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50
350화
능서현과 진무의 싸움이 종반으로 치닫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차이는 명확해졌다.
그녀의 손은 이제 진무의 옷자락조차 스치지 못하고 있었다.
금나는 잡지 못하면 무력하다.
그는 검은 바람처럼 자유자재로 휘돌며 허점을 놓치지 않고 흉포한 이빨을 드러냈다.
원한다면 언제든지 자신을 물어뜯고 갈가리 찢어 놓을 수 있는…… 묵룡.
그래, 그는 용이다. 날카롭게 세운 발톱으로 대지를 가르고 후려친 꼬리로 산악을 허무는 광폭한 용이다.
자신은 상대가 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그의 말마따나 그와 주먹을 나누어 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먼 미래의 자랑거리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생채기, 생채기만이라도 낼 수 있다면…….
하지만 한 치의 간격으로 스치던 옷자락과의 거리가 이제는 한 뼘을 넘는 것 같았다.
그가 강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쳐 가고 있는 것이다.
퉁!
능서현은 가볍게 가슴팍을 때려 온 진무의 손바닥에 넘어지지 않으려 빠르게 뒷걸음질 치며 중심을 세웠다.
쿠웅!
“하압!”
마보로 지면을 강하게 밟은 능서현이 기합성과 함께 쌍장을 내질렀다.
콰르릉!
벼락성과 함께 혼신의 힘을 다한 그녀의 손에서 발출된 장력이 진무를 향해 날아갔다.
그런데 지금까지 느긋하기만 하던 진무의 표정이 매섭게 변하더니, 갑자기 장력을 향해 뛰어든다.
무언가 달라졌다. 왜?
쩌어어엉!
그녀의 의문이 채 해소되기도 전에 진무가 검은 기운을 팔에 휘감아 장력을 후려치고는 곧장 달려들었다.
어째서?
강기의 방향을 비껴 내는 것은 위험천만한 행동이다.
부딪힌 순간에 생기는 막대한 반탄력 때문에 내상의 위험이 있어 경지가 뛰어난 고수들도 어지간하면 택하지 않는 수였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인데?
당황스러움에 멈칫한 순간 지면을 스치듯이 날아온 진무의 주먹이 활짝 펼쳐졌다.
피하려 했으나 피할 수가 없다.
남은 공력으로는 손을 피할 속도를 낼 수 없으니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끝. 길고 긴 싸움의 끝이다.
체념해 버린 능서현이 몸에 힘을 빼는 순간 진무의 검은 손이 그녀의 얼굴을 향해…….
슈아악!
“……?”
스쳐 지나갔어?
까드득!
“……?”
이건?
예상치 못한 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돌린 능서현의 시야에 주먹을 벼락같이 후려치는 진무의 모습이 들어왔다.
뻐어억!
진무의 손에 우그러진 한 자루의 칼날과 땅바닥에 거칠게 처박혀 버린 금마영.
“그럼 그렇지. 지친 능서현부터 죽여서 수를 줄여 보겠단 뜻이지?”
“……?”
능서현의 의문은 주변의 모습에 그제야 해소되었다.
금마영의 머리를 지그시 눌러 밟아 비비며 으르렁거리는 진무와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고 품(品)자로 자신을 포위한 세 명의 동천주.
노린 것이다.
전투의 막바지에 이른 진무와 능서현을.
“네놈들…….”
입술을 깨물며 그들을 노려보는 그녀를 손 하나가 제지하듯 막았다.
다름 아닌 진무였다.
“쉬고 있어. 지쳤잖아.”
“……?”
무슨 뜻이지?
설마 홀로 동천주 셋을 홀로 상대하겠다는 뜻인가?
성강에 이른 금마영을 일격에 쓰러뜨린 것이야 대단하긴 하지만 셋은 무리다.
아무리 그가 대단하다 해도 교주와 비등한 실력이 아니라면…….
“돕겠소.”
“도와? 니가?”
주먹을 움켜쥐며 자세를 취하는 능서현의 모습에 진무가 코웃음을 쳤다.
“됐어. 말했잖아. 증명해 주겠다고.”
“…….”
“차라리 잘됐네. 이 정돈 돼야 증명이 되지.”
진무가 싸늘하게 웃으며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동천주들을 스산한 눈길로 훑어보았다.
“놈, 우리 넷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다 생각하느냐?”
“…….”
우측에 선 비쩍 골은 놈. 오동천주 뇌공이라고 했던가?
“네놈이 알량한 실력으로 능서현을 이겼다만 우리 넷을 상대로는 턱도 없을 것이다.”
“…….”
토실토실하게 살 올라 때리는 맛이 남다를 듯한 삼동천주 나관수.
“차라리 잘됐소. 이런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과 함께 천산에 반역의 깃발을 들었다가는 다 죽을 것이오. 이 자리에서 놈과 능서현을 죽여 버립시다.”
십이동천주 석중하, 미간에 굵은 사마귀처럼 점이 박힌 놈.
참 지랄도 풍년이다.
처음부터 죽일 생각으로 기습해 놓고는.
셋이 돌아가며 한마디씩 내뱉는 것을 가만히 듣던 진무의 입술이 얇게 벌어졌다.
“니들 뭔가 착각하는 거 아냐?”
“뭐?”
빈정대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함께 터져 나온 신음.
“끄으…….”
진무의 발이 가볍게 들리는가 싶더니,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금마영의 머리 위로 강하게 내리꽂혔다.
퍼석.
“……그, 금 동천주!”
강의 경지를 이룩한 마교의 위대한 무인의 끝맺음은 실로 허무했다.
“이런 씨, 더럽게. 어쨌든 이제 셋이네? 그치?”
“…….”
피와 뇌수로 범벅이 된 발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
개미 새끼라도 되는 양 무미건조하게 짓밟아 죽여 버린 그의 모습이 모두의 눈동자에 투영되었다.
지나칠 정도로 잔혹하게 다가오는 담담함.
핏물 묻은 발을 흙바닥에 대강 닦아 낸 진무가 동천주들을 차분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내가 준 기회, 차 버린 건 니들이야.”
“흥! 기회 같은 소리!”
“발끈하기는. 뭐, 놀랄 일도 아니잖아? 뒈지는 거야 항상 각오하고 살았을 테고, 니들도 이렇게 죽여 왔을 거 아냐.”
“…….”
비릿한 미소와 함께 진무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전신의 혈도를 개방했다.
혹시나 능서현이 빈 주먹에 맞고 뒈질까 싶어 억눌러 놓았던 묵룡혼원공의 기운이 급류처럼 세차게 흘러 전신의 감각을 일깨운다.
눈빛은 검게 물들어 흑요석처럼 반짝이고, 사이한 기운이 퍼져 나와 안개처럼 사방을 잠식했다.
쿠우우우.
“이, 이런 기운을?”
능서현의 눈동자에 경악이 어렸다.
처음에 만났을 때, 그리고 자신과 싸웠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사위를 가득 메운 검은 기운이 주는 음산함은 둘째 치고, 순식간에 범위를 확장한 기운에 대지가 진동하고 대기가 비틀리며 괴성을 질러 댄다.
힘을…… 감추고 있었다고? 자신을 상대로?
이제 더 놀랄 기운도 없었다.
진무의 주위에 가득 채웠던 공기가 소스라치게 놀란 듯이 밀려나고 그의 광포한 검은 사기가 아지랑이처럼 선명한 문양을 그린다.
“자, 기회를 제 발로 차 버린 놈들에게 어떤 벌을 줘야 할까.”
“……이, 이놈.”
능서현이 놀란 만큼 그들 역시 비슷했다.
진면목을 드러낸 진무의 힘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칼을 뽑은 이상 멈출 수는 없는 일이다.
금마영은 이미 죽었고, 머뭇대는 순간 자신들도 같은 꼴이 될 것임을 알기에.
“주, 죽어라!”
“그래야지, 암.”
다만 내가 아니야. 니들이지.
진무가 검은 기운을 온몸에 둘둘 말고 맑게 웃었다.
그의 입술 새로 당장이라도 먹잇감을 물어뜯을 것처럼 새하얗게 빛나는 송곳니가 드러났다.
가볍게 밀어 낸 진무의 손길에 무력하게 전투의 현장에서 밀려 나온 능서현은 지금 사상 초유의 싸움을 관전하게 되었다.
성강에 이른 고수 셋, 그리고 사람이라고 보기는 힘들 정도로 무지막지한 괴물 하나.
잔혹하게 웃으며 그 중심으로 뛰어든 진무에게 다수의 우위 따위는 문제 되지 않았다.
한 우리에 갇힌 늑대 세 마리와 범. 아니, 용.
그 대단한 동천주들과의 어우러짐은 실로 굉장했다.
세 곳에서 치고 들어오는 공격에도 진무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그가 점차 승기를 잡는 동안 동천주들은 제대로 된 공격조차 변변히 하지 못하고 있었다.
진무의 손과 발을 막아 내는 것만으로도 벅찬 모습이었다.
지면이 터져 나가고 폭풍 같은 기세가 사방에 휘몰아친다.
“크아악!”
용의 발톱에 뇌공의 팔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어깻죽지에서 분수처럼 솟구치는 핏줄기를 고스란히 뒤집어쓴 진무의 주먹이 그의 가슴뼈를 부수고 심장을 터트렸다.
“이걸로 둘.”
“……!”
심장이라는 활기찬 동력원을 잃어버린 뇌공이 힘없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바닥에 처박는다.
피 칠갑을 하고 우뚝 선 진무의 검은 눈동자가 나관수와 석중하를 바라보았다.
두려움과 공포에 어느덧 멈춰 버린 그들은 패배를 직감했다.
그들의 힘으로는 괴물을 막을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사무치는 무력감이 그들의 움직임을 둔화시켰다.
그리고 그 느림 속으로 섬전과도 같은 빠름이 스치며 지났다.
뻐어억!
날뛰기 시작한 용은 자비 따위는 눈곱만큼도 베풀지 않았다.
진무의 주먹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나관수의 몸뚱이뿐이었다.
목 위로 아무것도 남지 않은 몸이 털썩이며 쓰러지고 난 후, 동그랗게 뜨인 석중하의 눈동자에 스치는 두려움.
발은 멈췄고, 손은 힘없이 바닥을 향해 처진다.
전의를 상실한 그는 무인으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렸다.
“져, 졌소…….”
털썩.
석중하의 무릎이 땅바닥에 닿았다.
패배를 시인하고 꼬리를 말아 버린 짐승.
“이젠…… 하나.”
“……!”
악귀 같은 표정으로 내뱉은 진무의 한마디에 석중하의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었다.
내가 말했잖아.
능력이 되는 놈을 앉히고 필요 없는 그릇은 깨 버리면 그만이라고.
내가 필요한 것은 능서현 하나.
니들은 쓸모없는 그릇이다.
스산하게 다가오는 진무의 미소에 기겁한 석중하는 도주를 결심했다.
강의 경지에 오른 이후 적의 앞에서 물러나 본 적 없는 무인이 겁에 질려 도망치는 것 하나에만 사력을 다한다.
하지만 그의 뒷머리는 진무가 내뻗은 손에 속절없이 잡혔다.
힘차게 끌려온 석중하의 눈동자에 새하얗게 웃고 있는 진무의 얼굴이 담기고, 이내 잔혹한 주먹이 사정없이 떨어졌다.
콰직! 퍼억! 퍽!
감정 한 올 실리지 않은 그의 주먹이 연이어 내리꽂히며 석중하의 머리뼈를 바스러뜨렸다.
주먹이 반쯤 파고들었을 때 석중하의 의식은 끊어졌다.
힘없이 팔이 늘어지고, 버둥거리던 다리는 움직임을 그쳤다.
“후우…….”
주먹이 멈추고 진무의 손이 놓였을 때.
능서현은 그 잔혹함에 혀를 내두르기는커녕, 굳건한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그녀의 무릎과 함께.
“졌소.”
“…….”
패배를 시인한 그녀의 모습에 진무가 해맑게 웃으며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잘해 보자.”
“…….”
그 말에 능서현은 고개를 들고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스스로를 증명했다. 마치 먹구름을 뚫고 지상을 비추는 햇살처럼.
자리에서 일어난 능서현이 진무의 뒤편에 공손하게 섰다.
능서현은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고, 진무는 또 다른 마교 무인의 충성과 사동천을 손에 넣었다.
“와아아!”
사방에서 함성이 들려온다.
육동천의 무인들은 승리를 향해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고, 사동천의 무인들은 문을 열고 새로운 강자의 등장을 받아들였다.
“젠장…… 정말이지 저 사람은…….”
가슴을 졸이며 전장을 관전하던 일환이 그제야 깊은 숨을 토해 냈다.
또 이루어 버렸다.
자신이 내뱉은 말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하지만 이제부턴 훨씬 더 바빠지리라.
사동천을 손에 넣었고, 무려 동천의 주인을 넷이나 죽여 버렸다.
천산을 향해 또 한 걸음 다가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