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91
291화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은 진무가 다시 진형을 갖추는 금강나한진을 주시했다.
생각보다 내력 소모가 심했거니와, 곤에 얻어맞은 충격에 온몸이 욱신거려 왔다.
서로가 조금씩 물러난 상황, 하지만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저들에게도, 자신에게도.
묵룡혼원공이라면 당장에 결착을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진무는 사패천주가 아니라 무당지검으로서 승부에 임하고 있었다.
무당지검으로, 무당의 검공으로 반드시 절대라 부르는 소림의 금강나한진을 넘을 것이다.
그런데 진무가 자세를 잡은 사이에 부상을 입은 소림승들이 부축되어 물러났다.
그 수가 열 명을 넘는다.
저리되면 진의 한쪽이 빌 텐데?
“부상자가 많은데 괜찮겠습니까?”
염려가 담긴 진무의 질문에 각료가 시원스럽게 웃었다.
“진무 도장께선 인의가 넘치시는구려. 상대의 부상까지 걱정하시다니.”
“……뭐, 아무래도 최상의 상태로 대결하는 것이 좋을 듯해서.”
“하핫! 걱정 마시오. 몇몇이 빠지더라도 나한진은 무너지지 않으니.”
“……?”
각료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진무가 의아함을 품었다.
빈자리를 메꿀 방법이 있다는 말인가?
뭐, 지들이 좋다는 데야 굳이 상관할 바는 아니다.
진의 힘이 약해지면 나야 편하지. 안 그래도 좀 전의 격돌로 속이 뒤집히는데.
“그럼 저는 계속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진무가 다시금 자세를 취하자 각료의 손짓에 사대금강이 웃으며 뒤로 물러나 백팔나한의 진에 합류한다.
어? 왜?
좀 전의 진형은 분명 사대금강이 안쪽에서 사방을 점하고 백팔나한이 뒷줄에서 원을 그리는 식이었는데?
하지만 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 진무는 자신의 걱정이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진에 합류한 사대금강이 묘한 보법을 밟자 각각 아홉 개의 분영으로 나뉜다. 그것도 그냥 분영이 아니고 서로 다른 자세를 취하는 독립적인 분영.
망할, 연대구품(蓮臺九品)이라니. 내가 주제넘게 괜한 걱정을 했네. 최강의 진법에 최강의 절학까지.
좋네, 좋아. 죽이네, 아주.
까가강!
충돌은 소음을 만들고, 이어 충격파가 되어 세상을 쩌렁쩌렁 울려 놓는다.
금강나한진은 과연 일전에 상대한 매화검진과는 달랐다.
그 위력도 위력이지만, 상대를 가둔 후 공격을 가하는 것이 매화검진이라면 나한진은 가두어 놓은 상대를 억압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했다.
소림의 무공은 금강불괴로 대표된다.
또한, 중원 무학을 정중동으로 구분했을 때 정(靜)에 가장 가까운 것이 소림이었다.
고요로 시끄러움을 잠재우고 무거움으로 가벼움을 누르며, 멈춤으로써 빠름을 제압한다.
사대금강과 나한승들의 공격은 한 수 한 수에 천근의 힘이 담겨 있었다.
그야말로 몸이 떨릴 정도로 묵직한 공격. 그 안에 갇힌 진무는 정말로 사력을 다해 움직여야 했으며, 혼신의 힘을 기울여 검을 휘둘러야 했다.
진무의 손에서, 발에서, 온몸에서 무당의 무공이 빠짐없이 펼쳐진다.
그들의 싸움은 고사의 모순처럼 모든 것을 꿰뚫은 창과 절대로 뚫리지 않는 방패처럼 이어졌다.
떠어엉!
공격과 방어는 한 번의 동작으로 이루어진다.
한 치의 틈조차 없는 공방에 모두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고, 숨을 쉬는 것조차 아깝다는 듯 눈을 떼지 않았다.
하지만 둘의 차이는 진의 빈자리를 메꾼 사대금강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연대구품은 우수한 만큼 내력 소모가 막대한 무공.
이를 장시간 유지한 탓에 내력이 달리기 시작한 사대금강의 움직임은 자연히 느려질 수밖에 없었고, 이는 급기야 진 전체의 속도가 진무보다 뒤처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리고 그곳이 승부처임을 깨달은 진무는 망설임 없이 이기어검을 펼쳤다.
내력 소모가 크지만 잡은 승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휘리링!
일휘가 공기를 가르며 날아올라 나한진의 움직임을 한쪽으로 집중시키자 한순간 진무의 움직임이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기검을 오랜 시간 유지할 정도로 내력이 충분하지 않았다.
상관없다.
무당에 검공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파앗!
진무의 발이 지면을 참과 동시에 섬전처럼 움직여 각료를 노린다.
“이런! 전주님을 보호해라!”
각료는 진을 통제하는 중심.
진이 흐트러진 이상 그를 쓰러트리면 붕괴는 가속화될 것이다.
사대금강의 공선이 기겁해 외치며 연대구품을 거두고 온 힘을 다해 뛰어와 진무를 향해 발을 휘돌려 찼다.
시기적절한 선풍각(旋風脚).
하지만 급했기에 동작이 컸다.
급하게 자세를 낮춘 진무의 머리 위를 공선의 발이 스쳐 지나가고, 곧이어 허리에 붙였다가 밀어 낸 진무의 손에서 무당의 연환장이 펼쳐졌다.
서른여섯 번의 변화가 더해질 때마다 위력이 증가하는 무당의 면장.
퍼퍼펑!
옆구리를 연거푸 때려 맞은 공선이 비틀거리자 그 틈을 나한승들이 채운다.
우웅!
진무의 목표가 각료에게서 공선으로 바뀌었다.
전장의 상황은 항상 유동적인 대처가 필요한 법이다.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 튼튼한 방벽을 무너뜨리는 방법은 여러 곳을 때리는 것이 아니라 작은 틈을 크게 만드는 것이다.
공격에 적중당하며 물러나는 공선이 승부처였다.
휘리릭!
비틀어 회전했던 진무의 손이 활짝 펼쳐지며 곧게 뻗어진다.
쩌어엉!
무당의 절학 십단금이 다가오는 나한승들을 통과해 공선의 가슴을 강하게 때렸다.
“크억!”
피를 토하며 진 밖으로 튕겨 나간 공선.
이어 진무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나한승들의 공격을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맞이했다.
양손에서 시작된 움직임이 팔에 이르고 온몸에 전달되어 나한승들이 찔러 온 곤을 휘말아 감았다가, 한 점에 이르러 폭발적으로 뿜어졌다.
터어엉! 우드득!
또 하나의 무당 절학, 태극권의 전사경을 이용한 모아 비틀기.
손안에 감싸 쥐듯 잡힌 곤이 부서지고, 무력화된 나한승을 향해 진무가 일곱 방위를 밟으며 빠르게 주먹을 뻗는다.
무당칠성권, 칠성발파(七星發破).
뻑! 뻐벅! 뻑뻑!
“이, 이런!”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각료가 당혹성을 감추지 못했다.
진의 한쪽 축이 무너져 버렸다.
원래 진이라는 것이 완전했을 때 그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몇몇이 빠지면 사대금강이 보완할 수 있었지만, 지금처럼 한 축이 무너지면 대처하는 것에 시간이 걸렸다.
“전력을 다하라! 최선을 다해 진무 도장을 구금한다!”
각료의 외침에 나한승들이 일제히 진의 범위를 좁혔지만, 승기를 잡은 진무는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쉬익! 쩍!
일휘에게 이어진 기운을 끊어 버린 진무가 부서진 나한진의 끝점을 노린다.
튼튼한 쪽보다는 이미 부서진 곳을 추가로 부수는 쪽이 쉬움을 너무도 잘 안다.
승부가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자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갔다.
무당의 검공에 이어 펼쳐진 권각술과 장법이 나한진을 마구잡이로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쾅! 콰득! 쩌적!
들리는 것은 일방적인 격타음뿐이었다.
진무의 빠른 움직임에 대처하지 못한 나한들은 그대로 줄줄이 쓰러져 갔다.
“허!”
각료는 더 이상 대결이 무의미함을 깨닫고 움직임을 멈췄다.
양팔을 내리고 기운을 거둔 그의 결정은 순식간에 나한진 전체에 퍼져 나갔다.
쉬익, 척!
날아가던 진무의 주먹이 나한의 얼굴 앞에서 멈췄다.
“……?”
진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진무가 천천히 주먹을 거두고 뒤로 물러났다.
“하악, 하악…….”
거칠어진 숨을 몰아 내쉬는 진무가 나한진을 바라본다.
사대금강을 포함해 백팔 명의 나한승들 중 제대로 서 있는 것은 오십여 명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멀찍이 물러난 진무가 주먹을 거두자 각료를 필두로 소림승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함성은 없었다.
숨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모두가 마음속으로 진무를 응원했으나, 정작 아무도 입을 뗄 수 없었다.
최강이라 불렸던 이름의 패배가 실제로 벌어졌을 때의 충격은 그토록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허허, 이런, 이런. 정말로 대단하네.”
고요함을 깨어놓은 것은 다름 아닌 혜조였다.
시동의 부축을 받아 혜조가 천천히 걸어 나오자 각료와 나한승들이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진무의 앞에서 걸음을 멈춘 혜조가 환한 미소로 합장하며 고개를 숙였다.
“졌소이다.”
“…….”
혜조의 패배 선언.
불패를 자랑해 온 소림의 금강나한진이 무당지검 진무, 단 한 사람에게 무너진 것이다.
“……우와아아아!”
누군가에게서 터져 나온 박수와 함성을 시작으로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무당지검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후우…….”
진무가 움켜쥔 주먹을 늘어뜨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숨을 뱉는다.
이겼다.
증명했고, 인정을 받았다.
진 안에서 얻어맞은 이곳저곳이 쑤셔 오고 텅 비어 버린 단전에서는 공허함이 느껴졌지만, 기분은 그 어느 때보다 상쾌했다.
“자네의 말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구먼.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혜조의 미소에 진무가 마주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뭐가 증명되었단 말이오!”
“……?”
터져 나오는 노호성.
서슬 퍼런 기세로 다가오는 것은 다름 아닌 남궁무휴였다.
그 모습에 인자한 표정으로 일관했던 혜조가 미간을 찌푸린다.
“창천 시주. 그 무슨 말이오?”
“들은 그대로입니다. 대체 무엇이 증명되었단 말입니까? 강의 고수가 고작 진 하나를 이긴 것이 무에 그리 대단한 일이란 말입니까? 아직 무당지검은 자신의 말을 증명할 정도로 강하다는 것을 조금도 입증하지 못했습니다.”
“……뭐라?”
혜조의 눈빛이 날카로워진다.
“시주께선 무슨 말씀이 하고 싶은 게요?”
“금강나한진이 최강의 진이라 불리기는 하나 그 정도면 정무칠성의 누구라도 충분히 넘어설 수 있는 위력이었습니다.”
“뭐라? 창천 시주께서는 지금 이 혜조의 말을, 소림의 자존심을 능멸하는 것이오?”
불편함이 가득한 혜조의 목소리에 주변이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남궁무휴, 평소라면 누구보다 차분하고 교활한 그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에 가득한 것은 진무에 대한 시기심이었다.
검성 철지량에 밀려 남궁가의 뒷방 노인으로 한세월을 보내고, 이제 기껏 북진의 수좌가 되어 만인에게 존경을 받아 보나 했더니 새파랗게 젊은 놈이 자신의 위명을 가져가려 한다.
그는 이 상황을 절대로 두고 볼 수 없었다.
질투에 눈이 완전히 멀어 버린 그는 결국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최악의 수를 두고 말았다.
정무칠성이라는 그 이름이 아까울 정도로.
“제가 직접 시험해 봐야겠습니다. 만약 제가 진다면 그때는 두말 않고 인정하지요!”
남궁무휴의 말에 혜조는 물론 지켜보는 모두가 눈가를 씰룩거렸다.
말이 되는 소린가?
이미 나한진을 상대로 기력을 소진한 진무였다.
경천동지할 정도로 내력을 쏟아붓는 모습을 모두가 지켜보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제 와서 자신이 시험하겠다고?
이제껏 남궁무휴에게 우호적이었던 사람들마저 눈빛이 싸늘해졌다.
팽의방마저도 갑작스러운 그의 발언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혹스러워했다.
“…….”
하지만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는 진무의 입가에는 음흉하고 음산한 미소가 떠올랐다.
“창천 어른, 진무 도장은 지쳤습니다. 만약 끝까지 시험을 하시겠다면 휴식을 취하고 그의 내력이 돌아온 뒤에 하십시오!”
태허자가 먼저 나서서 반박했다.
거, 기특한 녀석일세. 자소단을 빼앗기고도 내 편을 들다니.
“틀린 말은 아닌 듯합니다. 우선 그에게 휴식을…….”
제갈가주 제갈웅현마저 돕고 나섰다.
이건 좀 의외였다. 단강구의 일로 꽁해 있을 줄 알았더니…….
그래도 넌 생각은 좀 있는 녀석이구나.
모두가 같은 마음인 듯 진무의 편에 서서 자신을 몰아붙이는 꼴에 남궁무휴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이, 이자들이 지금…….”
언성까지 높아진 남궁무휴의 말을 가로막은 것은 다름 아닌 진무였다.
“상관없습니다. 원한다면 지금 하시죠.”
그의 말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진무는 마음속으로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남궁무휴 이 새끼, 아주 니가 니 무덤을 파는구나.
늙으면 추해진다더니, 네가 꼭 그 꼴이렷다. 흐흐흐.
멍청한 놈, 늙더라도 나처럼 멋지게 늙었어야지.
어쨌든 잘되었다. 주변에 모인 이들이 너의 추함을 모두 보고 있으니 이 이상 딴말은 못 할 터.
원한다면 과거의 그때처럼 숨만 쉬어도 벌떡벌떡 일어나게 패 주마.
소림의 나한진이 중간에 끼어들기는 했으나 나의 진짜 계획은 이제부터 시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