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57
357화
청상 일행은 오래지 않아 검혜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이동천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숲의 깊은 곳까지 와서야 겨우 숨을 돌렸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경계하던 운암이 참았던 안도의 숨을 내쉬며 모두에게 안전함을 알렸다.
“아직 추적이 따라붙지는 못한 모양입니다.”
“다행일세. 놈들이 바로 뒤쫓지는 않은 모양이야.”
“예. 은위단의 무인들이 오면서 흔적을 대부분 지웠으니 쉽게 찾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체해서는 안 될 일이네. 잠시만 쉬고는 곧장 빠져나가야 할 것이야.”
“예. 모두에게 그리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대궁이 자책감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
힘없는 그의 목소리에 청상이 온화하게 웃으면서 다가섰다.
“대궁 조장께선 충분히 제 역할을 하셨습니다. 그 위험한 와중에도 모두를 살리기 위해 호각을 부셨지 않습니까?”
“……그건.”
아니다.
호각? 애초에 자신이 발각되지 않았다면 불 이유도 없었다.
모두가 자신 때문이다.
본각 안에 그 같은 괴물이 도사리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한 실책으로 모두를 위험에 빠지게 해 버렸다. 하지만 대궁은 차마 제 입으로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맞습니다, 조장. 그만 잊어버리세요.”
“암요. 조장 없는 은위단이라니, 아마 그대로 돌아갔다가는 단주님께서 가만있지 않으셨을걸요?”
“그뿐입니까? 나중에 황신 놈을 만나면 분명 귀에 피가 나도록 욕설을 들어야 할지도 모르구요.”
은위단의 무인들이 대궁을 위로하며 저마다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곤 모두가 청상을 향해 공손하게 포권하며 고개를 숙였다.
“저희 조장님을 구해 주신 무당, 아니 청상 도장과 청우 도장의 은혜를 은위단은 절대로 잊지 않을 것입니다.”
“…….”
하지만 청상은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이제는 모두가 한 가족이 아닙니까? 또한 대궁 조장께선 진무 사숙의 수하이시니, 마땅히 우리 무당에게도 귀한 분입니다.”
“…….”
“그러니 모두 감사를 거두세요. 일단은…….”
청상은 대궁의 앞에 꿇어앉고는 선기를 일으켜 역으로 꺾인 그의 팔을 잡았다.
청량감이 도는 기운에 대궁은 마음이 한결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아플 겁니다.”
“…….”
청상이 무엇을 하려는지 아는 대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청우.”
“예.”
굳이 설명하지 않았음에도 청우가 천을 둘둘 말아 대궁의 입에 물렸다.
“참으세요.”
뿌드드득!
청상의 힘에 반대로 꺾였던 팔이 빠르게 제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그 고통이란 이루 말할 데가 없었다.
“커억……! 하아, 하아…….”
천을 물었음에도 참지 못한 대궁이 거친 숨과 함께 고통스러운 신음을 뱉어 냈다.
보는 이들조차도 눈을 찡그릴 정도로 아파 보였으나 그만하면 잘 참아 낸 것이었다.
치료를 마친 청상이 선기로 그의 팔을 보드랍게 감싸 어루만졌다.
생명을 머금은 근원에서부터 시작되는 순수한 선기의 힘에 아픔이 서서히 옅어진다.
선기는 때론 병을 치료하기도 하고 때로는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기도 했다.
한승이라는 괴물이 훑고 지나간 곳곳에 응어리져 있던 죽음의 기운이 청상의 선기에 조금이나마 흐려졌다.
“응급 처치를 했으나 어찌 회복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잠시 눈을 붙이시는 편이…….”
“아닙니다. 제가 어찌 한가롭게 잠을 청하겠습니까.”
대궁의 거부에 청상은 더 이상 권하지 않고 그를 마주 보며 따뜻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검혜의 입가에도 마찬가지로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정사의 연합.
특정한 목적을 위해 뭉쳤던 경우는 과거에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서로를 의지하고 고마워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진무……. 참으로 대단한 자다.
그야말로 연꽃 같은 인물이 아닌가?
오랫동안 척을 지며 살아온 이 중원이라는 흙탕물에서 화합이라는 꽃을 조금씩 피어나게 하고 있으니.
언젠가 시간이 흐르면 그가 퍼트린 씨앗이 자라고 자라 이 거대한 썩은 습지에 지금의 모습과도 같은 연꽃이 가득 자라게 될지도.
“어르신, 이제 어찌할까요?”
“음…….”
운암의 말에 검혜의 흐뭇했던 표정에 다시금 어둠이 내려앉았다.
조금은 이르게 발각된 때문에 내부를 완전히 살피지 못하여 아이들의 행적을 찾을 수가 없다.
하지만 쑤셔 놓은 벌집 같은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일.
일단은 차선책을 택할 수밖에 없다.
“남쪽으로 가도록 하세.”
“하면 진무 도장을?”
“그래. 달리 방법이 없지 않은가?”
그녀의 말이 옳다.
그들은 이미 이동천의 경계를 벗어나 삼동천의 영역에 들어섰다.
섣불리 구원을 목적으로 마교의 영역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천우명이나 당위를 부를 수도 없는 일이다.
아직은 적의 추격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나 일단은 몸을 피해 추격대의 목숨줄부터 구해야만 했다.
다시 말해 마교 내에서 거대한 연맹을 만들어 낸 진무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는 상황. 차후의 일은 그와 논의하는 수밖에.
“자, 서두르세. 길이 머니 한시바삐 가야 할 것이네.”
“예.”
운암에 의해 검혜의 명이 전달된 즉시 추격대가 짧은 휴식을 끝내고 이동할 준비를 서둘렀다.
“일단 은위단이 선두에 서서 길을 안내하고 섬멸조는 측방, 본대는 후방을 경계하며 뒤따르세.”
검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대열이 정비되고, 은위단은 곧장 진무가 있을 사동천의 본성 쪽으로 가는 가장 빠른 경로를 산출했다.
“출발하겠습니다.”
이동 명령과 함께 부상당한 대궁을 대신해 은위단의 무인들이 앞장서 길을 헤쳤다.
“……!”
순간 첫걸음을 내디딘 검혜가 눈을 찢어질 듯 부릅떴다.
“위, 위험!”
콰아아앙!
검혜의 경고에 고개를 돌렸던 선두의 무인들이 숲과 함께 폭발했다.
나무가 뿌리째 뽑혀 나가고 지면이 흉물스럽게 파헤쳐져 밀려 나갔다.
“이, 이런…….”
상처를 입은 것은 숲만이 아니다.
선두를 지켰던 은위단 무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증발해 버린 것처럼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 숲을 파괴한 장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잘도 여기까지 도망쳤구나. 쫓느라 제법 힘들었다.”
“…….”
왜소한 체구에 구부정한 허리를 한, 어디에서나 볼 법한 촌로와도 같은 외양이었다.
하지만 검혜를 부르는 또 다른 별칭, 천수천안.
눈앞의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는다는 그녀의 기민한 감각이 위험을 말해 왔다.
그가 내쉬는 숨결, 주름져 처진 듯하지만 신광을 내뿜고 있는 눈빛, 대지를 딛고 자연스럽게 선 그의 전신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위압감.
순간적으로 파고들어 온 긴장감에 검의 손잡이를 절로 움켜쥘 정도로 강한 자다.
선두에 섰던 은위단 무인들은 저 강대한 힘 앞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 분명했다.
함부로 덤볐다가는 그녀조차 승패를 장담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느끼지 않더라도 정황상 숲을 통으로 날려 버린 것이 그라는 사실은 분명했기에 무인들 전부가 검을 뽑아 경계 태세를 취했다.
다만 대궁은 달랐다.
“……이게 무슨.”
허탈함에 웃는 것 같기도,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우는 것 같기도 한 표정.
무릎을 꿇은 채로 흉물스럽게 변해 버린 숲을 망연히 바라보는 그의 눈빛.
“종천…… 무개…… 백소…….”
신음처럼 그의 입에서 새어 나오는 이름들.
함께 온 은위단의 조원들의 이름이었다.
조금 전까지 자책하는 대궁을 위로하며 장난을 쳤던 그들.
한순간에 시신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 그들의 모습 앞에 대궁이 실성한 듯 낮게 웃음을 터트렸다.
“함께 돌아갔어야지……. 내가 죽으면 단주님께 야단맞는다며. 그럼 나는? 나는 어쩌란 말이냐…….”
처연함마저 느껴지는 대궁의 목소리가 잘게 떨려 온다.
슬픔이 분노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다 낫지 않아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그의 손가락이 열 개의 고랑을 만들며 흙을 움켜쥔다.
다친 팔이 제 기능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듯, 그가 등의 쇠막대기를 휘어 시위를 걸었다.
“이 개잡놈의 새끼! 죽여 버리겠다!”
“청상!”
시위가 놓이려는 찰나에 검혜가 다급히 외쳤다.
그러나 청상은 이미 앞서 움직이고 있었다.
퍼억!
대궁의 목 뒤를 정확히 가격한 수도.
놓이지 못한 시위는 흐물거리며 힘을 잃었고, 걸렸던 철시가 얼마 가지 못하고 땅바닥에 박혔다.
대궁을 기절시켜 안은 청상이 노인을 매섭게 노려보며 조심스럽게 물러나고, 그 자리를 운암이 재빨리 채웠다.
“저런…… 쏘게 두지 그랬더냐?”
장난기 어린 어조였지만 누구도 함부로 웃지 못했다.
검혜는 노인에게 싸늘한 시선을 고정한 채 재빨리 기감을 퍼트려 주변을 훑었다.
없다.
오직 노인 하나뿐이다.
놈은 이쪽을 추격해 온 것이 분명하고 그 대단한 무위로 자신들을 추월하기까지 했으니 후위가 아직 붙지 못한 것이다.
하면 답은 하나다.
후위가 붙기 전에 도주해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노인을 뒤쫓지 못하게 잡고 있어야 했다.
“청상! 운암!”
“……?”
검혜의 외침에 경계심으로 가득하던 청상과 운암이 고개를 돌렸다.
“쉬지 말고 달리거라.”
“……!”
시종일관 부드럽던 그녀의 말투가 변했다. 더불어 온화함을 머금고 있던 표정은 북풍의 칼바람이 느껴질 정도로 싸늘해져 있었다.
“어르신!”
“너희가 나를 걱정하는 것이냐?”
“…….”
“나는 검혜다.”
검혜 벽운영이 가슴을 활짝 펴서 몸을 세우자 세찬 폭풍을 닮은 기도가 뿜어져 나왔다.
“너희들이 걱정할 만한 사람이 아니며, 설령 저자가 나를 넘을 정도로 강하다면 너희가 남아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
“후위가 붙으면 너희를 지켜 줄 수 없다. 허니 가거라. 너희는 앞으로의 중원을 이끌어 갈 동량이니라. 명(命)을 귀중히 여겨 후일을 도모하라.”
“어르신!”
청상은 간절한 어조로 재차 외치는 운암의 팔을 잡곤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당당하게 서 있는 검혜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노인은 그만큼 강하다.
대궁을 구할 때와는 달랐다. 그녀가 희생하지 않으면 모두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안 된다 버티며 그녀를 돕는 것은 되레 그녀를 위험에 처하게 만들 수 있는 일이었고, 정무칠성이라는 그녀의 이름에 대한 모독이나 다름없었다.
지금은 물러나야 했다.
마음을 굳힌 청상은 검혜를 향해 공손하게 포권했다.
“……먼저 가서 기다리겠습니다.”
말은 그리 뱉어 내었으나 지워지지 않는 불안감에 어금니를 부서질 정도로 깨물었고, 겹친 손가락이 손등을 파고들었다.
검혜가 검을 뽑는다.
백색의 검신이 그 모습을 드러내니 순간 세상이 환해진 듯했다.
그녀가 고른 치열을 드러내며 웃었다.
“가거라.”
단 한마디.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이미 그녀의 주위는 차디찬 한기와 함께 주변의 풍경이 왜곡될 정도로 거대한 기운으로 가득 찬 채였다.
청상은 곧장 대궁을 어깨에 둘러메고 뛰었다.
입술을 깨물며 고민을 거듭하던 운암이 그 뒤를 따라 몸을 날리고, 뒤이어 청우를 비롯한 갑무반의 무인들이 움직였다.
오직 한 사람. 제갈산산이 걸음을 떼지 못했다.
무력하다.
마음을 다해 그녀를 스승이라 생각해 온 제갈산산이었다.
그런 그녀가 당당하게 죽음을 각오했음을 알고 있으나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지금 이 순간, 짐 덩어리 외에 무엇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녀의 애통한 마음을 아는 것인지, 검혜가 곱게 눈을 휘어 웃으며 제갈산산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그만 가라 말한다.
자신은 걱정 말고 가 살라 한다.
제갈산산은 거칠어진 숨을 참지 못했다.
하지만 스승을 두고 가는 못난 제자가 되어 눈물을 흘릴 수는 없다.
결국 그녀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정중하게 절을 올려 이별을 고했다.
어쩌면 다시 뵙지 못할 자신의 스승을 향해.
“존체 보중하십시오.”
“……즐거웠다.”
“…….”
“나의 마지막 제자야.”
진심이 담긴 한마디에 울컥한 제갈산산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옷깃을 적시고 땅을 축축이 적셨다.
한참이나 그렇게.
그러곤 고개를 숙인 채 달렸다. 돌아보면 발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부디.
스승을 다시 보길 기원하며.