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주위에 보는 눈이 많다.”
“…….”
진무의 말에도 황신과 소동보는 걱정이 가시지 않는 기색으로 진무를 쳐다보았다.
“무당 도사로 가는 거야. 니들이 따라가면 괜한 의심만 사게 돼. 혼자 다녀올 테니까 쉬면서 술이나 한잔하고 있어.”
“하면 제가 배편이라도 알아보겠습니다.”
속 편한 소리. 그랬다가 잡히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그리고 배를 탈 생각 따윈 없다.
돈이 아까운 게…… 아깝기도 하지만, 아무튼 지금은 진무 자신의 무위를 저들에게 정확히 알려 주는 것이 필요했으니까.
“신호를 보낼 테니까 그때까진 괜한 소란 만들지 마라.”
“……신호요? 처, 천주님!”
황신과 소동보가 채 다 묻기도 전에 진무는 벌써 나루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아니, 어떤 신호인지 말은 해 주고 가야.
“하아…… 젠장, 일단 마을로 들어가자.”
“……그러죠.”
* * *
황하의 폭은 넓다.
가장 좁은 곳만 해도 백 장을 넘고, 넓은 곳은 삼백여 장에 달한다.
그곳을 넘어가려면 반드시 배를 타야 한다……는 건 일반적인 기준에서나 통용되는 말이고, 진무에겐 아무런 장애도 되지 못했다.
마을의 관도를 곧장 달린 진무는 금세 나루에 이르렀다.
진무가 먼지바람마저 일으키며 달려오자 지키던 정무맹의 무인들이 재빨리 제지하려 했다.
“머, 멈춰라!”
멈추기는.
쿵!
지면을 밟아 솟구친 진무가 곧장 무인들의 방어선을 뛰어넘더니, 순식간에 나루 중턱까지 다다른다.
“잡아라!”
자신들의 머리 위를 새처럼 날아서 넘어간 진무의 모습에 무인들이 몸을 돌리며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하급 무인들과 드잡이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할 시간도 없었다.
쿠우웅!
진무의 발이 나루를 거칠게 찍어 밟았다.
콰지직! 파가각!
나무로 만들어진 나루가 그의 진각을 배겨 낼 도리는 없었다. 거친 기운에 짓눌린 나루가 산산이 조각났고, 그 파편이 수면을 뒤덮었다.
“이런 젠장! 대체 뭐 하는 짓……?”
강렬한 폭발에 멈춰선 무인들이 다음에 이어진 진무의 행동에 입을 쩍 벌렸다.
팍! 쐐애액! 파팍! 쐐애액!
진무가 떠다니는 나뭇조각을 하나씩 강물을 향해 걷어차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십 장, 혹은 그 이상의 거리마다 나뭇조각이 놓였다.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걷어차서 날리는 와중에 거리까지 조절한다니, 보지 않고 누군가에게 들었다면 아마 미친 소리 하지 말라는 말을 했겠지만…….
근데 저게 뭐 하는 짓이지?
아무리 배가 지나는 넓은 곳이라 잔잔하다고 해도 흐름을 가진 곳이다. 저래선 금세 떠내려…… 어?
멍하니 바라보다 의문을 품는 찰나 진무가 달리기 시작했다.
강물 위를 마치 평지처럼.
“드, 등평도수(登萍渡水)라고?”
말로만 들었지 본 적은 없는 전설적인 경공.
중간중간 자신이 던져 놓은 나무를 밟고 있긴 했지만, 나루터에 있던 무인들 중에 놀라지 않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멍하니 있을 수는 없었다. 사패천의 무리가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상황에 방어선이 뚫려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젠장! 강 건너 본진에 신호를 보내라!”
명을 받은 무인이 위험을 알리는 거대한 적색 깃발을 흔들었을 때, 진무는 이미 강을 반 이상이나 건너고 있었다.
멀어 봐야 삼백 장이다.
마음만 먹으면 물을 밟고 달릴 수도 있는 진무였지만 내력 소모도 크고, 중간중간 지지할 것이 필요했기에 굳이 나뭇조각을 뿌려 놓은 것이다.
강을 거의 다 건넜을 즈음이 되자 더 이상 나뭇조각이 보이지 않았다.
젠장, 몇 개만 더 던져 놓을걸.
하지만 조금 귀찮을 뿐 변하는 것은 없다.
파앙!
용천혈을 통해 빠져나간 진기가 수면을 때리는 순간, 물보라가 둥글게 튀어 오르고 진무의 몸이 빠르게 솟구친다.
삐이익!
누군가가 불어 젖힌 호각성에 강을 점거하고 있던 정파의 무인들이 다가서는 진무에 대비해 진형을 갖춘다.
피피피피핑!
수십 개의 화살이 진무를 향해 쏘아졌다.
이것들이 누군지 확인도 안 하고?
허공을 유영하던 진무가 재빨리 몸을 비틀어 공중제비를 넘으며 일휘를 뽑아 휘둘렀다.
가가각!
힘없이 부서진 화살을 넘어선 진무가 강가로 떨어지려는 순간, 이번에는 십수 개의 검이 진무를 향해 쏘아진다.
토수에 행전을 차고 있는 것을 보니 종남파의 무인들이다.
과연 중원에 이름난 쾌검답게 검격이 간결하고 빨랐지만, 진무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후욱!
떨어져 내리던 진무의 신형이 갑자기 허공에 멈춘 것처럼 속도가 줄어 버리자 그를 노리고 날아온 검격들이 모조리 허공을 휘저었다.
탁, 파앗!
뻗어진 검날을 지지대 삼아 밟은 진무가 다시 휙 몸을 띄운다.
“이, 이런!”
당황은.
다행인 줄이나 알아라, 이 자식들아.
내가 지금 무당지검이라서 참는 거지, 사패천주로 찾아왔으면 니들은 그 알량한 검 꺼내기도 전에 뒈졌어.
검진을 넘어서자 진무를 향해 이번엔 쇠로 된 그물이 던져졌다.
방어진의 두 번째 열을 맡은 놈들이다. 근데 던진 놈들이 대머리인 것을 보니…… 소림 중놈?
나 참, 불가에 몸담은 놈들이 악독하기도 해라. 사람 하나 잡겠다고 이 지랄들을 하다니.
촤락! 텁!
손을 뻗어 쇠 그물의 끝자락을 잡아챈 진무가 몸을 비틀며 생긴 회전력을 더해 날아온 반대 방향으로 던져 버렸다.
“으헉!”
순식간에 제 놈들이 던진 그물을 덮어써 버린 중들이 우왕좌왕하며 서로 엉켰다.
탁!
드디어 흙바닥을 밟은 진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놈을 쫓아라! 절대로 뚫려서는 안 된다!”
진형이 진무 단 한 사람에 의해 뚫려 버리자 진 선단의 수장을 맡고 있던 중놈이 외쳤고, 이어 소림의 중들이 겹겹이 포위망을 구축해 진무를 둘러쌌다.
여기도 대머리, 저기도 대머리.
노린 것이라면 대단하다.
햇빛을 받아서 번쩍거리는 것이 눈이 다 부실 지경이었다.
“진형을 유지해라! 놈은 혼자다! 휘둘려서는 안 된다!”
진의 중심을 뚫고 들어와 곧장 그 중심까지 달려드는 진무의 모습은 마치 조조의 대군에 파고들어 유비의 아들 아두(阿頭)를 구했던 자룡처럼 거침이 없었다.
“이놈! 멈추어라!”
소림이 구축한 진법이 순식간에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화산의 노도사들이 도포를 휘날리며 진무의 앞을 막아섰다.
“감히 네놈이 진을 이리도 유린…… 어? 자네?”
화산의 장로, 태을자가 진무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당황한 얼굴로 눈을 끔벅거렸다.
“휴우, 겨우 아는 얼굴을 뵙네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태을 장로님.”
“……어? 아, 그래.”
진무가 활짝 웃자 태을이 검을 내리며 대답했다.
“이게 누군가, 무당지검이 아닌가!”
“하하핫! 침입자가 자네였단 말인가?”
“이 사람, 그냥 강 건너편의 무인들에게 신분을 밝히고 오면 될 것을, 하여간 자네는 언제나 사람을 놀래키는구만!”
태을의 뒤를 이어 함께 나타났던 태룡, 태선, 태상이 반갑게 인사를 해 왔다. 으, 여전히 순서대로 말하는 시끄러운 녀석들.
“무당지검이라고?”
“저 어린 자가?”
“소문보다 더 대단하군. 겹겹이 쌓인 진을 이렇게 간단히 뚫고 들어오다니.”
“그러게 말이야. 저 보게, 부상자도 하나 없질 않은가?”
정무맹의 무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진무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들은 진무의 신분을 깨닫고는 진이 뚫렸다는 사실보다 진무의 무위에 대한 경외심을 보이고 있었다.
정무맹이 세운 진을 뚫고 들어온 것은 무례한 처사였으나, 그로 인해 정주의 강가에 진을 구축한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무위를 각인시킨 것이나 다름없었다.
소문이 아닌 눈으로 직접 보았으니 그 효과는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질 터. 모든 것이 진무의 의도대로였다.
“뭣들 하는 게야? 서둘러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해!”
태을의 호통에 진무를 보기 위해 모여들었던 무인들이 그제야 쭈뼛거리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쯧쯧, 적이었으면 제 목이 떨어져 나갔을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태을이 무너진 진형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 어쨌든 들어가세. 자네를 보면 반가워할 분들이 한 수레나 된다네.”
진무는 호탕하게 웃는 태을을 따라 정무맹 정주지부 내부로 향했다.
* * *
태을의 안내로 회의실에 들어간 진무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이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화산의 장문인 태허에 이어 소림이 인사를 해 왔고, 남궁, 팽가, 제갈의 수뇌들은 데면데면하게 고개만 숙여 왔다.
물론 약간의 악연이 있었던 종남의 장문인 유진산은 고개만 까딱거리고 나서는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이놈 진무야! 핫핫핫!”
“일대제자 진무가 장문인을 뵙습니다.”
진무는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명현을 향해 예의를 다해 고개를 숙였다.
“이 녀석아. 일대가 뭐란 말이냐? 무당지검이라 하거라.”
“…….”
일부러 사람들에게 들으라는 듯이 크게 말하는 명현의 모습에 진무가 피식 웃고 말았다.
혹여 어린 진무가 무림의 명숙들에게 무시나 당하지 않을까 하여 그가 무당을 대표하는 신분임을 다시 한번 각인시킨 것이다.
하여간 도사 놈이 생각하는 것하고는.
그래도 표주를 떠난 뒤로 보지 못했던 명현의 얼굴이 새삼 무척 반가웠다.
“이놈아, 정도껏 해야지. 그리 휘젓고 들어오면 다른 사람들의 체면이 어찌 되겠느냐?”
“아, 급하게 온다는 것이…….”
“흠흠, 다음부터는 주의하거라.”
“예, 장문인.”
짐짓 꾸짖듯이 말하면서 저 뿌듯한 표정이라니.
사부인 명진만 그런 줄 알았더니 장문인도 그새 자랑질이 많이 늘었다.
“오랜만이구나.”
명현과의 인사가 끝나자 뒤에 있던 젊은 도사가 알은체를 해 왔다.
일대제자의 맏이 진명이다.
이전과 달리 깔끔한 도포에 허리에는 파상풍을 일으키는 악독한 검 대신에 번쩍번쩍 윤이 나는 좋은 검을 차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대룡방에서 만났을 당시와 기도가 다른 것을 보면 그간 발전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긴 그 정도로 친절하게 가르쳐 줬는데도 변화가 없으면 도사 짓 접고 딴 길 알아봐야지. 가르친 사람이 무려 나였는데.
“대사형을 뵙습니다.”
“그래, 도동이었던 네가 일대제자가 되어 무당지검의 칭호를 받았다 들었을 때 참으로 놀랐다. 훌륭하게 잘 성장하였구나.”
“…….”
이 자식이 버르장머리 없게 어딜 어른 어깨를 툭툭 치고 지랄이야? 뭐, 그래도 한 번은 봐주마.
“진명이 이번에 장로 회의를 거쳐 정식으로 차기 장문인으로 결정되었다.”
“아, 그런가요?”
“그래. 이 녀석이 돌아와 태극혜검을 펼치는 모습에 내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감격스러워하는 명현의 모습에 진무가 속으로 피식 웃는다.
그게 다 내 덕이다, 이놈아.
“너도 그렇고 진명이도 그렇고 다음 대의 무당이 어찌 이리도 기대되는지.”
“…….”
그럴 만도 하지.
태극혜검을 쓰는 진명이 장문인이 되고 사상 최강의 무당지검이…….
근데 잠깐, 이놈이 장문인이 되어 버리면 무당 타락 계획은 어떻게 되는 거지?
이 새끼, 그때 보니까 진궁보다도 꼬장꼬장하던데…….
“자, 앉거라. 자세한 이야기는 회의가 끝나고 하자꾸나. 청상과 청우도 와 있으니 무척이나 기뻐할 것이다.”
“예, 장문인.”
명현이 권한 자리는 회의장의 말석이었다.
이것들이, 감히 우리 무당을 끄트머리에 앉혀?
“허허, 이게 다 네 덕이니라. 정무맹에서도 이제는 우리를 잊지 않고 챙긴다. 내 이전에 검혜 어른이 사과를 하실 때 어찌나 감격스럽던지.”
“사과요?”
“아, 그렇지 너는 모르겠구나. 실은…….”
명현이 정무맹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진무의 귓가에 소곤거렸다.
아니, 대놓고 말하기 주책맞은 내용인 건 알겠는데 꼭 귀에다 이래야 하나? 전음은 뒀다 뭐에 쓰려고…….
어쨌든 무당의 위상이 제법 올라간 모양이라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에 회의장의 문이 열리고 북진의 수장인 남궁무휴가 안으로 들어서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들어온 그는 진무를 한 번 스윽 쳐다보고는 거만하게 상석으로 가서 앉았다.
남궁무휴 저 새끼도 하나도 안 변했네.
그 뒤에 있는 멍청한 고양이 새끼 팽의방도.
오래전에 만났을 때는 처맞고 애처럼 질질 짜던 놈들이 자리 하나 차지했다고 거만을 떨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